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 이전 사업’ 미스터리… 이영복이기에 가능했던 숨겨진 이유

제보자 A씨, 본지가 보도한 이영복 로비리스트 국방부 관계자에 “기사내용 맞다”

독산 도하부대 이전 사업 제안에 반신반의했던 이영복… 뒤에서 국방부 인사 접촉

엘시티 사업 비리 못지않던 독산동 도하부대 이전 로비 의혹

한민철 기자

이영복(67ㆍ구속기소) 청안건설 회장의 과거 독산동 도하부대 로비 의혹에 대한 숨겨진 과거 이야기가 폭로됐다. 이 회장의 과거 이야기에 대해 어렵게 고백해준 이는 그가 부동산 시행사업에 발을 들이고, 동방주택 사장으로 ‘전성기’를 달리던 시기 함께한 A씨다. A씨는 과거 동방주택의 고위 임원을 맡기도 했고, 이영복 회장의 조력자로서 다양한 사업에서 그를 돕는데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주간한국>은 이영복 회장이 부동산 시행업에 발을 들였던 당시의 이야기를 담은 지난 보도에 이어, 지난 1996년부터 독산동 도하부대 이전 사업을 위해 그가 벌였던 로비 행적을 A와의 인터뷰를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 이영복 회장이 추진한 것으로 알려진 독산동 도하부대 이전 부동산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들어보고 싶다. 앞서 A씨는 도하부대 이전 사업은 이영복 회장이 먼저 인지하고 추진한 것이 아닌, 자신이 이 회장에게 제안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렇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영복 회장이 도하부대 이전을 위해 군과 정치권 관계자들에게 ‘로비 입김’을 넣은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사업의 제안과 추진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사람은 이 회장이 아니었다. 떠올려 보자면 1995년 말 경 부동산 소개업을 하던 지인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한 군부대가 있는데, 해당 징발토지의 권리를 사두면 나중에 군이 철수할 때 주거 또는 상업지역으로 바뀌어 큰 이득을 볼 수 있으니 매입할 의사가 있는지 나에게 물어봤다. 이 군부대가 바로 독산동 도하부대였다. 나는 지인의 제안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우선 금천구청 공무원들을 만나 이에 대해 물어봤다. 당시 금천구청 관계자들은 ‘향후 도하부대가 이전하면 금천구청을 건립할 부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민간업자가 요청하는 대로 도시계획을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주변 부동산에도 문의한 결과 금천구청과 똑같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 이후 국방부에도 찾아가 도하부대 이전에 대해 문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육군본부에 지인이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그로부터 도하부대 부지 이전 시 부동산 개발 사업이 가능하며 이 징발토지의 원소유주가 삼양사라는 사실도 파악했다. 이후 직접 삼양사 본사에 찾아가 관계자를 만나 이곳이 삼양사 소유의 징발토지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사실 확인이 끝난 뒤 이영복 회장에게 사업에 투자해보라고 권했던 것인가.

“나는 이영복 회장과 동방주택의 첫 사업이었던 천안시 청수동 극동아파트 시행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기 때문에 동업자이자 사업 파트너로서 어느 정도 이영복 회장의 사업 능력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독산동 도하부대 이전 사업은 단순히 무허가주택이나 묘지를 옮기는 정도가 아닌, 군부대라는 국가 기관을 옮기는 대형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았다. 이를 같이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 이영복 회장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특히 이 회장은 이미 1989년 독산동 도하부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독산사거리 인근에 건물을 사들인 상태로 인근 지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 본지가 지난해 12월 17일 단독 보도한 ‘엘시티 이영복의 숨겨진 법인·부동산 찾았다’에서 이영복 회장이 1989년 허 모씨등 3명의 공유자와 독산동 시흥대로 140길에 위치한 3개 필지를 매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건물 소유에 대한 이영복 회장의 지분은 총 공유자 4명 중 가장 낮은 100분의 10이었는데, 지난 2002년 이 회장은 이 건물에 대한 자신의 지분을 담보로 잡고 신부국건업의 전신인 원풍개발과 자신의 명의로 26억 4560만원을 빌렸다.

- 이영복 회장은 A씨의 권유에 곧바로 응해줬나.

“이영복 회장 성격이 굉장히 꼼꼼하고, 특히 사업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흔쾌히 받아줄 리가 없었다. 나는 이영복 회장에게 독산동 징발토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고, 향후 군부대가 철수하면 요즘 말로 ‘대박’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복 회장은 역시 반신반의했다. 사업 투자에 거액이 들어가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이 회장이 징발재산에 대해 자세히 몰랐고 군부대 철수가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인가라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이영복 회장이 도하부대 부지 사업에 대해 관심을 끊은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가 지인이었던 육군 소장 B씨에게 도하부대 이전 사업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다. B씨는 얼마 전 <주간한국>의 기사 나온 이영복 회장의 도하부대 로비 의혹에 있어서 거론된 군 핵심 관계자 중 한 사람이다. 보도에 나온 그의 이력은 내가 알고 있는 한 모두 사실이었다.”

본지가 지난 2월 16일 보도한 ‘엘시티 이영복, 국방부 로비의혹 핵심인물 찾았다’의 기사 내용대로 이영복 회장의 지인으로 알려진 육군 소장 B씨는 도하부대 상급 부대의 사령관을 맡았고, 전역 후 김대중 정부 초반 영남권 한 지역의 지자체 단체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지난 2000년 지역 내 한 업체로부터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고 개발 허가권 특혜를 준 혐의로 구속돼 이듬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부산 엘시티의 시행사로 알려진 청안건설의 고위 임원에도 등록돼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 본지가 수차례 보도했던 대로 이영복 회장이 도하부대 징발토지의 수의계약권을 삼양사로부터 사들인 송씨와 이씨에게 접근한 계기는 무엇인가. 어떻게 이 두 사람이 징발토지의 수의계약권을 매입했다는 사실을 그가 알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우선 나는 삼양사를 통해 송씨와 이씨가 도하부대 징발토지 5만 7000여평의 수의계약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영복 회장은 내가 말해주기 전에 아마도 B씨가 알아봐줬을 것이다. 사실 송씨와 이씨에게 수의계약권 매각을 먼저 요구한 이는 이영복 회장이 아닌 나였다. 그런데 두 사람이 제시한 조건이 나와 맞지 않아 매입 계획을 철회하려 했는데, 이들은 권리대금을 60%로 낮춰 주겠으니 매입을 하라고 나에게 사정했었다. 내가 당시 30억의 잔고가 있는 통장을 이들에게 보여줬었고, 금천구청 관계자들과 면담을 해서 도하부대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신뢰했던 것 같다. 그때는 송씨와 이씨가 삼양사로부터 도하부대 징발토지의 수의계약권을 사들인지 10년이 넘은 시기였기 때문에, 도하부대 이전은 고사하고 계약금이라도 확보하지 못하면 파산 직전까지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이영복 회장을 설득해 1996년 11월 송씨, 이씨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징발토지 5만 7000평의 수의계약권 중 3만 5000평의 권리를 이영복 회장에게 넘긴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 이후 도하부대 이전 사업은 큰 걸림돌 없이 진행됐었나.

“당시 금천구 주민들은 도하부대로 인해 지역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금천구청과 서울시에 꾸준히 항의해 왔었다. 그때 서울시 구 단위 지역 중 청사 건물 없이 임대 빌딩을 사용하고 있던 곳은 금천구청이 유일했고, 도하부대를 철수한 자리에 구청 건물 지을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오죽하면 서울시에서도 200억원 상당의 토지 매입비를 금천구청에 지원할 정도로 도하부대 이전에 대한 열망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주무관청에서도 상당했다. 그러나 역시 미니 신도시급 규모의 도하부대를 옮긴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군부대 이전에 구체적으로 어떤 제약이 있었는가.

“당시 지인을 통해 국방부 시설국 장교 C씨를 어렵게 만나 도하부대 이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때 ‘30만 금천구 주민들이 도하부대로 인해 매일 불편을 호소하고 있으니 부대를 거주민이 적은 한강 주변 부지로 옮기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라고 주장했다. C씨는 나에게 호통을 치면서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고 한숨을 쉬었다. C씨는 도하부대를 대체할 부지가 마땅히 없어 사실상 부대 이전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전시에 한강에 다리를 놓는다는 부대 임무에 맞게 이를 훈련하기 위해서는 인근에 호수가 있어야 했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도하부대는 물자를 보다 원활히 확보할 수 있는 부지에 위치해야 하는데, 독산 도하부대는 인근 시흥역을 통해 부산에서 서울 간 물자·인력을 기차를 통해 바로 이동시킬 수 있어 최적의 장소였다. 현실적으로 도하부대 이전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이 숙제를 풀지 못한다면 이영복 회장이 송씨·이씨와 맺은 계약의 계약금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 이영복 회장과 어떤 대책을 세웠는가.

“이영복 회장의 경우 자신이 알고 있는 군 관계자들과 정치권 실세들에게 부대 이전을 부탁을 하러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 국방부 시설국 관계자도 내가 이 회장에게 소개를 시켜줬다. 나는 금천구 도시정비국장이었던 P씨를 만나 도하부대 이전에 최선을 다해보자는 뜻에서 국회 국방위에 금천구 주민 일동으로 도하부대 이전 청원서를 제출했다. 당시 김영구 국방위원장이 국방장관에게 부대이전 요청을 적극 권유했었고, 현재 이름만 대면 온 국민들이 알고 있는 당시 검찰 고위관리에 있던 K씨도 이영복 회장과 친분으로 힘을 보태줬다. 얼마 후 국방부 시설국이 금천구청에 공문을 보내왔는데, 만약 금천구가 도하부대 이전 장소로 적당한 곳을 선정해준다면 부대 이전을 적극 재검토한다는 내용이었다.”

- 그래서 금천구청이 내놓은 도하부대 이전 부지는 어디였는가.

“당시 금천구는 도하부대 남쪽에 위치한 광명시 소하동의 기아자동차 공장 부지를 추천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곳이 도하부대 특성상 크고 많은 철재물을 싣고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부대 이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국방부는 어느 날 서울시와 금천구가 부지 매입비용을 부담한다면, 자신들이 도하부대 이전 부지를 선정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금천구청에 보냈다. 이에 금천구가 동의하자, 국방부는 1998년 5월 도하부대 총 10만평 중 공군부대를 제외한 육군부대 부지의 이전을 발표했다. 동시에 국방부는 자신들이 선정한 도하부대 대체 부지에 대해서도 덧붙였는데, 성남시 금토동에 위치한 약 30만평의 녹지였다. 언론을 통해 도하부대가 이전한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퍼졌고, 난리가 났었다. 당시 도하부대 이전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던 국방부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 것에 대해 나도 말을 아끼고 싶지만, 과연 로비의 달인 이영복의 입김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 그러나 금토동 이전은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당시 이 30만평의 부지 내에는 그린벨트 지역이 많았고, 성남시와 주민들이 해당 부지에 군부대가 들어오는 것을 심하게 반발했다. 곧바로 금토동 주민들이 도하부대 이전 저지투쟁위원회를 발족했고, 주민들이 버스 3대를 동원해 국방부 앞에서 데모를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나는 이들을 설득해야만 했기 때문에 시위 주동자들과 대화를 해서 풀어나가고 싶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 도하부대가 금토동으로 이전한다는 발표가 나오자 이영복 회장의 행적이 궁금하다. “이영복 회장은 겨우겨우 도하부대 이전 발표를 얻어냈지만, 공교롭게도 다대·만덕 사건이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자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회장은 이 시기 잠적해 버렸기 때문에 나와 측근들조차 그가 어디로 도망 다녔는지 모르고 있었다. 특히 나는 금토동 도하부대 이전 저지투쟁위원회 인원들을 설득하는 동시에 부산 검찰로부터 이영복 회장 관련 조사를 위해 출두하라는 압박을 받아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시기였다. 그때 금토동 주민들을 설득하는 일을 중단하면 안됐기 때문에 검찰의 출두명령을 무시한 채 피해 다녔는데, 갑자기 수사관들이 집으로 쳐들어 와 도피한 적도 있었다. 이영복 회장은 2년여를 피하다가 자수했고, 나도 이때 3년여 간을 얌전히 숨어 살았었다.”

- 이영복 회장의 부산 엘시티와 독산동 도하부대 이전 사업의 초기부터 봐왔던 입장에서, 규모를 비교해 본다면 어느 쪽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는가.

“두 사업의 향후 건물이 들어섰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규모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둘다 조 단위, 아니 그 이상의 경제적 가치가 있을 정도로 사업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단지 이영복 로비 리스트들의 수와 이름값은 주로 엘시티의 경우만 언론에 자세히 알려져 있는데, 독산동 도하부대 이전 사업도 엘시티에 못지않게 거물급 리스트들이 포함돼있다. 언론과 수사기관이 도하부대 이전 로비 의혹이라는 엄청난 사건에 대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이영복 회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지도 모른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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