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적ㆍ명시적 청탁 여부 중요하지 않아… 핵심은 ‘부정한 청탁’ 유무

‘논란거리’ 묵시적 청탁, 핵심은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

묵시적 의사표현 하나만으로 ‘묵시적 부정청탁’ 입증 못 해

묵시적 청탁 있었다는 李ㆍ朴, ‘공통인식’과 ‘양해’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묵시적 청탁보다 '부정한 청탁'을 둘러싼 법정공방이 치열해 지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이재용(49ㆍ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1심 판결 이후,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묵시적 청탁’ 부분이 항소심에서도 여전한 쟁점이 되고 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말 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청탁이 있는가”라며 판결 내용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말 하지는 않았어도 청탁 시점 전후 정황 등으로 판단했을 때, 직무관련 대가가 오갔다고 볼 수 있다”라며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검과 삼성 양측 모두 1심 판결과는 다르게 이 사건 묵시적 청탁의 존재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 이에 항소심에서는 묵시적 청탁에서 묵시적 의사표현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부정한 청탁’의 유무에 대해 보다 집중한 심리가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재판 뇌물공여 혐의는 승마지원과 영재센터 지원 그리고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부분 세 가지 공소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승마지원과 영재센터 지원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박근혜(65ㆍ구속기소)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지난 2014년 9월 15일, 2015년 7월 25일, 2016년 2월 15일 세 차례의 단독면담에서 두 사람 사이의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판단이었다.

1심 판결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에 이익을 제공할 목적으로 단독면담 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에 승마지원과 영재센터 등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다.

이에 이 부회장은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 부회장 및 장충기 전 삼성미래전략실 사장 등 전직 임원들과 공모해 실제로 자금을 지원했고, 이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작업’을 이루기 위한 청와대의 도움을 받았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1심 판결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이 추진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네 가지 개별현안이 아닌 이를 전부 합친 포괄적 현안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했다. 다시 말해 네 가지 개별현안 각각에 대한 뇌물공여죄는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리며, ‘묵시적 청탁’이라는 근거를 들었다.

세 차례의 단독면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금품 요구에 동의한 이재용 부회장이 그에 따른 반대급부를 직접적 또는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독대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에 승계작업과 관련된 현안을 언급하며 대가관계가 성립됐다는 설명이었다.

쉽게 말해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 “무엇을, 어떻게, 언제 ‘도와달라’”고 구체적이며 노골적인 요구는 하지 않았다.

다만 “저와 삼성은 현재 어떤 현안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고, 비록 “승마지원 등을 할테니, 이런 현안의 해결에 대통령이 도움이 돼 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앞서 언급한 의사표시만으로 청탁에 대한 대가관계가 형성됐다는 의미였다.

특히 두 사람의 단독면담에서 오고간 대화 내용을 적시한 안종범(5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에 삼성과 관련된 당시 현안들이 나타나 있었기 때문에, 청탁에 대한 묵시적 의사표시의 근거가 된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승마지원과 영재센터 지원에 관해 피고인 이재용이 승계작업에 관해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인 부정청탁이 있었음이 인정된다”라며 “피고인들은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나 이를 구성하는 개별적 현안에 관해 대통령에게 적극적ㆍ명시적으로 청탁을 하고 뇌물을 공여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원요구에 응함으로써 승계작업에 관해 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사실 이 사건 1심 판결 이후 묵시적 청탁 부분은 법조계와 언론 그리고 정치권 등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일반적인 뇌물공여 사건에 있어서 부정한 청탁은 명시적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묵시적으로 청탁이 오고갔다는 법적 판단은 지극히 추상적이며 모호하게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었다.

또 이 묵시적 청탁의 한 가지 근거가 됐던 안종범 업무수첩의 기재 내용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대화 내용을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듣고 받아 적은 ‘재전문증거’였다.

<주간한국>도 ‘삼성재판 2라운드⑤’ 보도(제2699호, 2017년 10월 24일 자) 등에서 심층적으로 다뤘듯이, 재전문증거인 안종범 수첩의 기재 내용을 이 사건 뇌물공여 혐의의 입증을 위한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요건이 필요했다. 다른 말로 증거능력 부여 여부를 두고, 논란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특히 특검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단독면담에서 이뤄진 청탁의 근거로 안종범 수첩뿐만 아니라, 독대 전후 청와대 측의 이 부회장과 삼성 현안과 관련된 각종 행보 등도 정황상 증거로서 가치가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묵시적 청탁은 인정하면서, 이후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현안 해결을 위해 무언가를 실질적으로 도와주지는 않았다는 취지의 애매한 결론을 내놨다.

당시 재판부는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 요구에 거절할 수 없어 피고인이 수동적으로 뇌물을 공여했고, 대통령의 지원요구에 응함으로써 승계작업에 관해 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라며 “나아가 부정한 청탁의 결과로 대통령의 직접적인 권한행사를 통해 피고인들이나 삼성그룹이 부당하게 유리한 성과를 얻었다는 사실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묵시적 또는 명시적 청탁 여부보다… 집중해야 할 ‘부정한 청탁’ 존재 유무

1심 판결 후 논란의 중심에 섰던 묵시적 청탁을 둘러싸고 이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도 거센 법정공방이 이뤄지고 있다.

삼성 측 변호인들은 묵시적 청탁에 대한 원심 판결의 위법성, 아니 청탁 자체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부분이 항소심에서 바로 잡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검 측은 단독면담 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묵시적 청탁이 아닌 명시적 청탁이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포괄적 현안이 아닌 각 개별현안에 대한 명시적 청탁이 인정돼야 하며, 승마지원 및 영재센터 지원 부분뿐만 아니라 재단지원 관련 뇌물공여 부분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리해 보자면, 양측 모두 1심 재판부의 묵시적 청탁이라는 판단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는 셈이었다. 삼성 측은 이런 청탁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특검 측은 묵시적 청탁이 아닌 명시적 청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박근혜(왼쪽)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의 단독면담 자리에서 묵시적 의사표시를 통한 부정한 청탁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판단을 두고 항소심 재판부가 큰 고민에 빠질 전망이다. (사진=연합)
이 사건의 경우에 해당하는 형법상 ‘제3자 뇌물공여죄’는 공무원(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무와 관련해 공여자(이재용 부회장)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해당 뇌물을 제3자(최순실)가 수수하게 한다는 기본 틀을 가지고 있다.

제3자 뇌물공여죄는 단순 뇌물죄와 다르게 ‘부정한 청탁’이라는 구체적 대가관계가 추가된다. 때문에 ‘직무관련성’과 ‘뇌물’ 그리고 ‘부정한 청탁’이라는 세 가지가 제3자 뇌물공여죄의 요소가 된다.

만약 최순실씨가 금품을 수수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의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면, 그 금품이 직무와 관련된 뇌물이었다고 할지라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핵심은 이 사건 뇌물공여 혐의가 묵시적 또는 명시적 청탁 어느 쪽에 속하는지 여부가 아닌, ‘부정한 청탁’의 유무라는 지적이다.

우선 부정한 청탁에서 청탁의 의미는 공여자가 공무원에 일정한 직무집행을 하거나 또는 하지 않을 것을 의뢰하는 행위다.

단순 뇌물죄는 금품이 직무와 관련돼 수수돼야 하며, 개개의 직무행위에 있어서 포괄적인 대가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직무행위가 하나하나 특정될 필요는 없다.

반면, 제3자 뇌물공여죄는 앞서 언급한 청탁의 개념 상 일정한 직무행위를 하거나 또는 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논리 필연적으로 그 직무행위에 대한 ‘특정성’ 그리고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이런 부정한 청탁이 1심 판결의 내용처럼 묵시적으로 이뤄졌다면, ‘청탁’과 뇌물공여에 따른 ‘대가관계’ 그리고 ‘또 하나의 조건’이 추가된다.

공무원과 공여자 사이 뇌물공여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는 동시에, 공여자가 자신의 청탁 사항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공무원이 이를 충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두 사람 간 묵시적 의사표시로 청탁이 오고 가는 과정에서 ‘공통인식’과 ‘양해’가 공통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지난 2011년 4월 14일 대법원 판결(2010도12313)에 따르면,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집행의 내용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금품이 그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 대해 당사자(박근혜 전 대통령·이재용 부회장) 사이에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사건 원심 판결을 살펴보면, 박 전 대통령의 인식은 단지 “포괄적 현안인 승계작업이 대략적으로 있을 것 같다”라는 취지에 불과했다. 또 대통령 자신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권한 및 역할은 구체적이거나 특정돼 있지 않고, “범위가 넓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원심 재판부가 판단했던 이재용 부회장의 당시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대통령의 권한이 넓다”라는 내용에 머물렀다.

판결 내용 어디를 봐도 단순히 ‘대통령의 권한이 넓다’는 것 외에는 두 사람의 뇌물공여와 청탁과 관련된 묵시적 의사표시에 따른 공통인식이 적시된 부분이 없었다.

만약 묵시적 의사표시에 따른 두 사람의 공통인식과 양해가 있었다면,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 및 삼성의 당시 현안이 각각 무엇인지 인지를 하고 있어야 했다. 이어 대통령 자신이 이 부회장 측의 현안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언제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 및 그러기 위해서는 자금을 지원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이를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더라도, 이 부회장이 “대통령이 나와 삼성의 현안을 해결해 주기 위해 각각 현안에 대해 어떻게 그리고 언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니 그 대가를 위해 대통령이 부탁하는 자금을 지원해야지”라는 공통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 공통인식과 양해 그리고 그 인식에 대한 구체적 내용에 대해 설명해 주지 못했다.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집행의 내용과 지원에 따른 대가관계 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해 두 사람 사이 공통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자세한 판결을 내린 부분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청탁의 내용으로 승계작업을 묵시적으로 나마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관련 현안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있는 특정 직무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언제 직무를 하라는 것인지, 이에 대한 두 사람 간 인식의 일치가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사건 묵시적 청탁이 성립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李, 대통령의 요구대로 지원 vs 朴, 승계작업 위한 구체적 도움 없어… 공통인식 있었나(?)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의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이 부회장 측 뇌물공여 사실은 있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 및 삼성 측이 현안 관련 어떤 한 가지도 부당하며 유리한 성과를 거두도록 하지는 않았다고 확인했다.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을 위한 각 개별 현안 자체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을 수도 있었다.

물론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이 정확히 무엇이며, 자신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파악하지 못해 뇌물공여에 따른 대가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특검 측은 이 사건 뇌물공여 부분에 대한 공소사실에서 단독면담 자리에서 의논을 위해 사용될 ‘대통령 말씀자료’에도 “현행 법령상 정부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라며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해줄 수 있는 직무관련 행위는 한정돼 있었다.

특검 측은 이재용 부회장이 각 개별적 현안에 대한 청탁이 있었다는 취지의 공소사실을 적시한 만큼, 두 가지 사항을 종합해 보면 ‘청탁을 하는 만큼 각 개별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협조’를 바랐던 이재용 부회장 그리고 ‘뇌물은 요청하고 받긴 받되, 현안 해결은 놔두자’라고 생각한 박 전 대통령 사이의 ‘공통적 인식’이나 ‘양해’는 성립하지 않았다.

원심 판결 역시 이런 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결문제라도 볼 수 있는 ‘부정한 청탁의 성립 여부’는 신경쓰지 않고, 대가관계 성립만을 판단하는 데 그쳤다.

삼성 측 변호인들은 이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단독면담 자리에서 두 사람 사이 직무행위 내용에 대해 구체적 대화가 오가지 않은 것이 명백하다”라며 “기껏해야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도움을 달라’는 정도를 인정할 여지가 있을 뿐, 이를 유의미할 정도로 구체적·확정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특히 2015년 7월 25일과 2016년 2월 15일 독대 자리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에 부정한 청탁을 요구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2015년 7월 25일 독대에서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올림픽 승마지원이 제대로 지원되고 있지 않다며 강한 질책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6년 2월 15일 독대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삼촌인 홍석현 JTBC 회장이 청와대에 지나치게 부정적이라며, 이 부회장은 이날 대통령으로부터 다시 질책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2차&3차 단독면담 자리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는 이재용 부회장이 부정한 청탁을 할 상황은 아니었다는 목소리다. (사진=연합)
이런 상태에서 묵시적인 의사표시 그리고 공통의 인식이 존재하기 힘들었고, 이재용 부회장이 각 현안마다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언급할 분위기도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이에 이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삼성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의 공통인식과 양해가 없었기 때문에, 묵시적 부정청탁 역시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반면에 특검 측은 공통인식이 분명히 있었고, 심지어 명시적 부정청탁이 있었다고 반박하며 치열한 법정공방을 이끌어 가고 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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