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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범죄' 대한민국을 떨게 하다

“나 혼자 죽는 건 억울해”…누구도 당할 수 있는 ‘불안의 시대’
  • 3월 17일 오전 6시 30분께 경남 진주시 강남동 모 인력 사무실에서‘묻지마 살인’으로 일감을 기다리던 인부 2명을 살해하고 1명을 크게 다치게 한 피의자 전모씨가 고개를 든 채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묻지마 범죄' 꾸준하게 증가…매년 50건 이상 발생
살인ㆍ상해 등 강력범죄가 대부분…수법도 잔혹해
'현실 불만'이 '사회 불만'에서 '사회 복수심'으로
묻지마 범죄 막을 효율적인 관리ㆍ대응시스템 마련돼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유 없이 위해를 가하는 '묻지마 범죄'가 꾸준하게 발생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묻지마 범죄는 28건에 달했다. 최근 3년간 매해 54~55건씩 꾸준히 발생한 것에 비해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 울산 버스정류장 묻지마 살인, 회칼로 2명을 살해한 진주인력사무소 앞 묻지마 살인에 이어 지난 20일 수원역 PC방에서 흉기 난동 사건까지 장소와 시간대를 불문하고 잔혹한 범행은 끊이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잇따른 묻지마 범죄로 인해 사회 안전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0.9%가 불안해하고 있었다.

불특정 대중 상대로 범죄… 수법도 잔혹해

지난해 7월 울산시 남구 삼산동의 한 대형쇼핑몰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여대생 A(18)씨가 장모(23)씨가 휘두른 흉기에 수차례 찔려 살해됐다. 범행 하루 전 장씨는 한 주점 등에서 어머니와 별거 중인 아버지와 술을 마셨다. 장씨는 사건 당시 무직이었고 별거 중인 부모로 인해 여러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아버지에게 "너는 돈도 안 벌어오고 뭐 하는 것이냐"는 등의 말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장씨는 집 주방에서 칼을 가지고 나와 울산의 여러 곳을 배회했다. 다음날 오전 6시쯤 장씨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여대생을 칼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했다.

장씨는 범행 직후 "대한민국이 싫다. 나 혼자 죽기는 그렇고 누구 하나 같이 죽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장씨가 A씨를 칼로 31회나 내려찍는 등 '묻지마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사회 공동체 전체가 장씨의 잠재적 범행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이 사건으로 인해 신입생이던 A씨는 이유도 모른 채 생명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진주시 강남동의 한 인력공사 사무실 안팎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나왔던 전모(55)씨가 아무런 이유 없이 동료 노동자 3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목격자들은 전씨가 갑자기 안쪽 호주머니에 감춘 흉기를 꺼내 '흑사회'라고 고함을 지르며 사무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김씨에게 휘두르고 이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있던 윤씨와 양씨의 등과 목, 가슴을 수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전씨가 3년여 전 수원에서 발생한 여대생 납치, 강간살인 사건이 한국에 잠입한 중국 흑사회 조직원들의 소행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이들을 단죄하기 위해 흉기를 소지한 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에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고 한 번 잃으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며 "피고인이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거나 미수에 그친 이른바 '묻지마 살인'으로 그 죄질의 중함과 위험성이 매우 크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국민 절반 이상 '불안한 시대'에 공포심

두 사건은 모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아무런 원한이 없고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없었던 '묻지마 범죄'였다. 경찰청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는 최근 3년간 매년 50건 이상 일어나고 있다. 올해 7월까지 묻지마 범죄는 28건 발생했다. 이런 묻지마 범죄의 발생 유형 중 70%가 강력범죄로 살인과 상해 등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묻지마 범죄가 발생함에 따라 시민들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뉴스를 통해 흉악 범죄 소식을 들어도 나의 일이라고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는 출근길을 두려워하고 가족의 안전을 염려해야 하는 '불안한 시대'가 됐다. 원한을 사지 않아도 아무나 대상이 될 수 있는 범죄의 표적이 되면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처음으로 묻지마 범죄로 지목됐던 사건은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중년 남성이 출근 중인 지하철 승객을 상대로 불을 질러 192명이 사망했다. 지적 장애를 앓던 남성은 한 승객이 지하철 안에서 라이터를 껐다 켰다 하는 행위를 위험하다고 지적하자 홧김에 불을 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가 복잡해지며 묻지마 범죄 소식은 더 잔인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시원에 불을 지른 뒤 이웃 주민을 흉기로 살해한 정모씨는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한복판에서 전 직장 동료를 칼로 찌른 김모씨는 "실직으로 인한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웃집에서 들린 행복한 웃음소리가 싫어 대문을 열고 들어가 부부를 살해하기도 했다.

잇따른 묻지마 범죄로 국민은 '불안한 시대'에 공포심을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사회 안전에 대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0.9%가 불안해하고 있었다. 작년 국민에게 사회안전에 대한 인식을 물은 결과 '안전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8.9%로 나타났다. '매우 안전하다'고 답한 사람은 0.6%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불안하다'고 답한 사람은 39.5%, '매우 불안하다'는 응답자는 11.4%로 나타났다.

묻지마 범죄 대부분 살인ㆍ상해 강력범죄

대검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총 163건의 묻지마 범죄가 발생했다. 이중 묻지마 범죄의 대부분은 살인이나 상해 등 강력범죄에 해당됐다. 살인범죄가 2009년 1390건에서 지난해 941건으로 15% 이상 줄어든 것에 비해 묻지마 범죄는 지속적으로 발생해 국민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묻지마 범죄의 주된 원인은 현실불만(24%), 정신질환(36%), 알코올 등 중독(35%) 등으로 나타났다. 취업난이나 사업실패, 실직, 경쟁으로 오는 스트레스, 생활고를 겪으면서 현실에 불만을 품거나 중독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범죄자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피의자 163명 중 무직이 101명, 일용노동자가 31명이었다. 또한 묻지마 범행 163건 중 절반이 넘는 84건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죄 발생장소는 길거리가 89건(54%), 공원·지하철역·초등학교·도서관 등 공공장소가 21건(13%)이어서 누구나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 요소도 잠재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형사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국내에서 발생한 묻지마 범죄를 분석해 범죄자를 현실 불만형, 만성 분노형, 정신 장애형으로 나눴다. 범죄자 48명 중 만성 분노형은 22명(45.8%), 정신 장애형은 18명(37.5%), 현실 불만형은 8명(16.7%)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만성 분노형 범죄자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의도를 곡해한다는 특징을 지녔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재미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는 것이다. 범죄자가 주폭이나 상습 폭력범인 경우 여기에 해당한다. 정신 장애형 범죄자들은 신체 및 정신 병력이 있고, 정신과 치료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범행 당시 신체 건강이 양호하지 못하며, 망상이나 환각에 사로잡혀있는 경우도 있다. 현실 불만형 범죄자들은 주로 사회에 불만이 있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묻지마 범죄를 저질렀다. 범행 당시 우울한 기분을 느끼며 사회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가 폭발한다. 세 유형의 범죄 가해자의 평균연령은 약 39세로 30대와 40대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가장 나이가 어린 가해자는 18세, 가장 나이가 많은 가해자는 68세였다. 묻지마 범죄 예방책 절실

묻지마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대부분이 사회적 외톨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인간관계에서의 소외감이 촉발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다. 청년 실업 등 경기 불황으로 자신감을 잃고 자신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사람들이 욕구 불만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묻지마 범죄가 발생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5월 예비군 훈련장에서 예비군 1명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사격한 후 자살한 사건을 두고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라고 설명했다. 총기 사고의 가해자 최모(24)씨가 현역 시절 관심병사였던 것으로 미뤄 그가 사회나 조직에 대한 부적응자였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박탈감과 극단적 분노로 인해 잔혹한 범죄 형태로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특징은 사회 부적응자이거나 반사회적인 태도가 강하다"며 "피해의식 때문에 사회 구성원 그 누구라도 관계없이 복수의 도구가 되길 바라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이 '사회에 대한 불만'에서 '사회에 대한 복수심'으로 연결되는 점을 지적했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자신이 속한 사회에 표출하는 가해자들의 행태를 분석한 것이다. 자신의 절망적인 현실 상황에 대한 원인을 추상적인 사회 전체로 돌리며 그 분노를 사회의 일부인 대중에게 무차별적으로 표출한다고 전했다. 이에 끔찍한 묻지마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관리와 대응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 대검찰청은 법무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경찰청 등 유관기관과 학계, 사회단체가 '강력범죄 범정부대책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묻지마 범죄의 동기가 현실불만(24%), 정신질환(36%), 알코올 등 중독(35%)인 점에 대응해 각 부처가 정신질환 조기치료, 알코올 남용 방지, 재범 방지 노력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물론이고, 보호관찰ㆍ전자발찌 등 보안처분의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신질환자ㆍ알코올 중독자 등에 대한 치료보호, 사회적 빈곤층 및 소외자, 자살충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의 병행, 사회 음주문화의 개선 등도 동시에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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