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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통해 본 '장기 미제사건'

미해결 살인 256건, 풀리지 않는 의혹…범인ㆍ사체 '미궁' 아직 '진행중'
  • 한국과학기술원에서 3차원 얼굴생성 및 나이 변환 기술을 이용해 몽타주를 생성하고 있다. 몽타주 인물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초동 수사 미흡ㆍ 절대적인 단서부족, 미제사건 공식
증거 없애려 ‘마음 먹고’시신 훼손… 신원확인도 힘들어
사체 발견 늦어져도 미제로 남을 확률 높아져
실종은 실종 후 48시간이 골든타임, 놓치면 장기실종자로


얼마 전 종영한 tvN드라마 ‘시그널’이 인기를 끌면서 실제 미제사건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장기 미제사건인 ‘경기 남부 연쇄살인 사건(일명 화성 연쇄살인 사건)’‘개구리 소년 실종ㆍ사망’사건 뿐만 아니라 비교적 최근의 미제사건에도 주목이 쏠린다.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돼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과학수사가 발달한 2000년대에 대체 무엇 때문에 범인을 잡지 못한 것인지 그 원인과 특징을 살펴보고 대표적 사건에 대해 알아봤다.

국내 미해결 살인사건 256건… 왜 못 잡았나

우리나라의 지난 15년간 살인사건 검거율은 96.5%에 달한다. 100여건의 살인 사건 중 97건은 범인을 잡는다는 얘기다. 이는 ‘치안 선진국’인 일본(96.4%)이나 독일(95.4%)보다 약간 높은 수치다. 미국(75.9%), 영국(81.0%)보다는 월등히 높다.

  • 2004년 천안에서 실종된 고등학생 박모양의 실종수배 전단.
이같이 뛰어난 수사력을 자랑하는 경찰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미제 살인사건들이 존재한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경찰이 맡고 있는 살인사건 중 5년 이상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미제사건은 256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일명‘태완이법’시행으로 경찰이 해당 미제 살인사건에 대해 전면 재수사에 들어갔다. 대상은 2000년 8월1일 0시 이후 발생한 사건들이다. 2003년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2004년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2000년 8월5일 인천 계양구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던 7세 여자 어린이가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장기 미제사건의 면면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경찰이 초동 수사에서 방향을 잘못 잡거나 기타 요인으로 인해 범인을 특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다른 범죄들도 마찬가지나 특히 살인사건의 경우 사건발생 직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려 수사 방향을 잡느냐가 범인 검거의 향배를 가르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만큼 범인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게 된다는 말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사건 발생 당시 발견된 증거가 너무나 부족했다는 것이다. 범인이 철저하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거나, 남겼다 하더라도 사체 발견 이후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범인 검거의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는 CCTV나 블랙박스 등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피해자는 거의 대부분 여성이나 어린이였다는 게 또 다른 공통점이다. 이는 미제사건뿐만 아니라 일반 살인사건에서도 적용되는 공식이다. 이들은 범인에 대항할 능력이 적은데다 또 유기하기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 2008년 대구에서 발생한 허모양 납치 피살사건의 용의자 수배 전단.
초동 수사 미흡, 사체 발견 늦어 잡지 못한 범인

앞서 언급한 장기 미제사건의 특징들을 모두 갖춘 사건이 있다. 지난 2008년 대구에서 괴한들에 납치됐다 살해된 초등생 사건이다.

당시 피해자 허모(당시 11세ㆍ초등학교 6학년)양은 부모님과 떨어져 여동생(당시 9세)과 할아버지 허모(당시 72세)씨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 허양의 집에 2008년 5월 30일 새벽 4시경 2명의 남성이 허양의 집에 침입했다. 괴한들은 잠들어 있던 할아버지를 마구 폭행하기 시작했다. 옆방에서 자고 있던 허양 자매는 시끄러운 소리에 깼다. 언니 허양이 동생을 방에 두고 할아버지 방으로 갔다. 허양은 괴한들을 말리다가 결국 그들에게 납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범인을 마을주민이나 할아버지 허씨와 원한관계에 놓인 사람이라고 보고 마을주민과 이웃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양이 유괴된 지 수일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을 허양의 친한 언니라고 소개한 김모(당시 14세)양의 거짓 제보전화까지 걸려와 시간과 인력을 빼앗겼다.

경찰은 사건 발생 7일째가 돼서야‘앰버 경보’를 발령했다. 그러나 사건 2주째인 6월 12일 허양은 알몸인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시신은 심하게 부패돼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정액 검출도 불가능했다. 허양의 시신은 집에서 겨우 2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조금만 더 빨리 발견됐더라면 허양을 살해한 범인들을 잡을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경찰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당시 범죄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이 사건에 미스터리한 점이 너무나 많아 경찰의 수사에 혼란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첫째, 이 사건은 일반적인 어린이 납치사건과 패턴이 너무도 달랐다. 허양의 가정은 기초생활보장 대상일 정도로 가난했다. 대부분의 납치사건 범인들이 돈을 노리고 아이를 유괴한다는 사실을 봤을 때 허양은 이에 적합한‘타깃’이 아니었다. 이후 납치범들로부터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다. 때문에 납치범들을 추적할 기회도 없었다.

또한 허양의 집은 침입이 용이한 구조가 아니었다. 현관문은 잠긴 상태였고 담장은 1.7m 정도로 높은 편이었다. 게다가 마당에는 성질이 사나운 개까지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범인들이 침입해 오는데도 짖지 않았다.

결정적 단서가 될 만한 실마리도 전혀 없었다. 집 안에는 허양이 반항한 흔적이 없었고 범인들의 지문이나 발자국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허양은 키 158cm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었다. 허양이 적극적으로 저항한다면 아무리 성인남자들이라 할지라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끌고 가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가장 의문인 점은 허양의 할아버지 허씨의 비협조적인 태도다. 허씨는 경찰과의 조사과정에서 수 차례 진술을 번복했다. 첫 진술에서 허씨는 “범인은 1명인지 2명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두 번째 진술에서는“범인은 1명이고 50대 남자였다”라고 말을 바꿨다. 허씨는 계속 말을 바꾼 끝에 마지막 진술에서 “범인은 2명이고 1명은 30대 남자로 몇 년 전 본 적이 있고 나머지 1명은 모르겠다”고 했다.

범인과 유일하게 대면한 목격자 할아버지의 진술 번복으로 경찰이 초동 수사에서 갈팡질팡했고 범인들이 증거 하나 남기지 않는 철저함을 보여 사건을 장기전으로 끌고 갔다. 거기에 대대적인 수색까지 늦어져 사체에서마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어 결국 이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토막살인, 피해자 신원파악 힘들어 미궁 속으로

얼마 전 일어난 ‘부천 초등생 학대 살해사건’에서도 친부모가 친아들이 사망하자 이를 훼손한 후 유기 혹은 보관했다. 경찰에 붙잡힌 피의자들은 시신을 훼손할 경우 범행이 탄로나지 않을 것 같아 아들의 시신을 훼손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의 말처럼 통상 훼손된 사체는 그렇지 않은 사체에 비해 피해자나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기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해자의 신원 파악이 어렵고 범인이 ‘마음 먹고’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신을 훼손한 것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모르니 가해자가 누군지 알 길이 없다.

10년 전 천안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발견된 훼손된 사체는 아직까지 그 주인이 누군지도 모른다. 2006년 1월에 천안시 서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쓰레기장에서 발견된 사체다. 7등분 나 있던 이 사체는 50L짜리 흰색 쓰레기봉투에 옷가지들과 함께 싸여 있었다.

정확한 신원은 알 길이 없었다. 사체가 들어있던 봉투 안에는 머리와 하체부분만 있었을 뿐 몸통과 양팔부분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팔이 없으니 지문채취는 불가능했고 때문에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피해자는 작은 키에 통통한 체격의 50대 여성일 것이라는 추정 정도만 가능했다. 경찰은 발견된 머리를 바탕으로 몽타주를 만들어 배포했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는 없었다

그러던 2006년 8월 서울 성동구의 중랑하수처리장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이 쓰레기 봉투를 옮기던 중 또 다른 토막사체를 발견한다. 이번에는 머리와 하체부분이 없고 몸통과 양팔만 있는 사체였다. 경찰은 해당 사체가 숨진 지 6개월에서 1년 정도 된 사체인 것으로 보아 약 7개월 전 천안에서 발견된 사체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천안에서 발견되지 않은 몸통과 양팔이 서울에서 발견된 점, 피해자가 중년의 여성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을 미루어 천안과 서울에서 각각 발견된 사체가 동일인의 것일 확률이 높다고 추측했다. 즉 범인이 피해여성을 살해한 뒤 머리와 다리는 천안에 유기하고 몸통과 팔은 서울에 버렸다는 가정이다. 이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측에 두 곳에서 발견된 사체의 DNA 대조를 의뢰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국과수는 두 사체가 각기 다른 인물의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저 기막힌 우연의 일치였다. 피해자는 2명으로 늘어났고 사건은 답보상태에 빠졌다.

그러다 2년 후인 2008년 서울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 김모(당시 41세)씨가 검거됐다. 경찰은 딸이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다며 실종신고를 한 노인의 DNA와 피해여성의 DNA를 분석해 가족관계임을 확인했고 유력한 용의자인 남편 김씨의 덜미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천안 토막살인사건은 범인은 물론이고 피해여성의 이름도, 정확한 나이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신원은 파악했으나 이웃의 무관심 속에 사체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아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2011년 7월 안산시 단원구에서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것이다. 사체는 아파트 주민 중 한 명이 리어카를 치워달라는 요청을 하기 전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리어카는 두꺼운 검은색 비닐봉지에 싸인 채 놀이터 한 귀퉁이에 3년 이상 세워져 있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경비원 이를 치우기 위해 봉지를 뜯어내자 커다란 아이스박스 하나가 나왔고 아이스박스 안에는 또 흰색 비닐봉지에 겹겹이 싸인 캐리어 하나가 있었다. 캐리어를 열자 부패될 대로 부패돼 거의 미라상태가 된 토막사체가 나왔다. 목과 엄지손가락이 훼손된 상태였다.

수사결과 피해자는 뇌성마비 4급 장애인 박모(당시 42세) 여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는 사체가 발견된 아파트의 입주민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경찰은 박씨의 건강보험이나 통신기록 등 추적할 수 있는 모든 기록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어디에도 박씨가 2006년에서 2011년 사이 생존해 있었다는 증거가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박씨를 찾는 사람도 없었다. 즉 박씨의 시체가 발견되기 몇 년 전에 사망해 리어카 위에 보관돼 있었다는 말이다.

경찰은 수소문 끝에 리어카의 주인이 해당 아파트에 살았던 정모(당시 66세)씨 임을 알아냈다. 그러나 정씨는 박씨의 사체가 발견되기 2년 전인 2009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리어카가 놓여 있던 놀이터에 CCTV가 없고 이미 시신이 심하게 부패돼 증거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게다가 사건의 결정적 열쇠를 쥔 리어카 주인 정씨는 이미 사망하고 없는 상태였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박씨가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 신고했거나 덩그러니 놓여진 리어카에 관심을 가졌다면 박씨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48시간 골든타임 놓치면 장기실종…사라진 소녀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연간 5만여 명의 실종자가 발생한다. 이들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많은 이들이 생사불명 상태다. 지난 5년간 미발견된 실종자 수만 1만5000여명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700여명은 미성년자다. 통상 실종 후 48시간이 지나면 장기실종자로 분류되고, 생존 가능성은 낮아진다. 또 실종 기간이 길면 길수록 미제사건으로 남겨질 가능성도 커진다.

지난 2004년 천안에서 실종된 고등학생 박모(당시 16세)양도 48시간 안에 찾지 못해 장기실종자로 분류돼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있다. 박양은 10월 9일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빠져나간 후 백화점, 서점 등을 돌아다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오후 2시경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박양이 학교 운동장 벤치에 있는 것을 경비원이 보고 “집에 돌아가라”고 한 것으로 확인됐다. 밤 10시에는 천안 종합버스터미널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박양은 자취를 감췄다.

박양의 부모님은 박양과 밤 늦게까지 연락이 되지 않자 독서실 등을 뒤지다가 새벽1시 30분경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박양이‘단순 가출’한 것으로 보고 학교와 집 주위를 탐문했다. 그러나 박양 실종 2일째인 10일 저녁 8시 한 통의 신고전화를 받은 후 상황은 급변했다.

신고자는 박양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한 유흥가 내에 있는 청과물 가게 주인 신모씨였다. 신씨는 자신의 가게 근처 골목길에 이상한 물건들이 있다고 했다. 출동한 경찰은 그곳에서 박양의 옷과 책가방 등 소지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발견된 소지품들의 상태가 너무도 기이했다.

박양의 교복과 속옷, 책가방, 휴대전화, 안경, 양말 등이 전시된 것처럼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범인들은 범행 사실을 숨기기 위해 피해자의 물건은 태우거나 봉투에 담아 몰래 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박양 사건의 경우 마치 누가 봐 주기를 바란다는 듯이 물건들을 펼쳐 놓았다.

이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발견된 박양의 소지품 근처에는 감(과일) 5개가 제사상을 차린 것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박양이 실종 당일 있었던 학교 운동장 벤치에서도 감 4개가 이 같은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경찰은 박양의 소지품에서 조그마한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온갖 과학기술을 동원했지만 범인의 꼬리를 밟지는 못했다. 이 사건은 범인이 증거를 한 가지도 남기지 않는 바람에 박양의 생사는 물론 박양을 데려간 범인도 잡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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