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물인 서면’ 안종범 수첩, 전문법칙 적용 두고 치열한 공방

삼성재판 1심 재판부, 사실상 삼성 측 피고인 입장에 신빙성 가지지 않아

‘재전문증거’ 안종범 수첩, 삼성 측 변호인이 증거능력 상실에 보다 집중하는 이유는

특검, 왕재산 간첩사건 판례로 삼성 측 공략

삼성재판 항소심에서 안종범 수첩을 둘러싼 특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 사이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고되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세기의 재판’ 항소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면서, 특검 측 ‘스모킹건’으로 불렸던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두고 특검과 삼성 간 보다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을 간접증거로 채택했지만, 뇌물공여 등 일부 혐의에 대한 유죄판결에 주요 근거로 삼았다. 물론 재판부는 이 수첩을 ‘증거물인 서면’으로 규정하면서, 전문법칙 적용 등을 둘러싼 수많은 잡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이재용(49·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측은 항소심에서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논리적 묘수’를 들고 나왔다.

삼성 재판의 1심 재판부는 지난 7월 안종범(58·구속기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증인신문을 마친 뒤, 그가 청와대 재직시절 작성했던 수첩을 간접증거로 채택했다.

사실상 해당 수첩을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였지만, 이후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일부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결했다.

이 사건 1심 판결에서는 삼성전자의 영재센터 지원과 관련한 뇌물공여 부분이 유죄로 인정되며,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 기재 내용을 그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015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이뤄진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두 번째 단독면담 직후, 안종범 수첩에 ‘김재열’, ‘메달리스트’, ‘빙상협회’, ‘후원필요’ 등의 단어가 기재된 사실을 토대로, 당시 삼성 측의 영재센터에 대한 1차 지원 약속이 오갔다는 특검 측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영제센터는 최순실(61·구속기소)씨가 설립해 자신의 조카 장시호(38)씨 그리고 측근이었던 김종(56·구속기소)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 운영을 깊숙이 관여시키며, 삼성전자로부터 2차례에 걸쳐 총 16억 28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낸 법인이었다.

특검 측은 공소사실에서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자신의 매제이자 제일기획 사장인 김재열을 통해 영재센터에 자금을 지원해달라는 대통령의 요구를 승낙했고, 이후 이 부회장이 최지성(66·구속기소) 전 삼성미래전략실 부회장과 장충기(63·구속기소) 전 삼성미래전략실 사장에 지시해 영제센터에 대한 1차 지원이 이뤄졌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검이 이 공소사실에 대한 판단과 입증을 위해 우선적으로 내세운 증거 역시 안종범 수첩의 해당 일자 기재내용이었다.

이어 1심 재판부는 지난해 2월 15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세 번째 독대 자리에서 삼성 측의 영제센터에 대한 후속 지원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의 쟁점에 대해서도, 안종범 수첩 기재내용을 근거로 이 부분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이재용이 영재센터 1차 지원에 관여했고, 그 지원의 성격과 결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라며 “2016년 2월 15일자 안종범의 업무수첩의 기재 내용을 비춰봤을 때, 이날 단독면담에서 영재센터 지원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고 볼 여지가 크다”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세 번째 독대 일자의 안종범 수첩에는 ‘빙상’, ‘승마’라는 단어가 적시돼 있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 등이 최씨가 설립한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뇌물공여 부분이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안종범 수첩 기재내용으로 인해 재단 출연과 관련돼 유죄로까지 이어진 혐의가 하나 있었다.

바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위반 부분이었다. 안종범 수첩의 2015년 7월 25일자 삼성 항목 2번에 ‘재단’이라는 말이 적시돼 있었다.

이에 대한 특검 측 공소사실은 이재용 부회장이 이날 단독면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미르재단에 대한 자금 지원을 요구받았음에도, 지난해 12월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그런 기억이 없다”라고 말해 이 부분이 위증에 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1심 재판부는 특검 측 공소사실을 유죄로 받아들이며, 안종범 수첩 내 ‘재단’이라는 기재를 결정적 근거로 삼았다.

물론 1심 재판부가 안종범 수첩을 유죄판단의 근거로 인정할 만큼 증거능력을 부여했다는 점을 두고, 삼성 측 변호인단뿐만 아니라 언론 및 법조계 등에서도 여전히 잡음이 일고 있다.

이 수첩의 기재 내용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간의 독대 자리에 있지 않았던 안종범 전 수석이 독대가 끝난 뒤,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 부회장과 나눈 이야기를 듣고 적어놓은 ‘전문(傳聞)증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에서는 사실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의 법정진술을 증거로 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 제310조 2항의 규정에 따라 ‘누구로부터 들은 이야기’ 즉, 전문진술이 증거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안종범 수첩의 경우 그 기재 형식이 주어와 술어가 제대로 갖춰진 문장이 아닌,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 핵심내용을 단어로 나열한 수준이었다.

특히 안 전 수석은 삼성 재판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스크린을 통해 제시된 자신의 업무수첩을 보면서, 실제로 자신이 기재한 내용이 맞는지 기억이 불분명하다거나, 심지어 누구에 대한 발언을 적은 것인지 특정하지 못하는 증언을 상당수 했다.

무엇보다 형사소송법 제313조 1항에 따라 피고인이 아닌 자가 작성한 진술서 등은 그 작성자 또는 진술자의 자필이나 서명, 날인 등이 있어야만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안종범 수첩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 등 피고인이 아닌 사람이 진술을 기재한 경우에 해당한다. 때문에 이런 기재에 대해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수첩 내에 원진술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서명 또는 날인이 있어야 했다.

물론 원진술자가 법정에 나와서 해당 수첩의 기재내용을 확인한 뒤 자신이 말한 내용이 맞다며 진정성립을 마친 경우도 수첩에 대한 증거능력이 발생할 수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 재판의 증인 출석을 거부하면서 이 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원진술자가 말한 대로 수첩에 기재가 됐는지 확인하지 못했고, 그가 대화전달 과정에서 생길 수 있었던 오류 그리고 독대 자리에서는 오고 가지 않았지만 전달과정에서 더해진 보충설명 등의 존재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에 안종범 수첩은 증거능력을 갖추기에 조건이 부족했다.

이런 논란을 뒤로한 채 1심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판단의 근거로 삼았고, 역시 이 사건 항소심 초반부터 이를 둘러싼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어졌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증거능력 부여 고민하게 될 전문증거

삼성 측 변호인들은 항소심에서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떨어뜨리는 부분에 보다 집중할 수밖에 없다.

안종범 수첩은 밀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나눈 대화를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였다. 동시에 영재센터 뇌물공여죄 부분을 유죄로 드러나게 한 유력한 증거 중 하나였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사진=연합)
만약 삼성 측의 바람대로 다툼의 소지가 있는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항소심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헌법 제12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받지 않는다’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308조 2항의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다수의 뇌물공여 혐의 부분의 무죄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삼성 측이 항소심에서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엄밀히 말해 이 수첩은 전문증거만이 아닌 ‘재전문증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수첩 기재내용이 누군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적었다면 전문증거, 제3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또 다시 전해 들어 적은 것이라면 재전문증거에 속한다.

안종범 수첩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적은 것이지만, 이재용 부회장이라는 제3자의 이야기를 박 전 대통령이 다시 전해준 이야기를 받아 적은 내용도 담겨있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증거에 대한 증거능력 부여에 대해 엄격한 요건이 필요한 상황에서, 재전문증거는 보통 그 자체만으로도 증거능력 부여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삼성 측은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보고 있다.

전문증거 또는 재전문증거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에 대한 증거능력 부여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또는 아예 증거로서 배제를 해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삼성 측 변호인들은 지난 12일 열린 이 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무면허 운전 사건에 대한 예를 들었다.

만약 A라는 사람이 무면허 운전죄로 기소가 됐다. 그런데 A씨는 기소가 되기 전부터 운전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반면 수사기관에서는 B라는 사람이 경찰조사와 법정에서 밝힌 “내가 C라는 사람으로부터 ‘A가 차량을 운전하는 것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는 발언을 증거로 삼아 A씨를 무면허 운전 혐의로 기소했다.

정리해 보자면, 면허가 없는 A가 운전하는 것을 C라는 사람이 목격을 했고, 이런 사실을 C로부터 들었다고 하는 B씨의 진술만을 토대로 “나는 운전하지 않았다”는 A씨를 기소시킨 상황이었다.

이는 전형적인 전문증거의 한 사례로, 자신이 A씨라는 사람과 입장을 바꿔 본다면 ‘누구로부터 들었다’는 B씨의 진술에 증거능력 부여한 수사기관의 결정을 쉽게 납득할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이 사건 1심 재판부도 앞서 언급한 사례 중 B씨의 진술에 상응한 안종범 수첩에 증거능력을 부여한 근거를 두고 다음과 같은 논리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위의 사례에서 B씨의 진술은 원진술자 C씨의 말을 듣고 전달한 전문증거가 명백하지만, C씨가 A씨의 운전하는 것을 봤다고 B씨에게 말한 것 자체는 사실이라는 논리였다.

또 C씨가 B씨에게 한 말을 기초로 “C씨가 B씨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고, 정황상 C씨의 말에 일관성 및 신빙성이 있다”라는 간접사실들을 종합해 봤을 때, 무면허인 A씨가 운전을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정리해보자면, 안종범 전 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재용 부회장과 독대자리에서 나눈 대화내용을 듣고 적은 ‘사실’은 명백해, 그 내용의 진실성과는 크게 관계없이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또 정황상 안 전 수석의 수첩내용이 삼성 측 피고인들의 주장보다 믿을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은 두 번째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영재센터 지원 및 김재열 사장에 대한 말을 들은 적이 없고, 영재센터 1차 후원은 단지 김재열 사장이 김종 전 차관의 요구로 이 부회장의 뜻과는 무관하게 이뤄졌다고 일관되게 진술해 왔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의 기재내용에 증거능력을 부여한 반면, 삼성 측에 대해서는 “김재열 사장으로 하여금 영재센터를 지원하게 하라는 요청을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라며 “피고인 이재용의 (영재센터 지원) 관여와 관련된 피고인들과 피고인 측 관련자들의 진술의 신빙성을 전반적으로 높게 평가할 수 없다”라며 유죄를 인정했다.

안종범 수첩, ‘증거서류’인가 ‘증거물인 서면’인가

안종범 수첩에 대해 보다 법률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삼성 측은 이를 증거서류로 규정하며 전문법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1심 재판부는 이를 ‘증거물인 서면(書面)’으로 바라보며 전문법칙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조서 등을 포함하는 증거서류는 서류(수첩)에 기재된 내용이 진실하다. 즉 내용의 사실에 대한 증명을 기준으로 한다. 때문에 내용의 ‘진실성’을 판명하기 위한 엄격한 절차를 필요로 하며, 당연히 전문법칙의 적용을 받는다.

증거물인 서면은 기재 내용의 진실성의 유무와는 큰 관계없이, 특정 기재가 있는 서류의 존재 자체 그리고 필적 등의 외형만을 기준으로 증거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동시에 엄격한 전문법칙의 적용에는 배제된다.

대법원 판시에 따르면, 증거서류의 경우처럼 원진술의 내용을 요증(要證)사실, 즉 보다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사실 또는 원진술이 기재된 서류 내용의 진실성이 범죄사실에 대한 직접 증거로 사용할 때는 이를 전문증거로 본다고 하고 있다.

증거물인 서면의 경우처럼 원진술의 존재 자체만을 요증사실로 본다면 전문증거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는 의미였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1심 재판부가 안종범 수첩을 증거서류로 보지 않고 증거물인 서면으로 판단한 점에 대해, 이 사건의 요증사실에 있어 위법하며 특검 측 주장과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재판부가 안종범 수첩을 증거물인 서면으로 판단해 그 요증사실을 수첩과 기재의 존재 자체로 바라봤지만, 이는 특검 측 공소사실과 배치됐다.

특검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단독면담 자리에서 안종범 수첩에 기재된 내용 그대로 대화했다는 점 그리고 안종범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대화 내용을 사실 그대로 수첩에 기재했다는 점 등을 공소사실이나 의견서 및 증인신문 과정에 담았다.

수첩과 기재의 존재 자체를 이 사건 범죄사실 중 하나인 뇌물공여의 공소사실로 규정한 것이 아닌, 해당 증거의 내용에 대한 진실성을 두고 특검과 삼성 측이 열띤 공방을 벌인 셈이었다.

때문에 1심 재판부의 판단처럼 수첩과 기재의 존재 자체는 이 사건 공소사실과는 무관하며, 수첩을 그 내용상 진실성을 규명하는 증거서류로 봐야 하기 때문에 전문법칙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1심 재판부의 안종범 수첩에 대한 증거물인 서면으로의 판단은 원진술이나 수첩 내 기재의 존재 자체를 간접사실로 인정하는 동시에, 이를 기초로 증거서류의 경우에 해당하는 원진술의 진실성까지 증명하는 경우와 같았다. 이는 대법원 판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왕재산 간첩사건 판례가 보여준 ‘전문법칙 적용 배제+공소사실 입증’

특검 측은 이런 삼성 측의 주장이 전문법칙 적용범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며 반박했다.

1심 재판부가 안종범 수첩을 증거물인 서면으로 인정한 것은 수첩과 기재의 존재 자체뿐만 아니라, 기재 내용 및 안종범 전 수석의 진술 및 증언 그리고 그 밖의 관련자들의 진술 등 객관적 증거를 종합해 사실관계를 인정했다는 설명이었다.

안종범 수첩이 전문법칙 적용 여부는 수첩 상 기재 내용이 그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한 진술증거로 활용될 때만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단지 이 사건에서 안종범 수첩은 다른 간접사실과 결합해 간접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로 사용된 것이기 때문에, 증거물인 서면 여부와 관계없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위한 간접사실을 인정하는 증거로 사용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특검 측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2011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왕재산 간첩사건’에 대한 판례를 제시했다.

왕재산 사건은 2011년 당시 북한의 지령을 받고 간첩활동을 해온 IT업체 대표와 정당 전 당직자 등이 구속된 사건이었다. 당시 이들은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 구성원과의 회합, 국가기밀 누설 등으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피고인들이 북한 공작원과 실제로 회합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피고인들의 컴퓨터에서 압수한 관련 문건 파일들의 내용의 통한 진실성 규명을 과제로 잡았고, 당연히 전문법칙이 적용된다는 점을 전제로 했다. 또 관련 문건 파일이 피고인들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는 진실성과 관계가 없고, 전문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검 측의 반격에 이재용 부회장의 보다 탄탄한 대응논리가 요구되고 있다. (사진=연합)
여기까지는 증거서류와 증거물인 서면과의 기본적인 차이점을 제시하는 내용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항소심 판결에서는 피고인들이 ‘북한 공작원과 회합을 희망한다’는 내용의 파일이 실제 피고인들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다른 증거들과 종합해 혐의를 인정한 원심판결에 수긍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증거물인 서면의 존재 자체와 다른 증거들을 고려해, 이와 같은 간접사실들을 종합한다면 북한 공작원과의 회합이라는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사실의 진실성을 인정하는 데 무리가 없고, 반드시 전문법칙의 적용 대상도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특검 측은 이런 왕재산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들어 안종범 수첩의 경우도 증거물인 서면으로서 전문법칙 적용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증거물의 내용을 통해 피고인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사실까지 인정하는데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특검은 안종범 수첩은 왕재산 사건의 컴퓨터 저장 문건보다 증거가치가 더 높다고 설명했다.

왕재산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해당 문건을 자신들이 작성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안종범 수첩의 경우 안 전 수석 본인이 검찰수사 과정과 법정증언에서 본인의 작성사실을 인정했다. 또 수첩 내용이 컴퓨터 타이핑이 아닌 모두 안종범 전 수석의 자필로 기재가 돼 있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는 증거라는 입장이다.

이에 특검과 삼성 양측의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둘러싼 법정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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