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 놓은 부동산인가, 정유라 거짓말인가, 장시호 법정위증인가

장시호 법정증언에 등장한 ‘정유라의 독일 3층 호텔’, 비덱 타우누스 호텔인가

정유라, 비덱 타우누스 호텔 실소유자라면… 증여세·공동불법행위 문제 소지

정유라 독일 3층 호텔, 사실 아니라면… 장시호 법정 위증 가능성도

한민철 기자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의 딸 정유라(21)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에 검찰 측은 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을 고심하는 가운데, 정씨가 사들인 것으로 알려진 ‘독일 3층 호텔’이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정씨의 독일 3층 호텔은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기소된 뒤 재판에 넘겨졌던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38)씨의 법정 증언에서 나온 ‘의문의 독일 부동산’이다. 장씨의 증언대로 정씨가 이 호텔을 소유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정씨의 독일 은닉 재산 등 혐의 보강을 통해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길 원하는 검찰 측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물론 반대로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장씨의 법정 위증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가 정유라씨에 청구한 구속영장의 혐의내용은 크게 3가지다.

우선 최순실씨 모녀의 ‘학사비리’ 원흉이었던 이화여대와 청담고 등에 대한 업무방해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 그리고 삼성으로부터 독일 승마훈련비 명목으로 약 78억원의 대가성 지원금을 받고 이를 은폐하려 했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다.

또 검찰은 정씨가 최씨와 공모해 자신의 명의로 독일 현지 주택을 구매하고, 생활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외국환 거래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 강부영(43ㆍ사법연수원 32기) 영장전담판사는 다음날 새벽 영장 내 범죄사실에 따른 정씨의 범죄 가담 경위와 정도, 기본적 증거자료들이 수집된 점 등에 비춰 구속 사유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정씨가 귀국 전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혐의 전반에 대해 “모른다. 엄마(최순실)가 다 했다”며 모르쇠로 일관했고, 검찰이 정씨의 학사비리 의혹 외 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영장이 기각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검찰 측은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것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번 정씨에 대한 영장 기각이 현재 엎치락뒤치락하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연루자들의 재판에서 검찰 및 특검 측에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정씨가 오랜 기간 독일에서 체류하며 증거인멸 기회가 충분했던 만큼, 대부분 독일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난 그의 뇌물수수 및 외국환 거래법 위반 혐의를 검찰이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지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국정농단 사태 연루자들의 재판 중에서는 정씨의 ‘의문의 독일 부동산’에 대한 증언이 나온 적이 있다. 이는 그동안 언론보도 등을 통해 밝혀진 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단순 의혹이 아닌 사실로 밝혀질 경우 검찰 측의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에 상당한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해당 증언은 지난 4월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형사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서원(최순실) 뇌물수수 혐의 제4회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했던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로부터 비롯됐다.

이날 재판에서 특검 측은 지난해 4월경 장씨와 그의 모친이자 최순실씨의 언니인 최순득씨 그리고 최씨 모녀가 서울에 위치한 한 중식당에서의 점심식사 중 나온 이야기에 대한 장씨의 진술조서를 제시했다.

장시호씨가 특검 측에 밝힌 당시 4명 사이에 오고간 이야기에 따르면, 식사 도중 최순득씨가 정씨에게 “유연(정유라씨의 개명전 이름)아, 너 독일에서 심심하지 않니”라고 물었다.

이에 정씨는 “이모, 나 독일에서 호텔 샀잖아. 엄마가 사줬어”라며 “올림픽 나가려고 말도 샀어, 삼성 승마단 소속이야 회사 안에서 결제만 하면 돼”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정씨는 2015년 5월 8일 제주도에서 출산을 한 직후, 6월 30일 최씨와 그의 승마계 측근인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의 권유로 독일에 향했다. 정씨는 승마협회 회장사인 삼성전자의 지원으로 독일에서 승마훈련을 하며 외국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최순득씨가 정씨에게 “너 독일에 호텔 샀니”라고 되묻자, 최순실씨가 “호텔은 무슨 호텔이에요. 그냥 3층짜리 빌린 거예요”라며 중간에 말을 잘랐다.

이어 최순득씨가 식사 도중 자리를 비우자, 최씨는 정씨에게 “너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하니, 하여튼 입들이 문제야”라며 화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장씨는 최순실씨가 최순득씨에게 자신의 재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문율처럼 굉장히 싫어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화는 재판 중 특검 측의 장시호씨에 대한 증인신문 과정에서 공개된 한치의 왜곡이 없는 ‘정확한 워딩(Wording)’이었다. 여기서 드러난 중요한 사실은 최씨가 마련해준 독일의 호텔이 정씨의 소유이자 3층짜리라는 것 그리고 가족인 최순득씨에게 숨길 만큼 은밀하게 유지해야 할 해외 재산이었다는 점이었다.

2016년 5월 초 최씨 모녀가 정씨의 이혼과 정씨 아들의 돌잔치로 인해 잠시 한국에 귀국했던 것으로 알려지는 만큼, 같은 해 4월 서울의 중식당에서 4명이 점심식사를 했다는 장씨의 증언이 100% 신빙성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최씨 모녀가 2016년 4월경 미리 한국에 들어와 있을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것이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현재 최씨 모녀에 대한 혐의 입증에 큰 단서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장씨의 말대로 이 식사 자리에서 정유라씨가 자신의 명의의 독일 3층짜리 호텔을 샀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정유라 명의 호텔, 의심 가는 ‘비덱 타우누스 호텔’

사실 장시호씨의 증언에서 나온 정유라씨가 최순실씨를 통해 소유하게 됐다는 독일 3층 호텔은 현재까지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그동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 검찰수사, 언론보도 등을 통해 파악된 바에 따르면 최씨 모녀가 2015년에서 지난해 사이 독일에서 사들인 부동산은 총 4채다.

전부 독일 프랑크푸르트 헤센주(州)에 위치한 것들로, 이중 주택은 2016년 5월 경 슈미텐 브롬바흐의 승마학교 인근의 주택과 쇤네 아우스지히트가(街) 5번지 단독주택 그리고 그라벤 바이센베르트 주택 등 3채로 최씨가 각각 4억원, 4억 3000만원, 4억 7000만원을 들여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유라씨 명의로 매입한 것은 그라벤 바이센베르트 주택 하나로 최씨 모녀가 실제로 거주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씨는 이들 주택을 구입하기 전인 2015년 9월경 쇤네 아우스지히트 주택과 바이센베르크 주택 사이에 위치한 ‘비덱 타우누스 호텔’을 사들였다.

기존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비덱 타우누스 호텔은 최씨가 2015년 11월 매입한 것으로 나타나 있었지만, 전 비덱 타우누스 호텔 직원과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의 최근 법정 증언 그리고 특검 측의 조사 결과 등에 따르면 이 호텔은 최씨가 삼성 측으로부터 영업비 명목으로 받은 10억여원 중 약 8억원을 들여 같은 해 9월경 사들인 부동산인 것으로 밝혀졌다.

비덱 타우누스 호텔은 지상 약 3층 규모로 총 15개 객실 중 실제로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방은 11개, 나머지 4개는 비덱 직원들의 숙소로 사용돼 최씨 모녀가 그라벤 바이센베르트 주택을 매입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호텔의 1층에는 최씨가 강남구 신사동 인근에서 운영하던 커피숍 이름과 같은 ‘테스타로사’ 카페가 있었다. 지난해 11월 국내 언론에 공개된 최씨 모녀와 지인들이 비덱 타우누스 호텔에서 파티를 열었던 시기의 현장 사진이 이곳 1층 커피숍에서 찍은 것이었다.

사실 이 호텔은 국정농단 사태가 수면 위에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부터 최씨가 불법적으로 매입한 해외 재산이라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지난해 10월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은 “비덱 법인 설립 후 정확히 100일 후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이 설립됐다”라며 “비덱 사무실과 비덱 운영 호텔의 사무실이 똑같은데, 어디에서 돈이 나와서 이 호텔을 매입했는지 자금 출처를 확인해야 하고 간단한 말로 외국환 관리법을 위반했는지, 자산을 해외로 도피시켰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비덱 타우누스 호텔 등은 최씨가 삼성 등 국내 대기업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기금으로 사들인 것이라는 의혹이 집중됐고, 실제로 최씨는 이 독일 부동산 등을 둘러싼 횡령과 외환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때문에 최씨가 사들인 최씨 소유의 독일 3층 호텔은 비덱 타우누스 호텔로 그 실체가 있지만, 정씨가 최씨를 통해 매입한 독일 3층 호텔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숨겨놓은 부동산? 정유라 거짓말? 장시호 위증?

장씨의 특검 진술과 법정 증언대로 정씨가 최순득씨에게 독일에서 호텔을 샀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 호텔은 비덱 타우누스 호텔일 가능성이 높았다.

최씨가 정씨의 말을 끊으며 ‘3층짜리’라고 밝힌 것도 비덱 타우누스 호텔의 총 층수와 같았으며, 이 시기 최씨 모녀가 독일에서 사들인 호텔 중 독일과 우리 수사기관이 파악해 공개한 것은 비덱 타우누스 호텔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지난해 이용주 의원의 주장과 다수 언론들이 제기한 의혹과는 다르게, 비덱 타우누스 호텔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기금으로 설립된 부동산이 아니었다.

이는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21차 공판에서 명확히 밝혀졌다.

이날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의 증언과 특검 측의 신문 내용 및 제출된 증거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5년 8월 26일 최씨가 실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승마 컨설팅 전문 업체 코어스포츠와 계약을 체결한 이후 총 4차례에 걸쳐 282만 5000유로를 송금했다.

이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 최순실씨는 박원오 전 전무에 지시해 삼성 측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전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에게 같은 해 9월 10일 인보이스(Invoice·청구서)를 이메일로 보냈고, 삼성전자는 KEB하나은행 프랑크푸르트 지점에서 개설한 코어스포츠 계좌에 9월 14일 첫 용역대금인 81만 5000유로를 송금했다. 당시 한화 약 10억 88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특검 측 김영철(44·사법연수원 33기) 특검보가 “최서원(최순실)은 이 돈으로 비덱 타우누스 호텔을 구입했는가”라고 묻자, 박 전 전무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박원오 전 전무는 당시 상황을 특검 측에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그는 2015년 9월 19일부터 29일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열렸던 국제 승마경기 심판을 본 뒤 독일로 돌아왔다. 그런데 코어스포츠가 업무를 보고 있던 예거호프 승마장이 텅 비어있었고, 박 전 전무는 직원에게 연락해 새로운 거처를 전달받았는데 이곳이 비덱 타우누스 호텔이었다. 당시 그는 직원들로부터 최씨가 호텔을 구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박 전 전무는 최씨에게 “무슨 돈으로 호텔을 샀는가”라고 물었고, 최씨는 “회삿돈으로 샀다”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는 최순실씨의 독일 조력자로 알려진 데이비드 윤(한국명 윤영식)에게 호텔 구입 경위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고, 삼성에서 지원을 받은 10억 8800만원 중 8억여원으로 호텔을 구입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삼성전자에서 코어스포츠 법인에 승마훈련 지원비 명목으로 보낸 자금을 최씨 개인이 호텔 구입비로 사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횡령죄에 해당했다.

때문에 장씨의 법정 증언대로 정씨의 ‘나 독일에서 호텔 샀다. 엄마가 사줬어’라는 발언과 이 호텔이 비덱 타우누스 호텔이라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씨 역시 법적 책임을 피해갈 수 없게 된다.

정씨가 해당 호텔을 코어스포츠 법인 자금으로 산 것을 알고 있음에도 최씨로부터 넘겨 받았다면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을 지울 수 있다.

또 정씨가 “엄마가 호텔을 사줬을 뿐이고, 삼성의 돈을 횡령한 돈으로 매입한 부동산인지 몰랐다”고 변명할지라도, 언론에 공개된 비덱 타우누스 호텔 매매계약서에는 매입자란에 ‘코어스포츠 인터내셔널’이라는 법인명이 적시돼 있었고 실제로 이를 매입한 이가 최씨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정씨에 소유권을 넘기면서 생긴 증여세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물론 다른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시 정씨에 발언에 등장한 호텔이 비덱 타우누스 호텔이 아닌 다른 숨겨진 최씨 모녀의 독일 부동산이거나, 호텔을 샀다는 정씨의 발언이 장난삼아 해 본 거짓말일 수도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최씨 모녀의 해외 재산이 있다는 의혹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씨의 법정 위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측이 정씨에 대한 혐의를 보강 수사해 구속영장 재청구를 벼르고 있는 만큼, 이는 정씨 입장에서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정유라씨는 해당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이 아니고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장시호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거나 변호인들을 통해 법정 위증죄 등으로 대응해 나가면 된다.

한편, 장시호씨는 지난 7일 자정에 구속 기한 6개월이 만료돼 석방됐다. 때문에 향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모 최순실씨와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고, 특검 측과의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등 해소해야 할 의혹은 여전히 남은 상태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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