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 향응으로 얼룩진 공사비 1조원 강남 재건축 수주전

GS건설 “제보 계속 들어와…수사의뢰 예정”

롯데건설 “악의적 비방…법적 조치 검토”

경찰, 내사 중 고발 접수로 수사 착수…검찰 수사까지 가나

국감에서도 거론…정동영 “검찰 수사 해야…개정안 준비”


강남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 파문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금품 살포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공사비 1조원의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위한 조합원 총회 투표 마감 직후 GS건설은 롯데건설이 금품 살포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관련 증거를 공개했다. 50만~100만원어치 현금 봉투, 상품권 봉투, 60만원 상당 무선청소기, 핸드백, 가방, 벨트 등 25건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제11조 제5항은 “누구든지 시공자의 선정과 관련해 금품, 향응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개표 결과, GS건설은 부재자투표와 현장투표를 포함해 1359표를 얻어 1218표를 얻은 롯데건설을 꺾었다. 하지만 승패 여부를 떠나 금품이 오갔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파장은 커졌다. GS건설의 발표에 대해 롯데건설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GS건설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수주 초기부터 위법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며 “악의적인 비방으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한 데 대해 법적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맞서고 있다.

GS건설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GS건설 관계자는 “매표 행위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해결해줬으면 했지만 여력이 안되는 것 같아 신고 센터를 설치했다”며 “지난 9일부터 14일까지 접수된 25건을 발표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수주 여부와 상관 없이 계속 제보를 받고 있다. 송파 미송·크로바의 경우 한신4지구보다 제보 금액 규모가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수사의뢰를 할 예정이나 구체적 시점이나 일정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유관단체에서 협조 요청이 들어오면 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논란의 중심은 부재자 투표…현장 총회 투표, 결과에 영향 못 미쳐

부재자 투표는 원래 건강상의 문제나 출장 등 개인 사정으로 조합원 총회 당일 현장 출석이 어려운 이들의 기회 보장을 위해 마련됐다. 보통 시공사 선정 총회를 앞두고 2~4일간 부재자 투표가 진행된다.

업계 관계자는 “총회 투표는 보는 눈이 많아 매표 행위가 이뤄지기 힘들다. 반면, 부재자 투표는 ‘OS(outsourcing·용역업체)요원’이라 불리는 건설사 측 홍보 요원이 매수해 투표소까지 동행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부재자 투표는 동행 투표라는 말까지 있다”며 “열세에 있는 건설사들이 금품·향응을 통해 매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귀띔했다.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보통 50~100만 원 가량의 금품이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현장관계자는 “일반인인 조합원들이 보기에 시공사들이 내세우는 조건들은 큰 차이가 없다. 수천억, 수조원의 공사비가 든다지만 체감하기 어려운 금액”이라며 “이런 상황에 눈앞에서 돈이 오가는데 흔들리지 않을 조합원이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막판에 주저하는 조합원에게는 홍보 요원이 더 큰 금액을 제시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최근 진행된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부재자 투표율이 높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달 대우건설과 롯데건설이 맞붙은 신반포15차와 3월 강남구 대치2지구의 부재자 투표 비율도 각각 87.2%와 62.1%였다. ‘공짜 이사비’ 논란이 불거지며 현대건설과 GS건설 간 과열 수주전이 벌어진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의 부재자 투표 비율은 82.8%였다. 조합원 2292명 중 1893명이 부재자 투표에 참여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사흘간 치러진 서울 송파구 미성·크로바 아파트의 경우 조합원 1429명 가운데 1027명이 부재자 투표에 참여했다. 부재자 투표율은 71.9%였다.

현행 도시정비법 제11조 제5항은 “누구든지 시공자의 선정과 관련해 금품, 향응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건설사들은 보통 40~60억 원의 비용을 지출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태에 대해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재건축 사업은 본래 노후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공공사업이지만 민간의 수익사업으로 변질됐고 공공의 관리감독은 최소화됐다”며 “건설 아마추어인 조합원들이 최대 수조원이 투입되는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여러 이익집단들에 휘둘리기 쉽고 결국 비리가 깃들 여지가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경찰, 본격 수사 착수…대형 건설사 10여 곳 수사선상

경찰은 이미 재건축 금품 살포 의혹에 대해 내사를 진행 중이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대형 건설사들의 금품 살포 행위를 수사하기 시작했다.

지난 17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대형 건설사들의 재건축 비리 첩보를 입수해 먼저 건설사 2곳을 대상으로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수사망에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롯데건설 등 10여개의 대형 건설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강남 4구 재건축 사업장을 중심으로 몇몇 대형 건설사들이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살포한 정황이 포착됐다. 경찰은 이같은 첩보를 입수해 살포된 금품 규모 등에 대해 내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수사 초기단계”라며 “추가적인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조만간 대규모 수사인력을 투입해 TF(태스크포스) 조직을 꾸리는 방안도 검토한다.

같은 날, 서울 서초경찰서는 한신4지구 조합원 1명이 주택 재건축 정비사업 건설업자 선정을 앞두고 롯데건설이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뿌린 혐의가 있다며 지난주에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재건축 시공사 선정과정에서 금품이 뿌려진 것으로 봐 조합원들이 누구로부터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번 사태가 10여년 만에 대규모 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2006년, 서울중앙지검 등 16개 지검 및 지청의 '재개발·재건축 비리 합동수사부'는 약 6개월 간 재개발·재건축 관련 비리를 집중 단속, 총 127명을 입건한 바 있다. 이 가운데 검찰은 재개발 아파트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조합추진위원 등에게 3억 원을 제공한 건설회사 임원과 분양대금 일부를 비자금으로 조성해 재건축 조합장에게 건넨 업체 직원 등 37명을 구속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막대한 이익 창출을 노린 시공사들이 치열한 수주 경쟁을 하면서 조합설립추진위위원 활동 단계에서부터 홍보 요원들을 동원, 막대한 금품을 살포하는 등 시공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수사 결과 시공사들이 시공사 선정과정에서 통상 60억~70억 원 가량의 홍보비를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로비자금과 홍보비가 공사원가에 고스란히 반영돼 아파트 분양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역시 사태 파악에 나섰다. 국토부 관계자는 “GS건설이 경쟁사인 롯데건설의 금품 제공 등 불법 행위를 폭로한 내용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제도 개선안도 이달 말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 관계 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을 개정해 입찰 참가 제한뿐만 아니라 시공권 박탈까지 강력한 규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비리 등이 적발된 건설사는 시공사로 선정된 경우라도 시공권을 회수하고, 다른 정비사업의 입찰 참가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는 매표 행위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의심받는 부재자 투표 역시 손 볼 계획이다.

국감장에서도 거론된 강남 재건축

재건축 수주 과열 경쟁은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은 “서울 잠실 등 일부 재건축 사업장에서 조합원을 상대로 과도한 금품수수가 이뤄지면서 아파트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철저히 단속,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합동으로 상시 점검반을 운영하고 처벌을 강화할 예정이다. 시공사 선정 관련한 제도개선을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지난달부터 강남 재건축 문제를 지적해 온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도 가세했다. 정 의원은 같은 날 “3000만원짜리 승용차를 살 때도 꼼꼼히 확인해보고 구입하는데 수억 원씩 하는 아파트를 실물도 보지 않고 사는 폐단은 고쳐져야 한다”며 후분양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의원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후분양을 결정한 이후 지금껏 제대로 된 시행이 없었다”면서 “서울시와 SH공사는 10년 동안 해오던 후분양제를 정작 정부가 못 했다. 정권이 바뀐 지금이 후분양제를 실시할 적기”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또 “국토부가 부동산 대책을 2번 발표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했다”면서 “근본적인 대책은 후분양제를 결단할 시점”이라고 김 장관에게 질의했다.

이에 김 장관은 “후분양제 장점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전면적으로 도입하기에는 기업과 소비자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면적으로 도입하기는 한계가 있고 준비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LH에서 하는 공공분양부터 후분양제를 단계적 실시하도록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정동영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강남 재건축 매표 논란에 대해 검찰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초과이익환수금액에 해당하는 공사비 감액이나 이사비 1000만 원과 이주 촉진비 3000만 원 제공 등의 옵션도 제시되고 있다고 한다”며 “재건축단지 사업에 뛰어든 건설업체들이 표결에 참여하는 조합원을 상대로 무이자 이주비, 무상 이사비, 초과이익 대납, 금품살포 등 온갖 일탈 행위를 통해 재건축 사업은 무법천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불법적인 금품 살포와 대규모 유사 금융행위 등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소비자”라면서 “특히 지나친 고분양가는 입주신청자, 청약 당첨자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고, 입주자 뿐 아니라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되어 다수의 서민에게 고통을 준다. 정부는 특정 이해에 얽매이지 말고, 공정하고 엄정하게 사태를 직시하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검찰 수사 촉구와 정부의 근절방안 제시를 요구했다.

기자와 통화한 정동영 의원실 관계자는 “대행 업체를 내세운 조합원 매수 행위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미 다 파악됐던 상황”이라며 “건설사들이 유사금융행위를 대놓고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인은 점심 한 끼 사도 선거법 위반이다. 그런데 재건축 시공사 선정 현장에서 이뤄지는 위법 행위를 두고만 볼 것 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토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고발·처벌해야 하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공적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밝혔다.

의원실은 도정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라고도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담합 제보도 이미 확보했다”면서 “사업 수주에 혈안이 돼 있는 건설사들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크게 효과가 없다. 처벌 금액 상향, 입찰 제한, 건설사 퇴출 등 공공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향후 예정된 국감에서 건설사 CEO들에게 이 문제를 추궁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국토위는 사회공헌재단 출연 관련 건설사 CEO들을 증인으로 채택한 상황이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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