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 소지 다분했던 禹의 ‘세평 수집’… 檢, 왜 면죄부 줬나

檢이 제외시킨 ‘세평 수집’ 부분… 禹 직권남용 혐의 입증에 결정적 요소 될 가능성 있어

禹의 민정수석실, 세평만으로 행정 부처 공무원 인사조치 지시했다면 ‘직권남용’ 혐의

檢, 부실수사 및 봐주기 수사 지적으로 후폭풍 맞나

검찰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준 면죄부 중 하나가 그의 직권남용 혐의 입증에 결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우병우(50·불구속기소)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검찰 측의 그에 대한 ‘부실수사’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우 전 수석에게 주어졌던 혐의 중 검찰이 면죄부를 준 ‘세평 수집’ 부분이 재판 중 다뤄지면서, 그의 직권남용 소지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검찰이 제외시킨 혐의가 우 전 수석의 직권남용 혐의 입증을 위한 결정적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향후 검찰의 부실수사 또는 봐주기 수사에 대한 지적이 더욱 날카로워질 전망이다.

지난 4월 17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직무유기, 특별감찰반법 위반, 국회에서의 위증 등 여덟 가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검찰 측이 우 전 수석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기면서 부실수사 논란이 상당했다. 그런데 불구속 문제만큼이나 잡음이 컸던 부분은 박영수(65·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팀이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에 반영했던 혐의 중 다섯 가지를 검찰이 제외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검찰 측은 외교부 공무원에 대한 인사조치 개입과 문체부 공무원 표적 중복 감찰, 공정거래위원회 서울 사무소장 표적 감찰, 스포츠 4대악 신고 센터장 인사개입 그리고 세평 수집과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 등 특검 측이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에 적시한 다섯 가지 혐의를 제외했다.

검찰 측은 해당 혐의를 기소 의견에서 뺀 계기에 대해 “법리와 증거에 따른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를 담당했던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당시 이 다섯 가지 혐의를 제외하면서, 외교부 공무원에 대한 인사조치 혐의에 대해서는 정상적 민정수석의 감찰 업무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문체부 공무원 표적 중복 감찰 혐의에 대해서도 민정수석실이 문화체육관광부 측에 감찰 지시를 한 것은 맞지만, 문체부 자체 감사를 통해 징계 등 후속조치가 자율적으로 이뤄져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외에도 검찰 측은 공정거래위원회 서울 사무소장 표적 감찰 그리고 스포츠 4대악 신고 센터장 인사개입 혐의 역시 민정수석실의 업무로 정당한 조치이자 직권남용으로까지 볼 여지가 없다는 취지의 의견이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4월 12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사진=연합)
특히 검찰은 ‘세평 수집과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 부분도 민정수석실의 고유 업무로 구속사유가 될 수 없다며, 우병우 전 수석에 관련 혐의에 대해 면죄부를 줬다.

그런데 우 전 수석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당시 검찰 측의 판단이 납득하기 어렵고, 부실수사라는 지적을 받을만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검찰 측이 제외했던 우 전 수석의 세평 수집과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 부분에서 명확히 나타나고 있었다.

민정수석실, ‘세평만으로’ 문체부 인사조치에 관여했나

지난 25일 제13회 공판까지 진행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리고 있는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재판에서는 그의 직권남용 혐의 중 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법정공방이 한창이다.

K스포츠재단은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구속기소)씨가 미르재단과 함께 설립·운영을 주도한 법인으로 알려져 있다.

우 전 수석은 자신의 직권을 남용해 지난해 대한체육회와 전국 28개 K스포츠클럽에 대한 표적 감사를 실시, K스포츠재단에 대한 특혜 및 최씨에 대한 사익 추구를 도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전까지 검찰 측과 우 전 수석 측은 또 다른 직권남용 혐의를 두고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다. 바로 우 전 수석의 ‘문체부 살생부’에 대한 의혹이었다.

문체부 살생부는 지난해 2월 박민권 전 문체부 1차관의 경질 그리고 이후 같은 해 5월부터 7월까지 이뤄진 문체부 내 국과장 여섯 명에 대한 좌천성 인사조치를 둘러싼 의혹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민정수석실로부터 특별한 사유조차 듣지 못한 채 공직생활 마감하거나 좌천성 인사조치를 요구 받았다는 점이었다.

또 그 인사조치 뒤에는 최순실씨와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인물 중 하나인 김종(56·구속기소) 전 문체부 2차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최씨는 문체부 내 주요 인사들을 김종 전 차관 중심으로 맞추고, 문체부 블랙리스트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등에 대한 협조에 소극적이었던 박민권 전 차관 그리고 ‘비(非) 김종 라인’으로도 불렸던 여섯 명의 국과장들을 배제시킬 목적으로 살생부를 꾸몄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 이곳저곳 관여되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힘든 최순실. (사진=연합)
실제로 특검 조사 등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지난해 1월 말에서 2월 초순경 최순실씨는 김종 전 차관에게 박민권 전 차관의 문제점에 대해 알아봐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김 전 차관은 그의 문체부 측근인 윤 모 과장 등으로부터 박 전 차관 및 그와 관련된 국과장들에 대한 문제점을 듣고 이를 메모로 정리해 최씨 측에 전달했다.

놀랍게도 2월 말 박민권 전 차관은 문체부 1차관에서 경질 통보를 받았고, 그의 경질을 요구한 곳은 다름 아닌 우병우 전 수석의 민정수석실이었다.

이후인 지난해 4월경 김 전 차관이 작성한 메모 속에 등장했던 인물을 포함한 ‘비(非) 김종 라인’으로 불린 국과장 여섯 명 역시 소속기관으로 좌천성 전보조치 통보를 받았고, 5월부터 해당 조치가 실행됐다. 이들도 역시 민정수석실로부터 ‘특별한 사유조차 듣지 못한 채’ 좌천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박민권 전 차관과 이들 여섯 명의 국과장들의 공통점은 또 있었다. 바로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민정비서관 소속의 특별감찰반(이하 특감반) 인원으로부터 비밀리에 세평 수집의 대상이 됐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7월 3일 우병우 전 수석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 모 전 특별감찰관은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재직할 당시 상부로부터 이들에 대한 세평 수집 지시가 있었고 이를 실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으로 특감반 이 모 과장의 지시로 박민권 전 1차관 그리고 좌천성 전보조치를 당한 여섯 명의 국과장을 포함한 문체부 인원 여덟 명에 대한 세평 수집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물론 당시 그가 상부로부터 받은 세평 수집 지시는 검찰 측이 우 전 수석에 대한 세평 관련 혐의 제외이유에서 밝힌 것처럼 민정수석의 고유 업무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정상적 활동이었다.

원칙적으로 특감반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공직자 그리고 대통령의 친족 및 특수관계 있는 자를 감찰하게 돼 있다.

그런데 관계 법령상 특감반의 감찰 조사를 통해 공직자의 비위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이에 대한 후속절차를 민정수석실 등 청와대에서 직접 진행하거나 관여할 수 없는 게 일반적이다. 특감반은 오로지 공직자의 감찰관련 정보를 수집하며, 이를 통해 발견된 비위사실 등을 해당 부처 감사실에 통보해 후속절차를 자체적으로 진행하게 하거나 수사기관에 2차적으로 의뢰하게 할 뿐이다.

이는 위와 같은 공직감찰 업무뿐만 아니라 그 하위 단계의 업무라고 할 수 있는 세평 수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세평 수집은 명칭 그대로 세평 대상이 된 공무원 등의 직장 동료나 주변인을 통해 그의 업무능력과 리더십, 소통능력, 언론에서 문제가 된 특이사항 등 말 그대로 대상자의 소문 및 평가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기초 첩보활동에 불과하다.

당연히 전문(傳聞)증거나 기초적 정보를 통해 생산된 세평만으로 세평 대상이 된 공무원에 대한 경질 및 징계 등 후속절차를 청와대 측에서 지시하거나 요구할 수 없다.

억울하게도 민정수석실의 한마디에 공직생활을 마감해야 했던 박민권 전 문체부 1차관. (사진=연합)
만약 이를 어긴 채 세평만으로 누군가에 대한 인사 조치를 지시했다면 굳이 상세한 법률을 알지 못하더라도 상식적 차원에서 직권남용을 뛰어넘는 문제로까지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김 전 특별감찰관은 이 사건 재판에서 당시 박민권 전 차관과 여덟 명의 국과장에 대한 세평 수집 지시에 대해 특별한 감찰 조사가 아닌, 세평 대상자의 정치적 성향 등을 알아보는 식의 일반적 세평조사에 불과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그는 당시 박민권 전 차관에 대한 좋지 않은 세평 중 하나였던 ‘파벌 형성’ 등의 문제점에 대해 기본 세평 수집 및 보강조사까지 실시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되면서 관련 의혹에 대해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여덟 명의 국과장들의 세평에 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사실확인 절차를 거치거나 보강조사를 한 적도 없었다.

김 전 특별감찰관 외에 이들에 대한 세평을 수집한 특감반 인원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고, 그도 결국 들은 소문만으로 세평 수집해 상부에 보고했을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김 전 특별감찰관은 “당시 조사권한을 가지고 (세평을) 확인한 것이 아니었다”라며 “세밀하게 뭘 했다기보다 그냥 단순한 세평 수집을 위한 것이었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은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내용 그리고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단지 들은 내용만으로 꾸며진 세평 보고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갑작스러운 인사조치 지시를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문체부 내 정기인사 시기도 아니었고, 내부 감사실을 통한 후속조치 절차도 철저히 무시됐다.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당시 김 전 특별감찰관 외에 박민권 전 차관과 이들 여덟 명의 국과장에 대한 다른 보고라인이 있었다는 점은 확인되지 않았고, 우 전 수석 측 역시 이에 대해 언급조차 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검찰이 우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하며, 세평 수집과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를 단순히 민정수석실의 고유 업무로 구속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밝힌 부분은 향후 크게 문제시될 소지가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우병우 전 수석에게 준 면죄부 한가지에 큰 문제점이 발견되며, 향후 관련 혐의 입증에 대한 검찰의 의지 그리고 법원의 판단이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사진=연합)
김 전 특별감찰관의 증언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을 통해 세평 수집과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 입증될 수 있는 정황이 충분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만 여기에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한 부분이 석연치 않다는 점은 명백한 상황이다.

다시 말해 도대체 우병우 전 수석 측이 검찰 조사에서 해당 혐의 부분에 대해 어떤 설득력 있는 소명을 했기에, 검찰 측이 수사단계에서 문제시 하지 않았는지 향후 반드시 밝혀야 할 명분이 생긴 상황이다.

특히 만약 검찰 측이 향후 재판에서 우 전 수석의 관련 혐의에 대해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다면, 당시 우 전 수석에게 준 면죄부가 부실수사 및 봐주기 수사에서 비롯됐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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