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가 “나가”라고 할 때 필요한 ‘젠트리피케이션 꿀팁’ 만들어

그룹 ‘하마들’ 구본기 대표

국내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예방ㆍ대응 매뉴얼’ 을 만든 청년들이 있다. 그룹 ‘하마들’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한마디로 ‘둥지 내 몰림’ 현상이다. 무언가 쫓겨나는 상황이 그려질 것이다. 임차인들이 비싼 임대료를 감당 못해 쫓겨나는 현상뿐 아니라, 특정 기업, 브랜드 위주의 사회화를 말한다.

구로역 부근 한 카페에서 ‘하마들’의 구본기 대표를 만났다. 임차 상인들은 복잡한 법을 다 알기 힘들다. 구 대표는 건물주와의 마찰을 대비해, ‘젠트리피케이션 예방ㆍ대응 매뉴얼’을 발간 했다.

◇우리는 ‘하마’ 입니다.

구본기 대표는 팀이름을 ‘하마들’로 정한 데에 대해 나름의 이유와 배경을 설명했다.

“하마는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본능이 매우 강한 동물이다. 우리의 터전을 지키자는 의미에서 ‘하마들’이라고 정했다.”

지난해 쫓겨날 위기에 처했던 공씨책방을 사랑하는 단골들이 모였고, 주말마다 모여 대응책을 논의한 게 계기가 됐다고 구 대표는 설명했다.

“저를 포함, 출판사 유음 정현석(23) 대표, 용산 해방촌 둘셋 디자인스튜디오 디자이너 방정인(25), 홍윤희(25), 지하나(18) 유음 디자이너, 방정인(25), 최창근(26)이 멤버다. 모두 젠트리피케이션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공씨책방이 임대료 때문에 지하로 내몰리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특히 디자이너 ‘둘셋’은 스튜디오에서 쫓겨날 뻔했다. 3개월 이상 월세를 못내면 임대인은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건물주는 이를 악용해 디자이너 둘셋의 월세계좌를 막아버렸다.”

구 대표는 그동안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했다. 상위 10%의 부자들이 아닌, 90%의 보통 사람들을 위한 금융, 보험, 부동산, 생활법률 컨설팅을 해왔다. 그리고 꾸준히 임대차 갈등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연구했다.

◇ ‘하마들’의 첫 작품, ‘젠트리피케이션 예방ㆍ대응 매뉴얼’

‘하마들’은 지난해 ‘공씨책방’을 도우면서 만났다. ‘헌책 교보문고’를 만들겠다며 광화문에 터를 잡았던 공씨책방은 서울시가 지정한 미래문화유산임에도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었다. 새로 바뀐 건물주가 130만원의 월세를 300만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화려해진 도시는 46년 된 책방을 지하로 밀어냈다.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공씨책방’을 아끼는 사람들이 모였다. ‘공씨책방’이 이전에 출간했던 계간지 ‘옛책사랑’을 복간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유음은 ‘옛책사랑’을 복간해 첫 출판물로 내놨다. 두 번째 출판물은 ‘젤리와 만년필’이다. 고양이를 임차상인, 세입자를 상징하는 문학작품이다. 하마들이 발간한 ‘젠트리피케이션 예방ㆍ대응 매뉴얼’은 유음의 세 번째 출판물이다. 매뉴얼 발간을 계기로 전국 임차상인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고 있다.

구 대표는 매뉴얼을 만든 계기에 대해 “지난해 건물주인 가수 리쌍과 세입자인 ‘우장창창’ 사장 서윤수씨 간에 이어진 분쟁에 참여했다”면서 “서씨를 도우면서 상인들이 분쟁 발생 시 잘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담아 한 장짜리 전단을 만들어보면 좋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 임차 상인의 피부에 와닿아야 진짜 매뉴얼

‘임차인이 법률 공부를 하기 어렵다면 법률을 잘 아는 누군가가 젠트리피케이션(둥지내몰림) 각 상황별 대응법을 임차인에게 안내해주자’

매뉴얼 전면에 적힌 문구다. ‘젠트리피케이션 예방ㆍ대응 매뉴얼’에는 ‘ “다음 번 계약갱신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권리금을 회수하는 방법’, ‘월세를 “억” 소리 나게 올려달라고 했을 때’ 등 상황별 대응 방법이 이해하기 쉽게 실려 있다.

매뉴얼은 7단 양면 접지(접히는 종이) 형태로 발간했다.

구 대표는 “책이나 잡지가 아닌 팜플렛 형태로 발간했다. 생계에 쫓겨 바쁜 상인들이 언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데 2016년 9월 경주 지진 당시 네티즌들이 언급한 일본 ‘도쿄방재’의 지진대응ㆍ대피매뉴얼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어려운 법률용어는 최대한 쉬운말로 풀어썼고, 환산보증금 계산식은 초등학생도 계산 할 수 있도록 도식화했다”고 밝혔다. 또한 각 상황별로 상가법 근거조항과 자문기관의 정보를 넣었다.”

구 대표는 최근 이태원 등에서 장사하는 외국인을 위한 영문판을 기획했다. 외국인은 국내 법과 한국어가 낯설어 건물주의 말 한마디에 제대로 대응도 못해보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지자체를 설득해 매뉴얼을 최대한 많은 상인에게 전하고 싶다”며 “공씨책방 사장님이 이 매뉴얼을 봤다면 일이 그 지경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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