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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직장인 5명의 직설’

“취지가 좋아도 근로현장 여건 무시한 탁상행정”
  • 300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는 올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 도입이 의무화됐다. (연합)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으로 ‘주 52시간 근무제’ 시대가 열렸다. 지난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체부터 선제적으로 적용된 새로운 제도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각 업계에서 일하는 5명의 직장인들을 만나 제도적인 문제, 법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실제 피부로 느끼는 근로자들의 생생한 ‘워라밸’의 변화와 솔직담백한 근로현장의 이야기를 모았다. 기사는 좌담 형식으로 꾸몄으며, 인터뷰 대상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익명으로 처리한다.

기자 (이하 기자) : 지난 10월 23일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분과 회의에서 11월까지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된 실행방안과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정책을 확고하게 밀어붙이는 인상이다. 실제 피부로 이런 조치들을 느끼고 있는가?

A모씨 (대기업 사무직) : 올해 1월 입사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기 시작한 7월까지의 삶과 지금의 삶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질 만큼 크다. 우리 회사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이 강제된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야근이 확 줄어들었다. 야근이 확 줄어들고 느끼는 건 ‘아, 야근 진짜 쓸모없는 짓이었네’라는 것이었다. 항상 과장님들이 야근을 하면서 회사를 지키는 당연한 문화였는데 지금 과장님들은 강제적으로 칼퇴를 한다. 회사가 아주 잘 돌아간다. 전혀 문제가 없다. 정말 왜 여태껏 야근을 했나 싶을 정도다. 만약에 야근을 하지 않아서 회사가 어려워지고 문제가 생긴다면 야근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회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만 돌아간다(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와 닿는 부분은 눈치 안보고 칼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에는 과장님들이 다 앉아있고 퇴근시간이 지나도 ‘나가야 돼 말아야 돼’ 하면서 쓸데없이 초과 근무를 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주 당당하게 퇴근할 수 있다. 정말 이게 제일 좋다. 끝나고 운동이나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건 덤이다. 현 정권에 대해 아주 좋지 않은 마음을 갖고 있는데, 이 정책만큼은 아주 마음에 든다(웃음).

주 60시간 근무가 불가피한 경우도 잦아

B모씨 (중견그룹 패션 매니저) : 우리 회사의 구조가 상당히 복잡하다. 그래서 회사 안의 사정들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 주 52시간은 먼 나라의 이야기다. 우리 회사는 직원이 100명 남짓한 회사다. 그래서 당장 주 52시간이 적용되는 곳은 아니다. 그리고 부서별로 정규직이 보편화된 곳이 있고, 파견직이 보통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경우엔 주 52시간이 향후에 적용된다고 해도 근로자별로 따지려면 복잡할 것 같다. 아무튼 내 업무의 특성상 바쁠 때는 정말 야근이 잦다. 밤 11시는 기본이라서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 건 능사다. 그럼 주 60시간을 일하는 거다. 패션 관련 업무를 맡다 보니 행사가 있으면 근무시간은 당연히 초과될 수밖에 없다. 행사 자체가 퇴근 시간 이후에 열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행사 시간에 맞춰서 출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전에 도착해서 미리 할 일들을 열심히 해놔야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주 52시간 정책이 정말 현실적이지 않다. 그리고 행사가 주말에 열리는 경우도 잦다. 그럼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일해야 한다. 주 52시간 정도는 넉넉히 초과한다.

  •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주당 최대법정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됐다.
C모씨 (대형 병원 간호사) : 나는 간호사로 일하기 때문에 보건업종으로 분류돼 주 52시간 예외를 적용받는다. 그런데 우리 병원은 주 52시간을 장려하고 권장하는 분위기다. 만약에 주 52시간 근무가 넘으면 인사팀에서 메일이 온다. 다음주에는 근로시간을 조정해서 한 달 평균 근로시간에서 주 52시간을 맞추라는 식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런 일률적인 노동시간 적용은 충분한 인력이 전제됐을 때나 가능하다.

D모씨 (대학병원 행정직) : 대형 병원에 일하기 때문에 주 52시간 적용을 받는다. 의료진이 아닌 행정직은 당연히 주 52시간을 적용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의료진만큼 중요한 행정직에 대한 처우가 매우 열악하다. 특례업종에 끼워 맞춰 따라가는 식의 대우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우리는 정해진 퇴근 시간이 5시 반이다. 그런데 7시부터 야근수당이 적용된다. 간호사의 3교대를 기준으로 7시로 정했기 때문이다.

E모씨 (대학교 석사 과정) : 나는 기타소득을 올리는 사람으로서 애초에 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다. 나는 거의 하루에 12시간씩 주 60~70시간을 일한다. 주말에도 나가기 때문에 사실상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돈도 최저시급에 훨씬 못 미치게 받는다. 일반적으로 대학원 석사를 하면 보통 60만~70만원을 받는다. 박사는 한 달에 약 110만원 정도다. 하는 일은 연구와 토론, 공부지만 논문도 읽고 실험도 해야 하고 교수들의 뒷일도 다 봐야 한다. 쉽게 말해 잡일이 정말 많다. 교수들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건 내 일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야 한다. 교수들은 ‘절대 갑’의 위치에 있으니까. 교수에게 잘 보이지 못하면 학위를 따지 못한다. 내가 지금 박사학위만 땄으면 이 업계 쪽의 불합리를 다 까발릴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아직은 조심스럽다.

기자 : 정말 다양한 목소리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정책을 일괄적으로 시행하기 전에 여러 업계의 현실을 들어보고 정책을 입안하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그 부분을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 같다. 한편 반대로 ‘주 52시간 안 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나? 오히려 기본급이 적어져서 싫고 일은 일대로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A모씨 : 난 사실 철저하게 주 52시간을 회사에서 지켜주니까 좋다. 내가 제조업 계열의 회사지만 사무직이라서 좋은 점만 말했지만, 일반 생산직 노동자들은 불만이 많다.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같은 경우에는 주 52시간 규정이 없을 때는 늦게까지 일을 해서 돈을 더 받으니까 좋았다는 말들이 나온다. 그들에겐 ‘워라밸’보다 돈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조금이라도 더 버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니까. 공장은 특수하다. 52시간 적용이 되면 공장이 멈추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근데 52시간을 넘으면 일을 할 수 없으니 애매한 상황이 생긴다. 52시간 넘게 일을 시켜서 제재를 받기 싫은 회사는 생산직도 52시간을 적용한다. 생산직 근로자에게도 일괄적용은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현장에서의 불만의 목소리도 상당하다. 특히 임금이 적어지는 부분에서 말이다.

  •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세운홀에서 열린 '워라밸 시대, 문화예술교육을 말하다' 포럼에서 정민룡 광주북구문화의집 관장이 '문화예술교육, 개인여가에서 사회적 여가를 위해 - 문화의집'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연합)
초과근무 하고도 수당 못 받는 상황

B모씨 : 나중에 주 52시간 근무제를 모든 업종에 일괄 적용하면 정말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가 아는 동종업계에 다니는 대기업 근로자 동료는 주 52시간 적용 사업장이다. 그래서 주 52시간을 지키려고 조정을 하긴 한다고 한다. 그런데 초과근무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하고, 근무 외 수당도 지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린 주 52시간 지키니까 근무 외 수당은 나몰라라’라는 식이라는 것 같더라. 업종 특성상 야근은 자연스럽다. 이걸 그대로 적용하기엔 상당한 무리가 있다.

C모씨 : 한 사례로 내가 주 52시간을 더 일한 주가 있었다. 그래서 다음주에 적게 일했는데 그만큼 다른 사람이 내 업무 분량을 고스란히 가져가야 했다. 어차피 전체적인 파이로 보면 100에 수렴하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해보니까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 원래는 4명이 하던 야간 근무가 주 52시간이라는 명목 아래 3명이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럼 정말 힘들다. 추가적인 인력 보강 없이 탁상공론식의 행정은 문제가 있다. 성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 같다.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듣고 천천히 진행했으면 좋겠다.

D모씨 :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기 직전에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갑자기 행정직 직원들을 불러서 병원의 사정을 설명하더니 주 52시간 합의 회의를 주최한 거다. 그런데 문제는 인사팀장이 노사 대표로 추대됐고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자리였다. 이것도 나는 듣지 못했다. 총 4번에 걸친 회의 중에서 한번 언급된 내용이라더라. 그래서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노사 대표의 결정대로 자발적인 주 52시간 예외 근로자가 됐다. 내용인즉슨 이대로 유지하면 임금도 낮아지지 않고 인력 수혈을 안 해도 되니 모두에게 ‘윈윈’이라는 내용이었다. 특수 분야에서의 임금이 너무 적은 직종은 52시간을 지키면 기본급이 정말 적다. ‘그래서 너희는 추가근무가 꼭 필요해’라는 논리로 세뇌를 강요했다. 행정직에 대한 언급도 하나도 없었고 결국 보건직과 뭉뚱그려서 처리됐다. 노조위원장이 사측과 동의했으니 이대로 가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였다. 노무사도 대동해서 우리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도 당당히 드러내더라.

기자 : 여러분은 현장에서 주 52시간 제도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A모씨 : 나는 사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실시되고 나서 모든 업무를 시간 안에 처리하기 위해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정말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 시간 안에 마무리하기 위해서 딴짓을 안 하게 됐다. 여기서 나를 제외한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게 그렇게 좋은 제도만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회사의 생산직 근로자들도 그렇고 패션업이나 병원,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까지 들어보니 문제가 오히려 더 많을 수 있는 제도라는 생각도 든다. 일괄 적용 전에 꼭 정책 입안자들이 현장을 충분히 조사해야 할 것 같다.

대학원생들은 주 52시간 근무제의 사각지대

E모씨 : 우리의 업무 특성상 연구에 연구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과제 수행을 위해 또 다른 과제를 한다. 과제의 연속이 되면, 그것을 학문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연속적인 실험 속에서 다치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근로자가 아니라서 4대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산재보험도 당연히 없고 실험을 하다가 다쳐도 모두 자비로 치료해야 한다. 공대 실험은 특히 위험한 것이 많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의 안전은 무차별적으로 노출돼 있다고 봐도 된다. 우리도 근로를 하는 근로자다. 우리가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근로자로서의 법적 자격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법이 생겨도 현실적으로 적용되기 쉽지 않고 바로 바뀌지 않을 것도 알지만 제도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거라고 본다. 정부에서 항시 감사하는 것도 아니고, 교수가 절대 갑인 위치에서 법 위에 군림하는 교수의 말 한마디가 더 무서운 현실은 똑같겠지만 제도 변화를 통해 그런 부조리가 점점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B모씨 : 직업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는 게 가능한 직군, 그렇지 않은 직군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다. 정말 현대사회에 수많은 직업의 특성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법은 보여주기식이다. 특례업종 기준도 모호하다. 운송업도 특례업종이던데 고정된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기사는 또 예외다. 그래서 지난 여름에 버스기사 수요 대란이 일어났던 걸로 기억한다. 근로자의 삶에 밀접하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는 조금 더 세밀하고 차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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