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인격살인,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소수자 향한 칼끝, 혐오범죄로 봐야

늘어나는 혐오 표현… 여성ㆍ무슬림ㆍ동성애자 집중 타깃

“동성애자 척결”총선 공약, “무슬림은 테러리스트” 시위도

일본 관련법 통과 눈 앞, 북미ㆍ유럽에선 ‘범죄 행위’

“여자들은 멍청해서 머리가 남자한테 안 된다”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 개그맨 장동민씨가 지난해 막말 논란을 빚었을 당시 뱉은 말이다. 장씨는 이 발언으로 인기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식스맨 프로젝트에서 자진 하차하는 등 톡톡히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장씨의 막말이 여성 혐오에 기반한 ‘헤이트 스피치’라며 연예계 영구 퇴출을 주장했다.

혐오 표현 받아내는 소수자들

특정인이나 계층을 표적으로 하는 헤이트 스피치가 들풀처럼 번지고 있다.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란 특정한 인종이나 국적ㆍ종교ㆍ성별 등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발언을 뜻한다. 쉽게 말해 약자에게로 향하는 ‘혐오(증오) 발언’이다. 혐오발언은 자칫 종래에 증오범죄(hate crime)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같은 헤이트 스피치의 국내 최대 장(場)은 포털사이트인 일간베스트다. 혐오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국내 헤이트 스피치의 원조 격이다. 대상은 여성, 호남지역 주민, 진보주의자 등이다. 여성들에게는 ‘김치녀’ ‘상폐녀(상장폐지+ 女ㆍ30세 이상의 여성은 매력이 떨어져 결혼이나 연애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뜻으로, 이를 ‘상장폐지’에 비유한 말)’ 등의 단어로 공격을 하고 호남은 ‘홍어’ 등으로 비하한다. 진보주의자들에게는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대다수 국민들은 일베의 이같은 혐오 발언을 곱게 보진 않는다. 그러나 일베의 혐오 발언을 비판하는 이들조차도 자신도 모르게 일상생활에서 종종 헤이트 스피치를 내뱉는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도 헤이트 스피치가 이뤄지며 엘리트 층이 이에 앞장서기도 한다. 칼끝은 항상 소수자에게로 향한다.

지난 총선 때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무소속 이석인 후보는 “종북과 세월호, 동성애를 ‘척결’하겠다”며 호언장담해 비난과 환호를 동시에 샀다. 다른 지역에서도 ‘이슬람, 동성애 척결’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정당 투표에서 득표율 2.63%를 기록한 ‘기독자유당’도 ‘동성애자차별금지법’을 막아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기독자유당의 당원이자 홍보대사인 배우 서정희씨는 지지 연설문에서 “가정이 깨지는 것에는 동성애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공약에도 기독자유당은 62만 표 이상을 거둬들였고 비슷한 노선의 기독민주당도 13만 표 가까이 획득했다. 그러나 75만 명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음에도 일각에서는 두 정당과 몇몇 극우 성향의 후보들이 혐오 사회를 조장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소수자들은 총선에 나선 정당과 후보자들의 말화살에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동성애자 P(25)씨는 “거리에 동성애자를 척결하겠다는 플래카드가 나부낄 때, 주홍글씨가 새겨진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면서 “각종 단체들이 동성애자들을 언급하며 ‘에이즈’ ‘항문’ ‘정신병’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퇴치를 외칠 때마다,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이들에 경악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헌법에서 종교나 성별, 사회적 지위 등으로 차별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지만 선관위가 나서 그 같은 행동을 용인한 꼴”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무슬림들도 헤이트 스피치의 피해자들이다. 특히 기독교단체들을 중심으로 이슬람교와 무슬림에 대한 혐오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할랄 단지 조성에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들은 “이슬람 테러리스트” “무슬림 IS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자” 등의 피켓을 들었다.

‘무슬림 = 테러리스트’라는 근거 없는 프레임을 만들어 모욕적인 발언을 마구 쏟아내는 것이다. 이에 대해 터키 이스탄불 근교에 살고 있는 바하드르(25)씨는 “유학 당시 나를 터키인이라고 소개하면 몇몇 한국인들은 IS 얘기를 하며 낄낄거렸다”면서 “편견에 기초해 소수자들을 공격하고 차별(discriminate)하는 헤이트 스피치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선 헤이트 스피치 범죄로 인식

때로는 우리 국민들이 헤이트 스피치의 과녁이 되고는 한다. 궁수(弓手)로는 일본의 ‘재특회’가 대표적이다. 재특회는 ‘재일 특권을 허락하지 않는 시민 모임’의 줄임말로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시민단체다. 한국인을 ‘간사하고 독한 흙먼지’ ‘바퀴벌레’라 칭하고 일본의 한국인 학교에 쳐들어가 “김치 냄새가 난다”고 하는 등의 혐한 시위를 하고 있다.

일본 고등법원은 재특회의 행동을 '인종차별행위'로 인정했다. 다카마쓰(高松)고등법원 재판부는 도쿠시마(德島)현 교직원 조합에 난입해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한 재특회 관계자 등 10명 선고 공판에서 “일련의 행동은 인종차별사상의 발현”이라고 판결했다. 손해 배상 금액도 1심 재판부가 선고한 약 230만 엔에서 436만 엔으로 배 가까이 늘렸다.

일본 내에서는 재특위의 헤이트 스피치에 대항해 ‘카운터스 행동대’가 등장했다. 카운터스 행동대는 일본 우익단체들의 헤이트 스피치 및 시위를 몸으로 맞선다.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도 헤이트 스피치를 근절하기 위해 대응하고 있다. 빠르면 올 상반기에 ‘헤이트 스피치 법’이 일본 의회에서 통과될 예정이다. 이 법은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그 가족을 모멸하는 헤이트 스피치 행위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이나 독일, 영국 등의 국가들도 헤이트 스피치를 증오범죄의 한 유형으로 보고 처벌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이트인 페이스북도 증오표현이 포함된 게시글에 대해 더 철저하게 규제하겠다고 하면서 헤이트 스피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소수자들을 공격하는 플래카드와 피켓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고, 심지어 선거공약으로도 쓰이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정완 경희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사회운동을 통해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자율규제를 확산시켜야 한다”면서도 “사회적 논의를 거듭해서 사회 문제로 만든 뒤 법률이 필요하면 관련법을 입법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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