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파묻힌 청년들, 생활고에 구걸하거나 변종 대출 손 대… 사기 행위도

청년 대출자 3명 중 1명 고금리대출… 신용불량 양산

온라인에서 읍소하며 구걸론(loan), 도 넘은 엽기행위도

휴대폰 소액결제로 생활비 해결… ‘소액결제론’까지 등장

중고나라론, 아빠차론, T머니론 등 범죄행위로 도박판 앉아

대한민국 청년들이 ‘청년실신’(청년실업과 청년신용불량자의 합성어)의 구렁에 빠졌다. 학자금 대출을 등에 지고 대학을 나왔으나 취업이 되지 않자 고금리 대출에까지 손을 댄 까닭이다. 이들 중 몇몇은 돈을 융통하기 위해 사기 등의 범죄를 저지르거나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구걸까지 하고 있다. 신용절벽에 놓인 청년들의 삶을 살펴보고, 각종 ‘론(loan)’으로 불리는 변종 대출 및 범죄 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청년 대출자 고금리 ‘빚잔치’

지난 2월 집계된 청년실업률은 12.5%. 1996년 실업률 집계기준 변경 이후 최악의 수치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준생(취업준비생)이나 취포자(취업포기자)의 길에 들어선 청년들은 수치에 포함되지 않아 실제 청년실업률은 이보다 더 높다는 게 중론이다.

취업이 되지 않자 학자금대출 이자를 막기도 버겁다. 학자금 대출을 6개월 이상 상환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청년들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만9738명이다. 이 중 일부는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소송까지 당하는 판이다. 지난해에만 1924명의 청년들이 송사에 휘말렸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만 간신히 버는 학생들은 한 달에 몇 만원 하는 이자를 내기도 빠듯하고 졸업을 해도 문제다. 취업난에 쪼들려 소득은 적은데 생활비와 상환금에 돈을 대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이에 청년들은 당장 급한 생활비로 돈을 지출하고 학자금대출 상환금은 뒤로 미뤄, 결국엔 연체가산금까지 붙은 대출금에 손도 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낮은 금리로 학자금과 생활비를 대출해주는 한국장학재단의 대출 제도는‘좋은 론(loan)’축에 든다. 몇몇 청년들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에 SOS를 치기도 한다. 실제 지난해 6월 말을 기준으로 20대 청년들이 받은 총 대출금 6조2000억원 중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에서 고금리로 받은 대출금은 2조원에 육박한다.

안정된 직장이 없으니 돈 빌릴 곳이라곤 제2, 제3 금융권뿐이기 때문이다. 금리가 높은 곳에서 돈을 빌리니 빚이 불어나는 건 순식간이다. 사회로의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빚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울산에 살고 있는 A씨(25ㆍ여)도 빚잔치를 벌이는 청년 중 한 명이다. A씨는 22세가 됐을 때 자기 앞으로 된 빚이 2000만원을 넘었다고 했다. 지금은 이것이 3000만원 가량으로 불었다. 처음부터 돈을 빌려 쓸 생각은 없었다. 집에서 유일하게 일을 하는 어머니가 병석에 누운 뒤 A씨는 한 대부업체로부터 500만원을 빌렸다. 1금융권은 꿈도 못 꿨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A씨와 게임에 중독돼 집밖 출입을 하지 않는 오빠 모두 대출가능 대상자가 아니었다. 처음 돈을 빌린 직후 몇 차례 돈을 더 빌렸고 지금은 A씨 가족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

A씨는 “휴대폰 판매직원, 카페 바리스타 등 일을 하면서 대출금을 갚아나가고 있지만 기껏해야 150만원 남짓한 돈으로 빚을 갚으랴 생활비를 대랴 숨이 막힌다”면서 “결혼은커녕 연애도 꿈 못 꾼다. 빨리 빚을 갚고 수렁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술회했다.

이어 A씨는 학자금대출을 제외하고는 대학생 등 청년들을 위한 무담보 무이자 대출이 거의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나처럼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데 변변한 직장이 없는 청년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면서 “나중에 그것이 목을 죌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리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1000원만… ‘온라인 구걸’까지

A씨와 같이 빚이나 생활고로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 사이에서 구걸에 가까운 ‘이상한 론’이 최근 등장했다. ‘구걸론(구걸과 대출을 뜻하는 loan의 합성어)’이라 불리는 이것은 온라인 친목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대갤(대출갤러리)’에서 이뤄진다. 원래 이곳은 대출에 대한 정보나 팁을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지난해부터 그 기능이 변질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구걸론의 방법은 이렇다. 구걸러(돈이 급해 구제를 요청하는 사람)가 사정을 설명한 후 적게는 몇 백 원, 많게는 몇 만 원의 돈을 달라며 계좌번호를 게재한 글을 올린다. 운이 좋으면 구제러(구걸러에게 돈을 줘 구제해 주는 사람)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다.

실제 대갤 게시판에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돈이 모자라다”며 “3000원만 구제해 달라”는 한 구걸러(닉네임 사**)의 글이 올라와 있었고, 이곳의 또 다른 구걸러(닉네임 제**)는 “집에 가야 하는데 버스비가 없으니 1200원만 계좌로 부쳐달라”고 읍소했다.

이런 글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온다. 몇몇 구제러들은 자신의 연봉이나 통장잔고, 자동차, 아파트 등을 자랑하는 한편 “돈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구제해 주겠다”며 ‘누가 누가 더 불쌍한지 얘기하기’를 주문하기도 한다.

한 구제러(닉네임 읔**)가 자신의 통장잔고 캡처 사진을 올린 뒤 “내나이 26, 연봉4500, 계좌 1800만원 보유. 절실한 놈 두 명 구제 간다. 댓 남겨라”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자 15개의 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단 구걸러 중 닉네임 소고**는 “2천원짜리 짜장면 먹고 면도날이 없어서 면도도 못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라고 했고 닉네임 숲속**은 “담배 하나만 사주세요. 비가 와서 꽁초도 못 피워요”라며 담뱃값을 구걸했다. 이 외에 금치산선고를 받고 이틀 동안 굶었다는 사람, 대부업체에 연체가 있고 휴대전화가 정지상태라는 사람 등 사연도 각양각색이었다.

대출갤러리의 일부 구걸러들은 이같은 구제행위를 받기 위해 도를 넘은 엽기행각을 벌여 한때 비난의 화살을 맞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한 구제러가 “변기에 머리를 감고 인증샷을 올리면 만원을 주겠다”는 글을 올렸다. 잠시 후 2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구걸러가 “전 형님의 영원한 개XX입니다 멍멍. 편의점에서 라면 물 받아놓고 절해서 찍어 보내겠습니다. 형님 멍멍멍”이라는 글과 함께 변기에 머리를 감는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올렸다.

구제러들은 구걸러들에게 푼돈을 쥐어주며 이보다 더한 가혹행위도 시키곤 했다. 한 구제러는 약 4400만원이 들어있는 자신의 통장잔고를 인증하며 “상처나 (피부가)부어 오른 사진을 보여주면 최소 30장을 드리겠다”면서 “지금 막 다친 그런 걸(상처) 느끼고 싶다. 워낙 그쪽을 좋아하다 보니…”라는 글을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한 구걸러가 사포로 문지른 것으로 보이는 자신의 상처 난 손목 사진을 인증했다.

대출갤러리 구제러 중 한 명이었다는 대학원생 송모(27)씨는 그저 재미로 몇 번 구걸러들에게 돈을 적선했다고 했다. 송씨는 구걸러들에게 가혹행위를 시킨 적은 없지만 자신들의 불쌍한 처지를 이야기하게 한 적은 종종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구걸러들 중에는 정말 돈이 없어서 구걸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순히 관심 받고 싶어서 혹은 재미로 ‘가난한 연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며 “큰돈을 들이지 않고 구걸러들로부터 왕 대우를 받으니 그걸 즐기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송씨의 말처럼 구걸을 하는 몇몇 사람들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 혹은 관심을 받기 위해 글을 게시한다고 주장한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정말로 돈이 없어서 구걸론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미션 등에 대한 성과를 칭찬하면서 만족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출은 무섭고… ‘소액결제론’ 성행

서울에 살고 있는 직장인 B(25ㆍ여)씨는 얼마 전 한 통신사로부터 휴대전화 사용요금이 100만원 넘게 밀렸으니 빨리 납부하라는 독촉전화를 받았다. B씨는 황당했다. 애초 해당 통신사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한 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헤어진 남자친구 C씨에게 B씨 자신의 명의로 된 휴대폰을 개통해 준 것이 생각났다. 당시 C씨는 B씨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휴대전화가 하나 더 필요한데 자신의 명의로 개통이 안되니 명의를 빌려달라고 했다. 요금은 자신이 내겠다며 B씨를 안심시키기까지 했다.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명의를 빌려준 B씨는 C씨와 헤어지고 2달 후 ‘요금폭탄’을 맞은 것이다. C씨에게 연락을 취하려 해봤지만 실패했다.

‘독박’을 쓰게 된 B씨는 일단 지나치게 많이 나온 요금을 이상히 여겨 명세서를 찬찬히 훑어 봤다. B씨의 눈에 띈 것은 2달간 60만원 가까이 사용된 ‘휴대폰 소액결제’ 부분이었다. 각종 기프티콘과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C씨의 친구와 어렵게 연락이 닿은 B씨는 소액결제와 관련된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직장을 그만둔 C씨가 인터넷 도박 등으로 돈을 날린 후 빈털터리 신세가 돼 생활비마저 없게 되자 급한 대로 휴대폰 소액결제를 사용해 식료품이나 생활용품 등을 산 것이다. 카페,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등의 기프티콘도 소액결제로 구매해 배가 고플 때마다 사용했다고 했다. 휴대폰 소액결제를 생활비처럼 썼고 금액이 많아지다 보니 연체로 이어졌다. C씨처럼 무분별한 소액결제 사용으로 요금이 미납된 청년들은 예상보다 더 많았다.

실제로 국내 통신사 톱3인 SKTㆍKTㆍLG유플러스에서 20대가 체납한 휴대폰 요금은 총 511억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연령대비 최고다. 30대가 총 282억원의 체납 요금을 기록해 뒤를 이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과도한 소액결제 사용을 요금 미납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신용카드 대신 스마트폰을 사용해 마구잡이로 물건을 구매하다 보니 종국에는 요금을 감당할 수 없어 연체에 이른다는 것이다.

휴대폰으로 소액결제를 한 것을 아예 현금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대갤에서도 ‘소액결제론’ 광고가 쉽게 발견됐다. 포털사이트에서 ‘소액결제 현금’으로 검색을 하자 관련 업체 사이트가 100개 이상 쏟아졌다. 해당 사이트에서 소액결제를 하면 수수료 20~30%를 떼고 그 나머지를 현금으로 입금해주는 방식이다. 또는 소액결제로 구매한 문화상품권이나 게임머니 등을 현금화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기자가 직접 연락을 해본 한 업체의 관계자는 “결제된 원금의 최고 75%까지 현금으로 입금해 주겠다”고 하면서 “돈이 급한 20~30대들이 자주 이용하는 방법이니 겁먹을 필요가 없다”며 회유했다.

사기 쳐 돈 가로채기도… ‘나쁜 론’

청년들의 돈을 얻기 위한 몸부림이 범죄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중고나라론, 택배론, 아빠차론 등 그것이다. 중고나라론은 중고물품을 사고파는 온라인 사이트인 중고나라와 론(loan)이 합쳐진 말로, 물건을 파는 것처럼 글을 올린 뒤 돈만 받고 물건은 보내주지 않는 사기 방법을 말한다. 엄연한 범법행위지만 큰 돈을 만질 수 있어 ‘론’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때 대갤에 올라온 이 방법은 대개 인터넷 도박자금이 필요한 젊은이들이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단 물건 구매자로부터 돈을 받고 이 돈으로 도박을 한 뒤 돈을 따면 구매자에게 돈을 돌려주고 따지 못하면 잠적해 버리는 식이다.

아버지 차를 몰래 담보로 잡혀 두고 돈을 빌려 쓰는 아빠차론, 경비실에 맡겨진 택배의 주인 행세를 하고 빼돌려 되파는 택배론, 공모자와 짜고 부모에게 납치됐다는 거짓 전화를 한 뒤 몸값을 받는 납치론 등도 있다.

최근에는 교통카드에 수천 만원을 충전한 뒤 이를 환불해 현금화하는 ‘T머니론’도 나왔다. 실제로 편의점 주인 몰래 수십 개의 교통카드에 1000만원이 넘는 T머니를 충전한 아르바이트생 안모(23)씨가 지난달 경찰에 붙잡혔다. 안씨는 거짓 신분증으로 2곳의 편의점에 위장 취업한 후 주인이 없는 틈에 가게 문을 잠그고 총 29개의 카드에 1270만원을 충전했고, 이를 자신과 친구들의 계좌를 통해 환불받았다. 안씨는 이렇게 빼돌린 돈으로 인터넷 도박을 해 3시간 만에 모두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사기행위인 각종 ‘나쁜 론’이 생계가 어려운 청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도박자금이나 유흥비가 필요한 청년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중고나라론의 피해자인 김모(26)씨도 이런 의견에 동의했다. 김씨는 지난 가을 노트북을 판다는 30대 남성 D씨에게 60만원을 부쳤고 며칠 뒤 택배를 받았다. 그러나 뜯어본 박스 안에는 헌책 몇 권만이 들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잡은 D씨는 “술 마시고 토토(운동경기 결과를 예측하고 실제 경기 결과에 따라 환급금을 받는 게임)하느라 다 썼다”며 뻔뻔하게 나왔다고 했다. 김씨는 “중고나라론이든 택배론이든 ‘론’자를 붙인 각종 사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한탕주의’에 빠져 쉽게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라면서 “어쩔 수 없이 고금리 대출을 받는 절박한 청년들과는 구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보람 인턴기자 boram3428@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