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박에 무너지는 ‘정황상 증거’… 특검, ‘결정적 한방’ 있을까

특검, 기초자료 토대 ‘정황상 증거’ 제시

VS 삼성, 이재용 청와대 독대시간 파악 등 논리적 증거 제시로 ‘정황 및 심증’ 반박

법조계 “증거 우선주의 재판, 승리 위해 확실한 물증 필요”

한민철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 측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임원들에 대한 재판의 무게가 삼성 측으로 기울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검 측이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등을 입증함에 있어 정황상 증거 등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검과 삼성이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삼성 측 변호인들이 보다 객관적 물증을 통해 반론을 이어가자 특검 측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양측은 보다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 심리로 이재용(48·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7차 공판이 진행됐다.

이날 특검 측은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61·구속기소)씨가 설립·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영재센터)에 대한 삼성전자의 지원 및 청와대와의 대가성 뇌물증여 입증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특검 측 박주성 검사(39·사법연수원 32기)는 삼성 측의 영재센터 지원이 매우 부적절하고 부실한 검토 끝에 이뤄졌다는 전제로 주장을 밝혀나갔다.

특검이 제시한 영재센터의 ‘사업수지예산서’에 따르면 이 단체는 지난 2015년 10월 2일과 2016년 3월 3일, 삼성 측으로부터 5억 5000만원과 7억 7800만원을 각각 후원금 명목으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10월 2일 실행된 1차 후원에 대한 계약서는 같은 해 9월 25일에서 31일 사이 작성됐다. 삼성은 후원을 통해 영재센터 캠프나 전지훈련 등에서 자사 광고를 노출시킬 수 있다는 내용 등 ‘가’에서 ‘라’항까지의 권리를 계약서에 포함시켰다.

여기서 특검은 한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이 1차 후원의 계약기간은 2015년 10월 2일부터 2016년 12월 31일까지다. 그러나 삼성 측이 2016년 3월 3일, 지원금액을 기존보다 2억원 이상 늘려 7억 7800만원에 영재센터를 지원하는 ‘후원계약 변경합의서’를 작성한 것이다.

특히 이 합의서의 별첨에는 1차 후원 계약서에 제시했던 가에서 라까지의 항목에 ‘마’항을 붙여 ‘꿈나무 드림팀 육성 프로젝트’와 관련된 내용을 추가시켰다.

박주성 특검보는 “최서원(최순실)이 지시해 동계센터 직원이었던 장시호와 김 모씨가 작성했던 사업계획서의 제목과 동일하다”며 “그 사업계획서의 제목 그대로 ‘마’항에 반영됐다”고 밝혔다.

특히 특검 측은 장시호씨와 김씨가 작성했다는 사업계획서의 다양한 문제점을 제시, 삼성이 부실한 사업계획서를 받고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10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제공한 사실은 대가성 뇌물이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를 위해 특검 측은 전날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형사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최서원(최순실) 뇌물수수 혐의 제4회 공판’에서도 제시했던 지난 2015년 7월 23일 장씨 등이 작성한 영재센터 사업계획서를 증거로 제시했다.

특검은 장씨와 김씨가 작성했던 사업계획서는 최순실씨가 동계스포츠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던 이들을 불러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달라 요구했고, 굉장히 졸속이며 부실하게 사업계획서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특검 측은 당시 사업계획서 내 ‘선수출진 지도자 18명’이라고 제시된 부분의 ‘출진’이라는 오자 그리고 ‘로써’와 ‘로서’를 착각한 기재 오류, ‘현재 영재센터 영재선수는 초등학생이라는 정해진 규율에 있어, 올림픽 선수를 발굴하기에 사뭇 어려운 완성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비문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졸속과 부실했던 사업계획서의 근거로 들었다.

또 2015년 9월 25일 당시 영재센터와 삼성전자 측이 1차 후원 계약을 위해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은 계약서 및 영재센터 직원 김씨와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직원 간 이메일 내용을 증거로 제시했다.

당시 삼성 측 관계자는 “시간 절약 위해 계약서를 우리가 작성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영재센터 측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특검 측은 “후원금을 주는 쪽이 계약서 초안을 작성할 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메일 내 “아침에 혼란을 드려서 죄송하다”라는 내용을 통해 1차 후원 계약이 매우 서둘러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검 측은 다른 날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의 다른 관계자가 영재센터 측에 ‘금일 중으로 업체등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보낸 내용을 들어, 업체등록도 제대로 돼있지 않은 상태였던 영재센터에 거액의 후원금을 보냈다고 꼬집었다.

이어 2016년 3월 3일의 2차 후원 계약에 대해서도 후원계약서의 초안을 삼성 측이 먼저 보냈다는 것을 지적하며, 후원을 하는 쪽이 계약서 초안을 작성해 후원받는 쪽에 검토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특검 측은 영재센터와 청와대 그리고 삼성과의 연결고리에 대한 정황상 증거도 제시했다. 지난 2016년 2월 14일 영재센터가 마련한 2차 후원 계약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청와대 측에 전달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를 이재용 부회장에게 제시하며 삼성의 영재센터에 대한 추가 후원을 요구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전날 진행됐던 최순실씨의 4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장시호씨도 비슷한 증언을 했었다.

당시 장씨의 증언에 따르면 최순실씨의 지시에 따라 2월 15일 완성한 영재센터 사업계획서를 무등록 택시를 불러 최씨의 집으로 보냈다.

이어 최씨로부터 이 사업계획서를 ‘잘 받았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고, 이는 최씨의 운전기사였던 방 모씨를 통해 청와대 이영선 행정관에게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청와대에서 3차 독대를 가졌던 시기로, 특검 측은 방씨가 이영선 행정관에게 영재센터 사업계획서를 전달했다는 증거자료로 당시 두 사람의 통화내역을 제시했다.

실제로 해당 자료에는 방씨 그리고 이 행정관의 차명폰으로 보이는 번호는 같은 시간, 같은 기지국에서 통화를 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었다.

특검 측은 자료를 넘겨받은 이영선 행정관이 이를 박근혜 전 대통령에 전달했고, 다시 박 전 대통령이 독대한 이재용 부회장에게 건네 ‘대가성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이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을 통해 직접적으로 영재센터 지원에 관여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보다 ‘논리적’ 증거 확보에 공들이는 삼성

곧바로 이재용 회장 측 변호인들의 ‘삼성방패’는 특검 측의 창 끝을 휘게 만들었다. 삼성 측 변호인들은 보다 다양한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특검의 의혹 제기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삼성 측 변호인들은 삼성의 영재센터 후원이 대가성이며 졸속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정상적이고 문제없는 지원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주장을 펼쳐나갔다.

삼성 측 변호인들은 후원계약서 2조 및 3조 등에 제시된 후원사로서 삼성의 독점권리 조항에 대해 읽어 내려갔다. 해당 조항들에는 영재센터가 삼성과의 계약을 통해 다른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로부터 후원을 받지 않고, 일정한 권리를 갖게 된다고 명시돼 있었다.

여기서 일정한 권리는 단순한 광고권뿐만 아니라, 명칭 사용권 그리고 삼성전자의 행사에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메달리스트로 구성된 영재센터 이사들을 추가비용 없이 초청할 수 있는 특권을 포함하고 있었다.

실제로 2016년 2월 24일 제2회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빙상캠프 포스터에는 후원사로 삼성전자의 로고가 명시돼 있었다.

후원액수가 높아 보일 수 있겠지만, 삼성에게는 독점적 계약권을 가지기 때문에 ‘무조건적 계약’은 아니었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특검 측이 지적한 ‘졸속 계약’에 대해서도 삼성 측 변호인들은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삼성 측은 후원 계약이 체결된 이후 행사 등에 자사 브랜드의 광고 반영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거나 기타 계약이행 사항이 제대로 준수되고 있는지 영재센터로부터 꾸준히 보고를 받고 검토했다고 주장했다.

삼성 측은 장시호씨와 이진성 영재센터 사무국장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증거자료로 제시했다.

실제로 당시 장시호씨는 이진성 사무국장에게 삼성으로부터의 계약 후 진행사항 보고 요청이 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장씨는 이 보고가 사진 등의 보다 객관적 자료를 첨부해 삼성에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이사님과 직원님들 바싹 긴장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 측은 2016년 3월 3일 ‘후원계약 변경합의서’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앞서 특검 측은 삼성이 1차 후원보다 2억원 이상을 늘린 7억 7800만원의 거액을 후원하면서, 별첨 ‘마’항 ‘꿈나무 드림팀 육성 프로젝트’ 조항이 최순실씨가 지시해 장시호씨 등이 작성한 사업계획서 제목과 동일해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삼성 변호인 측은 사업계획서 제목과 추가된 조항의 이름이 같다는 사실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처럼 별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단지 ‘마’항에 매스컴 노출 시 삼성 브랜드를 추가로 노출하는 등 광고권이 추가돼 후원 액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었다.

변호인 측은 “삼성이 내용을 추가해서 계약서를 수정하고 돈을 지급한 것”이라며 “전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 계약서 초안을 삼성이 영재센터에 먼저 보냈다는 것을 특검 측이 이례적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변호인 측은 “있을 수 있는 일을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말한다”고 해명했다.

삼성 측은 일반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할 때 후원을 하는 갑의 입장에서 보다 유리한 조항으로 계약서 체계와 내용의 틀을 잡아놓은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치열한 법정공방… 결정적 한방 짜낼 특검의 전략은

특검 측의 주장과 삼성 측 변호인 측의 반론 사이에는 미묘한 냉기가 흘렀다. 특검 측의 정황상 증거를 펼치는 주장에 삼성 측 변호인들은 ‘특검 착각했나보다’, ‘왜 이 자료를 준비 못한 것인가’라는 말을 덧붙이며 사실상 상대를 자극했다.

특히 변호인 측에서 특검이 ‘업체등록’과 ‘사업체등록’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내용으로 반론을 이어가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삼성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직한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이는 업체등록과 사업자등록도 제대로 돼있지 않은 상태였던 영재센터에 거액의 후원금을 보냈다라는 특검 측 주장에 대한 삼성 측 변호인의 반론이었다.

삼성 측 변호인은 “업체등록은 삼성전자의 회계시스템 상 업체를 등록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회계시스템 상 등록이 돼야 광고비 등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요청을 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다른 이메일 자료에서 삼성 측이 자료를 요청한 지 1시간 내에 영재센터 측이 자신들의 사업자등록증을 보내왔기 때문에, 당시 이미 영재센터 측이 사업자등록증 발급해 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 측 변호인들은 2016년 2월 1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3차 독대 때,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영재센터 사업계획서를 전달받아 직접적 후원에 이르게 된 것이라는 특검 측 주장을 보다 논리적 증거를 들어 반박했다.

동시에 삼성 측 변호인들은 특검이 제시한 최순실씨의 운전기사 방씨와 이영선 행정관의 통화내역을 다시 확인해볼 것을 요구했다.

삼성 측은 “방씨와 특검에서 이영선 행정관이라고 주장하는 이희성과의 마지막 통화내역이 11시 7분, 신사동 인근이었다”라며 “그런데 이재용 피고인은 이미 11시 8분경에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가 끝나고 청와대를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만약 11시 7분 방씨를 통해 이영선 행정관이 신사동에서 영재센터 사업계획서를 전달받았다고 할지라도, 종로구에 위치한 청와대에 이를 1분 안으로 전달해 이 부회장이 받아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삼성 측 변호인은 “(독대를 끝내고 나온 시간은) 나중에 그 부분을 제대로 확인해 드리겠다”라며 확증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특검과 삼성 측의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지는 한편, 지난달 27일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제7차 공판에서는 양측으로부터 보다 공격적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특검 측이 구체적 근거나 증거를 가지지 못한 채 ‘억측’과 ‘선입견’으로 혐의를 주장한다고 공격했고, 이에 특검 측은 “특검의 입장이 지라시 인가”라고 받아 치며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억측과 선입견까지는 아니지만, 심증과 정황상 증거가 주를 이루는 특검 측의 주장이 삼성 측의 혐의를 입증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바라보고 있다.

법률시민단체 관계자는 “주변 대형 로펌 관계자들 대부분이 특검의 주장이 삼성의 반론을 누르기에 확실한 물증이 없어 유죄 입증이 힘들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보고 있다”며 “어차피 재판이란 증거가 우선하고, 심증과 정황상 증거보다 물증이 증거로서의 효력이 더 높은데 삼성의 반박은 철저한 물증을 기반한 일부 정황상 증거가 더해지고 있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검에서는 기존 증거에 보다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는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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