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퇴진 강요’했다는 朴, 전달 과정의 오해·왜곡 가능성↑

朴의 CJ그룹 관련 지시사항 전달받은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손경식 CJ그룹 회장과의 전화내용, 휴가 중 받은 전화로 사실과 다른 내용도 언급

朴 CJ그룹 강요미수 혐의, 전달자들의 오해라는 허무한 결론 나오나

불분명하고 상충됐던 손경식 회장의 증언, 위증 가능성 없나

요란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CJ그룹 강요미수 혐의가 전달 과정에서의 오해ㆍ왜곡으로 인한 허무한 결과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 대한 퇴진 강요’로도 잘 알려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강요미수 혐의에 대해, 이 사건의 관련자인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그리고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증언에 나서며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이는 단순한 오해와 과장된 발언에서 비롯된 다소 허무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박근혜(66·구속기소) 전 대통령에 주어진 혐의는 총 20가지로 이중 ‘강요미수’에 대한 공소사실에는 CJ그룹 측에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퇴진을 강요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해당 공소사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CJ그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선 당시인 2012년 6월경 자사 계열의 CJ E&M이 운영하는 TV채널 tvN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송출했다.

이어 2012년 9월, CJ E&M이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를 기획·제작해 당시 야당 대선 유력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취임 이후인 2013년 12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에 대해 역시 CJ그룹 계열의 CJ창업투자가 제작비 등을 투자한 바 있다.

당시 정치권과 언론 안팎에서는 CJ그룹이 좌편향된 문화 콘텐츠를 제작,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과 배치된 행보를 보이며 청와대 심기를 건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이 본보기로 이미경 부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강요했고, CJ그룹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는 내용이 이 혐의 공소사실 전반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한창이었던 지난 2016년 말, 박 전 대통령의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퇴진을 강요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밝혀지자, 여론은 최순실씨가 얼마나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는지 여부만큼이나 이 부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CJ그룹은 엄연한 일반 사기업으로 내부 경영권 문제나 임원 임명 사안은 그룹 내부에서 주주총회나 이사회 결의 등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사기업 경영인의 인사에 관여할 자격은 없었다.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씨의 비선 행위에 동조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권력을 이용해 사기업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하려 했다는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을 법한 사실에 충격과 비난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서는 이 CJ그룹 강요미수 혐의와 관련된 당사자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재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미경 부회장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조원동(62) 전 청와대 경제수석 그리고 조 전 수석으로부터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 요구를 듣고 이를 이 부회장에게 전달한 손경식(79) CJ그룹 회장이 증언대에 섰다.

조원동 전 수석 역시 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CJ그룹 측에 대한 강요미수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이날 재판에서는 CJ그룹 강요미수 혐의와 관련돼 그동안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사실과는 ‘다소 다른’, 사건의 진짜 전말이 밝혀졌다.

‘VIP의 뜻’이라는 말, 있었나 없었나… 엇갈리는 증언

검찰 조사결과와 이날 재판정에서 나온 증인들에 대한 신문내용 등에 따르면, 이 사건은 지난 2013년 7월 4일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청와대에서는 현오석 당시 경제부총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정례보고를 하는 일정이 있었고, 경제부총리의 대통령 정례보고 시 경제수석이 배석하는 것이 관례였던 만큼 조원동 전 수석도 자리에 함께 했다.

정례보고가 끝난 뒤 박 전 대통령은 잠시 조 전 수석에게만 잠시 기다릴 것을 지시했고, 현오석 전 총리 그리고 이들을 수행했던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먼저 집무실을 빠져 나갔다.

예정에 없던 단독면담이 이뤄진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조 전 수석에게 “CJ그룹이 걱정된다”라며 “손경식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에서 물러나고, 이미경 부회장은 CJ그룹 경영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원동 전 수석에게 당시 대통령과 얼굴을 맞댄 채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박 전 대통령은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핵심 요구사항만을 전달했을 뿐이었다.

이에 조 전 수석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CJ그룹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손경식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을 사퇴하게 하려 했고, 이를 자신에게 지시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조 전 수석은 그날 곧바로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손경식 회장 번호로 전화를 걸어 급하게 약속을 잡았고, 두 사람은 다음 날인 2013년 7월 5일 오전 11시경 시청역 인근 플라자호텔 비즈니스센터 내 미팅룸에서 만날 수 있었다.

박근혜(왼쪽) 전 대통령과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사진=연합)
이날 미팅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일상적 안부 인사를 했고, 앞선 7월 1일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영공백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 조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의 전날 지시사항에 대해 전달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 사건 핵심내용에 대한 당사자들의 증언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손경식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당시 조 전 수석으로부터 “VIP의 뜻이니 이미경 부회장은 경영에서 손 떼게 하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여기서 VIP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의미했다.

손 회장은 이날 재판에서도 당시 분명히 조 전 수석으로부터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또 조 전 수석이 “회장님도 대한상의 회장을 사임하고 CJ일에 전념했으면 좋겠다”라며 “VIP의 뜻이니 거스르지 말고 지금은 잠깐 물러났다가 시간이 지난 다음 조용히 복귀하면 된다”라는 말도 했는가라는 검찰 측 질의에, 손 회장은 “그런 말씀도 있었다”라고 답했다.

반면 조 전 수석은 손경식 회장의 검찰 진술내용에 대해 “일부는 맞고, 생략된 부분이 상당히 많다”라고 증언했다.

조 전 수석은 손경식 회장의 기억과는 다르게 당시 VIP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외의 주장을 펼쳤다.

조 전 수석은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어려운 난국에서 손경식 회장님같은 경륜 있으신 분이 경영 일선에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라며 “그러기 위해 대한상의 일은 접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이미경 부회장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고 말씀드렸다”라고 증언했다.

이어 “그 당시 제 스스로 VIP라는 말을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며 “아마도 손 회장께서 이것이 조원동의 뜻이 아닌 청와대의 뜻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은 가지만, 저는 거듭 말하지만 VIP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기억이 엇갈린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사흘 후인 7월 8일, 손경식 회장은 조원동 전 수석의 말대로 대한상의 회장직에서 사임했고 다음 날 CJ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무엇보다 이날 플라자호텔 미팅룸에서의 이야기를 둘러싸고 둘 중 한 사람은 위증을 범한 것이 분명했다.

朴이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우발적으로 말한 것이 ‘강요미수’로 이어졌나

앞서 손경식 회장은 조원동 전 수석과의 플라자호텔 미팅이 끝난 뒤, 곧바로 이미경 부회장에게 VIP의 뜻을 전달했다.

손 회장은 당시 이미경 부회장이 VIP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있겠냐며 당황해 했다. 며칠 뒤인 2013년 7월 28일 이미경 부회장은 손경식 회장에게 조원동 전 수석과 전화통화를 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가 정말 사실인지를 한 번 더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손경식 회장은 “이미경 부회장에게 ‘사퇴했으면 좋겠다’라는 (조원동) 수석의 말을 제가 전했다”라며 “그런데 본인이 그것에 대해 회의하는 태도였고,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확실히 전달해주고 싶어서 제가 통화를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손경식 회장은 조원동 전 수석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당시 조 전 수석은 하계휴가 기간으로 가족들과 야외 나들이를 나간 상태였다.

이날 손 회장은 조 전 수석에게 1시간을 사이에 두고 2차례 전화를 걸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뜻이 사실인지 여부를 거듭 확인했다.

그런데 이때 손경식 회장은 휴대전화의 녹음기능을 실행한 채 조원동 전 수석과 전화통화를 했고, 전화내용을 바로 옆에 서 있던 이미경 부회장에게 들려주기 위해 콘퍼러스콜(Conference call) 기능 버튼을 누른 채 통화를 지속했다.

향후 언론을 통해 공개된 당시 전화녹음 내용에 따르면, 먼저 손 회장은 “저는 VIP께서 영문을 몰라서… 왜 부회장을”이라고 말했고, 조 전 수석은 “제가 그것까지 안다고 해도 말씀 드리기 곤란하다”라고 답했다.

이어 손 회장이 “VIP의 뜻이 확실한 것인가”라고 물었고, 이에 조 전 수석은 다소 짜증 섞인 어조로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통화에서 조 전 수석은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너무 늦으면 진짜 저희가 난리 납니다. 지금도 늦었을지도 모릅니다”라며 “그냥 쉬라는데요.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십니까. 좀 빨리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사까지 안 가셨으면 좋겠는데”라며 ‘수사’라는 다소 협박성으로도 다가올 수 있는 단어까지 섞어가며 말했다.

전화통화 속 조 전 수석은 ‘VIP의 뜻’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대로 플라자호텔 미팅에서 VIP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그의 증언은 위증이 될 수 있었다.

조 전 수석은 당시 전화통화에서 이런 말을 했던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또 손경식 회장이 당시 자신의 말을 듣고 이미경 부회장이 사퇴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취지로 말했다는 점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조 전 수석은 이 말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하며, 휴가 중 손 회장이 2차례나 전화해 집요하게 질문했기 때문에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적절히 섞어서 강한 어조로 말한 것이 오해를 샀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VIP의 뜻이 확실하냐는 질문에 긍정한 점에 대해 조 전 수석은 “그 말을 뱉어놓고 저도 굉장히 당황했다”라고 증언했다.

특히 조 전 수석은 ‘그냥 쉬라’와 ‘수사까지 안 갔으면 한다’ 등의 발언에 대해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한 말이 아니고, 당시 조 전 수석 자신이 우발적으로 과장해 말한 것일 뿐이었고, 이에 상대방인 손경식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은 오해해 받아들였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당시 조원동 전 수석과 손경식 회장의 전화통화 내용은 손 회장 옆에서 두 사람의 전화내용을 듣고 있던 이미경 부회장이 재녹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관련자 진술은 엇갈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경 부회장이 손경식 회장과 조 전 수석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을 때 스피커 기능으로 울리는 전화내용을 몰래 녹음했다는 진술이 있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사진=연합)
또 손 회장이 조 전 수석과의 통화 녹음을 저장한 뒤 그 저장파일을 이미경 부회장의 앞에서 따로 들려줬고 이를 이 부회장이 몰래 녹음한 것이라는 진술도 존재한다. 단지 이미경 부회장이 손경식 회장 몰래 재녹음을 했던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당시 이미경 부회장이 영입했던 CJ 브랜드전략 고문이 검찰에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이미경 부회장은 이후 갑작스럽게 3주간 출근을 하지 못했다.

이미경 부회장은 청와대가 도대체 자신에게 왜 이러는 것인지 이유를 알아보라며 지시했고, 이에 당시 CJ 지주사의 홍보팀과 대관업무 부서 등이 관련 사항에 대해 매일 대책회의를 열었고, 그 결과 청와대가 CJ그룹의 방송·영화 콘텐츠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이 과정에서 이미경 부회장이 재녹음 했던 조원동 전 수석과 손경식 회장의 전화통화 파일은 누군가를 거치고 거쳐서 청와대 민정수석에게까지 전해졌다.

이에 2013년 8월 5일 조원동 전 수석은 당시 홍경식 전 민정수석의 호출로 조사를 받게 됐고, CJ그룹 손경식 회장과 전화통화를 하게 된 경위 등에 대해 상세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홍경식 전 민정수석은 두 사람의 전화통화 내용을 문서화한 녹취록을 가지고 있었고, 조 전 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뜻을 팔고 다녔다는 취지로 다소 힐난조로 몰아붙였다.

이에 조 전 수석은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대통령의 뜻이라고 언급했다고 해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소식은 당연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귀에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약 2주가량이 지난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조 전 수석에게 업무용 휴대폰으로 전화했고, 20분 가량 일반 업무 내용을 지시한 뒤 맨 마지막에 “CJ는 왜 그렇게 처리하셨어요”라며 질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곧바로 조 전 수석은 “그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다시 “그냥 가만히 계세요”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고 증언했다.

만약 조원동 전 경제수석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총수가 구속된 CJ그룹에서 이미경 부회장이 아닌 손경식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는 것을 희망한다는 대통령의 단순한 뜻을 전달자인 조 전 수석이 손 회장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오해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로 인해 ‘대통령의 사기업 인사 개입’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고, 현재의 강요미수 혐의에 대한 재판으로까지 이어졌다는 황당한 의미였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진술내용을 보면 조 전 수석의 증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은 제1회·제3회 검찰조사에서 “조원동 수석에게 이미경 부회장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고 전달한 사실이 있었다. 그러나 조원동 수석에게 이미경 부회장이 편향적으로 문화계를 이끌고 CJ의 독점적인 배급망에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들이 있다는 말을 하면서, 이재현 회장도 구속돼 있는데 이미경 부회장이 CJ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을 한 사실은 있다. 그러나 제가 조원동 수석에게 이미경 부회장을 사퇴시키라거나 손경식 회장을 물러나라고 한 사실은 없다”라고 진술했다.

조원동 전 수석도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미경 부회장이 CJ를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냐는 물음에 “그런 취지로 말씀하신 것이 기억난다”라고 증언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미경 부회장이 ‘물러났으면 좋겠다’와 ‘이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맞다’라는 워딩을 확실히 말한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에도 “구체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라고 증언했다.

정리해 보자면, 단순히 휴가를 방해받아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대통령이 하지도 않았던 발언을 과장해 말한 전화내용이 녹음됐고, 향후 이것이 퍼져서 대통령의 CJ그룹 강요미수 혐의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번복되고 어긋나는 손경식 회장의 기억… 위증 가능성(?)

이날 재판에서 손경식 회장은 사건 핵심내용 곳곳에서 다른 인물들의 기억 그리고 기존 진술내용과는 다른 증언을 하면서 의문을 남겼다.

앞서 언급한 대로 손경식 회장은 조원동 전 경제수석으로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미경 부회장이 물러나기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를 이미경 부회장에 전달했다.

이미경 부회장은 이를 믿을 수 없다며 손경식 회장에 조 전 수석과 전화통화를 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해줄 것을 부탁했고, 2013년 7월 28일 손 회장은 조 전 수석에게 두 차례나 전화통화를 했다.

당시 손경식 회장은 휴대전화에 조 전 수석과 전화통화 중 대화녹음 기능을 실행하고 있었다.

이미경 부회장은 손경식 회장의 전화통화 중 그 내용을 몰래 녹음했거나, 향후 손 회장이 녹음파일을 자신에게 들려줬을 때 역시 이를 몰래 녹음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재판정에서 손경식 회장은 이 부회장의 녹음 경위에 대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우선 손 회장은 “(조원동 전 수석과의 전화통화) 녹음 내용을 이미경 부회장에게 들려준 것인가”라는 검사의 질문의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어진 증인신문에서 손경식 회장은 이미경 부회장에게 당시 녹음 내용을 들려준 것이 아닌, 자신이 조 전 수석과 전화통화로 나눈 ‘이야기의 취지를 요약해 직접 설명’해 준 것이라며 아예 새로운 증언을 해줬다.

이에 검찰 측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다시 질문하자, 손 회장은 이미경 부회장에게 전화 녹음 내용을 들려주지 않았다고 답했다.

손경식 회장은 “이미경 부회장에게 녹음을 들려주지는 않았다”라며 “통화의 취지와 요지를 이야기해 준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런데 만약 손 회장의 말이 맞다면, 이 전화통화 녹음 내용이 파일과 녹취록 형태로 외부에 유출된 부분은 설명할 수 없었다.

손 회장은 조 전 수석과의 통화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녹음파일을 삭제했고, 자신이 이 녹음파일을 누군가에게 전달하지 않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녹음파일이 유출된 것에 “매우 경악스럽게 생각한다”라면서도, 이 통화 내용을 누군가에게 들려준 적은 없었다고 거듭 말했다.

그러나 이미경 부회장이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 따르면, 손경식 회장의 증언과 정반대되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이미경 부회장은 진술서를 통해 “손경식 회장은 본인(이미경)과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녹음된 조원동 수석과의 통화내용을 들려줬고, 당시 본인은 조 수석 통화내용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녹음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통화내용을 재녹음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검찰 측은 이 진술내용을 공개하면서 손경식 회장에 “혹시 기억을 착각한 것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손 회장은 “제가 좀 착각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억에) 자신이 없다”라며 “제가 녹음을 직접 들려주지는 않은 것 같다”라며 말을 흐렸다.

손경식 회장의 기억은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닌 아예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지난 2016년 11월 검찰 진술에서 “조원동 수석과의 통화 녹음파일을 이미경 부회장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미경 부회장에게 들려줬고, 그 녹음파일은 삭제해 더 이상 보관하고 있지 않다”라고 밝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진술서가 법정에서 공개되자, 손 회장은 다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이미경 부회장에게 녹음내용을) 아마 풀(Full)로 다 들려주진 않았을 것”이라며 “너무 오래됐다”라며 자신의 기억력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했다.

손경식 회장의 다른 이들과 어긋나는 기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원동 전 경제수석의 증언 등에 따르면, 두 사람은 분명 2013년 7월 5일 시청역 플라자호텔 비즈니스센터 내 미팅룸에서 만나 이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처음으로 나눴다.

그런데 이날 재판에서 손 회장은 당시 날짜를 7월 5일이 아닌 7월 4일로 기억한다며 상충된 증언을 했다.

손경식 CJ그룹 회장. (사진=연합)
손 회장은 자신 있는 말투로 당시 일을 기억한다며, 7월 4일이 미국 독립기념일로 그날 미국 대사관저에 독립기념 축하 행사 참석에 나서던 길에 조 전 수석을 만난 것이라고 회상했다.

조 전 수석의 기억과 어긋나는 부분인 만큼 손 회장은 미팅 날짜에 관해 집중적으로 추궁 받았지만, 그는 7월 4일 오전에 조 전 수석을 만난 뒤 오후 5시경 미국대사관저 행사에 갔고 그곳에서 캄보디아 장관도 만났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하며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조원동 전 수석은 7월 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마친 뒤 오전 11시에 손경식 회장을 만났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 이후 손 회장의 불분명한 증언을 두고, ‘말 맞추기 실패’ 그리고 ‘기억력 감퇴’ 등 다양한 추측이 나오는 동시에 위증 가능성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증인 선서 전 재판장이 고지를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기억이 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거나 반대로 기억이 나는 것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를 해도 전부 위증이기 때문이다.

손경식 회장의 이날 증언으로 인해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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