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방지법’ 탄력…‘효(孝)’도 거래?
부양의무 이행하지 않은 자식 상대 재산 반환소송 늘어
민법 개정안 추진… ‘효도’ 기준 불명확, 악용 소지도

부모를 잘 모시는 조건으로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이 약속을 어겼다면 재산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이른바 ‘효도계약서’를 쓴 아들이 서면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아버지가 아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지난해 12월 27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에 따르면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집에 함께 살며 부모를 충실히 부양한다. 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나 다른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으나 부모를 무시하는 언행을 하고 부모에게 요양시설을 권하는 등 각서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부양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근거가 없고 오히려 패륜적인 말과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부모가 부동산 소유권을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재산을 물려준 자녀를 상대로 한 부양료 청구소송은 2014년 262건으로 10년 전인 2004년 135건에서 2배 가까이 늘었다. 2014년 한해에 발생한 노인 학대 사건은 5772건에 달한다.

이처럼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들이 불효자로 돌변한 자녀에게 반환소송을 한다고 해서 전부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 판례의 사례처럼 각서라도 받아놓지 않으면 ‘효도계약’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은 통상적으로 ‘부담부 증여’(상대방에게 부담이 있는 증여)라는 점이 입증될 경우에만 부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에 ‘효도계약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효도계약서는 부모가 바라는 부양 의무를 구체적으로 적은 각서로 자녀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부모가 재산을 되찾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김용일 법무법인 길상 변호사는 “부모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전에 비해 효도계약서 관련 문의가 50% 가까이 늘어났다”면서 “양식에 관한 세부사항 외,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한 후에도 계약서를 쓸 수 있는지 질문하는 고객들이 있다”고 밝혔다.

효도계약서는 양식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작성 방법도 제각각이다. 계약서에는 자녀가 받게 되는 증여 재산의 목록(현금과 부동산을 각각 따로 명시), 부모가 바라는 부양의 정도, 부양 불이행 시 행해야하는 의무 등을 최대한 상세히 기록해야 한다. 부양의무를 위반했을 경우 증여계약을 해제하고 증여재산을 반환한다는 조항은 필수다. 다만 효도 의무가 증여하는 재산의 가치에 비해 크거나 자녀의 행동을 일일이 제한하는 내용이 아니어야 한다.

이미 재산을 증여한 경우라도 그에 대해 작성한 효도계약서는 사전에 쓴 것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러나 자녀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를 강제로 진행할 수 없다.

효도계약서의 효도 의무는 계약서 작성자의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효도계약서에는 부모와 자녀의 도장날인이 포함되며 공증을 받을 필요는 없다.

‘불효자 방지법’ 민법 개정안

핵가족화와 개인주의 만연으로 가족 및 사회질서의 근간으로 작용했던 효(孝) 사상이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면서 가족관계가 와해되고 노인학대 범죄가 증가하면서 ‘불효자 방지법’ 추진이 탄력을 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효도계약서’가 없더라도 부모 재산을 증여받은 자녀가 부모를 외면한 때 증여한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이 추진되고 있고, 법무부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입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민법 개정안은 자녀가 재산을 물려받은 뒤 부모를 부양하지 않거나 부모를 상대로 패륜범죄를 저질러 증여계약을 해제하는 경우 이미 증여가 끝난 재산에 대해서도 해제의 효력이 미치도록 규정했다. 현행 민법 제556조는 증여를 받은 수증자가 증여자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증여자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때에는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법 제558조는 이미 증여가 이뤄진 재산에 대해서는 해제의 효력이 미치지 않도록 규정해 자식에게 재산 증여를 마친 부모는 자식이 패륜행위를 하더라도 재산을 되찾을 길이 없다. 단지 부양료지급 청구소송 정도만 제기할 수 있을 뿐이다. 개정안은 증여 해제의 기존 사유에 ‘증여자에 대한 학대와 그밖의 부당한 대우’를 추가했다. 자녀가 물려받은 재산을 이미 다 써버린 때에는 이를 물어내게 하는 내용도 담겼다.

민 의원 측은 “민법 제558조는 증여만 받고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심지어 증여를 받자마자 학대를 일삼는 자식을 부모가 법정에 세우더라도 오히려 부모가 패소하게 되는 ‘배은망덕 조장법’”이라며 “입법단계에서 불효를 방지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전술한 내용 등을 담은 민법 개정안 시안을 만들었다가 보류했던 법무부는 최근 다시 입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불효자 방지법’ 추진이 한층 탄력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반면, 개정법안의 실효성 및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효도’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법률관계를 재단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과 함께 자식들이 부모를 방기하거나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로스쿨 민법 교수는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이 규정하는 ‘학대’와 ‘그 밖의 부당한 대우’의 기준과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서 “자식이 증여나 상속을 포기하면 부모를 부양할 의무에서 자유로워지는 면죄부로 악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중견 변호사는 “개정안으로 인해 부모 자식 간 소송이 늘어날 수 있고, 황혼이혼 시 재혼한 배우자가 전처 자녀들을 상대로 악의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 국민 77%, 부모-자녀간 ‘효도계약’ 필요

최근 대법원이 ‘효도계약’을 어긴 자녀를 상대로 재산 반환 소송을 제기한 부모에게 승소 판결을 내린 가운데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부양과 재산증여 조건으로 부모와 자녀 간에 맺는 이런 계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해 12월 28일 전국 19세 이상 56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효도계약에 대해 ‘필요하다’는 응답이 77.3%로 조사됐다고 29일 밝혔다. ‘필요없다’는 응답은 14.7%, ‘잘 모른다’는 대답은 8.0%였다.

‘효도계약’이 필요하다는 응답률을 지역별로 보면 대구ㆍ경북(92.8%)이 가장 높았고, 부산ㆍ경남ㆍ울산(85.8%), 수도권(73.2%), 대전ㆍ충청ㆍ세종(71.6%), 광주ㆍ전라(65.8%) 순이다.

연령대별 찬성률은 50대가 87.0%, 30대가 80.5%, 60대 이상이 79.6%, 40대는 73.2%였지만 20대는 64.7%로 비교적 낮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으로, 부양의무를 저버린 자녀에게 물려준 재산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불효자식방지법’ 안에 대해서는 ‘입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67.6%로, ‘입법화까지는 필요 없다’는 의견(22.6%)보다 훨씬 높았다.

이번 설문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1%포인트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