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확증 내놔라” 주장… 법조계 “확증까지 필요 없는 상황”

‘삼성 원하지 않았다’ 최순실 주장, 다수 증언으로 거짓 가능성 높아져

최순실, 특검 측에 “확증 없이는 일방적 의혹제기일 뿐” 반론… 법조계 일부 시각은 달라

법조계 “이미 드러난 증거ㆍ증언만으로 ‘정황 증거’ 범위 뛰어넘었을 가능성 높아” 지적

한민철 기자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가 삼성 측의 승마지원 혐의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그의 주장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씨는 특검 측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그의 딸 정유라(21)씨에 대한 승마지원과 말세탁 등 삼성 승마지원 의혹을 두고 ‘의혹만 제기하지 말고 확증을 내놓으라’며 특검 측이 정황 증거에 일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설령 특검 측이 최씨의 승마지원과 관련된 혐의에 있어 확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채 정황 증거가 다수를 이루고 있을지라도, 이미 드러난 증거ㆍ증언만으로도 관련 혐의에 대해 최씨의 유죄를 이끌어 내기 충분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65ㆍ구속기소) 전 대통령과의 뇌물수수 등 혐의 17차 공판에서 피고인으로 출석한 최순실씨는 이날 재판이 마무리되기 전 피고인 발언권을 얻고, 딸 정유라씨에 대한 삼성의 승마지원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최씨는 “특검이 자꾸 유연이(정유라의 개명 전 이름)와 삼성을 연결하려고 하지만, 저희는 삼성을 원래 원하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후 최씨는 지난달 27일 열린 25차 공판에서도 ‘삼성을 원하지 않았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같은 날 오후 정씨가 네 번째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소환된 상황에서 삼성 측의 승마지원에 대한 특검 측의 주장을 거듭 반박했다.

최씨는 자신의 승마계 측근인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로부터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게 된 삼성 측이 2020년 도쿄올림픽 승마 출전권을 얻기 위해 정씨를 지원했을 뿐, 자신은 개인적으로 삼성의 지원이 싫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저희가 말 이름을 가져간다고 해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고, 협회에서 공인 인증을 해줘야 했다”라며 “제가 마치 (정)유라를 위해 뇌물을 받은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그 추측은 맞지 않다. 말의 소유권과 보험도 모르며, 삼성에도 소유권을 안 갖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재판 초기 단계였던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자신의 혐의에 대해 간단히 부정만 하던 최씨가 어느 순간부터 특검 측의 주장이 일방적이고 근거가 없다며, ‘의혹만 제기하지 말고 증거를 내놔라’는 식의 당당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신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특검 측의 주장과 논리가 직접 증거가 아닌 정황 증거에 머무르고 있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삼성을 원하지 않았다’라는 그의 주장도 삼성으로부터 승마지원을 받을 당시 철저히 자신의 존재를 숨겨왔던 만큼, 특검 측이 승마지원과 관련된 명백한 증거를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나온 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특검 측이 현재까지 최씨와 삼성 간 승마지원에 대한 의혹 전체에 대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의 확증을 제시하지는 못한 상태지만, 특검 측의 조사와 증인들의 법정 진술 대부분이 이뤄진 상태에서 그의 이런 주장이 큰 효과가 없다는 목소리다.

최씨가 삼성의 승마지원을 적극적으로 원했고, 심지어 이를 주도했다는 정황과 증언은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쌓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폭로자 중 한 명인 노승일 전 코어스포츠 부장(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최씨가 독일 페이퍼컴퍼니를 인수, 코어스포츠라는 법인을 설립해 삼성과의 독일 승마용역 계약을 주도했고, 이는 오로지 정씨를 단독으로 지원하기 위함이었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또 지난 4월 18일 최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김종(56ㆍ구속기소)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평소 최씨가 당시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고 있던 한화가 협회를 잘 이끌어가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증언했다.

김종 전 차관은 이날 재판에서 지난 2014년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지자 최씨로부터 연락이 뜸했지만, 2015년 3월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으로 선출됨과 동시에 승마협회 회장사가 삼성으로 바뀌었고 정윤회 문건 사건이 잠잠해지자 최씨가 다시 자신에게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특히 김 전 차관은 당시 최씨가 삼성에서 승마협회 회장사가 됐으니 지원을 잘 할 것이라고 말했고, 정유라씨가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좋은 말로 훈련을 해야 하는데 삼성에서 지원을 많이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다고 증언했다. ‘삼성을 원하지 않았다’라는 최씨의 주장과 전혀 상반되는 사실이었다.

최씨가 삼성의 지원을 원했고 이를 주도하려 했다는 의혹은 박원오 전 전무의 법정 증언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박 전 전무는 지난 5월 31일 이재용(50ㆍ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ㆍ현직 임원 등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과 코어스포츠 간 독일 승마지원의 전말을 폭로했다.

박 전 전무는 최씨가 삼성 측이 지원할 용역비의 세부사항에 대한 논의를 주도했고, 그 내용을 박 전 전무를 통해 삼성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특검 측은 최씨의 지시로 박 전 전무가 삼성 측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승마지원 관련 계약서와 이메일 그리고 이를 최씨에게도 전달한 명백한 증거들을 제시하며 그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줬다.

특히 최씨가 현재 주장하고 있는 “말의 소유권과 보험도 모르며, 삼성에도 소유권을 안 갖겠다고 했다”라는 말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이날 재판에서 이미 밝혀진 상태였다.

특검 측 증인신문 내용과 박 전 전무의 증언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0월 19일 삼성 측은 최씨의 코어스포츠와 마필 살시도의 구입 계약을 체결한 뒤 마필 대금을 송금했다.

다음 달인 11월경, 삼성 측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전 대한승마협회 부회장)가 박원오 전 전무에게 마필은 삼성의 소유이기 때문에 부동산 등기처럼 명의를 확실히 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했고, 이에 박 전 전무는 세계승마연맹에서 만들어준 마필 여권에 마주 이름을 삼성으로 기재하면 된다고 조언하며 이를 위해 코어스포츠와 마필 위탁관리계약서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 측은 이 서류를 이미 확보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한 상태였다.

그런데 박 전 전무는 살시도의 여권에 삼성이 마주로 기재된 사실을 알고 최씨가 자신에게 크게 화를 냈고, 이후 황성수 전 전무가 작성한 위탁관리계약서를 최씨에게 전달하자 그가 더욱 화를 내면서 “이재용이 VIP(박근혜 전 대통령) 만났을 때 말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느냐”라고 소리를 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격노한 최씨는 박상진 전 사장을 독일로 오게 하라며 박 전 전무에게 지시했다.

특검 측은 이에 대해 박 전 전무와 삼성 측이 내놓은 대책을 명시한 문서 그리고 양측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등 박 전 전무의 증언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해줄 객관적 자료를 공개했다. 무엇보다 정유라씨가 타며 승마연습을 한 말이었던 살시도의 실제 소유권과 최씨가 생각했던 소유권 그리고 마필의 보험에 대해 그가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외에도 다른 재판에서 박재홍 전 한국마사회 감독 등 다수의 승마 관계자 등이 최씨가 삼성의 승마지원을 주도했고 무엇보다 정유라씨의 단독지원을 바랐다는 것을 증언해줬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대로 최씨 측은 특검 측 주장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며 보다 명백한 증거를 내놓으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확증을 요구하며 ‘삼성을 원하지 않았다’는 최씨의 주장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드러난 증거와 증언만으로도 재판부가 최씨 측이 특검에 주장하는 ‘정황 증거’의 범위를 뛰어넘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본지의 취재에 응해준 법률시민단체 관계자는 “아마도 최순실이 물증 등 직접 증거만을 확증으로 보고 이것만이 유죄 판결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라며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정황 증거가 범죄사실에 대해 엄격한 증명력을 갖지 못하더라도 증언의 일관성과 사건의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비춰봤을 때 논리와 상식선에서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충분히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무죄를 주장하는 최씨에게 그 무죄를 입증하라는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특검 측과 다수의 증인들이 최씨가 삼성의 승마지원에 대해 부정하는 부분에 대해 객관적 증거와 일관된 증언을 들어 입증해 나가고 있는 반면 최씨는 ‘확증을 내놔라’라는 식의 태도만을 보이고 있는 만큼 그의 발언에 대한 설득력이 결여된다는 목소리다.

특히 최씨의 삼성 측 승마지원을 부정하는 발언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정유라씨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정씨마저도 검찰 조사에서 삼성의 독일 승마지원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고 삼성과 코어스포츠 간 말 세탁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히 진술한 것으로 밝혀진 만큼 재판부가 최씨 측 의견에 대해 신빙성을 가질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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