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작 사건' 과잉수사 및 중대 실책'위작설'허구로… 불공정 수사 도마에

경찰에 의해 이우환 작품을 압수당한 서울 인사동 K화랑 김모 대표가 과잉수사의 문제를 제기하며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
'위작' 제작 및 판매 없는 것으로 밝혀져
"도깨비 시장용 위작과 본건과는 구분돼야"
'위작품 없는 수사' 수사 기본 위배 비난
증거품 확보 위한 무리한 수사 저항 불러
국내외 예술인들 "문화국력 테러 중단해야"

2013년 8월 불거진 '이우환 위작설' 논란이 올해 들어 재점화ㆍ확산된 데는 수사당국의 무리한 수사가 적잖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수사의 단초가 된 내용증명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간과되고 '위조품 확보 후 수사'라는 수사준칙이 무시됐고, 소장자를 압박해 선량한 거래를 해치는 과잉수사, 감정평가원과 또 다른 위작범의 진술에 오도된 수사, 심지어 증거조작 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수사의 공정성과 정당성이 상당히 의심받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작가의 작품 감정권이라는 천부적 권한을 무시하고 타 국가기관에 맡기려는 행태는 문화계 전반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이우환 위작' 사건의 핵심 쟁점과 수사당국의 무리한 수사의 중대 실책 등을 짚어봤다.

'위작 사건' 핵심 쟁점과 문제들

'이우환 위작' 사건의 핵심은 크게 ▦위작범으로 언론에 알려진 현모씨와 판매책으로 알려진 이모씨와의 이우환 위작품 거래 ▦판매책 이모씨와 부산거주 화랑업자 김모씨와의 이우환 작품 거래 ▦인사동 화랑들이 위작품을 알고서 취급한 사실 여부 ▦언론을 통해 새롭게 알려진 이성0의 위작범죄 여부와, 만약 이우환 위작을 했다면 어디로 흘러갔는가 등이다.

먼저 현씨와 이씨의 이우환 위작품 거래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씨는 이우환 위작을 하지 않았고, 설령 현씨가 새로운 위작범으로 등장한 이성0을 시켜 이우환 위작을 했더라도 판매책 이씨와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이씨와 현씨 사이의 민화 및 고미술 거래 증거자료와 두 사람이 이우환 위작 및 판매와 무관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한 데 따른 것이다.

둘째, 판매책이라는 이씨와 부산의 화랑업자 김씨 사이에 직접적인 이우환 작품 거래는 없었고 대신 이씨가 이우환 작품 소장자를 김씨에게 소개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씨를 통해 재일교포 소장자를 소개받은 김씨는 이후 직접 소장자와 만나 거래를 했고 2∼3차례 만나 이우환 작품 4∼5점을 다뤘지만 그가 사망한 뒤엔 작품을 취급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미술품감정협회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셋째, 인사동 화랑들은 위작 논란 시기인 2012∼2013년 감정협회에서 진품감정서를 발급받은 후 작품거래를 했기 때문에 위작을 취급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고가 작품이어서 2중, 3중의 철저한 검증 후 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넷째, 또 다른 위작범 이성0은 현씨와 7∼8년 전부터 한국 대가들의 조잡한 위작을 하면서 공생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성0의 위작이 이씨에게 건네진 적은 없다.이성0의 위작은 주로 장안평 등 도깨비 시장에서 100만∼400만 원에 거래됐으며 이번 '위작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두 사람이 도깨비 시장용 위작품 횡령 문제로 소송을 하고 있어 더욱 분명해졌다.

수사 당국의 과잉수사 및 중대 실책

수사 당국은 '이우환 위작' 논란 수사에 공정성과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한 데는 신뢰할 수 없는 현씨와 이씨 사이의 내용증명을 근거로 수사에 착수하고 증거확보를 소홀히 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이번 '위작 논란' 수사는 한국고미술협회 실력자의 사감에서 비롯됐고 그가 제보한 현씨와 이씨 사이의 내용증명이 단초가 됐다. 그 내용증명은 현씨가 2013년 5월 21일자로 이씨에게 보낸 것으로 이우환 위작에 대한 언급과 이씨가 현씨의 고미술품(민화 등)을 팔아 80억 원가량을 벌었으니 절반인 40억원을 달라는 것이 주내용이다. 그러나 이 내용증명은 이우환 위작 내용이 사실과 맞지 않고 이씨가 80억 원을 벌었다는 것도 허구여서 신뢰할 수 없는 문서다.

그러나 경찰은 이 내용증명을 근거로 수사를 하다보니 벽에 부딪혔고 '미술 위조품 수사는 증거품이 없으면 공소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미술품 수사의 대원칙도 무시됐다.

그러다보니 무리하게 '증거품'을 확보하는 과정에 곳곳에서 충돌이 일었다. 경찰은 10월 16일 단지 이우환 작품 감정 신청이 많다는 이유로 인사동 K화랑을 압수수색했다가 위작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고 손을 놓은 상태다. 나아가 작품 소장자들에게 "가짜 작품" "세무 조사" 등을 운운하며 증거품 확보에 나섰다가 격렬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범죄수사의 목적을 넘어서는 선량한 거래관계 조사로 '사회공동체 기본질서 파괴'란 비난을 자초한 것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키(Key) 맨'인 이씨(판매책 소문)에 대해선 5개월째 출금을 시켜놓고 조사를 하지 않으면서 또 다른 위작범으로 등장한 이성0의 진술은 그대로 믿고 수사를 하는 등 수사의 형평성과 진실(실체)을 밝히는데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우환 위작' 사건의 핵심은 '위작'과 '판매(유통)'이다. 당연히 이씨는 수사의 핵심 대상임에도 경찰은 외면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씨가 사실을 밝히면 '위작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경찰 수사의 문제점이 부각될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반면 경찰은 사법처리 대상인 이성0을 6∼7회 출석시켜 조사하고도 "단순 아르바이트"였다는 범죄인의 진술을 그대로 믿는 등 이성0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경찰이 이성0을 수사하면서 '증거조작'의혹이 제기되는 점이다. 경찰은 지난 8월 25일경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을 압수수색해 이우환 감정자료 등을 확보하고 이성0에게 보여준 후 마치 자기가 위조한 것처럼 증거를 조작해 소장자들로부터 진품을 압수하려다가 실패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이우환 화백의 작품확인 요청을 거부해 또 다른 비난을 받고 있다. 작가의 작품확인은 천부적 기본권이자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 경찰이 아무런 이유없이 작가의 감정요청을 거부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월권행위라는 지적이다.

'이우환 위작설'논란이 3년 넘게 지속되면서 미술계가 황폐화되고 사태를 악화시킨 데는 경찰발(發) 언론보도도 한몫했다. 경찰이 사실 확인이 안되거나 미흡한 내용을 공개하고 이를 언론이 인용하면서 '이우환 위작설'은 '사실'처럼 보도되고 미술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에 따른 후유증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다.

이와 같은 경찰의 과잉수사와 공정성ㆍ정당성 시비는 국내는 물론 해외 예술인들에게 공분을 사고 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저명한 한국 작가들은 "대한민국이 왜 문화국력의 상징을 테러해 세계로부터 비웃음을 당하는 일을 지속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면서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했다.

실체적 진실규명을 위해 출발한 '이우환 위작설'에 대한 경찰 수사가 당초의 목적을 벗어나 과잉수사 논란 및 갖가지 중대 실책과 판단오류 등의 문제가 지적되면서 일각에선 오히려 문화국력의 상징인 이우환을 테러하는 일에 간접적으로 가담하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