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B코리아, 국내 대형 은행 상대 200억 원대 소송 제기

지난해 2월, 스위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엔지니어링 기업 ABB(에이비비)의 한국 법인 ABB코리아에서 대규모 횡령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를 일으킨 사람은 당사의 재무팀 임원이었던 오 모씨로, 그는 지난 2015년 2월부터 2년간 자금담당 업무를 하면서 무려 73회에 걸쳐 회삿돈을 개인통장이나 별도 계좌로 빼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ABB 측이 발표한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도피 중인 오씨가 유용한 자금은 1억 300만 달러(한화 1159억 590만 원)에 이른다.

무려 1억 달러 이상의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된 ABB코리아는 오씨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한편, 그가 유용한 자금 가운데 200억 원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소송을 둘러싸고 일부 잡음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ABB코리아에서 횡령사건을 일으킨 오씨는 지난 2016년 ○○은행에서 공문서를 위조해 200억 원을 대출했고, 다음해인 2017년 2월 그 돈을 가지고 홍콩으로 도주했다. 이에 ABB코리아는 ○○은행을 상대로 올해 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오씨가 ○○은행으로부터 200억 원 대출한 뒤, 이를 횡령해 ABB코리아는 일단 해당 200억 원을 ○○은행에 상환했다.

그 뒤 200억 원 상당의 재산상 손실을 입게 된 ABB코리아는 자사가 ○○은행에 변제했던 금액에 대한 채무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고, ○○은행이 상환받은 200억 원이 부당이득이라는 것이 소송의 취지였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6민사부 심리로 열린 해당 재판에서 ABB코리아 측은 "오씨가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200억 원은 회사의 뜻과는 전혀 무관한 돈이었고, 심지어 서류를 위조해서 부당히 대출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라며 "비록 ABB코리아가 ○○은행에 대출금 200억 원을 변제했지만 그것은 (오 씨의 횡령 사실에 대한)이의 제기를 유보하고 변제를 한 것이고, 그래서 그것에 대한 부당이득금을 청구하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에 ○○은행 측은 ABB코리아 측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대출이 정상적으로 이뤄졌고, 오씨가 과거부터 ○○은행과 거래를 해 온만큼 그가 부정하게 대출을 실행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입장이었다. 다시 말해 이번 대출 횡령사건에서 ○○은행의 과실과 고의가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은행 측 소송 대리인은 "오래 전부터 ABB코리아와 ○○은행 사이에서는 이 사건 대출 이전부터 동일한 대출이 이뤄져 왔고, 그 대출은 정상적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그래서 유효한 대출이었다"라며 "설령 그렇지 않았더라도 ○○은행 측에 ‘책임 부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실 ○○은행 측이 언급한 ‘책임 부담’은 1차적으로는 ABB코리아에 있었다. ABB코리아는 오씨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뿐만 아니라 그가 이런 엄청난 횡령 사건을 저지르지 않도록 직원 윤리교육을 철저히 할 의무가 있었다. 오히려 ABB코리아 측이 임원 급이기 때문에 관리 감독 및 윤리교육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했다.

○○은행 측은 이번 사건 소송에 대해 묻는 본지의 취재에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인 단계로,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단지 ○○은행 소송 대리인은 재판 당시 "당시 횡령했던 ABB 직원 오 모씨는 이전부터 계속 거래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이 자금 관리 담당인데 당연히 믿고 대출을 실행해준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본지는 ○○은행을 제외한 다른 은행에 이번 사건에 있어 ○○은행의 책임이 명확히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알아봤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 측의 억울한 부분이 많다며 이번 사건에 있어 ABB코리아가 ○○은행 측에 큰 책임 소지를 묻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 은행 관계자는 “오씨라는 사람이 ABB코리아에 재무 담당 임원이고 ABB코리아가 ○○은행과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대출 거래를 한 적이 있었다면 오씨가 문제가 된 200억 원을 대출할 때 철저히 확인 절차를 거친다는 것이 오히려 고객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오씨는 아마 작정을 하고 공문서를 위조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렇게 마음먹고 공문서를 조작한다면 거래 내역이 아예 없거나, 드문 고객이 아닌 이상 해당 공문서의 진위 여부를 은행이 파악하기는 힘들다. 은행이 공문서 조작 여부를 감별하는 수사기관도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ABB코리아의 이번 소송이 자사 책임을 뒤로 한 ‘남탓하기’로 애꿎은 소송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물론 ABB코리아 측도 이번 사건에 있어 금전적 손실과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믿었던 직원의 부정 행위로 직원들에 대한 신뢰마저도 흔들릴 지경에 놓인 것도 사실이다.

충분히 ○○은행이 200억 원이라는 거액을 오씨에게 대출하면서 보다 철저히 심사 과정을 거쳤다면 이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만큼 ○○은행에게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의도가 보이고 있다.

ABB코리아 관계자는 "경찰 등 관련 당국에 횡령 직원과 관련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 중이며, 내부적으로 본사에서 매년 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다. 회사 자체적으로 관리 감독에 있어 미진한 부분이 있었는지 검토에 들어가고 있다"며 이번 소송 건과 관련해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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