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수사 성과 없어 검찰 내부 흉흉한 분위기

일본 롯데 통해 설립한 해외법인 자금 추적 난관

롯데 비자금 핵심키맨 찾기 주력… ‘ 검찰 위기설’ 솔솔

검찰이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6000억원대 탈세 혐의를 포착, 추가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롯데에 대한 수사가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에 포착된 6000억원은 검찰 수사로 드러난 대기업의 조세포탈 규모로는 최대치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지난 5일 “전날 롯데그룹 정책본부실 및 관계자 등에 대해 다시 압수수색을 벌였다”고 밝혔다.

정책본부는 그룹의 경영업무를 총괄해 사실상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로 통한다. 운영ㆍ비전전략ㆍ인사ㆍ지원ㆍ커뮤니케이션ㆍ비서ㆍ개선실 등 7개실로 구분돼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롯데쇼핑 소속이어서 그 움직임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검찰은 롯데그룹 내 비자금 조성 등 오너일가의 범죄행위가 정책본부를 통해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수사 초기부터 강도높은 조사를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채정병 롯데카드 대표이사 등 정책본부 출신 임원과 현 정책본부실 실무자들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를 서미경(57)씨와 그의 딸 등에게 불법 이전하면서 6000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과정에 정책본부가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모 대형로펌이 개입된 정황도 파악했다. 신 총괄회장은 탈세 과정에서 국내 5대로펌 중 하나인 A법무법인으로부터 조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지난 1일 해당 법무법인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으며 소속 회계사와 변호사들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의 분석을 마치는 대로 서씨 모녀를 소환해 6000억원대 탈세 혐의와 일감을 몰아주고 롯데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롯데그룹에 대한 수사를 두고 전망이 분분하다. 최근 검찰 주변에서 “롯데 수사가 잘 풀리지 않아 검찰이 새로운 돌파구 찾기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검찰 칼끝 신격호 비자금으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검찰의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를 놓고 여러 관측과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활로를 찾은 것 아니냐는 소리가 돌고 있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은 국내 조세 당국의 세금 부과를 피하기 위해 미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지분을 넘긴 것으로 보고 의심가는 해당사를 추적하고 있다.

검찰은 또 서씨 모녀에 대한 증여과정에서 법률 자문을 맡았던 대형 법무법인으로부터 자료를 제출 받는 등 관련 증거를 확보했다. 이에 따라 관련 자료 분석을 마치는 대로 서씨 모녀를 소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은 금고관리인에 대한 수사다. 검찰은 지난 2일 오후 채정병(66) 롯데카드 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채 사장에게 신동빈 회장(61)의 해외비자금과 관련된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 사장은 지난달 16일에도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채 사장은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채 사장은 1981년 입사해 30년 넘게 근무한 ‘롯데맨’으로 불린다.

특히 채 사장은 2004년부터 2014년까지 그룹의 총괄 최고재무책임자인 정책본부 지원실장을 맡아 그룹의 투자 자산 거래와 해외 거래 등을 주도하면서 정책본부의 재무와 법무 등을 담당했다.

검찰은 그동안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의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자금을 발견하고 정책본부 관계자 등 자금관리인들을 잇따라 불러 조사해왔다. 그동안 그룹의 자금 관리를 맡았던 이봉철(58) 정책본부 부사장, 김현수(60) 롯데손해보험 대표이사 등이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채 사장을 통해 아직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검찰이 불러 조사한 이른바 ‘롯데맨’들이 약속이나 한 듯 검찰의 질문에 하나같이 비슷한 대목에서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부인하는 등 입을 다물고 있어서다.

이에 검찰은 수사영역을 확대하는 한편 그동안 롯데를 도운 외부 세력들로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롯데와 연결된 전현직 공기관 인사들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롯데홈쇼핑 재승인 로비 의혹을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재승인 심사위원 중 롯데 측에 자문 경력이 있는 인사가 포함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또 롯데홈쇼핑이 감사원의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금품 로비를 시도한 단서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롯데 도운 이들 정면겨냥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손영배 부장검사)는 지난해 홈쇼핑 분야 방송채널 재승인 심사에 참여한 수도권 소재 대학 박모 교수를 최근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박 교수는 과거 롯데홈쇼핑 측에서 자문료를 받은 사실을 숨기고 심사위원에 합류했고, 롯데 측도 이런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양측이 특혜를 위해 사전에 공모했을 정황에 무게를 싣는 대목이다.

홈쇼핑 분야 방송채널 재승인 심사절차에는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평가도 포함된다. 심사위원회는 평가 결과를 토대로 미래창조과학부에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도 한다. 재승인 대상자와 관련이 있는 인사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 심사위원들은 서약서 형태의 서류를 통해 이런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데, 박 교수는 이 과정에서 롯데 측의 자문료를 받은 경력을 알리지 않은 부분이 드러나 고의은폐 가능성이 크다는 검찰의 시각이다.

여기에 박 교수가 수년에 걸쳐 자문료 명목으로 롯데홈쇼핑 측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단서를 확보한 검찰은 재승인 과정에서 그의 역할 등을 조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롯데홈쇼핑의 재승인 심사 과정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무마하려고 금품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어 검찰은 이 부분도 조사 중이다. 검찰에 따르면 박 교수는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검찰은 모 회계법인의 고문 ○○○씨로부터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이 감사원의 감사를 막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롯데홈쇼핑이 ○○○씨에게 건넨 자문료 명목의 금품 일부가 로비 목적으로 감사원 관계자들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 중이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강 사장의 경우, 보강 수사를 거쳐 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다. 강 사장은 로비 의혹 외에도 허위자료로 홈쇼핑 재승인을 받아내고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채 사장 이외에 또 다른 롯데그룹의 ‘금고지기’ 로 알려진 고바야시 마사모토(小林正元·66) 롯데캐피탈 사장에 대해서도 검찰은 조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최근에는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고 검찰의 롯데 자금 추적이 시작되자 갑작스레 사임해 그 배경을 두고 여러 의혹이 제기된다. 외부적으로 롯데 측은 현재 고바야시가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쪽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롯데그룹의 ‘금고지기’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있는 고바야시 사장이 사장직에서 물러난 것은 롯데 내부적으로 모종의 의견교환이 있은 결과로 보인다. 고바야시 사장은 한ㆍ일 롯데를 아우르는 롯데그룹의 지주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재무를 총괄하는 CFO직을 겸하고 있으며, 일본 종업원 지주회를 움직이는 롯데의 숨은 실세로 알려져 있다.

롯데 해외 자금 추적이 관건

고바야시 사장은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배후 인물’로 주목을 받아왔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과거 왕자의 난 당시 “신동빈과 쓰쿠다(일본 롯데홀딩스 사장), 고바야시가 힘을 합쳐 나를 자르고, 아버지(신격호 총괄회장)를 쳐냈다”고 밝히면서 그의 존재가 주목을 끌었다.

이후 롯데그룹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는 고바야시 사장과 롯데캐피탈이 한ㆍ일 롯데 비자금 조성의 핵심창구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또 한 차례 주목을 끌었다.

고바야시 사장의 사임을 두고 일각에서는 고바야시 사장이 검찰수사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국 롯데캐피탈 사장직에서 물러났다는 관측도 나온다. 고바야시 사장은 검찰수사가 본격화된 지난 6월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일본에서 체류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검찰소환이 불가피하기에 스스로 사장직을 내려놓았다는 것이다.

고바야시 사장은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 법학부를 나와 산와은행, UFJ은행을 거친 정통 일본 금융인이다. 주목할 점은 그가 2003년 신동빈 롯데 회장에 의해 발탁됐다는 점이다. 이후 그는 한국 롯데캐피탈 상무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롯데캐피탈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롯데그룹 국내 계열사 가운데서는 유일한 일본인 최고경영자(CEO)로 12년간 롯데캐피탈 대표를 맡아왔다.

롯데 수사가 뚜렷한 결과물 없이 수사 확대만 계속되자 일각에서는 검찰이 손에 잡히는 게 없어 무분별하게 수사를 확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동시에 검찰이 결국 국민적 망신만 당하는 꼴이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검찰의 롯데그룹수사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자 검찰 주변에선 대규모 수사 인력을 투입하고도 건져낸 게 없었던 포스코 수사처럼 ‘용두사미 수사’ 가능성이 슬슬 고개를 든다.

특히 롯데케미칼과 일본 롯데물산이 부정한 거래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에 대한 수사가 한달째 지지부진하면서 검찰 내부에서도 조급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검찰은 일본 롯데물산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자 일본과의 사법 공조로 이 의혹을 규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일본과의 사법 공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가 그 성과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계열사로부터 부당하게 300억원 가까운 개인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도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롯데그룹은 이 돈이 두 회장의 급여와 배당금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검찰은 이같은 롯데의 해명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롯데홈쇼핑 방송인허가 비리 의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검찰은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이 미래부 공무원 등에게 금품로비를 지시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강 사장을 구속하려 했지만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는데 실패했다.

법원은 지난달 19일 검찰의 사전 구속영장에 대해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와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 정도에 비춰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압수수색물 분석과 관련자 소환을 통해 확실한 증거물을 확보한 검찰이 곧 신동빈 회장 등 오너일가를 향해 검찰이 칼을 빼들 거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또 검찰의 대기업 수사의 경우 통상 3~4개월 정도가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조급하게 이야기 할 단계가 아니라는 말도 들린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