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 재단 출연 의혹에 오너 개입 제외하기 위한 노력인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16억원 출연했던 LS그룹

다른 주요 기업들에 비해 조용히 묻어갔지만, 오너 개입 여부 두고 의혹 재점화

전경련 팀장과 전화통화 하나로 1억원이나 삭감(?)… 풀리지 않는 의문

한민철 기자

박근혜(66·구속기소)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밝혀진 LS그룹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내막을 두고,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자금 출연 개입여부에 대한 의혹이 뒤늦게 증폭되고 있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했던 기업의 임원급 직원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미르·K스포츠재단은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2·구속기소)씨가 실소유했던 법인으로 지난 2016년 말 국내 50여개 기업들로부터 총 774억원을 출연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단 출연은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주도해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에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모을 것을 지시하면서 비롯됐다.

이날 재판에 출석한 기업 임원진들은 전경련으로부터 재단 출연 제의를 받고, 자금을 집행까지의 전 과정을 겪었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 오후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안원형 LS그룹 부사장의 증언은 재판이 끝난 뒤, 몇 가지 의문점을 남겼다.

LS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E1을 통해 미르재단에 10억원 그리고 여섯 개 계열사가 자금을 모아 K스포츠재단에 6억원을 출연했다.

사실 LS그룹은 당시 다른 주요 기업들보다 재단 출연 규모가 크지 않았다. 특히 K스포츠재단 출연의 경우 전경련으로부터 통보받은 기존 할당금액보다 1억원을 낮춘 것으로 밝혀지며, 무언의 강요에도 최소한의 회사 입장을 지키려 했다는 긍정적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때문에 LS그룹은 재단 출연과 관련해 정치권과 여론 그리고 수사기관으로부터 큰 문제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며, 쉽게 말해 조용히 묻어갔던 측면도 있었다.

안원형 LS그룹 부사장 역시 이날 재판에서 당시 LS그룹의 재단 출연은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지시라는 전경련 측의 요구 그리고 다른 전경련 회원사들도 동참한다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출연에 나섰던 것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2014년 전경련이 모금을 주관했던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1억원, 세월호 피해기금으로 15억원을 낸 적이 있어, 기존에 해오던 전경련 주도의 공헌사업으로 간주하고 큰 고민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주목해 볼 부분이 있었다. LS그룹 역시 같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다른 기업 임원들의 증언처럼 재단 출연은 자사 오너와는 관련 없이, 전결(專決) 처리가 가능한 임원진 선에서 마무리됐다는 것을 강조한 점이었다.

안 부사장도 당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에 구자열 LS그룹 회장에 사전 논의나 보고가 없었고, 이광우 LS그룹 부회장의 전결로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증언 곳곳에서 드러났다. 우선 LS그룹은 이전에 전경련이 추진한 공헌사업에 자금을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지시라는 말과 함께 출연을 요청받은 것은 처음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안원형 부사장도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과 세월호 피해기금 출연의 경우에도 기금 목적의 내용이 담긴 공문을 받고 약 1주에서 2주 간 충분한 내부 검토를 거친 뒤 자금을 출연했다고 증언했다.

아무리 당시 전경련 측이 중국 리커창 총리의 방한에 맞춰 MOU(업무협약)를 체결할 문화재단 설립 필요하다며 신속한 자금 출연을 촉구했지만, 이 지시의 시작점이 청와대이며 10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출연금이었다면 오너와의 사전 동의나 보고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구 회장은 자금 출연 요청 당시 해외 출장 등으로 관련 보고를 받을 수 없는 상태도 아니었다.

이에 재판부 역시 “다른 기업 출연 여부가 자금출연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했는데, 미르재단 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못 들었고,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출연을 결정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당시 구자열 회장은 LS전선 회장에서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지 2년 남짓한 시기로, 자금 출연 전년도부터 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 해외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자주 수행했고 덕분에 해외사업 역량 역시 강화했다.

그 외에도 박근혜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과 연구개발 사업을 총괄했던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 민간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청와대 추진 사업에 발을 맞추려 했던 행보도 다수 있었다.

그만큼 청와대 측의 이례적인 자금 출연 요구에 대해 부회장 전결로 마무리 짓도록 했다는 점은 이번 일에 더 이상 최순실 재단과 자사 오너를 엮이지 않게 하기 위한 임원진의 인위적 조치가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의문이 남는 부분은 또 있다. LS그룹은 전경련 측의 두 차례 재단 출연 요청에 매번 할당금액을 낮춰줄 수 있는지 요구했고, 실제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K스포츠재단 출연의 경우 1억원을 낮춘 6억원을 출연한 바 있다.

사실상 청와대가 지정해준 재단 출연 분배금액을 전경련과 LS그룹 팀장급 선에서 전화통화로 1억원이나 삭감했다는 증언은 더 윗선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을 증폭시키기 충분했다. (사진=연합)
그런데 안원형 부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K스포츠재단 출연금 삭감의 경우 LS 홍보팀 허영길 팀장과 전경련의 권순범 팀장의 전화통화로 이뤄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의 전화통화 외에 다른 절차도 없이 1억원을 임의로 삭감할 수 있었다는 설명인데,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당시 권순범 전경련 팀장보다 윗선인 박찬호 전경련 전무 역시 재단 분배금을 깎을 권한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삭감액이 한두푼이 아닌 무려 1억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청와대 지시로 인해 결정된 액수로, ‘더 높은 선’의 특별한 요구가 있었다면 가능할 일을 권순범 팀장과 허영길 팀장의 전화통화 하나로 결정해 1억원이나 삭감했다는 점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안원형 부사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별다른 의문이 없었다”고 증언했지만, LS그룹의 최순실 재단 출연 의혹은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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