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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카운슬러로 제2의 삶 사는’ 에듀그룹 맥스어학원 백명주 원장

우여곡절 심했던 과거… “학생 진로상담에 최고의 밑거름”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 현재는 교육 상담가로 제2의 인생

악의적 루머에 강력한 대응 “숨기고 싶지 않아”




  • 백명주 원장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학생들의 올바른 진로를 모색해주고, 나아가 최고의 교육 카운슬러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촉망받는 고교 야구선수, 전국 50여개의 체인점을 냈던 국내최초의 성인용품 사업가, 중국 국제학교 카운슬러, 홍석동 납치사건 주범들로부터 납치당한 후 살아나온 생존자. 인생에서 네 번의 큰 사건을 경험한 이는 현재 재외국민특례 입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에듀그룹 맥스어학원의 백명주 원장이다. 과거 매스컴에서도 ‘시대의 이단아’로 오르내리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백명주 원장은 현재 서울 강남구에서 재외국민특례 입시 상담가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최근 그는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자신을 음해하는 악성 루머와 싸우고 있다. 특히 이 음해성 글들은 백 원장의 과거에 대해 왜곡되고 잘못 알려진 내용으로 포장돼 퍼지고 있어, 새 삶을 살고 있는 그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주간한국>은 백명주 원장과 만나, 그의 새로운 삶과 최근 퍼지고 있는 음해에 대한 진실을 들어봤다.

- 학원 이름과 명함 속 백명주 선생의 별칭에 ‘맥스(MAX)’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이에 대한 특별한 의미나 계기가 있는가.

“맥스는 한국을 떠나 호주에서 외국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던 지난 1997년 말, 현지 교민이었던 친척이 지어준 이름이다. 처음에는 호주 사람들이 한국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고, 저를 보고 힘과 열정이 최상일 것 같다고 말해줘서 기억하기 쉽게 맥스로 정했었다. 이후 호주와 일본, 중국 등에서 생활하면서 줄곧 맥스로 불려왔고, 현재는 백명주라는 실명보다 맥스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할 정도다. 심지어 어머니도 저를 ‘명주’보다 맥스라고 더 자주 부른다.”

- 백명주 선생이 ‘니캉내캉’이라는 아이디로 운영 중인 ‘재외국민특례’ 네이버 카페에는 수천 명의 회원이 가입했고, 그만큼 활성화 돼있다. 카페 소개를 해줄 수 있는가.

“재외국민특례 카페의 시작은 굉장히 순수했다. 딸아이가 재외국민특례 입시 대상자였는데, 학부형 입장에서 재외국민특례 입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카페를 개설한 것이 발단이었다. 저는 국내 대학별 재외국민특례 전형 요강 및 입학사례에 대한 정보를 모았고, 일부 자료를 번역해 카페에 게재하면서 많은 이들이 입소문을 통해 가입해줬다. 처음에는 재외국민특례 전형으로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는 학부형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상당했고 3년 만에 카페에는 7000명 이상의 가입자가 몰렸다. 심지어 현재 카페에는 400명이 넘는 각 지역 재외국민특례 학원 선생님과 각 대학 입학처 관계자들도 가입돼 있다. 다른 재외국민특례 관련 카페도 많지만, 우리 카페에는 가입만 하고 활동하지 않는 유령회원이 거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회원들은 카페 게시판에 재외국민특례 정보만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진로상담 및 가벼운 농담 등 사적인 이야기도 오고 가면서 한 개인 또는 특정 학원만을 위한 카페가 아닌 모두의 커뮤니티로 진화돼가고 있다.”

- 재외국민특례 입학이라고 하면 누구나 들어본 적은 있지만, 어떤 특징을 가진 전형인지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재외국민특례 대상 학생들이 큰 특혜를 받는다거나, 쉽게 대학을 간다고 오해를 한다. 그런데 재외국민특례 학생들은 국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사투를 벌이며, 누군가의 도움을 반드시 필요로 하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어린 시절 집안사정 등으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낯선 외국땅으로 넘어갔다. 때문에 국내 대학입시에 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재외국민특례 입학 전형이 각 대학마다 다양하고 복잡하고, 예체능 계열은 지원할 수 없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 진로상담 및 입시정보 제공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

  • 정보를 쉽게 얻기 힘든 재외국민특례 입시에 도움이 되기 위해 백명주 원장은 해외 설명회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사진은 해외 설명회에서 강연하고 있는 백명주 원장과 설명회 참석자들. (사진=에듀그룹 맥스어학원)
- 금일 인터뷰의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다. 최근 백 선생에 대한 악의적인 글들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메신저를 통해 떠돌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달할수록 폐해도 많은 것 같다. 악성 비방의 당사자가 된 기분이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법률대리인을 통해 해당 사건에 대한 고소장을 작성해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고, 이후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피고소인이 된 ‘그’가 저를 비롯해 많은 피해를 입인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이상 선처하지 않을 생각이다.”

- 백명주 선생에 대한 비방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그리고 이런 비방을 한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저에 대한 비방을 집요하게 준비해왔다고 생각한다. 22년 전 제가 포르노 비디오 업자였다는 허위사실을 퍼트리는가 하면, 학창시절 야구선수를 한 경력을 들어 현재 학원운영에 대한 자격이 없다며 폄하하고 있다. 또 필리핀 교민납치 사건의 피해자로 사건 수사협조를 통해 제2의 피해자를 막은 저를 마치 그들과 어울렸던 흉악범 취급을 하는 글을 퍼뜨렸다. 그의 목적은 정확한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저를 꺼리도록 만드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일부의 사실에 다량의 허위를 섞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퍼뜨리는 것인데, 그 행위를 공익적이고 모두가 알아야 할 ‘알권리’라는 명목으로 포장하고 있다. 특히 가족과 관련된 각종 음해를 퍼뜨렸기 때문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제가 운영하는 것과 유사한 입시관련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과거에도 허위사실을 퍼트려 동종업계에 있는 학원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벌금형에 처해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법의 처벌을 받았다면 반성을 하고 잠잠해져야 정상인데, 오히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만 음해성 글을 올리던 방법을 넘어 해외 교포들이 이용하는 각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에 저에 대한 악의적 소문을 퍼트리고 있다. 특히 저와 함께 설명회를 진행하려던 모 학원에 직접 전화를 걸어 ‘백명주가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 왜 그런 사기꾼과 같이 설명회를 하려 하느냐’등의 영업방해도 서슴지 않았다.”

- 그가 퍼트린 가족과 관련된 음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가.

“제가 부인을 때린다거나, 딸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등의 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갈등 관계는 생길 수 있지만, 가족까지 끌어들여 입에 담기도 힘든 악의적 이야기를 지어내 퍼트린다는 것은 명예훼손을 넘어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아내를 폭행하고, 딸에게 버림받는 사람은 인간 이하인데, 가끔은 이런 행동을 하는 그가 측은하기까지 하다.”

백명주 선생은 곧바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최근 자신의 딸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했다. 메시지에서 백 선생은 딸에게 “수업 후에 연락하렴”이라고 말했고, “아빠, 사랑해요”라는 답장을 받았다.

- <주간한국>이 미리 취재해본 결과, 백명주 선생은 과거 야구선수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고 현재 알려진 학벌이 허위라는 소문도 들을 수 있었다.

“우선 제가 과거 학창시절 야구선수를 했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는 이 야구선수 경력 때문에 제가 정상적 입시교육을 받지 않았고, 교육사업을 할 자격이 부족하다는 음해의 글도 본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저는 야구선수였던 경력이 부끄럽지 않고, 전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학교를 대표하는 야구선수로서, 나아가 국가를 대표하는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땀을 흘렸던 가치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알려진 음해와는 다르게 저는 전직 야구선수였다는 사실을 설명회나 학부형 상담 등에서 당당하게 말하고 다닌다. 또 제가 고졸이거나 평생교육원을 졸업했다는 글도 있었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안타깝게 야구선수를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정상적으로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또 이후 고려대ㆍ연세대 대학원을 다녔고, 현재는 서울 명문대학에서 교육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 고려대와 연세대 대학원을 전부 졸업한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고려대 대학원은 개인사정으로 6개월 만에 그만두게 됐고, 이후 연세대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동시에 벌였던 사업이 영향을 미쳐 학업이 제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 백명주 선생의 과거 사업이야기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백 선생에 대한 음해 중에도 과거 사업에 관해 거론하는 글들이 있다.

“그렇다. 저는 연세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당시 90년대 중반에는 엑스세대라는 사회적 현상이 있었는데,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이를 사업아이템으로 연구해 ‘패션명함’이라는 것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한 마디로 대박을 터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체인점이 전국적으로 60개가 넘었고, 25살에 대표님 소리를 들으니 굉장히 신기했었다. 이후인 1996년, 외국 사업 아이템을 수집하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콘돔 전문점’이었다. 전 세계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콘돔들을 모두 한 곳에 모은 파격적 그리고 혁신적인 가게로, 패션명함을 접고 콘돔 전문점 사업을 시작했다. 반응은 패션명함보다 더 뜨거웠다. 특히 어느 날 유력 일간지 1면에 제 가게를 ‘국내 최초의 섹스숍’이라고 보도를 내면서, 이곳 저곳에서 소문이 퍼졌고 전국에 50여개 체인점을 가지게 됐다.”

- 혹시 가게에서 콘돔 외에 최음제 또는 포르노 등과 같은 불법제품을 팔았던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콘돔만을 전문적으로 운영했고 그것만으로도 호황을 누렸다. 그런데 신문보도의 파장이 커져 제 가게가 섹스숍으로 과장돼 알려지게 됐고, 당시 아무리 젊은이들의 개성을 존중했더라도 성에 관련된 물건은 사회적 통념상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가게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 절반은 손님 그리고 절반은 단속·감시를 위해 나온 공무원 및 경찰들이었다. 특히 저를 통해 물품을 판매하고자 하는 상인들도 많았는데, 음성적이고 불법제품은 단호히 거절했었다. 그러나 거의 매일 경찰들이 단속을 했고, 검찰에서는 저를 체포해 3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매번 기각됐었다. 그런데 이후 일부 대리점에서 제가 다루지도 않았던 불법 물품을 제 동의도 없이 몰래 판매하다가 적발됐고, 단호하게 해당 대리점과 계약을 파기 그리고 제품 공급도 중단했었다. 그러자 그들을 오히려 저를 계약위반으로 고소해 다시 검찰에 소환됐고, 결국에는 구속됐다. 물론 당시 제 변호사는 구속이 부당하다며 구속적부심 신청을 했고, 일주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저를 음해하는 글에서는 ‘과거 섹스숍을 운영해 구속된 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어린 학생들에 접근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매도하고 있다. 전혀 사실이 아니며, 무려 22년 전 6개월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콘돔 전문점 사업을 했을 뿐이었다. 일부 지점에서 다뤘던 불법제품을 본 적도 없고, 오히려 시대를 앞서 독창적 사업을 펼쳤던 청년 사업가였다고 생각한다.”

- 음해 중에는 백명주 선생이 여권을 위조한 채 외국생활을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정확히 말해 여권위조가 아닌, 여권도용이었다. 검찰로부터 보석으로 풀려난 뒤 2년여 간의 재판이 있었다. 거의 매달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변호사 비용도 상당했고, 새로운 사업은 물론 대학원 학업은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는 아주 지혜롭지 못한 판단이었지만, 당시 ‘왜 국가는 나를 자꾸 괴롭힐까’라는 생각에 우리나라가 너무 싫었고 외국으로 떠나고 싶었다. 결국 견디지 못해 친척에게 여권을 빌려 외국으로 떠났다. 물론 향후 귀국길에 올랐을 때, 영사관을 찾아가 여권을 도용했다고 자진 신고를 했다. 심각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각오를 했었지만, 오히려 검찰에서는 저와 여권을 빌려준 친척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 결정문을 받으러 갔던 어머니는 담당 검사로부터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 사업가에게 구속영장을 4번이나 청구해 한국을 떠나게 하다니 고생이 많았다’라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우셨다.”

- 외국생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중국에서 국제학교 직원으로 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저에게 음해성 글을 퍼트리는 그 사람은 중국 국제학교 경력에 대해서도 악의적 허위사실을 퍼트리고 있다. 제가 그 중국 국제학교에서 카운슬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 국제학교 카운슬러’라는 허위 경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 국제학교는 현재도 제 부인이 교사로 있고, 딸도 졸업한 곳이다. 저는 학교의 대내외적 공보를 담당하는 활동을 주로 했는데,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진로상담을 해주면서 어느 사이 카운슬러 일도 하고 있었다. 그 국제학교 교장은 제가 다양한 활동을 해주니 오히려 고마워했고, 학교를 퇴사할 때 제가 그곳에서 카운슬러로 일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추천서까지 받았다.”

실제로 백명주 선생은 해당 국제학교 교장으로부터 받은 추천서를 공개했고, 이 서류의 말미에는 백 선생이 카운슬러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명시돼있었다. 또 졸업앨범에도 백 선생은 ‘교수(Faculty)’로 소개돼있었다.

  • 중국 국제학교에서 카운슬러 등으로 활동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해당 학교 교장 추천서 일부. (사진=에듀그룹 맥스어학원 제공)
- 기억하기 싫겠지만, 백명주 선생은 지난 2012년 필리핀에서 발생한 일명 ‘홍석동 살인사건’의 주범이었던 최세용 일당으로부터 납치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렇다. 필리핀에 가서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를 당해 며칠 동안 죽도록 얻어맞았고, 제 관자놀이에 총구가 겨눠졌다. 정말 떠올리기 싫은 끔찍한 과거이며, 다행히도 살아 돌아왔다. 이후 방송프로그램 등 다수의 언론에서 다뤄진 것과는 다르게, 당시 최세용 일당으로부터 납치와 살해를 당했던 한국인 피해자들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았다. 저는 수사기관과 언론사 등에 피해사실을 제보했고, 공론화 및 최세용 일당의 구속까지 갈 수 있었다. 당시 제가 솔선해서 나서며 최세용 등으로부터 향후 보복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언론 인터뷰에 실명과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제가 용기 있게 나서야 다른 피해자들도 제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심지어 저는 최세용 일당을 검거하기 위해 특별히 꾸려진 수사기관으로부터 필리핀에 동행하자는 요청에 응했고,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았던 필리핀에 가서 납치장소까지 정확히 지목했다. 이 납치 및 살해의 현장에서 피해자들의 유골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당했다는 과거로 인해 학부형들과 학생들이 안 좋은 시선으로 보지는 않는가.

“처음에는 저를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지만, 오히려 용기를 내줘 범인 검거에 많은 기여를 했고 새 삶은 얻었다고 격려해주는 목소리가 더욱 많았다.”

- 자신의 과거와 현재 퍼지고 있는 악의적 소문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기 힘들었을 것이다. 앞으로 에듀그룹 맥스어학원을 찾아줄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에 어떤 학부모께서 저에게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었다. 자신도 저의 과거를 알고 처음에는 충격이었지만, 일반인들이 겪을 수 없는 엄청난 우여곡절을 경험한 사람이기에 오히려 장래에 대해 고민이 상당한 아이들의 진로를 위해 함께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굉장히 감동을 받았고, 여러 걸림돌에도 굴하지 않고 더욱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과거에 저는 몇 번의 지혜롭지 못한 판단을 내렸던 것은 맞다. 그러나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입장에서 더욱 당당하고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실 저는 자신이 교육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진로에 대해 의논하고 고민하고,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함께하는 카운슬러에 불과하다. 물론 교육에 대해 더욱 알아가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대학원에 다니며 교육학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파란만장했던 과거 또는 악의적 허위사실에 휩쓸려 편견을 가지지 말고,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저를 바라봐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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