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생사람 잡았나’… 인사개입ㆍ직권남용 혐의 입증 가까워져

문체부 살생부 올라온 국과장 법정증언 “좌천성 인사조치 맞다”

장관의 인사조치 사유 요구에… 禹 “위에 다 보고 됐다”

우병우, ‘김종 라인’ 협조 위해 무리한 인사조치 단행했나

살생부 제외된 ‘김종 라인’ 인사… 문체부 감사에서 감사원 징계 요구받아

한민철 기자

우병우(50ㆍ불구속기소)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문체부 살생부’에 오른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들이 우 전 수석과 법정 대면했다.

문체부 살생부는 지난해 박영수(65ㆍ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팀의 국정농단 사태 조사 당시 밝혀진 문건으로, 여기에는 우 전 수석의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한 문체부 내 특정 인사의 명단과 이들의 인사조치 사유에 대해 담겨 있었다.

당시 민정수석실의 인사조치는 문체부 내부 및 인사 대상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사실상의 ‘좌천성 인사’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검 및 검찰 등은 이 과정에서 우 전 수석의 직권남용 혐의가 명백하다고 보고 있고, 그 뒤에는 박근혜(65ㆍ구속기소)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시와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우 전 수석 측은 정당한 인사조치였다며 각종 의혹에 대해 반박하고 있지만, 최근 발표된 문체부 감사 결과 등의 영향으로 문체부 살생부 문제만큼은 우 전 수석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에서의 위증 등 혐의에 관한 4차 공판에서는 지난해 좌천성 인사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문체부 국과장 4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민정수석실이 작성했던 소위 ‘문체부 살생부’에 올랐던 6명의 국과장들은 지난해 소속기관인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악원, 국립중앙박물관 등으로 갑작스럽게 전보조치됐다.

이들 대부분은 경력 있는 고참급 국과장이자 서기관들로 한창 승진을 준비하기 위해 본부에 남아 인사고과 점수를 높이는 등 경력관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큰 문제가 없다면 인사 부서에서도 이를 존중해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특히 이들 국과장들이 전보통보를 받았을 때는 정기인사 시기도 아니었다.

때문에 이들에게 당시 소속기관 전보조치는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좌천성 인사를 부추겼다는 것으로밖에 다가오지 않았다.

이날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문체부 국과장들은 공통적으로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문체부에 자신들에 대한 인사조치 사유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고, 명백한 음해성 좌천이었다고 주장했다.

우선 재판의 증인으로 나온 이 모 전 문체부 창조행정담당관은 지난 2015년 4월 미래창조과학부의 창조경제 추진단에 파견을 나가, 박근혜 정부의 관심사항이자 문체부의 핵심 국정사업 중 하나였던 문화창조융합벨트 현장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전 담당관은 지난해 2월, 파견을 1년 연장한다는 공문이 내려와 올해 4월까지 문화창조융합벨트에 남기로 했지만, 지난해 4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으로부터 소속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 전보조치 소식을 듣게 됐다.

이 전 담당관은 당시 김종덕(60ㆍ구속기소) 전 장관이 자신에게 갑작스러운 인사조치 사유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단지 이는 민정수석실에서 내려온 지시로 김 전 장관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회상했다.

검찰이 확보한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김종덕 전 장관에게 보낸 이 전 담당관 등에 대한 인사조치 요구 자료의 내용에 따르면, 이 전 담당관의 인사조치 사유에 대해 ‘4급에서 3급으로 승진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2급으로 승진한 사례’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일반인들에게는 해당 사유가 ‘초특급 승진’으로 비춰지며, 특혜성 시비가 빚어질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었다. 때문에 민정수석실의 인사조치 역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전 담당관은 “4급에서 3급으로 승진을 했을 때 민정수석실 등에서도 인사검증을 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께서 결정을 해주시는데 불과 한 달 만에 2급으로 승진했다고 문제를 삼는다면, 정부가 한 결정을 스스로 뒤집는 일”이라며 “문화창조융합벨트 현장에서 행정적 책임을 지고 있었고, 힘든 여건임에도 제대로 업무수행을 했다고 자부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고위공무원단의 승진은 수시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 정원수가 있어야지만 심사에 들어갈 수 있다.

특히 승진 전에 철저한 역량심사를 거치게 되는데, 부처 내에서 인사위원회를 개최하고 민정수석실의 공직기강 비서관실과 국정원 등에서 승진대상자의 하자가 없는지를 철저히 검증을 한 뒤 인사혁신처를 거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임명장에 서명을 해줘야지만 승진이 가능하다.

때문에 ‘4급에서 3급으로 승진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2급으로 승진한 사례’라는 우병우 전 수석의 아이디어는 민정수석실뿐만 아니라 지난해 12월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장에서 자신이 존경한다고 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결정까지 거스르는 꼴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전 담당관은 “‘4급에서 3급으로 승진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2급으로 승진한 사례’라는 사유로 인사조치가 된 것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당시 민정수석실에서는 이 전 담당관에 대한 해당 사유를 제시하면서, 그 뒤에는 ‘박민권 차관의 인사 전횡’이라는 또 다른 이유를 적시했다.

문체부 살생부, 박민권 전 차관 라인 찍어내기 리스트였나

지난해 특검 조사 등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국정농단 사태가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문체부 내에서는 김종덕 전 장관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 협조했던 김종(56ㆍ구속기소) 전 2차관이 보이지 않은 세력 다툼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김종 전 차관이 ‘문체부를 장악하려 한다’라는 소문까지 돌면서 자연스럽게 편 가르기가 이뤄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 전 차관은 박민권 전 1차관과도 대립했는데, 그는 박 전 차관이 문체부 내 동향 및 동문 인사들을 편애한다는 이야기를 퍼트렸고 이것이 민정수석실의 귀에도 들어갔다.

실제로 지난 3일 같은 심리의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에 소속돼 있던 김 모씨는 지난해 초 상부의 지시로 문체부 내부 박민권 1차관의 라인 형성과 그가 동향 및 동문 출신의 인사들은 편애한다는 의혹이 제기돼 이 전 담당관 등을 포함한 8명에 대해 조사를 펼쳤다.

보강조사까지 실시한 결과 본래 소속 부처 간 파벌 형성이 있었지만, 박민권 전 차관의 라인 형성 등의 실체는 거창했던 의혹에 비해 빈약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정수석실은 박민권 전 차관이 인사 전횡을 저질렀고 그의 라인에 있었다는 사유로 이 전 담당관을 문체부 살생부에 올렸다. 살생부 내에는 같은 이유로 김 모 전 문체부 국립중앙박물관 관리과장의 이름도 나타나 있었다.

김 전 과장은 지난해 6월 13일 소속기관인 국립현대미술단 기획운영 과장으로 전보조치 통보를 받았다. 그는 상관으로부터 해당 인사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요구로 이뤄진 것이라고 들었다.

김 전 과장은 당시 자신이 당시 전보조치를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해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지인에게 연락해 인사조치 사유에 대해 물어봤다.

이에 김 전 과장은 박민권 전 차관이 동향 및 동문 인사를 챙긴다며 민정수석실에서 문제삼았고, 그 역시 박 전 차관에 있던 인물로서 인사 대상이 된 것이라는 말을 전해들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전 과장은 정말 박 전 차관이 동향 및 동문 인사들만 챙겼다는 지적에 대해 “제가 알기로는 그런 것은 없었다”라고 말하며 당시 자신에 대한 인사조치가 좌천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민정수석실은 문체부에 보낸 김 전 과장 등의 인사조치 요구 자료에서 그가 국제관광과에 소속됐을 때 ‘메르스 대응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책이 이뤄지지 않은 사례’라며 사유를 기재했다. 김 전 과장은 이를 뒤늦게 파악했고, 법정에서 해당 사유에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박했다.

김 전 과장은 “2015년 5월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는데, 10월까지 이를 대응하기 위해 관광국 장차관과 국과장들, 일반 직원들이 엄청나게 고생했다”라며 “10월에 메르스가 어느 정도 종식됨과 동시에 외국인 관광객을 전년도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당시에 조기대응으로 홍콩의 사스보다도 적절히 대응했다고 외국에 가서 홍보까지 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종 전 차관의 한양대 후배이자 문체부 내 그의 라인에 있던 인사 중 한 명으로 불렸던 윤 모 과장은 특검에서 “김 전 과장이 메르스 사태 당시 당담 사무관에게 모두 일을 떠넘겼고, 김종 차관이 메르스 대책 발표 후 기자들의 질의를 받을 때 업무파악이 안 돼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전 과장이 김종 전 차관의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김 전 과장도 이런 진술을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한두 가지 질문에 대해 매끄럽게 답변을 못했고, 담당 사무관이 답변을 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와 관련돼 문제를 제기한 언론사는 하나도 없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해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10가지 넘는 질문에 대해 철저히 답했었다”라고 말했다.

특검 측은 김종 전 차관이 김 전 과장을 국제관광과에서 제외시켜 달라며 박민권 전 차관에게 요청했고, 박 전 차관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거듭된 요구에 그를 박물관 정책과로 전보조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특검 측은 김종 전 차관이 김 전 과장이 박물관으로 이동하자, 자신의 라인인 윤 과장을 국제관광기획과 자리에 앉힌 사실을 파악했다.

‘민정수석이 장관보다 세구나’… 우병우 부당개입ㆍ직권남용 혐의 입증 가능한가

문체부 내부에서는 살생부가 김종 전 차관으로부터 발단이 됐다고 보고 있었다. 실제로 송수근 전 문체부 차관은 특검에서 “살생부가 나온 것은 김종 2차관이 미워하는 사람들”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날 재판에 3번째 증인으로 출석한 박 모 전 문체부 체육국장의 증언에 따르면 윤 과장이 살생부 리스트에 살을 붙여 김종 전 차관에 넘겼고, 이후 민정수석실에서 살생부 리스트 인물 그대로 인사조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박 전 국장도 문체부 살생부에 포함돼 지난해 5월 11일 소속기관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사무국장으로 좌천식 인사조치를 당했다. 6년차 고참급 국장에게는 굉장히 이례적인 인사임에 분명했다.

그는 인사 발령 일주일 전 정관주 전 1차관에게 자신을 포함해 민정수석실에서 인사조치를 요구한 이들의 사유가 무엇인지 물었지만 “미안하지만 이야기할 수 없고, 묻지 말아 달라”라는 답변만을 들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 전 국장은 김종덕 전 장관을 통해 민정수석실에 항의를 했지만, 결국 인사조치가 강행되고 나서 ‘민정수석이 장관보다 세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박 전 국장은 김종 전 차관에 대해 “본인(김종 전 차관)이 문체부를 장악하기 위해 본인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본부가 구성되길 바랐을 것”이라며 “그것을 피고인(우병우 전 수석)이 지원한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김종덕 전 장관은 지난달 16일 같은 심리의 첫 공판에 증인 출석해 당시 문체부 인사조치가 우병우 전 수석 측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것인가라는 검사 측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김 전 장관은 민정수석실의 문체부 인사조치 요구에 우병우 전 수석과 연락했고, 우 전 수석은 “위에 다 보고돼 (변경이) 곤란하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특히 김 전 장관은 “(우병우 전) 수석이 위라고 하면 두 분 밖에 없었다”라며 “비서실장과 대통령인데 그중에서 (지시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살생부에 올랐던 4명의 문체부 국과장들의 주장은 김종덕 전 장관의 증언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면서, 당시 석연치 않았던 인사조치가 김종 전 차관뿐만 아니라 국정농단 사태 전반에 걸쳐 있다는 의혹에 대해 설득력을 높여줬다.

실제로 특검 및 검찰 측은 민정수석실에서 문체부 살생부가 작성된 경위에 대해 최순실씨와 김종 전 차관이 박민권 전 차관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 전 차관은 박 전 차관과 대립관계에 있으며, 자신의 세력을 키우려 했다는 소문이 문체부 내에 파다했고,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의 법정 증언에 따르면 당시 최씨와 김 전 차관이 미르재단 설립 등기에 대해 소극적인 박 전 차관의 교체를 바라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김종 전 차관의 계획에 따라 문체부 살생부가 작성됐고, 최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통해 민정수석실이 해당 ‘민원’을 해결해 준 것이라는 의혹이다.

여기서 우 전 수석 역시 직무 범위를 넘어서 부당한 인사 개입이었다는 점에 대해 법적 공방이 이뤄지고 있고, 만약 검찰 측이 해당 의혹에 대해 밝혀낸다면 우 전 수석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등에 대해서도 입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우 전 수석 측은 당시 문체부 인사조치가 분명한 사유에 입각한 정당한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우 전 수석은 검찰조사에서 “인사 압력을 유발한 박민권 전 차관뿐만 아니라 문제가 된 6명의 인사조치에 대해 박민권 전 차관은 이미 사직했지만, 그가 잘못해둔 ‘인선(人線)’을 시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줄 대고 좋은 자리에 갔을 경우 인사에 힘을 써준 사람이 그만뒀다고 해서 실제 좋은 자리에 간 사람들을 원만하게 조치시켜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의 변호인들은 이날 재판에서 국과장들의 인사조치 사유가 정당했다는 입장에 대한 이들 국과장들의 반박에 대해 보다 철저한 대응논리조차 갖추지 못한 채 마무리했다.

한편, 김종 전 차관의 라인에 있던 윤 과장은 최근 감사원의 문체부 감사에서 최씨의 지인이자 최씨를 김종 전 차관에게 소개시켜준 것으로 알려진 하 모씨가 추진한 스포츠토토 빙상단 창단 기금을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와 골프인식 개선사업 등의 국고보조금 지원사업을 부당하게 집행했다는 이유로 감사원의 징계요구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우병우 전 수석의 민정수석실의 문체부 살생부에는 윤 과장의 이름은 올라있지 않았지만,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국과장들은 인사조치 당시 감찰 또는 징계를 받은 적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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