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데이트폭력 '위험수위'

매일 20여 건 발생…특별법 도입 논란
한해 데이트폭력 8000여 건 육박… 5년 간 사망자만 290여 명
경찰 클레어법 도입 추진, 찬성여론 많지만 반대의견도
"봐주다 보면 끝 없어… 주저 말고 신고해 악순환 끊어야"
  • 데이트폭력 TV 캡처
최근 5년간 데이트폭력을 당한 사람은 3만6362명이고 이 중 사망한 사람도 290명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평균 58명이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의 손에 살해된다는 얘기다. 지난해에만 7692명의 데이트폭력 피해자가 발생했다. 변심한 연인의 집에 불을 지르거나 얼굴에 염산을 붓고, 성관계 동영상으로 협박을 하는 등 폭력성의 정도도 심해지고 있다. 여성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인터넷상에서는 데이트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이별법'이 확산되고 있다. 근래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의 특성과 이를 막기 위한 대책에 대해 알아봤다.

가해자 '남성ㆍ무직ㆍ전과자ㆍ20~30대'

지난달 25일 전남 화순에 사는 김모(18)군이 임신한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김군은 지난달 23일 오후 4시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 있는 한 공터에서 여자친구인 A(18)양을 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뒤 고등학교 동창이 양모(18)군과 공모해 시신을 50m가량 떨어진 하천에 유기했다. 김군은 경찰조사에서 "여자친구가 임신한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겠다고 해 화를 참지 못하고 죽였다"고 진술했다.

위 사례와 같은 데이트폭력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경찰은 이를 뿌리 뽑기 위해 지난 2월'연인간 폭력 근절 특별팀'을 구성해 데이트폭력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했다. 그 결과 한달 간 총 1279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고 868명이 입건됐으며 이 중 61명은 구속됐다. 집중신고기간의 운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피해자들은 여성(92%)이 대부분이었다. 피해유형은 폭행이 61.9%로 가장 많았고 체포ㆍ감금ㆍ협박(17.4%), 성폭력(5.4%)이 뒤를 이었다. 살인(미수)도 2건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들의 27.1%는 뚜렷한 직업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회사원(21.4%), 자영업(10.9%), 노동직(5.6%)순이었다. 또 절반이 넘는 58.3%가 20대~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30대~40대도 35.6%나 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가해자의 58.9%가 전과가 있다는 것이다. 1~3범 이하(31.2%)가 가장 많았지만 9범 이상의 상습 전과자도 11.9%나 됐다. 종합해보면 연인 간 (성)폭력 범죄자들은 전과가 있는 20대~30대 무직 남성인 경우가 다수였다.

'클레어법' 환영 vs 글쎄?

지난 2009년 영국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클레어 우드(Clare Wood)라는 여성이 페이스북에서 알게 돼 사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해당 남성은 과거에도 연인을 폭행한 전과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클레어의 아버지는 "범인이 폭행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경찰이 보여줬더라면 내 딸이 그를 만나는 바보 같은 짓을 했겠느냐"며 교제하는 이성의 전과기록을 조회해 볼 수 있도록 하는 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를 발단으로 영국 내에서 서명운동이 이어졌고 2014년부터 '가정폭력 전과 공개제도'일명 '클레어법'이 시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클레어법 도입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경찰이 데이트 폭력 사범 중 전과자 비율이 높은 점과 이들의 재범률이 76.5%에 달할 정도로 높다는 점을 감안해 한국판 클레어법 제정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이다.

여성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형사정책연구원이 성인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86%가 클레어법 도입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성인남성 2000명은 62%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성별 간 의견차가 있기는 하지만 다수가 연인의 폭력전과 기록 조회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데이트폭력 피해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이를 누구보다 반겼다.

경상북도 'ㄱ'시에 살고 있는 임민정(가명ㆍ26)씨는 2년 전 남자친구에게 심각한 괴롭힘을 당했다. 3개월 가량을 사귄 동갑내기 남자친구 B씨가 "다른 남자를 나 몰래 만나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의 의처증 증세에 지친 임씨는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이후 B씨는 임씨를 스토킹하다 급기야는 뺨을 때리고 복부를 발로 차는 등 폭력을 휘둘렀다.

이후 임씨는 B씨가 고등학생 때에도 자신의 여자친구를 폭행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임씨는 "B가 고교시절 여자친구를 폭행해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알게 됐다. 사귀기 전 이 사실을 알았다면 B를 절대 만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클레어법이 도입된다면 나 같은 피해자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법이 제정된다면)앞으로는 누군가와 교제하기에 앞서 그 사람의 폭력 전과 기록을 꼭 보려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클레어법이 '프라이버시권'과 상충될 위험이 있다며 반대의 의견을 내비쳤다. 개인의 범죄전력을 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개하는 것은 사생활침해라는 것이다. 의정부에 사는 조모(25)씨는 클레어법을 '낙인찍기'라 본다고 했다. 그는 또 "전과 정보를 공개하는 '여자친구'라는 개념과 범위가 애매해 자칫 악용될 수 있다"며 클레어법에 반대했다. 서울시 송파구에 사는 이모(29ㆍ여)씨도 "연인이라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사생활을 캐는 것 같아 찝찝하다"며 조씨의 의견에 동조했다. 전문가들은 범죄예방과 프라이버시권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만큼 균형점을 찾아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여성들 데이트폭력 심각성 인지해야

앞서 언급한 임씨는 B씨의 폭행 후 입술이 터지고 눈가가 벌에 쏘인 듯 붓는 등 심하게 다쳤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임씨는 "가해자와 동갑인데다 동네가 워낙 좁다 보니 소문이 날까 두려워 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헤어진 남자친구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사귄 사이니 일을 크게 만들지 않고 싶었다"고도 했다.

이씨처럼 데이트폭력을 당했지만 신고를 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폭력으로 중대한 위협을 느끼기 전에는 그것을 피해자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신고나 도움 요청에 소극적으로 행동해왔다"고 진단했다.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도 피해 여성들이 데이트폭력이 심각한 범죄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김위원은 "사소한 폭력적 행동을 여성(남성)들이 자꾸 이해해주고 넘어가면 안 된다"면서 "계속 참고 넘어가다 보면 더 큰 폭력을 불러올 뿐이며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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