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국가 작사자 논란

지난 16일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대한민국 애국가 작사자 규명’토론회에서 안용환 서울신학대 초빙교수가 안창호를 작사자로 보는 근거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윤소영 기자
애국가 작사자 규명 위한 주제로 토론회 열려 '윤치호설' 김구 또한 윤치호를 애국가 작사자로 인지해 '안창호설' 안창호 딸 안수산 커디 부친의 애국가 작사 증언해

현재의 애국가가 채택된 것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 식전에서 연주된 순간부터다. 국내외 공식행사에 사용되고 학교 교과서에도 실리면서 100년 넘게 불리고 있지만 1907년 만들어진 이 노래를 두고 가사를 누가 썼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작사가로 거론되는 인물은 김인식, 민영환, 안창호, 윤치호, 최병헌. 정부에서는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해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결국 결론내리지 못했으며 이후 학계의 끊임없는 공방으로 ‘윤치호설’과 ‘안치호설’ 두 가지로 좁혀지게 됐다.

그로부터 60년이 흐른 지난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서울신학대 주관으로 ‘대한민국 애국가 작사자 규명’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안용환 서울신학대 초빙교수가 참석해 각각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을 주장했다.

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다?

왼쪽부터‘윤치호설’을뒷받침하는‘세계명작가곡집무궁화’,‘ 찬미가’, 주요한의 증언 사진=서울신학대 제공
김연갑 상임이사는 ‘윤치호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10가지를 들었다. 우선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윤치호를 작사자로 결론지었으나 문교부가 윤치호에 얽힌 친일 논란 때문에 개작하자고 해 작사자를 확정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폭로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의 대외홍보 기구였던 한국연구정보사무소가 1949년 ‘한국소개’라는 책을 통해 윤치호를 애국가 작사자로 표기했다고 밝혔다. 이후 5년 뒤인 1954년 발간한 ‘코리아 랜드 오브 송’이라는 악보집에서도 작사자를 윤치호로 명기했다고 했다.

또한 김구가 애국가 작사자와 관련해 “이 애국가는 50년 전 한 한국애국지사의 수필로 창작됐는데 이미 일명해 버렸다”고 기록한 것과 관련, 친일 행적 때문에 윤치호가 작사한 사실이 외면됐다고 주장했다.

김연갑 상임이사는 “안창호가 지었다면 김구가 일명이라고 썼겠나?”라며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1955년 이전의 수많은 기록에는 윤치호에 대해 나오지만 안창호 작사라는 기록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김연갑 상임이사는 신문, 잡지, 단행본 등 기록물들을 공개하며 주장에 힘을 실었다. 독립신문이 1987년 현 애국가와 후렴구가 같은 ‘무궁화가’를 윤치호 작사로 보도한 기록과 1910년 일본 총동부 기록 중 ‘윤치호 작사 애국가’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들었다.

왼쪽부터‘안창호설’을 뒷받침하는‘무궁화가’, 안수산 커디 여사의 편지,구익균 씨 인터뷰 사진=서울신학대 제공
또한 1910년 미주 신한민보가 애국가 4절을 ‘국민가’로 소개하며 ‘윤티(치)호작’으로 보도한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외에도 1914년 ‘태평양잡지’ 4월호, 1931년 3월 미국에서 발간된 ‘세계명작가곡집 무궁화’에 애국가 작사자를 윤치호로 직·간접적으로 언급돼 있다고 했다.

김연갑 상임이사는 윤치호와 부인, 딸, 사위 등 그의 가족들이 직접 애국가 작사자와 관련해 기록한 문건도 공개했다. 이중 윤치호가 1945년 셋째 딸인 문희씨에게 애국가 4절을 친필한 자료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외에도 김연갑 상임이사는 많은 유명인사들이 윤치호가 애국가를 작사했음을 증언했다고 주장했다. 김 상임이사에 따르면 시인 주요한, 목사 채필근, 정치인 백낙준, 기자 김을한 등이 윤치호의 애국가 작사를 증언했다고 했다.

애국가 작사자는 안창호다?

안용환 초빙교수는 ‘안창호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9가지를 들었다. 첫째로 안 교수는 본인이 안창호 친필의 ‘무궁화가2’를 발견해 자연스럽게 ‘무궁화가(애국가)’는 ‘무궁화가1’로 간주됨에 따라 애국가 작사자가 안창호라고 주장했다.

안용환 초빙교수는 안창호의 딸 안수산 커디로부터 받은 편지 전문을 공개했다. 안수산 커디는 편지에 “저는 애국가를 작사하신 저의 부친 도산에 관한 저의 이야기를 몸소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한국에 갈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해 봅니다”고 했다.

안용환 초빙교수는 “안수산 커디가 사망 5일 전에 이 메일을 나한테 보내고 돌아가셨다. 이걸 안 믿을 수 있는가?”라며 “김연갑 선생은 골자를 다 빼놓고 말했다. 김연갑 선생이 ‘안창호가 아니다’고 하는데 괴롭다”고 덧붙였다.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의 생전 증언도 증거로 들었다. 안 교수는 “여러 문헌에 의하면 8명의 국내 학자들 연구가 안익태가 황사선 목사로부터 도산 안창호의 가사를 받았다고 돼 있다”며 “누구의 씨(애국가)인지 가장 확실히 아는 사람은 산모(작곡가)다”고 했다.

1899년 배재학당 졸업식에서 ‘무궁화가(애국가)’가 불린 것과 관련해서도 근거를 내세웠다. 안용환 초빙교수는 배재학당 협성회 회원이자 배재학당 찬성원인 안창호가 애국가를 지어 배재학당에 넘겼다고 했다.

이외에 안창호의 비서실장 구익균 씨, 소설가 이광수의 부인 허영숙 여사,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이명룡 씨, 장리욱 전 주미대사 등의 증언 기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안용환 초빙교수는 2012년 구익균 씨를 방문해 나눴던 대화 발췌록을 꺼냈다.

해당 자료에서 구익균 씨는 “세상 사람들이 애국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이 많은데 ‘과연 선생님이 애국가를 지으셨습니까?’라고 직접 물어봤는데 빙그레 웃으시면 지으셨다고 말씀하셨다”고 증언했다.

안용환 초빙교수는 한명숙 여사와 이명룡 씨가 애국가 작사자 조사 과정에 출석해 각각 “도산선생께서 ‘내가 지었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 “그 애국가 작사자는 틀림없는 안창호씨다”고 발언한 사실이 기록된 문헌자료를 보이기도 했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