정부 임상시험 확대… 부작용 심각복지부, 글로벌 임상시험 유치 확대, 경쟁력 강화한 해 평균 160건 부작용… 임상시험의 20% 웃돌아국민 위험성 담보… 경제적 이익 아닌 의학 발전 위해야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임상시험에 4번 참여했다. (임상시험을) 한 번 하면 20만~30만원에서 많게는 70만~80만원까지 받았다. (중략) 피를 3~4번 뽑으니까 픽 쓰러진 사람을 본 적 있다. 같이 (임상시험을) 지원했던 친구는 약을 먹고 나서 어지럽다며 한참 동안 누워 안정을 찾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임상시험 참가자의 고백이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국내외 제약회사의 임상시험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뜻을 밝힌 반면 선진국들은 위험성과 윤리적 문제를 이유로 자국 내 임상시험을 제지하고 있다.

'국가 경제에 일조하는 임상시험'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입장과 이를 반대하는 측이 우려하는 바를 살펴봤다.

세계 5대 임상시험 강국 목표

국내 임상시험 시장은 2002년부터 추진된 임상시험 규제 선진화 정책 등 정부의 지원으로 규모를 키워 왔다. 그 결과 한국은 지난해 세계 임상시험 시장 점유율에서 7위를 차지했으며, 도시별 점유율에서는 서울이 미국 휴스턴, 뉴욕을 제치고 1위에 오른 바 있다.

임상시험 참가 경험자들이 지난 16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열린 '임상시험의 숨겨진 진실, 국민이 마루타인가?' 토크쇼에서 임상시험 경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윤소영 기자
이 가운데 8월 31일 보건복지부(장관 정진엽)는 2020년까지 세계 5대 임상시험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임상시험 글로벌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중국ㆍ브라질 등의 국가가 글로벌 임상시험 유치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임상시험 강국이 되는 방법으로 '임상시험 통합정보시스템 및 네트워크 구축' '임상시험 유치 활성화' '임상시험 유관산업 활성화' '아시아 공동연구 플랫폼 구축 및 리더십 강화' '임상시험 안정성 지속적 강화' '제도적 지원 강화' 등을 들었다.

이 중 산재돼 있는 임상시험 유관기관의 정보를 모아 임상시험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게 보건복지부 측이 계획한 내용의 골자다. 보건복지부는 임상시험 통계자료뿐만 아니라 질환별 환자 정보, 질환별 임상시험대상자 정보 등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산하 재단인 한국임상시험사업본부를 통해 해외 제약회사의 임상시험을 유치하기 위한 홍보에 앞장설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인턴십 프로그램 등으로 CRO 육성을 지원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통해 임상참여자, 임상시험기관을 관리해 '매력 있는 투자처'로 거듭날 예정이다.

더불어 보건복지부는 임상시험의 통상진료비용에 보험급여를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임상시험 과정에서의 보험급여 적용을 통해 저소득층과 난치병 환자들의 임상 참여를 확대시켜 청년 일자리 창출, 신약 접근성 제고 등을 기대했다.

생활고 때문에 임상시험 나서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의원에 의해 공개된 '최근 3년간 의약품 임상시험 승인 현황'에 따르면 한해 평균 160건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2011년 503건, 2012년 670건, 2013년 607건의 임상시험 중 각각 163건, 166건, 147건의 부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작용 사례가 임상시험의 20%를 웃돌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인지도와 경각심은 낮은 실정이다. 더구나 정부는 임상시험을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산업으로 소개하며 보험급여의 확대·적용을 통해 저소득층의 임상시험 참여를 확대하겠다고 주장했다.

임상시험에 참가했던 경험자들은 임상시험을 장려하는 정부의 움직임에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지난 16일 서울 통인동에 위치한 참여연대에서 열린 '임상시험의 숨겨진 진실, 국민이 마루타인가?' 토크쇼에 참석한 두 명의 임상참가자는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채모씨(24)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임상시험에 3회 참가하며 고혈압 약, 전립선비대증 치료제 등을 복용했다고 밝혔다. 채씨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임상시험이 끝나면) 필요한 돈이 들어오고 해서 신경을 못 쓰고 (임상시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2번 실험을 해야 (돈을) 지급하고 1번 실험을 하면 아예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그만둘 수도 없다"며 "(임상시험은) 부작용을 개인에게 돌려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임상참가자인 김모씨(31)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혈압 약 임상시험에 1회 참가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아르바이트를 낮에 하면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가장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다가 (임상시험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가 아닌 이상 개인이 부작용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며 "임상시험을 하는 내내 존엄성이 훼손돼 기분이 나빴다. 위험은 누구에게 전가되는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털어놨다.

"금전 아닌 의학 발전 위해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정책국장은 피험자의 곤란한 환경을 이용한 임상시험 확대는 반인륜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정 국장은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으면 약물 개발을 못하므로 (신약 개발에) 많은 분들의 희생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소화제, 혈압 약은 (부작용이) 크지 않지만 향정신성 의약품은 소량 복용해도 의존성이 생기고 중독으로 나아갈 수 있다"며 "최근 병원들이 암 센터를 지으며 신경계, 내분비계 약물에 대한 임상시험을 늘리고 있는데 이런 약들은 부작용이 심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상시험은 인류의 의학 발전과 환자의 치료행위를 위해 하는 건데 금전적인 목적 때문에 하면 여러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며 "의학발전에 기여하겠다는 피험자들을 모아서 공적 기관이 공익 목적을 위해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글로벌 임상시험 유치를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확실한 일자리와 위험한 신약을 미끼로 국민의 건강보험료까지 이용해 병원, 제약회사를 배 불리는 정책이 국민경제에 얼마나 이익이 되겠냐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정형준 국장은 "정부는 공익을 배제하고 연구진, 제약회사와 결탁해 기술지주회사를 만들어 개발한 약의 특허권과 인센티브를 가질 수 있다"며 "임상시험을 할 때 주기적으로 피를 뽑아서 농도 분석을 하는데 (현 상황은) 피험자들의 피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한 약사는 "외국계 제약회사들은 한국 의사들이 자기 환자를 임상 대상으로 모집해주고 환자들도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없어서 좋다고 한다"며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정보지만 국민의 위험성을 담보하고 있어 이게 좋은 현상인가 싶다"고 밝혔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