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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중위 19주기 ‘진실의 문’ 열리나

“정의로운 군대가 ‘국민의 군대’…정의 없으면 ‘강도떼’, 충성 안해”

19년간 김훈 중위 죽음의 진실 파헤쳐 온 ‘아버지의 전쟁’ 게속

국방부, 과학적 증거에도 ‘자살’고수…유족 “대법원 판결도 조작”

김척 “김훈 중위 죽음 정의롭고 강한 군대 만드는 ‘하나의 밀알’ 되게”

군의문사 대표적 사건이자 군대 인권의 상징인 김훈 중위가 사망한지 19년이 되는 24일 서울 명동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19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김훈 중위 유족을 비롯해 군의문사 가족, 김훈 중위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데 함께해 온 군 동기 및 관계자, 종교계 인사, 시민단체, 일반 국민들이 참석했다.

김훈 중위 부친인 김척(74ㆍ예비역 육군중장)씨는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떼와 같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원용해 “정의롭지 못한 군대는 강도떼나 다름없다. 그런 군대에 누가 충성하겠냐”며 김훈 중위 죽음의 진실을 외면하고, 심지어 왜곡까지 하는 군의 그릇된 행태를 질타했다.

김척씨는 평생 헌신한 군을 향해 19년간 ‘정의’의 칼을 들고 심판자의 길을 외롭게 걷고 있다. 마치 옐라의 계곡(성서에 나오는 골리앗 과 다윗이 싸운 장소)에서 좀처럼 열기 어려운 ‘진실의 문’을 향해 사투를 벌이는 다윗과 닮았다.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군조직을 향해 묵묵히 용기를 갖고 ‘아버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김척씨가 다윗의 승리를 가져올지 주목되고 있다.

19년전인 1998년 2월 24일 김훈 중위(당시 25세, 육사52기)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초소(241GP)에서 의문의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제15대 대통령(김대중) 취임식 하루 전날이었다.

그런데 한국군과 미군 수사관이 수사를 하기도 전에 ‘자살’로 결론내려졌고, 곧바로 보도됐다. 당시 김훈 중위는 12시 20분 경 발견됐고, 미군수사관(CID)은 오후 3시 30분에 사건현장에 도착했다. 한국군 수사관은 그보다 늦게 오후 4시 40분쯤 부대에 당도했다. 국방부는 김 중위 사인에 대한 수사도 하기 전에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자살’로 브리핑했다.

김훈 중위 사인을 ‘자살’로 결론지은 군의 입장은 최초 발표부터 현재까지 완고하다. 국방부는 육군이 미군 범죄수사대(CID)와 합동으로 진행한 1차 수사(1998년 2월 24일-4월 29일)는 물론, 육군본부 검찰부의 2차 수사(1998년 6월 1일∼11월 29일), 국방부장관의 지시로 설치된 특별합동조사단의 3차 수사(1998년 12월 9일∼1999년 4월 14일), 그리고 2012년 3월 22일 총기 격발실험 등에서 김훈 중위가 자신의 권총을 이용해 자살한 것으로 일관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국방부와는 달리 입법부(국회 국방위원회), 사법부(대법원), 행정부(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3대 국가기관과 국가권익위원회는 자살 결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1999년 국회 국방위원회에 설치되었던 ‘김훈 중위 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는 그해 5월 31일 부실 수사에 대한 의문 15가지를 제기하며 ‘김훈 중위가 타살됐을 수 있다’는 취지의 의정 활동 보고서를 펴냈다. 대법원도 2006년 12월 김훈 중위 사건 관련 판결을 통해 “초동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판시했다. 3년간 사건을 조사했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11월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권익위도 국방부와 합의해 2012년 3월22일 총기 격발실험 등 쟁점 사안들에 대해 재조사를 진행한 후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군은 김훈 중위가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자.타살의 진실을 밝혀 줄 핵심 증거는 총을 발사할 때 반드시 분출되는 화약이다. 그런데 김 중위가 총을 쐈다는 오른손에서 뇌관화약이 검출되지 않았다. 김 중위의 왼손바닥에 나타난 뇌관 화약과 어깨 부위의 무연화약 성분으로는 ‘자살’로 단정할 수 없다고 국내외 전문기관은 판단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화약 검출과 관련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자살’로 결론내렸다. 유족 측은 국방부 주장을 반박했고 서류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방부가 2011년 10월 17일 당시 민주당 서종표원에게 김훈 중위의 자살 판단 근거 자료로 제출한 뇌관화약감정서(손에 대한 뇌관화약 검출여부 확인) 사본 일체,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화약감정결과(99년 2월 6일) 및 미국 군수사연구소 증적(證跡)과 보고(98년 3월 25일)는 자살 결론과는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유족 측은 1998년 10월 2일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시험결과도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즉,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제시된 증거물의 시험결과만으로는 발사자가 변사자 자신인지 논단할 수 없음”이라고 적시돼 있음에도 특조단 수사발표문에는 “국과수 이00 등 3명의 재감정결과 김훈 중위의 야전잠바 좌우측 어깨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김훈 중위가 사격하였음을 의미한다”고 기록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국회, 권익위, 유족 측의 요구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벌여온 국방부 조사본부는 직접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12년 3월 22일 서울 강서구 소재 특전사 공수여단 실내사격장에서 김훈 중위가 사망하던 당시 판문점 241GP의 제반 조건을 그대로 재현한 가운데 총기실험을 실시했다.

그런데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는 뇌관화약이 검출되지 않았다. 다시말해 김훈 중위는 스스로 M9 베레타 권총을 격발(자살)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 논거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여전히 ‘자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족 측은 무엇보다 국방부가 대법원 판결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김훈 중위 사인을 ‘자살’로 결론짓고 이를 대외적으로 강변하고 알리는 데 활용한 것에 분노하고 있다.

대법원(김영란 전 대법관 주심, 김황식 전 총리, 안대희 전 대법관 배석)은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판결문(2006년 12월 7일)에서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하여 사건의 실체를 불분명하게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이 사건 사고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히 결론을 내릴 수 없도록 하였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김태영 국방장관과 조정환 육군참모차장(2010년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김흥석 법무실장(2010년 11월 9일 육사총동창회), 승장래 전 국방부조사본부장(2012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등 군 수뇌부 인사는 한결같이 “대법원은 ‘자살’로 판결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대법원 판결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자 대법원은 2014년 3월 31일 기존 판결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현재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원심을 수긍하였기에 대법원의 입장은 자살 타살 여부에 대하여 중립(현재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고 밝혔다. 국방부의 ‘자살 판결’이라는 자의적 해석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김척씨는 최근 모 영화 관계자들이 김훈 중위를 소재로 한 영화(아버지의 전쟁)를 제작하면서 ‘사실(Fact)’과 다른 내용으로 김 중위와 군의문사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분개했다.

김훈 중위 19주기 추모식을 하루 앞둔 23일 김척씨를 만나 그간의 감회와 국방부를 상대로 한 ‘아버지의 전쟁’ 속얘기를 들었다.

-김훈 중위 19주기를 맞는 감회는.

“19년 하루하루가 전쟁의 연속이었다. 김훈 중위는 죽어서 가슴에 묻어지지 않고 가슴속에 살아서 죽음의 진실을 향해 끊임없이 전쟁을 하게 했다. 이건 나 혼자만의 전쟁도, 김훈 중위만을 위한 전쟁이 아니다. 김훈 중위와 또 같은 처지의 군의문사 가족, 매년 군에서 발생하고 앞으로도 발생할 군 사망자와 유족을 위해 치러야 하는 전쟁이다. 굳이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19년간 군과 국방부를 상대하면서 거대한 ‘벽’을 경험했고, 온 몸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의롭지 못한 거대한 군조직을 상대하는 게 힘들고 끝이 안보여 막막하기도 하지만 ‘진실은 승리한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평생 군에 헌신해온 입장에서 오히려 19년간 군을 상대로 싸워왔다.

“작년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가 정의로운 국가였을 때 번성했지만 정의가 사라지면서 국가도 무너졌다”고 했다. “정의가 없는 국가란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 “정의롭지 못한 군대는 강도떼와 다름없다. 강도떼가 어떻게 국민의 군대가 될 수 있나”. 진정으로 강한 군대는 병사들이 기꺼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몸을 바쳐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감이 충만한 군대다. 그런데 진실을 외면하고 국민을 속이고 하는 강도떼와 같은 군대에 누가 충성하며 애국심을 기대할 수 있겠나. 평생 헌신한 군이 이렇게 무너졌는가 생각하면 회한이 들고 울분마저 느낀다.”

-군이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심지어 조작까지 했다고 주장하는데, 군이 왜 그렇다고 보는가.

“군은 사건이 나면 사건 부대 지휘관이 책임을 지게 돼있다. 우선 처벌받지 않기 위해, 진급도 관련돼 있어 자살로 은폐하는 것으로 본다. 또한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헌병ㆍ기무ㆍ감찰ㆍ작전ㆍ군수 등 5부가 합동으로 총체적인 조사를 해야 조작을 방지할 수 있는데 김훈 중위 사건의 경우 헌병 혼자만 와 멋대로 조작했다. 최초 수사가 잘못되다 보니 이후 수사는 책임회피를 위해 상급부대 모두 ‘자살’로 몰고갔다. 최상의 결정정권자인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방부장관도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거짓말로 일관했고, 대법원 판결도 조작했는데 누가 진실을 밝히겠나.”

-김훈 중위 사인을 ‘타살’이라고 확신한 결정적 계기는.

“김훈 중위가 사망한 날은 현장에 가보지 못했고 3일 후 추모식이 JSA 사건 현장 근처에서 있어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내 자식이지만 평생 군에 헌신한 사람으로서 객관성과 공정하게 아들 죽음에 다가가려고 했다. 그런데 사건 현장을 보고 ‘자살’이 아니란 걸 확신했다. 자살자는 모든 인생을 정리하면서 일반적으로 편안한 시간에 자살을 한다. 그런데 사망 시간은 점심시간이고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는 근처였다. 11시 50분까지 사무실에 있다가 10분 후에 벙커에서 자살했다는 게 말이 안됐다

또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머리에 총을 대고 쏴 자국이 남고 머릿속에 가스가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김훈 중위 사망 후 부대 병사들에 행한 조치는 더욱 의심스럽게 했다. 당시 김훈 중위 외 부대원들에 대한 총기, 군복, 알리바이 등 제대로 조사한 게 없고, 부대원들을 모아 말을 맞춘 게 드러났다.”

-김훈 중위 사망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모든 군의문사 유족에게 해당하겠지만 우선 군 접근이 안된다. 군은 사망에 대해 제대로설명하지도 않는다. 발이 닳도록 김훈 중위 부대원들을 찾아다니고 여러 곳에 호소를 했다. 김훈 중위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동기생들과 육사 선후배, 심지어 해외에서까지 관심을 갖고 필요한 자료와 전문가를 추전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국방부의 태도다. 수많은 ‘타살’ 증거가 나와도 한사코 부인했고, 심지어 증거자료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대법원 판결마저 ‘자살’로 조작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서슴없이 주장하고 타기관, 언론 등에 알리는 것을 보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방부는 최근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사인불능 군의문사 사건에대해 군인사법을 개정해 순직처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군이, 국방부가 떳떳하지 못한 자세라고 본다. 분명 문제가 있는데 책임은 지지않고 법을 개정해 마치 특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순직처리 운운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다. 무엇보다 사망의 진싱을 밝히고 책임있는 자는 처벌받아야 하고 그동안 진실을 외면해온 국방부는 유족과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순직처리가 아니다. 김훈 중위의 명예다. 사건을 조작하고 유족을 고통스럽게 한 관계자들은 처벌받고 사죄해야 한다.”

-최근 김훈 중위 관련 영화 제작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영화 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중단’을 요청하고 내용증명서까지 보냈다. 그럼에도 영화 제작을 강행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김훈 중위를 비롯해 군의문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일반 영화와 달라야 한다. 사실(Fact)에 입각해 진정성 있게 제작해야 한다. 더구나 김훈 중위는 지난 19년 간 언론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다른 군의문사도 그러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영화 시나리오는 김훈 중위를 비롯한 유족이 고통스럽게 진실을 위해 싸워온 것과 전혀 달랐다. 한마디로 ‘황당한 창작’이었다. 군의문사 문제를 널리 알린다고 했지만 ‘본질’을 벗어난 영화 제작은 오히려 사망한 당사자와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가령 군 장성 출신으로 나오는 내가 옛 부하들을 동원해 군 관계자를 만나고 일식집에서 육군참모총장을 만나 아들 애기를 한다는 것이나 김훈 중위 부임 전 구타로 암매장당한 병사의 진실을 파헤치다가 타살당했다는 병사의 양심선언으로 육군참모 총장이 구속된다는 식의 설정은 사실과 너무 다르고 유족을 화나게 하는 것이다. 군의문사 유족은 군 관계자를 만나기도 어렵고 힘겹게 고통속에서 싸우고 있는데 마치 무슨 특권으로 군 관계자를 만나고 군의문사가 쉽게 해결되는 듯하게 하는 것은 현실과 너무 다르다. 이는 유족을 더욱 힘들게 하고 국민들에게 군의문사의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 또 영화제목까지 김훈 중위 사건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전쟁’으로 한 것은 군의문사를 잘못 알려지게 할 수 있다. 황당한 창작으로 군의문사를 영화화 하는 것은 중단돼야 한다.또한 영화라고 해서 사실이 아닌 사항을 가지고 군을 매도하는 것은 안된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한다면.

“아버지로서, 전우로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김훈 중위의 죽음을 헛되이 안되게 진실을 밝히는데 남은 여생을 바칠 것이다. 그래서 김훈 중위가 정의로운 군대, 강한 군대를 만드는데 ‘하나의 밀알’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의 전쟁’을 게속해나갈 것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

사진=이헤영 기자 lhy@hankooki.com

#사진 캡션

- 김훈 중위 부친 김척(74ㆍ예비역 육군중장))씨는 “정의롭지 못한 군대는 강도떼와 다름없디”며 현재 국방부의 군의문사를 대하는 태도에 강한 비판을 가했다.

- 김척씨가 23일 김훈 중위 19주기 추모식을 앞두고 본지와 인터뷰하면서 영정을 들고 ‘진실’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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