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온라인으로 확대된 은밀한 폭력 '사이버 왕따'

24시간 공격 피할 수 없는 ‘사이버 불링’…소리 없는 고통 피해 심각
눈에 보이는 상처 없어 부모^교사 모르는 경우 많아

‘카따’,‘ 카톡감옥’에서 사이버갈취, 이미지 불링까지 교묘해져

또래 집단 의존 높은 청소년, 적극적 대책 필요해


과거에는 따돌림을 당하면 학교를 옮겨 새로운 환경에선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해결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온라인을 통한 협박으로 따돌림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온 친구들이 연결돼 있어 클릭 몇 번이면 금세 피해자를 추적할 수 있다. 결국 전학을 가도 다시 왕따의 빌미가 된다.

‘사이버 불링’은 인터넷상의 장난이나 다툼 정도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물리적 폭력이 없더라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따돌림과 괴롭힘이 이어진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옥죄는 ‘사이버 불링’으로 병들어 가는 학생들의 피해는 심각하다.

소리 없이 고통받는 ‘사이버 불링’ 피해자

다른 친구들보다 1시간 늦은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천지는 식사가 끝난 친구들 옆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천지가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천지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카카오톡 단체 방에서 그 모습을 욕하고 비웃는다.

학교 폭력으로 인한 자살을 다룬 ‘우아한 거짓말’의 한 장면은 ‘카따(카카오톡 왕따)’를 당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리적 상처는 없지만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느꼈던 소외감은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원인이 된다.

최근 SNS나 스마트폰 메신저 혹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이용해 상대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뜻하는 ‘사이버 불링’은 학교폭력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 폰은 중·고등학생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며 사이버 불링은 심화되고 있다. 과거의 왕따와 달리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어 24시간 학교폭력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학교폭력의 경우 멍이 들거나 피가 나 눈에 쉽게 띄지만 사이버 불링의 경우 온라인을 통해 발생하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가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없어 문제가 심각하다.

사이버 불링은 신체적 상처가 없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지만, 시시때때로 피해자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 피해자들은 집, 학교, 학원 등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피해를 입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만든 ‘반톡’에서 자신을 비꼬는 글이나 욕설, 굴욕적인 사진을 올렸다. 피해자가 채팅방을 나가면 계속 초대해 카톡방을 나갈 수 없게 하는 ‘카톡 감옥’을 통해 피해자를 옥죄었다. SNS에 피해자를 향해 게재된 욕설과 비방은 많은 사람이 복제를 하며 순식간에 퍼지고 복제된 글은 완전한 삭제가 어려워 2, 3차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이버 불링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가 받는 충격에 비해 가해자는 이를 하나의 놀이나 오락쯤으로 생각해 범죄로 여기는 의식이 낮다는 것이다. 또한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사이버 스토킹부터 사이버갈취, 아이디 도용, 안티카페 등 사이버 불링의 종류는 증가하고 있다.

학교 폭력 중에도 사이버 폭력 증가율이 최고

“나를 욕하는 게 보기 싫어도 자꾸 이름을 태그해 고통스럽다”는 정모(15) 양은 카카오톡 단체 방에 초대돼 무차별 공격을 당했다. “보기 싫으니까 작작 나대”라며 정 양을 괴롭히는 친구 무리의 폭언을 들었고 방을 나가면 계속해서 초대했다. “너 계속 나가면 해킹도 당하고 그래서 너 핸드폰 못 쓸 수도 있다”며 “초대를 하면 넌 거절 못 하고 계속 욕먹어야 한다”고 정 양을 협박했다.

페이스북에서는 정 양을 향한 ‘저격글’을 올렸다. 정 양을 겨냥해 “아 너 그러고 살지 마라” 라는 글에는 “너 왜 그러냐? 누구 때문에 그러냐”라는 댓글이 달리며 점점 퍼졌다. 급기야 정 양을 태그해 “너 보라고 한 말이다”라며 댓글을 달아 정 양을 ‘소환’했다. 정 양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중학생 박모(14)군은 친구 4명이 조를 나눠 PC방에서 온라인 게임 ‘서든어택’을 하기로 했다. 박 군과 한 조가 된 친구들은 게임을 하는 내내 “넌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 “너랑 같은 편이 돼서 재수 없다”며 계속 채팅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박 군만 빼고 5명 전원이 게임에서 빠져 박 군 혼자 게임을 해야 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작년에 발표한 ‘한국 청소년 사이버 폭력 실태 조사’에서 27.7%가 “사이버 불링을 당해봤다”고 응답했다. 피해 유형은 ‘온라인상 개인정보 유출’(12.1%)이 가장 많았다. ‘온라인 게임을 통한 괴롭힘’(10.2%)이 뒤를 이었다. 남학생은 온라인 게임에서, 여학생은 SNS를 통한 피해가 주를 이뤘다. 사이버 불링 가해 경험이 있다고 밝힌 학생은 19.4%였다. 주로 모바일 메신저 채팅방에서 누군가를 제외하거나 SNS 친구 신청을 거부하는 경우(10.1%)가 많았다.

또한 남학생은 ‘폭행ㆍ스토킹ㆍ금품갈취’ 같은 전형적인 학교폭력을 주로 겪는 반면 여학생은 ‘왕따ㆍ사이버괴롭힘’ 등 언어ㆍ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부가 2014년 전국 초ㆍ중ㆍ고교 498만 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1만662건으로 전년도보다 9.8% 증가했다. 유형별로 보면 사이버 폭력 증가 폭이 가장 두드러졌다. 온라인에서 언어폭력이나 따돌림 등 건수는 전년보다 32.8%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스마트 폰 보급률이 높아져 청소년들이 SNS나 모바일 메신저 등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며 사이버 불링 피해 및 가해 경험도 늘어나고 있었다.

사이버 갈취, 이미지 불링 등 사이버 불링 진화해

청소년 요금제를 사용하는 초등학생 강모(13)군은 항상 데이터가 부족하다. 그런데 반에서 ‘힘이 있는’ 한 친구가 “나 데이터 다 썼다”며 데이터를 빌려달라는 부탁에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강 군의 휴대전화를 와이파이 삼아 모바일 핫스팟을 켜달라며 “잠깐 쓰면 되잖아, 잠깐 쓴다고 배터리가 닳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쓰겠다”고 부탁 삼아 강요한다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까지 “왜 나는 데이터를 안 주느냐”며 강 군을 괴롭혀 고민이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중학생 윤모(14)양은 같은 반 친구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얼굴에 심한 포토샵이 되어 있는 ‘엽사’가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사진 좀 지워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다른 반 단체 카톡방에도 엽사를 올리고 SNS에도 사진을 올렸다. 잘 모르는 다른 반 친구들까지 윤 양을 놀렸고 ‘엽사’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올려 괴롭힘에 동참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사이버 불링은 갈수록 저연령화고 있으며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그동안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인터넷이나 이용 시간이 더 길어 사이버 불링 발생이 빈발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SNS를 이용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관계성을 중시하는 여학생 사이에서 사이버 불링이 증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보통 스마트폰 중독 고위험군일수록 사이버 불링 가해와 피해 경험이 모두 늘어난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대화방에 피해 학생을 불러놓고 다수가 비난하는 ‘떼카’와 피해 학생이 빠져나가도 대화방에 자꾸 초대해 괴롭히는 ‘카톡감옥’은 대표적인 사이버 불링 유형이었다. 사이버 불링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사이버 갈취다.

‘빵셔틀’처럼 다른 학생의 데이터나 와이파이를 빼앗아 쓰는 ‘와이파이셔틀’, ‘데이터셔틀’도 발생했다. 자신이 구매하고 싶은 음원을 피해 학생들에게 휴대전화 소액결제로 사달라고 요구하거나 중고사이트에 자신의 물건을 올려놓고 비싼 값에 사도록 강매하기도 했다.

사진ㆍ동영상 같은 이미지를 활용해 상대방을 괴롭히고 모욕감을 주는 이미지 불링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사이버 불링이 심해지면 인터넷 게시판에 피해 상대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성매매 사이트 등 불법 음란사이트에 피해 상대의 신상정보를 노출하기도 했다.

피해 학생 ‘수동적 방어’, 목격자는 ‘수수방관’

사이버 불링이 진화하며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 따돌림은 교묘해지고 있지만, 정작 피해를 당한 청소년들은 적절한 대처를 하기보다는 수동적 방어를 하거나 수수방관해 피해를 키우고 있었다.

사이버 불링 피해를 당하고도 부모님이 걱정할 수도 있고 오히려 문제가 커지는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한 피해 학생은 “부모님이 알면 걱정하실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른들이 나선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솔직히 그 친구들을 자극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일을 더 크게 벌려서 그 친구들을 강하게 처벌하면 그게 다시 나한테 돌아올 뿐이지 완전히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사이버 불링 피해를 당했을 경우 ‘상대방의 접속을 차단하는 경우’가 23.8%로 가장 많았고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경우’가 23.8%로 드러났다. ‘상대방의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22.4%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경찰에 사실을 신고하는 경우’는 2.4%, ‘부모에게 사실을 알린다’는 5.3%, ‘친구에게 사실을 알리는 경우’는 9.6%로 나타나 부모나 친구에게 사실을 알리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비율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상대방의 접속을 차단하는 경우는 남학생(34.7%)이 여학생(22.8%)보다 높게 나타났고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는 경우나 친구에게 사실을 알리는 경우는 남학생보다 여학생에게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버 불링을 목격했다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52.2%)은 “그냥 상황을 지켜봤다”고 답했다. 가해자에게 그만두라고 요구한 경우는 27.8%로 나타났다. 친구를 괴롭히는 데 같이 동참한 경우가 6.5%였고 경찰에 신고하거나(2.2%) 교사에게 알리는 경우(3.0%)는 극히 드물었다. 성별로 보면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더 가해자에게 그만두라고 요구한 경우가 많았고, 같이 동참한 경우도 더 많았다. 교사에게 알린 경우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등 주변인의 관심 필요해

사이버 불링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불링의 유형과 이러한 행동들이 하나의 폭력 행위임을 교육해야 한다. 무엇이 사이버 폭력인지 명확히 알려야 한다. 청소년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자신의 행동이 사이버 폭력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온라인이어서 재미나 장난삼아 이뤄지는 사이버 불링은 피해자들에게는 큰 상처를 주고 있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의 고통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이창호 책임연구원은 연구보고를 통해 다양해진 사이버 불링 양상들을 관련 법률에 포함시키고 매체 윤리 교육 및 통합적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해 스스로 사이버 불링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장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사이버 폭력 예방 교육과 함께 피해 학생을 돕는 경찰청과 교육부 프로그램을 알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사이버 불링으로 인한 피해 학생은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상담 전화 117이나 상담 문자 #1388, #0117에 신고와 상담을 해야 한다.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 장우윤 의원은 “교사나 성인이 접근하기 힘든 폐쇄된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괴롭힘과 언어폭력의 실태는 심각하다”며 “명백한 증거가 나오기 어려운 욕설이나 따돌림 등이 학폭위 안건으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피해 학생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더욱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따돌림이나 언어폭력도 학교폭력으로 인식하도록 기존과는 차별화된 정보통신 윤리교육 강화와 같은 맞춤형 예방교육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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