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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김일성보다 못해" "박정희 정권보다 북한이 우월…취중실언 옥살이 6년...

버스에서 혼잣말로 넋두리했다가 인생망치고 가족에 빨갱이 꼬리표
고통속에 숨죽이며 살아오다 34년만에 유족들 청주지법에 재심 청구
"박정희 정권보다 북한이 우월" 3년 옥살이 치러…재심서 무죄선고
  • 법원(자료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이정현 기자] 한마디 취중 '실언'으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50대 중반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유족들이 나섰다.

함남 출신 김모씨는 살아생전 버스에서 술김에 "전두환 대통령이 김일성보다 정치를 못한다"라고 한마디 했다가 3년 옥살이를 한뒤 이듬해 세상을 하직했다.

김씨의 유족은 아버지를 잃은 뒤 오랜 세월을 '빨갱이 자식' '빨갱이 부인' 취급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오다 34년만에 비로소 이 집안의 가장인 고(故) 김모씨에 대한 사건 재심을 청구했다고 연합뉴스가 8일 보도했다.

56세의 나이에 세상을 뜬 김모씨는 1950년 6월25일 발발한 한국전쟁 중 월남해 한국에서 정착하며 새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나날이 이어졌다.

1982년 2월10일 오후 8시30분쯤 청주의 한 시내버스 안에서 결국 '시한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김씨는 만취상태로 버스에 올라탄 뒤 혼잣말로 "막노동 생활을 하는 걸로 어찌 살아갈 수 있겠나. 전두환 대통령 정치가 김일성보다 못하다"며 혼잣말로 넋두리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고 놀란 버스안내양이 김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게 된 김씨는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결국 재판에 부쳐졌다. 당시 법원은 '어이없게도' 그의 발언이 반국가 단체와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한 것이라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자신이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항변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징역형이 확정돼 3년을 복역하고 1985년 만기 출소하고도 보호감호소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김씨는 이듬해 지병으로 쓸쓸한 삶을 마감했다. 당시 그의 나이 56세였다.

김씨의 유족들은 34년간 '빨갱이가족' '불순분자'라는 낙인과 함께 각종 신원조회때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물론 취업도 거부당한채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유족들은 하지만 지난해말 드디어 김씨에 대한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며 청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재심청구였다.

유족들은 불법체포 등 강압수사에 의한 자백과 목격자 진술만으로 단순한 술 주정을 친북활동으로 둔갑시킨 것이라며 아버지 김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이선경 변호사는 이에 대해 "김씨의 발언은 설령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해도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뒤 "김씨의 발언을 입증할 증거라고는 목격자 진술밖에 없는데 그 진술조차 수사 단계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의 기구한 인생은 제4공화국 시절에도 있었다. 그는 유신헌법때인 1975년 어느 날 세 들어 사는 집 마당에서 술에 취해 "박정희 정권보다 북한이 우월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다가 이를 들은 이웃이 신고하는 바람에 이때도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 다만 이 사건은 유족의 청구로 재심이 이뤄져 2013년 11월 무죄가 선고된바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용현 부장판사)는 당시 "김씨의 발언은 시사적인 관심사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술에 취한 상태에서 혼잣말로 불평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런 사실만으로 김씨에게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판결을 내린바 있다.

김씨 유족들은 이 판결을 떠올리며 1982년 취중발언 건도 당연히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씨 변론을 맡은 이선경 변호사는 "통상 사람을 흉기로 찌르는 중대 범죄를 저질러야 징역 3년형이 선고되는데 술 주정 한마디를 문제 삼아 한 사람의 삶과 그 가족의 인생을 망쳐놓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사법부의 공정한 판결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씨의 재심 청구 사건을 맡은 청주지법 형사합의12부(이현우 부장판사)는 심문을 종결하고, 재심 개시 여부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져 3년전 조용현 부장판사에 이어 이현우 부장판사의 판결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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