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특정후보 추대 ‘음모론’… “최장 연기 사태 숨은 배후 있다”

“특정후보들 겨냥한 검찰 수사 노림수 있다” 불만 확산

이해할 수 없는 보훈처 조치와 끼워맞추기식 검찰 수사

재향군인회 대의원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훈처를 규탄하며 박승춘 보훈처장을 해임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최근 향군사태와 관련해 “국가보훈처가 불법 선거개입을 했다”고 비난하면서 최근의 회장후보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도 보훈처와 연관있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향군회 내부에서는 보훈처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훈처가 특정 후보를 향군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해 여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정황 때문이다.

향군회의 한 관계자는 “현 정권의 특정 세력과 연결된 특정 후보를 재향군인 회장으로 앉히기 위해 검찰에 다른 후보들을 고발조치하도록 배후조종하고 있는 것이 바로 보훈처”라며 “정관에 따라 빨리 공정한 선거를 해 조직안정화를 도모하도록 하는 게 보훈처의 역할인데 오히려 그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훈처를 비판했다.

검찰, 향군회장 후보3명 압수수색

검찰은 지난 4월 22일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 과정에서 금품을 살포한 비리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이진동 부장검사)는 이날 제36대 향군회장 선거에 후보로 나선 후보 3명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번에 압수수색 대상이 된 후보 3명은 앞서 선거 비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조남풍 전 향군회장과 함께 지난해 4월 제35대 향군 회장 선거에서 경선을 치렀던 이들이다. 2명은 예비역 장성, 1명은 예비역 대위 출신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 전 회장뿐 아니라 이들 3명의 후보가 지난해 선거에서 대의원들에게 억대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의원 A씨는 금품을 받았다는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군 간부는 이와 관련해 후보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선거 비리 정황이 포착되자 향군의 관리감독기관인 국가보훈처는 비리 연루자가 당선될 가능성을 감안해 이달 15일로 예정됐던 회장 선거를 연기하도록 같은달 13일 지시했다. 이후 검찰이 후보자들을 겨냥해 동시 압수수색을 실시하자 향군 내부에서는 반발이 나오고 있어 선거를 둘러싼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수사 이후로 선거를 연기하는데 대한 대의원들의 불만이 급기야 보훈처 공격으로 이어진 모습이다.

이에 정치권도 움직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지난 20일 박승춘 보훈처장에 대해 3번째 해임촉구결의안을 공동 발의하기로 했다. ‘여소야대’ 20대 국회를 감안할 때 야권의 첫 번째 표적이 될 조짐이다.

박 처장이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2월 부임한 이후 이념 성향을 강하게 표출하면서 보훈처는 끊임없이 구설에 휘말려 왔다.

보훈처 안팎에서는 순국선열을 기리고 국가유공자들을 도와야 할 보훈처가 편 가르기와 이념적 편향성을 내세워 보수조직을 움직이려 해 ‘박승춘을 위한 보훈처’ 아니냐는 비판도 없지 않다.

박 처장은 보훈처가 관리ㆍ감독하는 재향군인회의 방만 경영을 방조하고 향군 회장 비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비판을 받다가 지난 4월 15일로 예정됐던 향군 회장 선거를 갑작스럽게 중단시켜, 특정 인물을 당선시키기 위한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박 처장은 육군사관학교(27기)를 졸업한 3성 장군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부터 지금까지 5년 넘게 정부 최장수 기관장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그는 2004년 7월 군 정보 최고책임자인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근무하면서 남북 경비정의 교신 내용을 보수언론 기자 3명에게 전달했다가 기무사 조사를 받고 자진 전역했다. 이후 2007년 박근혜 캠프에 몸을 담았다가 2011년 보훈처장에 임명됐다.

난파(難破)된 재향군인회

최근에는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비리 의혹에 휘말린 이선민(70) 전 향군 사무총장이 후보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향군 관계자는 “이선민 후보가 어제 후보에서 물러나겠다고 향군 선거관리위원회에 통보했다”고 전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제36대 향군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 5명 가운데 한 명으로, 지난 3월 말 다른 후보 2명과 함께 비리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지난해 4월 제35대 회장 선거에도 출마했던 이들 3명은 당시 금품수수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이 향군회장 선거에서 중도에 하차한 것은 검찰 수사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훈처는 이 전 사무총장을 포함한 후보 3명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향군 회장 선거를 불과 이틀 앞둔 지난달 13일 향군에 선거 연기를 지시했다. 이는 전례가 없는 초유의 사태로 조직이나 단체를 관리하는 부처가 이 같이 선거에 개입해 일정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 대상인 다른 후보 2명도 사퇴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향군회는 보훈처가 검찰 수사 이후로 선거를 미뤄놓았기 때문에 아직 회장 선거 일정 조차도 잡지 못한 상태로 표류 중이다.

검찰이 향군 회장후보자 3명에 대해 동시 수사를 벌이면서 향군회는 그게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선거법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조남풍 전 회장 해임된 이후 회장 보궐선거 일정을 두고 향군회 내부에 여러 잡음이 일고 있다.

향군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월 13일 조 전 회장이 해임된 이후 선거일을 4월 중순으로 잡았지만 이조차 검찰 수사로 다시 연기됐다.

향군 정관에는 ‘회장직이 공석일 경우 60일 이내에 신임회장이 선출돼야 하고 선거 예정일 한달 전 임시총회를 열어 선거일정 등을 공표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정관에 따르면 선거 예정일은 오는 3월 13일이고 임시총회는 지난 2월 13일이다.

최근까지 향군회장 직무대행 역할을 맡았던 박용옥(74) 부회장은 내부적으로 선거 날짜를 놓고 논란이 일자 정관에 의해 3월에 열려야 할 보궐선거 일정을 4월로 미루고 지난 10일 정관 변경안에 대한 임시전국총회를 소집했으나 이 부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사태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박 부회장이 특정세력과 손잡고 보훈처와 함께 선거 뒷작업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적지 않다. 또 ‘청와대 낙점설’을 문제삼으며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일정을 늦추는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향군회의 한 관계자는 선거 지연의 배경에 대해 “향군회 개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출범과 함께 보궐선거를 위한 임시총회 소집이 지연됐기 때문에 선거날짜 확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내부적으로 최대한 빨리 의견을 일치시켜 차질 없이 선거를 치르려 하고 있으나 일단 보훈처에서 선거를 연기시키고 있어 움직일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향군회 일부에서는 박 부회장과 관련, “박 부회장은 조 전 회장이 구속되기 전 임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추진하는 선거는 믿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어 향군회 내분은 더 심화되고 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