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 입증할 증언ㆍ증거 부족한 이재용에 비해… 불구속 임원들, ‘불리한 상황’

박원오 증언ㆍ특검 증거 제시에, 박상진 사장 - 황성수 전무에 진땀

용역계약 일자 전날 등기한 최순실 회사에 213억 지원… 특검, 혐의입증에 한 발짝

특검, 명백한 증언ㆍ증거 없는 이재용 혐의입증에 총력… 성공은 미지수

한민철 기자

박영수(65ㆍ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팀과 이재용(49ㆍ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의 핵심 증인들이 등장하며 특검과 삼성 간 시소게임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검 측에 명확한 증거 없이 추정과 정황상 증거만으로 혐의를 입증하려 한다는 비판과 함께 재판의 분위기가 완벽히 삼성 측에 기우는 줄로만 알았지만, 핵심 증인들의 새로운 증언과 그동안 특검 측이 확보해놓은 다양한 증거들이 제시되면서 재판 양상에 변화가 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등 4명에 대한 유죄 입증이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시각도 있다. 물론 특검 측은 여전히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찾지 못하며, ‘결국 이재용만 살아남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리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은 크게 2가지 사건에서 비롯된 뇌물공여 의혹을 두고 특검과 삼성 간 치열한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가 설립해 그의 조카 장시호(38)씨가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이 거액의 후원금을 전달했다는 사실이다.

또 삼성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으며, 최씨의 딸 정유라(21)씨의 독일 승마전지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최씨가 실제 소유한 법인으로 알려진 독일 승마 컨설팅사 코어스포츠와 수백억원대의 용역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이다.

특검 측은 이 두 가지의 후원금 전달 및 용역계약 체결 모두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등을 통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최씨와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최씨와 청와대 측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 등에 뇌물을 요구하고 수수한 공범으로서, 삼성 측의 최씨 측에 대한 영재센터와 승마 지원을 대가성 또는 뇌물적 성격이 짙은 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물론 지난 9일까지 해당 재판이 26회나 진행되면서, 특검 측의 주장은 추정 또는 정황상 근거가 다수를 이뤘고 삼성 측 변호인단의 반대신문에 매번 가로막혔다.

이에 재판정 안팎에서는 특검 측이 ‘증거가 차고 넘친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던 것과는 다르게, ‘무리한 기소가 아니었는가’라는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초부터 영재센터 및 승마 지원과 관련된 핵심증인들의 증언이 이어지며,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사실이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최씨에 뇌물을 수수하고 청와대에 청탁해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주도적으로 관여한 명백한 증거는 현재까지 나오고 있지 않고 있고, 향후 이 의혹이 명쾌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또 이 부회장을 제외하고 불구속 기소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박상진(65) 전 삼성전자 사장(전 승마협회 회장)과 황성수(55) 전 삼성전자 전무(전 승마협회 부회장), 장충기(63)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최지성(66)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의 경우 특검이 확보한 증거와 관련 증인들의 증언으로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씨 모녀에 대한 삼성의 승마지원 의혹의 중심에 서있는 박상진 전 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는 지난달 31일 같은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했던 박원오(65)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의 증언과 특검 측이 제시한 증거 및 신문 내용에서 진땀을 빼야했다. 박원오 전 전무는 최씨의 승마계 최측근 인사이자 삼성의 독일 승마지원과 관련된 의혹을 풀어줄 수 있는 핵심 인물이다.

이날 재판에서 지난 2015년 8월 26일 코어스포츠와 삼성전자 사이에 맺어진 승마 컨설팅 용역 계약에 대해 밝혀진 구체적 사실들은 박상진 전 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특검 측은 양사의 계약이 맺어지기 며칠 전인 8월 21일 박원오 전 전무가 황성수 전 전무에게 이메일을 통해 첨부해 보낸 자료를 제시했다.

해당 이메일에서 박원오 전 전무는 ‘코어 측에서 계약서 수정요청이 들어와 첨부로 보내니 검토해 신속히 연락 바란다’라는 내용과 함께 코어스포츠와 삼성전자 간 승마 컨설팅 용역계약을 위한 계약서 초안의 수정된 문서를 첨부했다.

박 전 전무는 최씨의 지시를 받아 황성수 전 전무와 해당 계약서의 세부 내용에 대해 협의했고, 이 수정된 계약서도 곧바로 최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씨는 운영비용 용역비를 기존의 10%에서 마필 구입 대행 수수료 5%를 추가하라고 지시, 수정된 계약서에서는 15%로 올려 제시했다.

특검 측은 “계약 조건 내용에 대해 최서원(최순실)이 하나하나 검토를 하고, 최서원의 뜻대로 된 것인가”라고 묻자, 박원오 전 전무도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 수정된 계약서에는 특이한 부분이 있었다. 계약 관계자인 두 회사의 이름을 넣어야 할 공간에 알파벳 K와 빈칸이 제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K는 계약자인 삼성 측을 뜻하는 단어였고, 옆에는 피계약자인 코어스포츠의 이름이 나와 있어야 했지만 텅 빈 상태였다.

박 전 전무는 “삼성에 회사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무려 213억원에 달하는 대형 계약을 5일을 앞두고 삼성 측은 아직도 자신들이 계약을 맺을 회사의 법인명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특검에 의해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코어스포츠는 최씨가 8월 초 독일 페이퍼컴퍼니로 추정되는 ‘마인제’라는 회사를 인수해 코어로 법인명을 변경한 뒤 만든 회사였다. 이는 8월 13일 박원오 전 전무와 최씨의 독일 조력자 데이비드 윤(한국명 윤영식)씨가 주고받은 메일에서 새로 설립한 법인명에 대해 ‘코어스포츠 인터내셔널’이 처음으로 언급됐기에 이 무렵 회사명이 정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에 특검 측 김영철(44ㆍ사법연수원 33기) 특검보는 “삼성에서는 고액의 후원을 하면서, 삼성 측의 의사를 반영시키지 않고 최서원이 원하는 대로 해준 것인가”라고 물었고, 박원오 전 전무는 “거의 100%”라고 말했다. 또 김 특검보는 “최서원의 힘에 의해 움직인다는 생각을 받았나”라고 질문하자, 박 전 전무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라고 증언했다.

부랴부랴 등기 마친 회사와 계약한 삼성… 박상진-황성수에게 ‘매우 불리한 정황’

특검 측은 최씨 개인 명의로 삼성전자로부터 지원금을 받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법인이 필요했고, 신규로 회사를 설립하다 보면 시간상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마인제를 인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실 코어스포츠가 페이퍼컴퍼니를 인수해 만들어진 법인이라는 점과 삼성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은 이번 재판에서 다뤄지는 의혹들 중 자잘한 일부에 불과했다.

두 회사 간 용역계약이 삼성 측의 최씨에 대한 뇌물성 행위였다는 의혹의 정점에 서있는 정황은 바로 코어스포츠와 삼성전자가 용역계약을 체결한 당일의 사건에서 볼 수 있었다.

두 회사는 지난 2015년 8월 26일 독일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코어스포츠 측에서는 최씨가 내세운 명의상 공동대표였던 박 모 변호사와 독일 헤센즈 승마협회장 독일인 K씨 그리고 박원오 전 전무와 노승일 전 코어스포츠 부장이 계약 자리에 참석했다. 또 삼성전자 측에서는 박상진 전 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 그리고 삼성 측 법무팀 관계자가 나왔다. 당시 최씨는 계약 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고영태씨와 1층 로비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순조롭게 계약이 체결될 줄로만 알았던 그때, 계약 관련 서류를 검토하던 삼성 측 법무팀 관계자를 잠시 의아하게 만든 일이 발생했다.

박원오 전 전무는 “삼성 측 변호사가 ‘(코어스포츠의) 등기가 8월 25일인데요’라고 말했다”라고 증언했다.

코어스포츠는 삼성전자와 계약을 체결하기 바로 전날에서야 정식으로 독일 내 법인등기를 마친 것으로 밝혀졌다.

특검 측은 재판에서 코어스포츠의 독일 등기부를 증거로 제시했다. 실제로 재판정 스크린에 제시된 코어스포츠의 상업 등기부에는 등기일자가 2015년 8월 25로 명시돼 있었다.

사실 두 회사는 8월 25일에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지만, 코어스포츠의 등기가 늦어지면서 최씨의 요청으로 계약일자를 하루 늦춘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라는 대기업 임원이 가질 수 있는 상식선에서 거액의 용역계약을 체결하기 바로 전날 등기가 완료된 회사가 제대로 승마 용역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인지, 과연 거액의 용역대금을 지급해도 되는 것인지 그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박 전 전무는 박상진 사장이 코어스포츠의 등기 날짜를 지적한 삼성 법무팀 관계자에게 ‘신경쓰지 말라’는 듯한 표현으로 넘어가자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날 코어스포츠와 삼성전자의 용역계약이 체결되며, 삼성 측은 계약기간 2015년 8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 41개월 동안 총 213억원의 용역대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실제로 특검이 입수한 삼성전자의 코어스포츠 지출 내역서를 보면, 삼성전자는 코어 측에 2015년 9월 14일까지 81만유로, 같은 해 12월 71만 6000유로, 2016년 3월 24일 72만 3000유로, 2016년 7월 16일 58만유로를 용역대금으로 송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회사의 계약 조건에는 코어스포츠는 앞서 지급받은 분기별 용역대금의 사용한 증빙내역을 삼성 측에 제출한 뒤 다음 분기 대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 측은 이 과정 역시 거치지 않은 채 코어스포츠 측 박 전 전무가 삼성 측 황성수 전 전무에게 2016년 오퍼레이팅 코스트(Operating Cost·영업비)를 보냈고, 삼성은 2016년 2분기까지 이 용역대금을 송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씨는 삼성 측이 2015년 9월 14일까지 보낸 81만유로 중 일부를 그의 독일 부동산 중 하나인 ‘비덱 타우누스 호텔’을 매입하는 데 사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혐의 관련 물증ㆍ명백한 증거 없는 이재용, 결국 혼자 살아남나

박원오 전 전무가 증인으로 참석한 이날 재판에서 삼성 측 변호인들은 여러 객관적 증거를 통해 특검 측의 의견에 대한 철저한 반대신문을 이어나갔다.

계약 직전까지 코어스포츠의 법인명을 알지 못하고 이 회사의 등기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해서, 삼성 측이 이들과 맺은 용역계약이 대가성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그동안 이 재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삼성 측은 최씨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거나 승마지원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증언이 여러 번 나온 만큼 이날 재판으로 인해 삼성 측이 전적으로 불리해졌다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일부 핵심증인들의 증언 내용을 무시할 수 없고, 특검 측도 박상진 전 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의 혐의에 대한 여러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두 사람이 혐의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의 특검 진술과 삼성 측 변호인들의 신문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3차 독대를 마친 뒤 영재센터 사업계획서가 담긴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받았다. 장 전 사장은 이를 최지성 전 실장과 협의했고, 영재센터에 후원금을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측은 미래전략실이 이 후원 사실을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장충기 사장은 해당 영제센터 사업계획서를 특검 측에 직접 제출하며 의심을 더욱 키웠다.

특히 다른 재판 중에서 장충기 사장이 정호성(48) 전 청와대 비서관 그리고 김종(56)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 삼성의 대한승마협회 회장사와 관련해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고,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삼성이 미래전략실을 통해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의 자금을 출연했다.

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의 청와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와 미래전략실의 관계가 자주 언급되는 한편, 지난 8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 등으로 문형표(61)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61)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법원이 각각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때문에 장충기 전 사장과 최지성 전 실장 역시 특검 측의 혐의 입증에 있어 불리한 상황에 있다는 의견은 만만치 않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는 다르다. 현재 특검 측은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 등에 있어 도움을 받기 위해 최순실씨와 청와대 측의 원하는 바에 따라 자금 출연 및 지원 지시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 여부에 대해 그 어떠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부회장 측은 영재센터와 독일 승마지원 등 여러 자금 지출이 자신도 보고 받지 못한 채, 실무진들의 선에서 결정됐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3차 독대에서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진 영재센터 사업계획서도 이재용 부회장은 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삼성 측에서도 이 부회장이 이를 개봉하지 않은 채 대수롭지 않게 다른 이에게 넘겨줬다는 것을 봤을 때 영재센터 지원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특검 측과 삼성 간 세기의 재판이 결국 이재용 부회장만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채 나머지 임원들에게만 유죄를 물은 채 끝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검 측은 검찰과 자신들이 확보 중인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수첩에 제시된 증거와 이번 달 말로 예정된 그에 대한 증인 신문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 입증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이고 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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