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진실’ 밝혀야 진정한 명예회복…강군 되려면 군 적폐 청산돼야”

김훈 중위 19년만에 순직 인정…일부 군(軍) 집요하게 진실 막아

김훈 유족 “국방부 조사본부는 적폐 대상, 수사체계 혁신해야”

“김훈 죽음 진실 밝히는 것은 미래 강군과 장병 인권 위한 필수 과정”

군 의문사의 대표적 사건이자 군 인권 문제의 상징이 돼 온 김훈 중위 사망사건이 19년만에 순직 인정과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으로 유족을 비롯한 국민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일부 해소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10월 28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장교·사병7묘역에서 열린 김훈 중위 안장식에서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오른쪽)을 비롯한 유족이 슬픔에 잠겨 있다.
하지만 군 인권에 관한 인식 전환과 국민의 신뢰받는 군이 되기에는 아직 변화ㆍ개선해야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김훈 중위 사건을 비롯한 군 의문사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군 자체의 근본적인 개혁에 의해서라기보다 ‘국민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인권을 중시하고 적폐청산을 추진한데 따른 ‘발맞추기식’ 인상이 짙다는 것이다.

김훈(당시 25·육사 52기) 중위 유족도 순직을 인정받는 과정에 군의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 군이 변화하고 있는 모습은 바람직하지만 뿌리깊은 군 적폐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김훈 중위 유족은 19년간 지속해온 ‘진실 전쟁’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김훈 중위 순직으론 덮을 수 없는 ‘죽음의 진실’이다. 그 진실을 제대로 밝혀 ‘정의’를 세워야 김훈 중위 같은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국민이 신뢰하는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고 유족은 믿는다.

10일 김훈 중위 부친인 김척(75ㆍ육사 21기ㆍ예비역 육군 중장) 씨를 만나 김훈 중위 사건의 못다한 이야기와 진실 규명을 향한 또 다른 ‘아버지의 전쟁‘을 들었다.

김훈 중위 안장식에 앞서 19년 동안 김훈 중위의 유골함이 보관됐던 경기도 벽제 1군단 헌병대 영안실에서 김 중위 부모가 묵념을 하고 있다.
“국방부 조사본부 행태는 적폐 대상”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가 ‘국가유공자’로 명예를 회복했다. 군 의문사 대상자로 머물다 19년이 지난 8월 31일 순직을 인정받은 김훈 중위는 지난달 28일 국립대전현충원 안장됐다. 그리고 지난 8일 국가보훈처에서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았다.

지난 19년 간 김훈 중위의 죽음을 둘러싼 ‘거대한 악(惡)’과 싸웠다는 유족은 감회가 남달랐다. 부친인 김척 예비역 장군은 “뒤늦게 훈이가 순직을 인정받고 국가유공자가 된 것에 만감이 교차한다”며 “지난 19년 간 군의 불의와 싸워 온 지난한 세월을 돌이켜보면 군의 적폐를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고 말했다.

김훈 중위 죽음의 진실을 밝혀야 하고. 이것이 김훈 중위뿐만 아니라 남은 군의문사와 장차 군이 바로 서고, 강군이 되는데 필수적이라고 김 장군은 강조했다.

이러한 인식은 김훈 중위 유족만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김훈 중위 안장식에 참여한 모교(여의도고) 동문, 육사 52기 동기생, 시민단체, 종교계 인사, 일반인들은 김훈 중위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앞으로 남은 엄숙한 과제라는데 공감했다.

10월 28일 오전 육군사관학교 성당에서 열린 김훈 중위 장례미사에서 안드레아 신부는 우리는 ‘진실과 정의’라는 숙제를 받게 된다며, 이 숙제를 푸는 것이 남은자들의 몫이라고 강론했다.
이날 오전 육군사관학교 성당에서 열린 장례미사에서 안드레아 신부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율 ‘원인이 있는 곳에 결과가 있다’를 인용하면서 김훈 중위의 죽음이라는 결과 앞에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감춘 그 원인을 언급했다. “하느님께선 알고 계시지만 우리 인간에게 정답지를 건네지 않는다. 진실을 향한 여정, 그 인과의 명제 앞에서 우리들의 힘으로, 우리들의 다짐으로, 우리들의 노력으로 증명의 과정을 통한 답을 스스로 써내려가길 바라신다.”

안드레아 신부는 그 하느님의 바램 앞에서 우리는 ‘진실과 정의’라는 숙제를 받게 된다며, 이 숙제를 19년 동안 풀어 온 유족을 위로하고, 참석한 모두에게 ‘내 몫의 숙제는 없는가?’ 자문해야 한다고 강론했다.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식에서 육사 동기생은 추도사에서 “순직의 길까지 열아홉 해를 돌고 돌아 작은 안식처를 찾게 됐다”며 “마지막 여정이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 죽음의 진실을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척 장군은 “김훈 중위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군 내부 부조리와 수십년 답습돼 온 군 문제를 개혁하는 것으로 군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비롯해 국방부장관 등 최고위층이 군 적폐청산에 앞장서고, 군 의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제도 개선을 실행하기로 한 것에 의하면 김훈 중위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그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장군은 10일, ‘김훈 중위는 최악의 군 의문사 사건으로 자살로 조작한 국방부 조사본부(김훈 중위 수사팀)는 적폐 대상이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관련자를 처벌하고 유족과 국민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 는 내용의 증명서를 송영무 국방장관에게 보냈다.

김훈 중위 부친 김척 예비역 중장은 19년간 군과 '진실 전쟁'을 해왔다며 국방부 수사의 문제를 강하게 질타했다.
군의 사건 은폐, 유족의 분노

김척 장군이 김훈 중위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데 있어 가장 주목하고 강조하는 것은 군 수사 시스템 문제다. 특히 국방부 조사본부를 대표적인 적폐 대상으로 꼽았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건을 ‘자살’로 조작해 유족이 19년간 고통 속에 진실 규명에 나섰고, 4대 국가기관의 결론을 무시.왜곡해 군에 대한 불신까지 가져왔다는 게 김 장군의 주장이다.

김 장군은 “누구보다 군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볼 때 국방부 조사본부는 적폐 대상”이라며 “현재와 같은 군 수사 시스템에서는 제2, 제3의 김훈 중위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은 김훈 중위가 19년만에 순직처리된 직접적인 원인이 군이 사건 당일부터 권총 자살로 조작한데 있다고 봤다. 군 수뇌부에서 결정된 ‘자살’ 결론은 이후 수사를 좌우했고, 상명하복의 군 조직 특성상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훈 중위는 98년 2월24일 12시20분경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241 GP에서 소속 부대 박모 일병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미군수사관(CID)은 오후 3시30분에 사건현장에 도착했고, 한국군 수사관은 오후 4시40분쯤에 부대에 도착했다.

JSA 인근 한국군 1사단의 최초 수사팀이 작성한 조사용지. 한국군 수사관은 오후 4시40분에, 미군 수사관(CID)은 오후 3시30분에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김훈 중위 사망(자살) 소식은 오후 4시43분에 연합뉴스를 통해 1보가 나갔고 이어 YTN 등 방송사와 신문에 보도됐다. 한국군 수사관이 수사를 진행하기도 전에 ‘자살’로 보도가 된 것이다.
연합뉴스는 김훈 중위 사망에 대해 수사관의 수사가 있기 전인 당일 오후 4시 43분 '자살'로 가장 먼저 보도했다.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밝힌 조사중간결과보고(2008년 12월19일)에 따르면 국방부가 브리핑을 한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당시 임모 조사관이 기록한 ‘사인에 대한 예단 정황’ 에는 다음과 같이 명기돼 있다.

“최초 언론보도와 관련 사망 당시 국방부 출입기자였던 연합뉴스 이00은 당시 10여 명의 기자가 함께 있는 가운데 국방부에서 브리핑을 하였으며 ‘자살’이라고 직접 언급하였고(중략) 사망 당일 석간신문의 자살 보도는 한국군 헌병대가 현장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국방부 브리핑을 통해 언론에 알린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음.”

이것으로 김훈 중위 사인은 사실상 ‘자살’로 귀결됐고, ‘타살’ 등의 여지는 처음부터 봉쇄됐다. 군 최고기관인 국방부의 결론을 하급 기관이나 담당자가 뒤집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미연합사는 미군 수사관이 사고 현장에 도착하기 전인 당일 오후 2시20분 김훈 중위 사망을 '자살'로 보고했다.
미군 또한 김훈 중위 사건을 왜곡하는데 동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사고 당일 ‘상황보고’ 및 ‘JSA 경비 소대장 사망 관련 상황조치’ 문건에 따르면 미군 역시 군수사관(CID)이 도착하기도 전에 ‘자살’로 상황보고를 했다. 미군이 자살로 보고를 한 때는 오후 2시20분으로, 미군 수사관은 그보다 1시간 뒤인 오후 3시30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한미연합사는 김훈 중위 사망에 대해 당일 오후 2시20분-47분 사이 '자살'로 관련 부대에 전파했다. 미군 수사관은 그로부터 1시간 뒤인 오후 3시40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사고 당일 김훈 중위 사망과 관련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작전차장이 나눈 대화는 군 사망 사건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김동신 당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김훈 중위 사망에 대한 보고를 받자 “자살이냐, 아니면 오발이냐?”고 묻는다. 타살의 여지는 닫아놓고 ‘군인 사망=자살, 또는 오발’로 인식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김훈 중위 사망은 ‘자살’로 결론지어졌고, 당일 오후 2시40분 한국 측과 연합사 지휘부 및 관련부서에 전파됐으며 합참에는 오후 2시47분에 전달됐다. 여전히 미군 및 한국군 수사관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때문에 법원도 국방부의 그러한 행태를 질타했다. 김훈 중위 사건과 관련한 재판에서 고등법원은 “김훈이 사망하자마자 이 사건 사고가 미군측과 대대장 등 부대원을 통하여 자살로 성급히 판단되었고, 그에 따라 당일 언론을 통하여 김훈이 자살하였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부검을 담당한 군의관은 부검 직후 자살로 예단한 사체검안서를 작성하다가 이를 삭제하는 등 사건 발생의 초기부터 제대로 된 조사나 수사 없이 김훈이 자살한 것이라는 예단이 부대 내외부에 지배적이었고, 그러한 정황이 수사기관의 수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20004년 2월17일)

대법원은 “만일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하여 사건의 실체를 불분명하게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이 사건 사고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히 결론을 내릴 수 없도록 하였다”고 판결했다.(2006년 12월7일).

증거 조작까지…강군의 조건은

일반적으로 권총 사건에서는 사건현장의 증거물을 수집해 감정을 의뢰한 후 3주(20일) 후에 감정결과(감정서)를 통보받고 자살ㆍ타살을 발표할 수 있다.

실제 김훈 중위 사망 사건 후 당시 미군 측 수사 책임자인 워잭 중령은 김훈 중위 오른손과 왼손, 팔 부위 등에서 시료를 채취해 김 중위가 사망 당시 입고 있던 야전 상의와 함께 감정 증거물로 미국 하와이에 있는 미 육군 범죄수사연구소(USACIL)로 보냈다. 그리고 한달 가량 지난 3월 25일 미 육군 범죄수사연구소의 회신이 왔다.

국방부 법의감식관 이상한 대위는 김훈 중위 사망 다음날 부검 결과도 나오기 전에 사망원인을 '자살'로 표기했다.
그런데 국방부 법의군의관 이상한 대위는 부검 결과도 나오기 전에 김훈 중위 사망 다음날 시신 검안서에 사망 원인을 ‘자살’로 표기했다. 이 대위는 김 중위 부검에 대해 국회와 법의학자로부터 질타를 받았지만 자살이라고 끝까지 주장했다.

이러한 이 대위의 ‘자살’ 판단에는 미군 측의 의문스러운 행위도 한몫했다. 당시 군의관 아레스 대위 일행은 김 중위 시신을 캠프보니파스 병원으로 옮긴 뒤 상처 부위를 변형시켰다. 즉, 총알이 뚫고 들어간 부위(사입구)와 나온 부위(사출구)를 거즈를 이용해 깨끗이 닦아낸 뒤 한국군 군의관에게 부검을 하라고 보낸 것이다.

때문에 김훈 중위 사인(死因)을 ‘자살’로 몰고 가는데 미군 측의 상식밖 행동도 한 원인이 됐고, 그들이 왜 그러한 행위를 했는가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와 관련해 김훈 중위 증거물을 감정한 미 육군 범죄수사연구소 자료가 조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훈 중위 유족은 국방부가 미 육군 범죄수사연구소 자료를 달리 해석해 ‘자살’ 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2011년 10월 17일 당시 민주당 서종표원에게 김훈 중위의 자살 판단 근거 자료로 제출한 미국 군수사연구소 증적(證跡)과 보고(98년 3월 25일)는 자살 결론과는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국방부는 김훈 중위의 자살 근거로 미국 군 수사연구소 증적 자료(98년 3월 25일)에 나타난 왼손 손바닥의 화약 잔재를 제시했다. 그러나 미 군수사연구소 보고서는 ‘왼손 손바닥에 화약 잔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자살자로 귀결되어져서는 안된다는 사항에 유의할 것’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또한 미 군수사연구소는 김 중위의 왼손손바닥에만 뇌관화약이 검출된 것에 대해 “근접사이며, 스스로 쏘지 않았다”고 감정했다.

또한 미 군수사연구소 회신문을 받은 워잭 중령은 1998년 4월29일 1차 수사 발표 시 회신문 내용을 알면서도 “한국군 이상한 군의관이 부검 소견서에 ‘자살’이라고 표기했으므로 자살로 본다”라고 발표했다. 나아가 김 중위 왼손바닥에만 다량의 화약흔이 검출된 이유에 대해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오른손으로 발사하는 부자연스러운 자살 연출 자세를 처음으로 고안해 이후 사인 규명에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김척 장군은 “우리 군이 미래의 강군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군이 돼야 하고, 그럴려면 군이 개혁돼야 한다”면서 “김훈 중위 사건에서 나타났듯 현재와 같은 군 수사시스템은 ‘적폐’와 다름없으므로 시급하게 청산하고, 군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합리적인 수사체계를 갖추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장군은 “정의롭지 못한 군대는 강도떼나 다름없다. 그런 군대에 누가 충성하겠냐”며 “전우로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김훈 중위의 죽음을 헛되이 안되게 진실을 밝히는데 남은 여생을 바칠 것이다”고 말했다.

김 장군은 김훈 중위가 정의로운 군대, 강한 군대를 만드는데 ‘하나의 밀알’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의 전쟁’을 계속해나갈 것을 밝혔다.

글.사진=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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