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에 “대부업법 이행 못했다”라니… 막 나가는 법원

서울중앙지법 민사부 “○○저축은행 대출 본인확인 절차, 대부업법 충실히 이행 못해(?)” 판시

여신금융거래법·상호저축은행법 적용받는 저축은행 vs 대부업법 적용받는 대부업체

법원, 저축은행과 대부업체가 다른 것 몰랐나(?)

저축은행에 대부업법 규정을 적용해 패소 판결을 내린 법원 재판부에 논란이 일 전망이다. 사진은 이번 사건의 판결을 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국내 유명 저축은행사 중 한 곳인 ○○저축은행과 대출사고 명의도용 피해자 사이의 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법원의 ‘황당한 판결’이 논란이 될 전망이다. 재판부가 대부업체에 해당하지 않고 대부업법의 적용도 받지 않는 ○○저축은행에게 “대부업법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부분은 ○○저축은행 측 패소에 영향을 끼쳤다.

대전광역시에 거주하던 A씨는 지난 2011년경 동생 B씨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게 된다. 신용불량자인 자신을 대신해 A씨의 명의로 은행계좌와 휴대전화를 만들게 해 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A씨는 단지 명의만 빌려 달라는 동생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고, B씨는 그렇게 A씨 명의의 은행계좌와 휴대전화를 개설해 아무런 탈 없이 사용해 왔다.

이로부터 5년이 지난 2016년 말, B씨는 ○○저축은행에 대출상담 문의 전화를 하게 된다. 당시 B씨는 A씨 명의로 마련한 휴대전화로 ○○저축은행과 대출상담을 했고, 이 전화로 본인인증 절차까지 거쳤다.

○○저축은행 측은 B씨로부터 대출에 필요한 관련 서류를 제출받아 심사를 거쳤다. ○○저축은행은 심사 끝에 B씨의 대출 신청을 승인했고, 당일 그에게 990만원의 대출금을 실행했다. 해당 대출금은 역시 B씨가 5년 전 A씨의 명의로 개설한 은행계좌에 송금됐다.

B씨의 대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A씨는 약 한 달 뒤 ○○저축은행 측으로부터 ‘계약서 작성 이행 요청’이라는 제목의 서류가 담긴 우편물을 받았다.

이 서류는 앞서 체결한 대출 계약과 관련해 계약자 본인의 자필서명을 한 뒤 이를 회송하거나, 가까운 ○○저축은행 지점에 방문해 서명한 계약서를 제출해 달라는 취지의 문서였다.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실행한 적이 없었던 A씨는 서류를 받자마자 황당해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A씨는 곧바로 ○○저축은행에 관련 문의를 했고, 동생 B씨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대출을 실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향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B씨는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실행하면서 A씨 명의의 휴대전화와 은행계좌를 사용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아예 A씨의 명의로 대출계약을 체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B씨는 그 과정에서 A씨의 동의를 구하지는 않았다.

특히 B씨는 ○○저축은행이 요청한 대출 심사 관련 서류인 A씨의 신분증과 A씨 명의의 통장 사본, 건강보험자격득실 확인서, 건강·장기요양보험료 납부확인서 등을 도용해 제출했다.

대출을 신청해 대출금을 받아간 이가 A씨가 아닌 B씨라는 사실에 ○○저축은행 측도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대출상담 전화가 걸려와 고객이 자신의 이름을 A씨라고 말했고, 휴대전화 본인인증을 통해 A씨 명의의 전화가 틀림없음을 확인했다.

또 본인 확인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B씨로부터 전부 전달받았기 때문에, 전화로 대출을 신청한 이가 B씨가 아닌 A씨 본인이라고 믿은 채 대출금을 송금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모두를 감쪽같이 속인 B씨에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저축은행으로부터 우편 서류를 받은 지 일주일 후, B씨를 사기 및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B씨는 결국 이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해 여름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B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고, 다시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최근 이 사건에 대한 상고기각 결정을 내리며 그의 형이 확정됐다.

B씨의 법적 처벌로 마무리되는가 싶었던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바로 B씨가 ○○저축은행에서 실행해 편취한 1000여만원의 대출금을 둘러싼 문제였다.

○○저축은행 측은 B씨가 불법으로 대출을 실행하는 과정에 있어 A씨의 책임도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B씨가 대출 심사에 필요한 서류 전부를 자사 측에 제출한 것은 A씨가 이를 알면서도 B씨에 제공했거나, 설령 몰랐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아니면 소지하기 어려운 개인정보가 담긴 자료를 타인에게 전달해 생긴 불상사인 만큼 귀책을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다시 말해 B씨가 A씨의 명의로 은행계좌와 휴대전화를 개설했다면 이는 A씨로부터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기본대리권을 부여받은 증거라는 설명이었다. 때문에 민법 제126조 ‘표현대리’ 법리에 따른 A씨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표현대리 또는 월권대리로도 불리는 민법 제126조 규정은 대리인(B씨)이 권한을 뛰어넘은 법률행위를 했을 때, 그에게 권한을 부여한 당사자(A씨) 역시 해당 법률행위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 측은 A씨가 B씨에게 은행계좌와 휴대전화를 자신의 명의로 개설하게 한 것 자체가 위법행위로 이번 사건에 대한 A씨의 책임은 명백하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A씨가 B씨에게 자신의 명의를 사용해 은행계좌를 개설하게 한 것은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3항 1호의 ‘누구든지 접근매체를 사용함에 있어서 접근매체를 양도하거나 양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법 규정을 위반했을 소지가 있었다.

또 A씨가 B씨에게 자신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한 행위 역시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의 ‘누구든지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해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거나 이를 타인의 통신용으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라는 규정도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저축은행은 이런 A씨의 불법행위로 자사가 B씨에 대출을 실행하는 바람에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는 지적이었다. 때문에 B씨가 자사에 일으킨 대출금 상당의 손해를 A씨가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B씨로부터 대출사고의 피해를 입은 저축은행은 명의도용 피해자인 A씨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사진=연합)
물론 A씨는 ○○저축은행의 주장을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저축은행 측은 자신이 B씨에게 대출 심사에 필요한 자료를 전달했다고 하지만, 이 사건은 B씨가 자신을 기망해 전적으로 혼자 꾸민 일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그는 자신도 B씨의 명의 도용에 따른 피해자인 만큼, ○○저축은행에 대출금을 배상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저축은행 측은 A씨의 주장과는 다르게 B씨 이번 일을 혼자 무단으로 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며, 그의 행위는 A씨로부터 대리권을 수여받아 이뤄진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양측의 입장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소송으로까지 번지게 됐다. 이 사건의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재판부는 최근 ○○저축은행 측의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법원의 황당한 판결 내용이 드러나게 됐다.

A씨에 불법행위에 대한 ‘예견 가능성’ 없었다

대법원이 지난 2007년 7월 13일 선고한 판결(2005다21821)과 지난 2015년 1월 15일 선고한 판결(2012다84707) 내용 등에 따르면, 전자금융거래법상 명의를 양도한 은행계좌를 이뤄진 전자금융거래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명의양도인에게 과실에 따른 방조 및 이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이는 은행계좌 양도 당시의 구체적 사정에 기초에 이를 통해 이뤄지는 개별적 거래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점 그리고 은행계좌를 이용하게 함으로써 불법행위를 용의하게 한다는 것을 ‘명의양도인이 예견할 수 있는 점’ 등 은행계좌의 양도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예견 가능성은 명의양도인이 은행계좌를 양도하게 된 목적 및 경위, 양도에 따른 대가나 이익의 존재 여부, 양수인과 양도인의 관계, 은행계좌 이용 상황에 대한 명의양도인의 확인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전자금융거래법뿐만 아니라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에 대한 판단에서도 유사하게 적용해 볼 수 있다.

전기통신역무를 매개로 이뤄진 개별적인 거래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 전기통신역무를 타인의 통신용으로 제공한 명의자에게 손해배상을 지우기 위해서는 명의양도에 따른 휴대전화 개통 및 사용을 하게 함으로써 그 불법행위를 용의하게 한다는 점을 명의양도인이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예견 가능성 역시 타인에게 명의를 제공하게 된 목적 및 경위, 대가나 이익의 존재 여부, 휴대전화 이용에 따른 명의양도인의 확인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저축은행과 A씨와의 소송 재판을 맡은 법원은 최근 이 사건 판결을 내리며, A씨에게서 ‘예견 가능성’을 찾아볼 수 없다며 ○○저축은행 측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A씨가 B씨에게 은행통장과 휴대전화를 자신의 명의로 개설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사실이지만, 형과 동생이라는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신용불량자였던 B씨의 사정으로 A씨가 자신의 명의를 양도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A씨가 명의를 양도하며 B씨로부터 특별한 금전적 대가를 취득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B씨가 A씨 명의로 개설한 은행통장과 휴대전화가 향후 대출사기에 악용될 것이라는 점을 A씨가 예견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또 재판부는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 법리에 따른 A씨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B씨가 A씨에 대한 기본대리권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물론 A씨가 B씨에게 자신의 명의로 은행통장과 휴대전화를 교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교부행위만으로 B씨에게 여신거래약정 체결에 관한 기본대리권까지 수여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입장이었다.

대법원의 지난 2002년 6월 28일 선고한 판결(2001다49814) 내용에 따르면, 대리인(B씨)이 대리행위의 표시를 하지 않고 단지 당사자(A씨)의 성명 등을 모용(冒用)해 자신이 마치 당사자인 것처럼 기망한 채 본인 명의로 직접 법률행위를 했다면 대리인으로서의 자격이 생기지 않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표현대리가 이뤄질 수 없다.

A씨는 B씨가 자신을 기망한 채 명의를 도용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고, A씨의 이런 주장을 반박할 만한 근거 또한 없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대법원 판례에 비춰 A씨와 B씨 사이 표현대리 법리가 성립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저축은행에 ‘대부업법’ 운운했던 재판부… 혼동인가 광의의 해석인가

재판부는 만약 A씨가 B씨에게 자신의 명의로 은행통장과 휴대전화를 교부한 행위가 기본대리권 수여로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축은행 측의 과실이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 제6조 제1항을 언급했다.

○○저축은행은 B씨에 대한 대출 실행 과정에서 공인인증서에 의한 본인인증 또는 전자서명방식 없이 휴대전화 인증 방식만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재판부는 이 점에 있어 “당시 ○○저축은행 측이 대부업법 제6조 제1항이 정한 본인확인절차를 충분히 이행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 부분 판시는 재판부가 ‘저축은행을 대부업체로 착각한 채로 판결’을 내렸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사실 저축은행이 대출을 주요 업무로 한다는 이미지로 인해 대부업체라는 인식이 있지만, 엄연히 대부업체와는 구분된다.

이는 관계 법령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저축은행은 상호저축은행법과 여신전문금융업법의 적용을 받는 반면, 대부업체들은 대부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때문에 이 사건 재판부가 ○○저축은행이 대부업법 제6조 제1항을 법 규정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했다고 판시한 부분은 판단의 적절성에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저축은행 측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재판부가 자신들에게 대부업법을 적용한 점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희 회사는 저축은행법상 인가를 받은 여신금융기관으로 대부업법 상 대부업자가 아니다”라며 “대부업자를 대상으로 규율하는 조문인 대부업법 제6조 제1항은 적용받을 수 없고, 재판부의 판단은 대부업법을 저축은행에 무리하게 적용한 결과라고 생각된다”라고 설명했다.

저축은행은 대부업체와 다르다. 때문에 저축은행은 대부업법을 적용받지 않고, 상호저축은행법과 여신전문금융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사진=연합)
설령 재판부가 대부업법 적용을 광의적으로 해석했다고 할지라도, 대부업법 내에 다른 법률과의 관계에 있어 상호저축은행법 등 저축은행과 관련된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어 이 역시 납득할 수 없다는 목소리다.

특히 재판부가 ○○저축은행이 B씨에 대한 대출 실행 과정에서 전자서명방식 없이 휴대전화 인증 방식만으로 계약을 체결한 점을 들어 본인확인절차를 충분히 이행하지 못했다고 판시한 부분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만약 고객이 인터넷 뱅킹을 통해 대출을 신청했다면 공인인증서에 의한 본인인증 또는 전자서명방식을 통한 본인확인이 필요하다. 다만 B씨는 엄연히 전화로 대출상담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휴대전화 인증 방식만으로 본인확인을 하더라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재판부의 논란이 남을 수밖에 없는 판단은 이 사건 재판에서 ○○저축은행의 패소를 일정 부분 이끈 것은 분명했다.

○○저축은행은 이번 판결로 인해 억울하지만 더욱 논란을 키우고 싶지 않고, A씨에게 더 이상 피해를 주고 싶지 않기에 항소를 포기한 상태다.

그러나 재판부가 저축은행에 왜 대부업법을 적용해 판결을 내렸는지, 과연 이 판결이 법적으로 흠결이 없었는지 여부에 대해 강한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만큼, 본지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한 추가 취재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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