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증거 확보, 추가 확인 단계”…삼성 임직원 등 구체적 진술 마쳐

박 대통령 독대 당시 ‘최씨 지원 청탁’ ‘장시호 기획서 전달’인정해

특검 “이재용 구속되는 것 시간 문제”…박 대통령도 혐의 인정될 가능성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그룹의 뇌물수수 의혹으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된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밤샘조사를 받고 지난 13일 아침 귀가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7시 50분께 강남구 대치동 D 빌딩에 있는 특검팀 사무실에서 나와 귀가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의 얼굴이 상당히 굳은 것으로 미루어 검찰에 일부 혐의에 대해 자백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특검이나 검찰에 출석해 이처럼 장시간 조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피의자 조사는 삼성 에버랜드 사건 이후 9년 만의 일이다. 그만큼 특검팀과 삼성 양측이 치열한 법리 싸움을 벌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검팀 조사는 검사 출신인 양재식(51ㆍ사법연수원 21기) 특검보의 지휘 아래 ‘대기업 수사통’인 한동훈(44ㆍ27기) 부장검사와 김영철(44ㆍ33기) 검사가 진행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현 정부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일가에 대한 삼성의 지원이 2015년 7월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 결정에 대한 대가인지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특검팀은 삼성이 2015년 8월 최씨의 독일 현지 법인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22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원을 송금한 것, 같은 해 10월∼작년 3월 최씨 조카 장시호씨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을 후원한 것 등이 뇌물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검-이재용 기싸움 승패는 결정

최씨가 설립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삼성이 204억원의 출연금을 낸 것도 수사 대상이다.

이 부회장은 조사 과정에서 삼성이 공갈ㆍ강요의 피해자라는 취지로 삼성의 최씨 일가 지원이 박 대통령의 강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6일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위증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국조특위는 지난 12일 그를 위증 혐의로 특검에 고발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 조사 결과를 토대로 금명간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포함한 사법처리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삼성의 최씨 일가 지원을 주도한 박상진(64)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도 전날 오후 2시께 소환돼 13시간 이상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과 박 사장을 포함해 최근 소환한 삼성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 장충기 차장(사장) 등 그룹 수뇌부의 사법처리 여부를 일괄적으로 결정할 방침이다.

특검팀은 국회 위증과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을 청구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지시로 최씨 일가를 지원한 최지성 실장, 장충기 차장의 구속영장도 함께 청구할 예정이다.

또 특검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계획하고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 2014년 말~2015년 초 삼성물산의 실적이 과소평가되도록 조작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 부회장 일가의 삼성물산 지분이 1.4%에 불과해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는 편이 합병에서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게 특검의 설명이다.

특검은 삼성물산의 2조원대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수주가 합병안 통과 열흘 뒤인 7월 28일 발표됐지만 실제로는 합병 이전인 5월 13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같은 해 2월에는 이미 삼성물산이 수주한 삼성전자의 베트남 투자 프로젝트 2차공사를 삼성엔지니어링으로 변경시켰다.

특검은 이 부회장을 일단 국회 위증과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할 계획이다. 삼성그룹은 최씨 모녀 회사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 전신)에 지난해 9월까지 78억원을, 최씨 조카 장시호씨(38ㆍ구속)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을, 미르ㆍK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했다. 이 대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공단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다.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이날 이 부회장을 청문회 위증 혐의로 특검에 고발키로 의결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청문회에서 증언한 “삼성이 최순실씨 일가 지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진술 등이 거짓이라 판단해 지난 11일 국회에 위증죄 고발을 요청했다.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진술 내용에 일부 변화가 있었을지 주목되고 있다. 특검팀 주변에서는 이 부회장이 밤샘조사를 받던 지난 밤사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향으로 진술태도를 일부 바꿨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이 특검 조사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독대 당시 최씨에 대한 지원을 청탁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또 이 부회장은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작성한 기획서도 전달받았다고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수사로 박 대통령 벼랑끝

이는 이 부회장의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초 이 부회장은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독대 당시 박 대통령의 직접적인 주문이 없었다”고 증언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이 부회장이 뇌물죄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술을 일부 바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미 이 부회장의 구속은 피하기 힘든 것 아니냐는 말이 파다하다. 법무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실무부서에서도 구속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같은 진술변화는 사실 이미 예견된 부분이다. 특검은 이미 상당량의 진술을 확보한 상황이고 이 부회장은 더 이상 추적을 피하기 힘들다는 분석을 내렸을 수 있다. 이에 ‘삼성도 피해자’라는 기존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박 대통령에게 책임을 씌우는 모습이다.

이 부회장의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주문이 있어 지원 및 출연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자료까지 준비해 제시하면서까지 최씨에 대한 지원을 '청탁'하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최씨로부터 받은 자료를 2015년 7월과 2016년 2월 이 부회장과의 독대에서 건넨 정황을 포착했고, 지난해 2월에는 장씨가 작성한 기획서를 건넨 정황도 파악했다”며 “지난 밤 조사에서 이 부회장을 상대로 이 부분에 대해 확인을 거쳤다”고 말했다.

특검팀이 확보한 각종 증거자료 앞에서 이 부회장이 일부 진술태도를 바꾼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다.

삼성은 승마 유망주 육성 명분으로 2015년 8월 최씨의 독일 현지법인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22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원가량을 송금했다. 또 비타나V 등 삼성전자 명의로 산 명마 대금도 43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자금은 다른 승마선수들에게 한 푼도 돌아가지 않고 모두 최씨 가족의 독일 부동산 매입 등 생활비 등에 쓰였다.

삼성은 최씨와 그의 조카 장시호씨가 평창올림픽을 활용해 이권을 챙기려 세운 것으로 드러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2800만원을 후원했다. 또 최씨가 배후에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에도 주요 대기업 중 최대인 204억원을 출연했다.

이 부회장은 2015년 7월 안가 독대 때 박 대통령이 코레스포츠 계약 등 승마 관련 지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역정을 내 긴급히 내부 회의를 열어 경위를 파악하고 최씨 일가 지원을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부회장은 이 무렵에야 최씨의 구체적인 존재를 알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특검팀은 지난해 2월 독대 때에도 박 대통령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0억원 규모의 추가 기부를 하라고 이 부회장 측에 요구한 구체적인 정황도 파악했다.

특검은 법리 검토 결과 뇌물공여 혐의로 처벌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특검팀은 이번 사건에서 박 대통령이 삼성 측에 지원이 원활치 않다고 압박한 구체적인 정황은 있으나 뚜렷한 정책적 ‘보복’ 수단까지 동원해 매우 강력한 공포를 느끼게 하거나 협박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보고 삼성을 ‘피해자’로만 간주해 처벌을 면하게 해주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이미 삼성그룹 수뇌부와 국민연금의 삼성합병 찬성 의혹에 연루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김진수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에게 구속영장 청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검 탄핵에 결정적 역할

특검팀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주도적 역할을 한 혐의를 받는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과 김진수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다.

특검팀은 삼성 핵심 수뇌부 일부의 구속영장을 청구 여부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면 홍 전 본부장과 김 비서관에게도 동시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특검팀은 현재까지 진행된 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에 비춰봤을 때 홍 전 본부장과 김 비서관의 신병을 확보한 상태에서 청와대의 조직적 개입과 박 대통령의 지시 여부 등을 수사할 필요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5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책임자로 ‘자본시장 대통령’으로도 불리던 홍 전 본부장은 2015년 7월 국민연금의 삼성 합병 찬성을 주도한 인물이다.

특검팀은 홍 전 본부장이 문형표 당시 장관(구속)을 비롯한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들의 요구에 따라 삼성 합병에 반대 의견이 다수를 이룰 것으로 예상되는 의결권전문위원회에 합병 안건을 부의하지 않고 기금운용본부가 독자적으로 내부 기구인 투자위원회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삼성 합병이 이뤄지도록 지원한 것으로 파악했다.

홍 전 본부장은 지난 12월 26∼27일 이틀 연속 소환 조사를 받았는데 첫날에는 보건복지부 등 외부의 압력이 없었다고 주장하다가 이튿날 조사에서 문 전 장관 등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들의 압력이 있었음을 실토했다.

특검팀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삼성 합병 유도 계획 보고를 김 비서관 등 청와대에 보낸 정황도 포착했다.

특검이 물적 증거와 관계자들 진술로 자금의 대가성을 입증한다면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뇌물’, 입증하지 못하면 ‘공갈’이 되는 것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박 대통령으로부터 자금 지원 요구를 언제, 어떻게 받아 삼성그룹 임직원들에게 어떻게 지시했는지 등을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2015년 7월25일 청와대 안가 독대 당시 박 대통령의 말씀자료에 ‘이번 정부에서 삼성의 후계 승계 문제 해결을 기대한다’는 문구가 담긴 배경도 캐물었다.

특검은 또 이 부회장을 상대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위증한 경위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특검은 ‘정씨 지원 사실을 200억원대 컨설팅 계약 이후에야 보고받았다’는 이 부회장의 증언을 거짓으로 보고 있다.

삼성그룹 수뇌부로부터 보고를 받았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특검은 전날 이 부회장을 위증 혐의로 고발해달라고 국회 국정조사특위에 요청했고, 국회는 이날 고발 안건을 의결했다.

특검은 구속 사유에 뇌물공여와 함께 국회 위증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위증은 법정형 하한이 징역 1년인 중범죄인 데다, 뇌물죄에 대한 증거인멸 가능성까지 소명할 수 있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특검의 계산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영장 청구의 핵심 사유인 ‘뇌물공여’를 법원이 인정하는 것이어서 수뢰자인 박 대통령의 파면사유가 한층 뚜렷해진다.

앞서 특검팀은 지난 12일 대한승마협회 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을 12일 오후 전격 소환해 조사했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한 것으로 알려진 박 사장은 병원에서 나와 출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최씨 측을 지원하는 데 주도적으로 관여한 의혹을 받는 박 사장을 상대로 정확한 지원 경위와 이 부회장의 지시 여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은 삼성이 최씨 측에 제공한 자금의 성격과 청탁, 대가성 여부를 가리는 데 핵심적인 단서를 제공할 인물로 꼽혀왔다.

특검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돌입하기 전 ‘사전 조사’로 정보를 수집할 당시 접촉 대상에 포함되기도 했다.

최근 삼성 수뇌부에 대한 특검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박 사장 소환도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그는 최근 건강 이상을 호소하며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도 불출석해 소환 일정이 미지수였다.

당시 불출석 사유서에서 박 사장은 “최근 검찰과 특검 조사를 받으면서 세 번째로 이석증이 재발해 심한 어지럼증과 두통ㆍ구토 증세를 겪고 있고,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까지 생겨 수면제를 복용해야 잘 수 있는 상태가 됐다”고 호소한 바 있다.

박 사장의 담당 의사는 “(박 사장은) 평생 살아온 의미가 없어지고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면서 자살 사고(思考)가 심화돼 폐쇄 병동 입원 치료와 약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특검팀은 최 실장과 장 차장이 증거를 인멸하고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커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신병을 확보한 상태에서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구속영장을 모두 청구할지 아니면 역할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거나 혐의가 더 강하게 의심되는 한 명만 청구할지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