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포기각서’ 문제 인지한 검찰… 이영복에 수차례 무혐의 처분

독산동 부지 상속자들에 제시한 이영복의 권리포기각서, 모순 투성이

이영복의 독산동 부지 계약 내용 인지하고 있던 검찰… 처분은 딴판

제보자 “검찰이 이영복에 내린 면죄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검찰 “증거 불충분해 무혐의 처분…법적으로 문제될 것 없어”


부산시 해운대관광리조트 ‘엘시티(LCT)’ 개발 비리로 구속된 이영복(66) 청안건설 회장의 독산동 부지를 둘러싼 소송 내용이 공개됐다.

<주간한국> 제2658호 서울시 독산동 도하부대의 용도변경 로비 의혹을 다룬 보도의 취재에 응해준 제보자 A씨 등은 이영복 회장과 8년 넘게 소송을 이어오고 있다. A씨는 이영복 회장에 대한 검찰 조서기록을 본지에 공개했고, A씨 측이 ‘명백한 증거’를 들어 유죄입증을 호소했음에도 검찰이 수차례에 걸쳐 이 회장에게 무혐의처분을 내린 정황을 밝힐 수 있었다.

특히 문제가 있다는 점을 검찰 측이 충분히 인지했을 만한데도 검찰은 이를 무시하고 이영복 회장에 면죄부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상당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금천 롯데캐슬 골프파크가 세워진 독산동 부지 일대는 지난 1970년경 정부에서 ‘군사상 목적으로 징발하겠다’며 국유지로 바뀌게 됐고, 이후 이곳에 육군 도하부대가 세워졌다.

이영복 회장은 지난 1996년 11월, 해당 징발토지에 대한 환매권 및 수의계약권을 삼양사로부터 양도받은 송 모씨와 이 모씨에게 나타났다.

이 회장은 이들에게 도하부대를 2년 내에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고, 자신에게 해당 징발토지에 대한 권리일부를 팔 것을 요구했다. 두 사람은 이영복 회장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징발 토지 5만 7000평에 대한 수의계약권 중 3만 5000평에 대한 권리를 이 회장에게 넘겼다.

놀랍게도 약 1년 6개월 만에 군 철수가 결정됐다. 그러나 이 회장은 지난 2000년 자신의 뒤를 봐 주던 정권 실세가 ‘옷 로비’를 했다는 사건에 연루돼 실각했고, 검찰이 다대·만덕지구 사건의 재수사에 나서자 잠적하면서 도하부대 이전 문제는 한동안 잠잠해졌다.

이 시기 송씨와 이씨는 숨어있던 이영복 회장을 어렵게 찾아내 권리를 양도하기로 한 면적을 기존 3만 5000평에서 2만 9000평으로 변경할 것으로 요구했고, 이 회장이 이에 동의했다.

지난 2005년 12월 원 매수자 송씨가 사망하고 이듬해 6월 서울시가 징발토지에 대한 지구단위계획을 확정 및 고시하자, 이영복 회장은 또 다른 원 매수자인 이씨에게 나타났다.

당시 이영복 회장은 자신이 내세운 정 모씨에게 이씨의 해당 징발토지에 대한 모든 권리를 매각하라고 설득했다.

제보자 A씨는 “당시 이영복은 이씨에게 자신의 로비로 군이 철수하게 됐다는 투서가 군에 들어가 군이 해당 징발 토지를 수의계약이 아닌 공매로 매각하려 한다고 사정을 전했다”라며 “그래서 자신이 내세운 정씨에게 평당 100만원에 양도하는 것이 그나마 손실을 줄이는 것이라고 이씨를 회유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씨는 이영복 회장의 제안대로 자신과 송씨가 이 회장에게 양도한 뒤 남아 있던 2만 8000평의 권리를 정씨에게 평(3.3㎡)당 100만원이라는 헐값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송씨의 상속인들이 정씨의 계약에 동의하지 않자, 같은 해 9월 이영복 회장은 송씨의 상속인들을 찾아가 해당 징발토지와 관련된 송씨의 채무 약 93억원을 자신이 책임지고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하며 ‘권리포기각서’를 제시했다.

A씨에 따르면 이영복 회장은 송씨 상속인 중 일부와 공모해 이 권리포기각서를 계획했다. 해당 각서는 송씨와 이씨의 공동소유인 징발토지 5만 7000평의 권리 모두를 송씨의 상속인들이 이 회장 측에 넘기고, 과거 삼양사로부터 양도받은 모든 권리를 포기해 이 회장이 세운 법인인 제이피엔터프라이즈에 양도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이영복 회장은 이 권리포기각서에 대한 동의를 받아 독산동 부지에 발을 들인지 10년 만에 원 매수자의 5만 7000평의 권리 모두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 이후인 2007년 12월 국방부로부터 독산동 424-1 19필지 등 총 5만 754평의 토지를 3500억원에 양도받는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주간한국>의 지난 보도대로 이 권리포기각서의 내용에는 이영복 회장이 사실을 왜곡한 부분이 상당수였다. 특히 이 회장은 1996년 11월 송씨 등과 맺은 계약서의 제6조 내용을 권리포기각서에 반영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해당 계약서의 제6조에는 ‘갑(송씨·이씨)과 을(이영복)이 계약을 체결한 후 갑 또는 을의 권리에 속하는 면적 중 일부가 공공사업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그에 상당하는 면적을 갑의 지분에서 할당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당시 계약을 맺은 징발토지 중에 서울시나 금천구 등 국가에서 공공사업 목적으로 사용하기로 하는 토지가 생겨 이 부분이 국가와 수의계약에서 제외될 경우, 이를 송씨와 이씨 지분의 토지에서 부담한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복 회장은 권리포기각서에 국가와 수의계약 이후의 토지개발단계의 일인 ‘서울시 지구단위계획으로 송씨의 잔여지분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송씨의 상속인들은 송씨의 모든 권리 5만 7000평을 이영복에게 무상으로 귀속시키고 삼양사에 대해 송씨가 갖는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라는 조항을 실었다.

여기에는 분명 원 매수자인 이씨에 대한 설명이 누락돼 있었다. 1996년 11월의 계약은 이영복 회장과 송씨와의 단독계약이 아닌, 이 회장과 송씨·이씨 삼자 간 공동계약이었다.

계약서 제6조를 권리포기각서에 반영한다면 징발토지 계약에 있어 송씨와 ‘공동운명체’와도 같았던 이씨에게도 이 조항은 동등하게 적용되며, 계약서 제6조 때문에 송씨 상속인들이 삼양사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 것이라면 이씨 역시 그의 삼양사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은 정씨를 내세워 이씨의 권리를 양도받았다.

때문에 송씨 상속인들이 권리포기 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고, 계약서 6조와 서울시 고시로 인해 송씨의 지분 토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이 회장의 주장은 성립할 수 없었다.

특히 이영복 회장은 권리포기각서에 ‘이영복은 송씨와의 3만 5000평 계약에 대한 매매대금 140억원 모두를 송씨에게 지급했다’라는 내용을 실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영복 회장의 권리는 이미 2만 9000평으로 변경돼 있었고 매매대금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또 이씨를 배제하고 송씨에게 3만 5000평 계약에 대한 매매대금 모두를 지급했다는 설명도 말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이를 뒤늦게 깨달은 송씨의 채무자들은 이영복 회장 그리고 그와 공모한 것으로 알려진 송씨의 상속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명백한 증거’ 있음에도… 이영복에 내려진 무혐의 처분

제보자 A씨 등 송씨의 채무자들은 지난 2007년부터 이영복 회장 등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A씨는 “검찰 측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이영복 측에 무혐의처분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A씨는 당시 검찰로부터 받은 조서기록을 제시했다.

소송에 있어 가장 큰 쟁점은 허위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권리포기각서로 이를 통해 이영복 회장 등이 송씨 채무자들을 기망해 이들의 권리를 빼앗아갔다는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였다.

때문에 검찰 측의 권리포기각서에 대한 해석 및 판단은 향후 민사소송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9년 5월 춘천지방검찰청강릉지청에서 처분한 해당 사건의 기록에 따르면 검찰 측은 이 권리포기각서의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강릉지청은 당시 조서기록에 ‘1996년 11월 망 송○○, 이○○은 피의자 이영복과 이 사건의 부동산 5만 7033평 중 3만 5000평에 대한 수의계약에 관한 권리를 대금 140억원에 양도하되, 양도인들의 권리에 속하는 면적 중 일부가 공공사업목적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면적을 양도인인 위 송○○과 이○○의 지분에서 할당하기로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계약을 체결했다’고 제시했다.

또 ‘2001년 8월 15일 망 송○○과 이○○은 피의자 이영복과 종전 계약에 권리를 양도하기로 한 면적을 2만 9000평으로 정정 변경했다’ 그리고 ‘2006년 9월 망 송○○의 상속인들은 송○○이 주식회사 삼양사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며 계약상의 권리를 피의자 이영복이 지정한 제이피엔터프라즈가 직접 삼양사에 대해 권리를 행사함에 이의가 없다는 취지의 각서를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검찰은 3만 5000평의 계약이 송씨와 이씨 그리고 이영복 회장 삼자 간 공동계약이었고, 중간에 계약 면적이 변경됐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물론 5만 7000평은 송씨와 이씨의 공동권리로 삼양사에 향후 지급해야 할 잔금도 이들이 공동으로 부담해야 할 금액이라는 사실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검찰은 권리포기각서 내에 공동권리자 이씨가 배제된 점에 문제를 제기해야만 했다. 특히 권리포기각서에 이영복 회장의 권리가 3만 5000평으로 기재된 것이 사실이 아니며 송씨 상속인들이 삼양사에 지급하겠다고 약정한 잔금도 송씨와 이씨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회장 측이 작성한 권리포기각서 내용은 모두 허위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A씨는 검찰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영복 회장 등 피의자들의 권리포기각서에 대한 모순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억울해했다.

A씨는 “검찰은 자신들이 조서에 기록한 사실을 내버려 둔 채 이영복 등 피의자의 주장만 그대로 실어 2차에 걸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강릉지청의 지난 2008년 9월 해당 사건의 1차 불기소이유서에서는 권리포기각서에 실린 허위 내용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 사건기록에는 ‘피의자 이영복에게 양도해야 할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수의계약권리는 3만 5000평 부분에 해당한다’ 그리고 ‘서울시 (지구단위계획)고시에 의거, 이 사건 부동산 중 7700평 상당만 수용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영복에게 매도한 3만 5000평을 제외하고 피의자 송△△ 등이 취득할 수 있는 수의계약에 관한 권리는 1만 4300평(계산:5만 7000평-3만 5000평-7700평)정도 남아있다고 판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검찰은 분명히 2001년 8월 15일 송씨와 이씨가 이영복 회장에 양도하기로 했던 본래 3만 5000평의 권리를 2만 9000평으로 바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이 권리포기각서 내에 제시한 3만 5000평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규정한 셈이었다.

특히 1996년 3만 5000평의 계약이 이영복 회장과 송씨-이씨 삼자 간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영복 회장과 권리포기각서를 공모한 것으로 알려진 송△△ 씨에 대한 권리에 대해 잘못된 계산 결과를 내놨다.

A씨는 “피의자 송△△이 출자할 수 있는 송씨에 대한 권리는 이씨의 몫을 고려하면 1만 4300평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이영복의 권리도 3만 5000평이 아닌 2만 9000평으로 계산할 경우 1만 평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당시 검찰의 이영복에 대한 불기소처분은 여러 모로 이영복 측의 유리한 입장만을 반영해 판단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2008년 10월 서울중앙지검 해당 사건의 조서에 따르면, 피의자 이영복과 송씨의 상속인들은 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 부지가 2만 9000평에 불과하다고 진술했으나, 당시 서울중앙지검이 인용한 2008년 8월 춘천강릉지청의 처분서에는 수의계약이 체결된 토지가 5만 754평이라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 회장 측에 무혐의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송씨와 이씨 그리고 이영복 회장 간 어떤 계약이 이뤄졌고, 중간에 발생한 계약내용의 변경과 고소인들이 권리포기각서의 내용이 허위라고 줄곧 주장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특히 피의자 송△△ 씨가 검찰 측에 송씨가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받을 매매잔금이 적어도 30억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때문에 이 회장이 권리포기각서에서 ‘3만 5000평 계약에 대한 매매대금 140억원 모두를 송씨에게 지급했다’라고 실은 내용도 모두 거짓이었음을 검찰은 알 수 있었지만, 검찰 측은 이를 문제 삼지 않은 채 이 회장에 무혐의처분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A씨 등 고소인들은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측의 납득할 수 없는 판단에 굴복하지 않고 8년이 넘게 이영복 회장 측과 기나긴 소송을 이어오고 있다. A씨는 엘시티 사건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영복 회장에 대해 보다 공정한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라며 사법부 측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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