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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최순실 게이트' 풍자 …농단 · 비선 · 권력서열...

국정 '농단'의 의미는....대한민국 권력 서열 진짜 1위는 누구
비선실세가 B선실세? '혼용무도' 넉자는 요즘 세태 정곡찔러
[이정현 기자] ‘최순실의 국정 농단’ 내막이 어렴풋이 감지될 때만 해도 ‘농단’ 이라는 말은 다소 낯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인지 초반에는 SNS 등에 어림짐작으로 ‘최순실이 정부를 희롱했다’며 희롱(戱弄)과 혼동하는 듯한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 뉴스에 끝모를 듯 이어져 나오는 농단이라는 용어는 이제 너무나 익숙한 용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일 네티즌세상에 따르면 몇몇 정치용어, 고사성어 등이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며 작금의 정치상황을 신랄하게 풍자하면서 국민적 분노를 온라인상에 여러 표정으로 분출하고 있어 주목된다.

◇농단(壟斷) = ‘맹자’ 공손추 편에서 유래한 용어로,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 하는 모습을 빗댄 말로 쓰인다. 본래 ‘맹자’ 원문에는 신화 속 동물인 용(龍) 자를 쓴 것으로 돼있으나 내용적으로 더 뜻이 맞는 언덕 ‘농(壟)’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맹자는 자유로운 상거래를 하던 상인에게 세금이 처음 부과되게 만든 한 남자의 사연을 설명하며 ‘좋은 자리를 차지해서 온갖 이익을 독차지 했던 장사꾼’을 거론하며 농단이란 말을 썼다. 즉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급급해 다른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경우를 빗댄 말이다. 이런 이유로 ‘농(壟)’자에는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은 언덕이라는 뜻과 이익을 혼자서 독차지한다는 두가지 뜻이 동시에 담기게 됐다.

아무런 직책도 없는 동네 아줌마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가 그동안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각종 외교문서를 사전에 받아보고 이에 영향을 미치거나, K스포츠·미르재단 등을 앞세워 기업들로부터 준조세성 거금을 끌어모아 사재를 축재하려 했던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농단'이라는 두 글자가 오늘날 한국정치를 압축 표현하는 용어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농단의 정확한 뜻을 설명하고 강조하려는 인터넷 게시물도 부쩍 늘었다.
  • 31일 검찰에 출두한 최순실 씨.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비선(秘線) = 최순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는 ‘비선 뜻’ ‘비선실세 뜻’이라는 말이 자동완성 기능에 포함되는 등 관심 용어로 떠오르고 있다.

‘비선’이라는 말은 비공개적으로 어떤 인물이나 단체와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이나 그런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이러한 관계를 이용해 뒤에서 힘을 쓰는 사람을 풍자해 실세 등의 말과 함께 쓰인다.

역사적으로 왕조시대에는 ‘수렴청정’이, 민주화 이후에는 많은 대통령들이 피하지 못했던 ‘친인척 비리’ 등이 큰틀에서 일종의 비선실세 논란으로 불거지곤 했다.

독신의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초 비선실세 논란에서 자유로울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최순실 사태에서는 '호스트 바' 출신 인사의 연관성까지 거론되는 등 사상 초유의 ‘B급’ 비선실세 논란이라는 말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보고서로 작성한 버시바우 전(前) 주한 미국 대사의 비밀보고도 이같은 논란에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 혼용무도(昏庸無道) = 최순실 사태로 올해 재조명되고 있는 '올해의 고사성어'도 눈에 띈다. 매년 교수들을 상대로 올해의 고사성어를 끌어내 발표해온 교수신문이 작년에 선정한 ‘혼용무도’라는 용어가 바로 주인공이다.

'무능하고 어리석은 군주탓에 세상이 어지럽다'는 뜻의 혼용무도(昏庸無道)라는 고사성어는 지난 10월 31일 광운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다시 등장해 눈길을 모았다. 국가기밀 누출, 국비 유용, 불투명한 국정인사 등의 의혹을 받는 최순실 사태의 심각성을 표현하기에 워낙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은 덕분인지 ‘한해를 정리하는 말이 아니라 예언이었다’는 반응도 나왔다.

◇권력서열= “우리나라 권력서열은 최순실이 1위, 정윤회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 비서관실 소속으로 근무하던 박관천 전 경정이 청와대 문건유출 의혹을 수사받는 과정에서 검찰에 했다는 말이다. 여기에 며칠 전부터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이 진짜 실세라는 말까지 나오며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서열 4위’로 밀려났다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다.

사실 ‘권력서열’이라는 말은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북한이나 중국 같은 공산주의 국가의 경우엔 특정 인물의 이름까지 명시되며 공공연한 서열이 발표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주주의 체제는 ‘3권분립’을 지향한다. 따라서 아무리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더라도 ‘3부 요인’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권력 균형이 중시된다.

더욱 본질적인 이유도 있다. 우리 헌법은 제 1조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돼 있다. 결국 국민을 쏙 뺀 채 ‘대한민국 권력서열’ 운운 하는 자체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최순실로부터 나온다” 1일 오전 전북 익산시 원광고 학생회 명의로 붙은 대자보의 한 글귀다. 고등학생들도 꿰뚫고 있는 이번 최순실 사태의 본질은 온갖 폭로전 속에서도 결코 잊혀져서는 안될 금과옥조 같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서열 1위는 국민이다.
  • 1일 전북 익산시 원광고등학교 교내에 원광고 학생회 명의로 붙은 대자보. 사진=원광고 학생회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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