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 핵심 ‘업무방해죄’… 채용 주체가 대표라 혐의 적용 못한다(?)

檢, KAI 채용비리에 업무방해죄ㆍ뇌물공여ㆍ뇌물수수 혐의 적용

KAI 피고인 측 “채용의 주체는 대표… 타인의 업무 방해하지 않았다” 주장

KAI 피고인들에 유리한 판례… 관련은 업무방해죄의 ‘위계’ 요소

KAI 비리 재판이 업무방해 혐의 입증을 둘러싼 치열한 법리싸움으로 번질 조짐이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5358억원대 회계분식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하성용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 등에 대한 재판에서 ‘채용비리’ 관련 부분을 둘러싸고, 검찰과 KAI 양측의 치열한 법정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검찰 측은 이 사건 채용비리에 대해 업무방해죄와 뇌물공여죄 등을 적용했다. 그러나 KAI 측 변호인들은 이 사건의 경우가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측에는 안타깝게도 관련 판례들이 KAI 측 변호인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이 부분 혐의 입증의 가능성도 결코 낮지 않은 상태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조의연) 심리로 열린 하성용(66·구속기소) 전 KAI 대표 등 여덟 명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이날 준비기일에서 검찰 측은 회계부정과 비자금 횡령, 위장회사 소유 관련 등 피고인들에 대한 여섯 가지 공소사실에 대해 밝혔다.

정식재판에 앞서 진행되는 준비기일이라는 특성 상, 검찰 측 공소사실에 대한 변호인 측의 기록검토 등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의견이 오고 가지는 않았다.

다만 이날 검찰 측 공소사실에 대해 KAI 측 변호인들이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의견을 밝힌 부분은 바로 ‘채용비리’ 관련 혐의였다.

사실 이번 사건이 하성용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5358억원대 회계분식과 방산비리에 초점이 맞춰져 수사가 이뤄졌지만, 검찰과 언론 등에서의 KAI 사건에 대한 주목도는 채용비리 부분에 상당히 쏠려 있었다.

이 사건 채용비리 관련 혐의에는 하성용 전 대표와 KAI 소속 전직 본부장급 임원 두 명 그리고 실장급 직원 한 명이 연루돼 있다. 특히 여기에는 이들 ‘KAI 내부자들’뿐만 아니라, 무소속 이정현 의원의 친동생인 방송사 간부의 조카와 전직 육군 준장 및 대령 그리고 사천시청 고위 공무원까지 포함돼 있다.

검찰은 KAI 압수수색을 통해서도 이 의원의 인사청탁 및 채용 비리 관여에 대한 혐의점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 사건 채용비리 부분이 ‘내부자’뿐만 아니라 ‘외부자’가 깊숙이 관여돼 있는 만큼 많은 향후 재판 과정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검찰은 하 전 대표 등 KAI 소속 직원 네 명과 사천시청 공무원 박 모씨를 이 사건 채용비리 관련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 측 공소사실에 따르면, 하성용 전 대표 등 KAI 피고인들은 공모해 지난 2013년 10월경부터 지난해 10월경까지 내·외부의 청탁을 받고 KAI 채용 1차 서류전형 심사에서 탈락한 지원자 15명을 전원 서류전형에 통과한 사람인 것처럼 합격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이들은 전부 면접전형에 응시할 수 있었고,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당시 면접관들로 하여금 면접 점수를 부여하며 채용까지 이어졌다.

또 이들 피고인들은 공모해 지난 2013년 9월경, KAI에서 생산하는 수리온 헬기의 당시 시험평가 단장이었던 김 모 준장의 인사 청탁을 받고, 그의 지인의 자녀를 부정 취업시켰다. 김 모 준장은 이미 지난 2015년 12월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2014년 6월경에는 피고인들이 공모해 수리온 헬기 시험평가 단장인 송 모 대령의 인사 청탁을 받고, 그의 자녀 및 자녀의 친구까지 KAI 생산직 직원으로 부정 취업 시키며 각각 뇌물을 공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어 하성용 전 대표 등이 역시 공모해 지난해 9월경 사천시청 국장급 공무원인 박 모씨로부터 행정적 편의를 제공받는 대신, 박씨의 부탁으로 올해 2월 1일경 그의 자녀를 KAI에 부정 취업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검찰은 KAI 채용비리와 관련해 하 전 대표 등 KAI 관계자에게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그리고 이들과 사천시청 박 모 국장에게는 형법상 뇌물공여죄 및 뇌물수수죄를 각각 적용해 기소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KAI 측 변호인들은 이날 준비기일에서 검찰 측의 채용비리 관련 공소사실에 대해 보다 강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변호인들은 대부분의 기본적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공소사실에서 제시된 채용 과정은 비리는 물론이고 위법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채용의 주체는 대표”… 그래서 업무방해죄 적용 못한다(?)

이 사건 채용비리와 관련해 기소된 KAI 측 피고인들의 변호인은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타인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검찰 측 공소사실에 대응했다. 결론적으로 이 부분 혐의는 피고인들에게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무죄라는 입장이었다.

하성용 전 KAI 대표. (사진=연합)
KAI 전 경영지원 본부장 이 모씨 측 변호인은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법리적으로 무죄를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채용의 주체가 대표이사라는 것”이라며 “업무방해가 성립되려면, 타인의 업무여야 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업무라서 죄가 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업무방해죄는 형법 제314조의 명시에 따라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또는 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함으로써 발생하는 범죄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여기서 업무방해죄 행위의 객체인 ‘사람의 업무’란 보통 ‘타인의 업무’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한 응시자가 자신의 학위나 경력 등을 몰래 위조한 서류로 KAI 채용 1차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면 이는 허위사실을 통해 KAI 사원 채용이라는 ‘타인의 업무’를 방해한 꼴이 되기 때문에 업무방해죄가 명백했다.

그런데 당회 채용을 기획하고 지시한 ‘채용의 주체’인 KAI 대표가 특정인을 채용시키기 위해 부하 직원들과 ‘공모’해 그 특정인이 1차 서류전형에서 탈락했지만 일부러 이를 번복하고 다시 통과시켰다면, 엄밀히 말해 타인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특히 대표와 부정 채용에 관여한 부하 직원들의 경우도 대표의 위계 또는 위력이 아닌 기능적 행위지배가 성립돼 부여한 임무에 따라 이를 수행한 것으로, 자신의 업무를 방해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역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정리해보자면, 만약 하 전 대표가 이들 부하 직원들과 공모하지 않은 상태, 즉 자신의 대표라는 위계를 이용해 이들 직원들에게 특정인에 특혜를 준 채 채용을 강요하거나 오인·착각을 일으켜 부정채용이 이뤄졌다면, 대표가 이들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한 셈이기 때문에 업무방해죄가 성립될 수 있었다.

그러나 KAI 측 변호인은 당시 신규 채용이 하성용 전 대표에게 있어 타인의 업무가 아니었고, 하 전 대표와 같이 채용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KAI 전 직원들이 ‘공모’를 한 상황이기 때문에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채용비리의 경우 1차 서류전형 심사에서 탈락한 지원자들을 서류전형에 통과시킨 뒤 면접전형에 응시할 기회를 부여했기 때문에, 당시 공모 대상이 아니었던 인사담당자들이나 면접관들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업무방해죄 혐의 적용을 따져볼 수 있었다.

이에 KAI 전 경영지원 본부장 이 모씨 측 변호인은 “서류전형에 통과된 이들에 대해서는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인사담당 직원들 모두가 의견을 줘야 하기 때문에 위계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며 “면접위원의 경우 서류전형 결과가 이들의 면접 업무와는 인과관계가 없어서 이 역시 위계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변호인 측의 보다 구체적인 의견에 따르면, KAI 채용 당시 서류전형에 반드시 몇 명을 뽑아야 한다는 인원이 정해지지 않은 채 그동안 유지해오던 채용 정책에 따라 채용인원의 3배수에서 4배수 범위 내에서 1차 서류전형을 통과시켜 면접 기회를 줬던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인사팀의 재량에 따라, 추천 인사를 추가로 넣기 위한 목적으로 서류전형을 재차 실행해 인원을 뽑았다고 해서 업무방해죄를 발생시키지는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이 추천 부분에 대해서도 반드시 채용을 해 줄 것이라는 범죄를 의도한 실질적 의미가 있는 추천이 아닌 ‘하나의 의견’에 불과해, 대표와 부하 직원들 사이의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었다고도 볼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공소사실에 적시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KAI 채용 지원자들은 약 1500여명으로 여기서 15명의 인원에 대해 단지 서류전형에서 붙여 ‘면접기회’를 부여한 것은 인사 재량권 범위 내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변호인 측은 “뇌물공여 부분은 당사자들이 뇌물공여 이익에 대해 취업할 수 있는 이익이라고 기재돼 있다”라며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줬고, 스스로 능력을 통해 면접을 통과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 공소사실의 채용비리에서 발생한 뇌물공여 부분 중 검찰 측이 뇌물로 인해 볼 수 있는 이익에 관해 ‘취업할 수 있는 이익’이라고 기재했다.

그러나 이 사건 채용비리는 서류전형에 통과시켜 면접응시 기회를 줬을 뿐, 공소사실처럼 ‘취업’까지 보장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부분 역시 유죄로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만약 면접점수까지 조작돼 업무방해죄까지 미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사실관계 역시 검찰 측과 다투고 있는 만큼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부정은 있지만 위법은 아니다… 치열한 법정공방 예고

KAI 피고인 측 변호인들의 의견처럼 이 사건 채용비리 관련 부분은 엄밀히 ‘타인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보기 힘든 점이 있었다. 채용의 주체는 대표였고, 부정채용에 가담한 인물들도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한 채 공모한 상태였기 때문에 업무를 방해받지는 않았다.

특히 검찰 측이 채용비리 내의 뇌물공여 부분에 대해 그 뇌물로써 공여하는 이익 중 하나로 ‘취업’이라는 취지로 공소장에 적시했지만, 사실상 면접기회를 줬다는 것만으로 취업을 보장한다고 보기에도 힘든 측면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 채용과정에서 ‘부정’은 있었지만 하 전 대표가 관련 업무를 방해한 것은 아니라는 언뜻 모순된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와 비슷한 법원의 판결이 올해에도 있었다. 지난해 5월 차준일 당시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이 신규직 채용 과정에서 인사담당 직원 및 민간 면접위원에게 특정 응시자 두 명의 이름을 알려주고 “관심을 가져보라”고 지시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돼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차 전 사장은 이들 두 명의 응시자와 관련된 인물들로부터 부정한 채용청탁을 받았고, 이들의 면접점수 등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부정합격을 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공공기관 채용 업무에 부정한 입김이 있었던 만큼, 일반적으로 유죄가 확실해 보이는 사건이었음에도 법원은 차 전 사장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 등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올해 이 사건 1심 및 항소심을 담당한 대전지방법원 측은 당시 인사담당 직원들과 면접위원 등이 부정 사실을 인지한 채 사실상 공모한 상태였기 때문에, 차 전 사장이 위계로 그들의 업무를 방해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차 전 사장에 대한 업무방해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었다.

물론 이런 근거와 판례만으로 KAI 채용비리의 업무방해 혐의를 재판부가 무죄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없다.

아직 채용 과정에서 KAI 면접관이나 인사담당 관련 직원 등에 대한 증인신문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만약 이들 중 당시 하 전 대표 등과 공모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채용 과정에서 사실상 부정한 업무를 강요받은 이가 존재해 증언에 나선다면 하 전 대표 등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성립될 여지가 있다.

타인의 업무를 방해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업무방해죄 적용을 할 수 없다는 KAI 측 주장에 검찰 측 역시 반격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연합)
특히 지난 2008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업무방해죄에서의 위계란 “행위자의 행위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하며, 업무방해죄의 성립에는 업무방해의 결과가 실제로 발생함을 요하지 않고 업무방해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면 족하며, 업무수행 자체가 아니라 업무의 적정성 내지 공정성이 방해된 경우에도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에 적용해 본다면, 하 전 대표 등이 부정취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차 서류전형 합격자를 부풀려 이들 KAI 면접관이나 인사담당 관련 직원들에게 오인이나 착각을 일으켰고, 업무방해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부정을 의도한 청탁과 공모가 있었기 때문에 ‘업무방해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도 존재했다. 당연히 서류전형 심사에서 탈락한 이들을 통과시켜 면접기회를 줬다면, 면접관이나 인사담당자들의 업무에 있어서 적정성 내지 공정성을 침해받은 경우에 해당함이 명백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직 증인신문 절차가 남아있고 판결은 재판부가 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이 사건 채용비리 혐의에 대한 결과를 추측해보기에는 힘든 측면이 있다.

그만큼 향후 재판에서 이 부분 혐의를 둘러싸고 검찰과 KAI 변호인 사이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되며, 양측 어느 누구의 법리적 주장에 승기가 기울지 판결 전까지 가늠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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