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병역특례 현실과 이상

과거 수많은 콩쿠르대회 상위 입상자 병역특례, 현재 기준 엄격해 소수자만 해당 예술인 병역특례 어려워져…병역과 음악 활동 연계해 재능 살릴 제도 요구돼

국가대표 축구선수 장현수의 대체복무 관련 공문서위조가 사실로 드러났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은 장현수가 최소한의 병역이행의 의무를 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를 향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관련 국민청원만 10여 개가 넘게 등록되면서 ‘병역특례’ 이슈가 떠올랐다. 이 사건으로 장현수는 국가대표 자격을 영구적으로 박탈당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병역특례’하면 스포츠 선수들이 대표적인 수혜대상자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병역특례 대상자는 예술인들에게도 적용된다. 국제 콩쿠르대회에서 2위 이내에 입상하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다. 국제대회가 없는 국악대회 등에서는 국내대회이기 때문에 1위에 입상하면 병역특례를 받는다. 예술계의 병역특례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본지는 예술계도 스포츠계처럼 병역비리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지, 병역특례에 대한 예술계의 입장은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국회에서 예술인 병역비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연합)

심사위원과 참여자 간 ‘짬짜미’ 어려워져

국제 콩쿨대회는 여러 종류로 수십 개의 대회가 열린다. 과거에는 국제 콩쿠르대회에만 2위 이내로 입상하면 병역특례가 주어졌다. 스포츠 분야의 병역특례가 여러 차례 개정된 것같이 예술계도 수차례 개정을 통해 병역특례가 주어지는 콩쿠르대회도 대폭 축소됐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쇼팽콩쿠르, 차이콥스키콩쿠르 등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국제콩쿠르대회다. 과거에는 수많은 콩쿠르대회에 2위 이내로 입상하면 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콩쿠르대회에서도 병역특례 대상자가 많이 나왔다.

과거 병역특례에 해당하는 중소규모의 콩쿠르대회에 입상한 A씨를 만났다. 그는 어린 나이에 대회에 입상하여 이른 시기에 병역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100여 개의 콩쿠르에서도 중위권 수준의 대회에서 입상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대회는 병역특례가 주어지는 대회가 아니다. 이젠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초대형 규모의 콩쿠르에서 입상해야만 병역 면제를 받는다.

병역특례 대상자였던 A씨는 군에 입대할 나이 즈음에 법이 개정되면서 입대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A씨는 “내가 아주 어린 나이에 콩쿠르에 입상했는데 처음엔 군면제가 되는 대회가 맞았다”며 “나중에 법이 개정되면서 그런 혜택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군 입대를 미루거나 면제받을 수 있는 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냥 입대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병역특례가 되는 콩쿨대회의 기준이 바뀌면서 예술계에 있는 남자들은 상당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과거 병역특례가 주어지는 중소규모 콩쿠르대회에서의 수상과 관련한 심사위원과 참여자 간의 ‘짬짜미’가 있을 수 있을까. 중소규모 콩쿠르대회에서 입상한 A씨는 “과거엔 그런 일들이 종종 있었다고 전해 듣긴 했다”며 “짬짜미도 줄을 잘 서고 인맥을 통해야만 가능한데, 그런 일들이 암묵적으로 행해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A씨가 직접 콩쿠르입상 비리를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뒤에서 굉장히 은밀하게 행해지는 것이기에 그럴 가능성도 작지 않다는 것이다. A씨는 “그런 이야기를 원한다면 심사위원을 접촉해보라”고 말했다. 그는 대개 심사위원들은 유럽인들이어서 접촉하기도 어렵고 이런 질문엔 절대적으로 함구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자라 음악을 전공한 최효명(28) 씨도 “쇼팽, 차이콥스키, 영국 왕실음악원, 퀸엘리자베스 등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콩쿠르는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 대회는 3, 4차에 걸쳐 오디션을 보고 심사위원도 15명으로 많고,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고 있어 그런 비리가 쉽게 일어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과거 관중들에게 열려있지 않은 중소규모의 콩쿠르는 1차 예선만 거치면 본선무대에 오를 수 있었고, 적은 심사위원들이 평가하기에 주관적인 심사기준이 들어갈 수는 있다고 봤다. S급의 콩쿠르대회에서는 수천 명이 납득할 만한 실력을 가지지 못한다면 입상은 거의 불가능한 구조라는 것이다.

A씨도 병역법이 개정되고부터 예술계 병역비리가 스포츠분야만큼 자주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콩쿠르가 프랑스에서 열리면 대부분 프랑스인이 1등을 수상한다”며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는 관행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경기는 기록으로 승부를 객관적으로 가를 수 있지만 음악이라는 것은 주관이 99% 이상을 차지한다. 그렇다보니 어떠한 평가가 내려져도 수상에 대한 이이를 제기할 수 없다. 물론 그것이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학술지 등에서 비판하는 정도에서 끝난다. 아주 나쁘게 말하면 합법적으로 승부조작이 가능한 것이다. 스포츠에 비해 콩쿠르 등수 조정이 용이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과거 차이콥스키 콩쿠르대회의 스폰서가 일본기업인 도요타자동차였다. 이 대회에서는 2등을 일본인이 차지했다. 하지만 당시 ‘저 일본인이 2등을 할만한 실력인가?’라는 논란이 이어졌다고 한다. 국제콩쿠르대회는 주최국과 스폰서의 힘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심사위원들이 뒷돈을 받고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관행처럼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과거 일본인이 2위 입상을 한 것을 두고 A씨는 “스폰서가 뒷돈을 준 것이 아니라 주최측에서 알아서 해준 것이라고 본다”며 “나중에 우리 대회도 잘 챙겨줘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공연 시작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세종문화회관 제공)

S급 대형대회만 병역특례… ‘실력’ 우선, ‘커넥션’ 드물어

이제 콩쿠르대회는 소위 말하는 S급 대형대회만 병역특례가 주어진다. 원래 그런 대회는 전세계에서 ‘음악천재’들이 모이기 때문에 예선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실력을 가진 음악인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런 대회에서 입상이라도 하면 ‘가문의 영광’, ‘나라의 자랑’으로 칭송받는다. 음악인으로서의 명예가 한껏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은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S급 콩쿠르대회에 입상하는 것은 올림픽대회 금메달보다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S급 콩쿠르대회는 4년에 한 번씩 개최되며 나이제한도 있다. 젊은 시절 2∼3번 정도밖에 나갈 수 없는 대회가 S급 콩쿠르대회다. 그렇다보니 병역특례가 주어지는 ‘입상’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에 가까워진 것으로 봐도 무리는 아니라는 것이 음악계의 입장이다.

해외에서 유학을 다녀온 B씨는 “콩쿠르를 통해 면제받을 수 있는 기준이 대단히 높아졌다”며 “다 군대를 가야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음악인들에게 군대 2년은 엄청난 치명타다. 2년이란 시간동안 악기 연습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로 손이 굳는다고 한다. B씨는 “확실히 2년을 쉬면 음악적인 피지컬이 확 떨어진다. 다시 연습을 한다고 해도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는다”며 본 실력을 회복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음악인들에게 20대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그 시기에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음악인생이 결정된다. 그 시기 연습량을 통한 기본기를 통해 관록과 경험을 녹여내는 것이다. 이어 그는 “그래서 군대를 최대한 미루거나 병역특례를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고 말했다.

최효명 씨는 “실제로 남자들은 군대에 가면 음악인생에서 엄청난 손실이라고 느낀다”며 “음악의 특성상 연습을 하지 않으면 손이 다 굳어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입상을 위해 사활을 걸고 목숨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콩쿠르 입상을 통한 병역특례를 받기 위함이다. 콩쿠르대회의 일반적인 참가 나이는 18-32세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나이가 딱 맞아떨어져야 4번의 기회가 있는 것이고 보통 한 대회에 3번의 기회가 있는 것이다. 이제 병역특례를 위한 대회도 상당부분 축소됐다. 음악인들은 “음악세계에서 젊은 시절 2년의 공백은 엄청나다. 과거 콩쿠르대회에선 종종 사람들이 면제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문이 상당히 좁아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콩쿠르대회 기준이 상당히 높아지면서 콩쿠르입상을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B씨는 “우리나라 남자들은 다 목숨을 걸고 한다고 보면 된다”며 “콩쿠르 자체가 군대를 면제받는 것도 있지만, 그 후에 콩쿠르 입상자라는 굉장한 명예를 얻는다”고 말했다. 군대로 인한 경력단절을 보상받는 것뿐만 아니라 부와 명예도 쌓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콩쿠르대회 입상과 관련한 비리에 관한 질문에 그는 “국제콩쿠르에서도 심사위원과 참가자 간에 커넥션이 있으면 입상도 불가능하지는 않다”면서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라 확실하게 말씀드릴 순 없지만 들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음악이라는 분야를 평가하는 것은 주관적 요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파이널 무대는 실력이 대동소이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실력을 가진 참가자가 입상하는 황당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거의 실력이 비슷한 참가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밀어줘도 큰 논란이 되지 않는 까닭이다.

병역특례 축소된 만큼 ‘음악인 손실’ 막을 제도 마련돼야

병역특례를 받는 기준이 강화된 2000년대부터 콩쿠르 입상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졌다. 과거 중소규모 콩쿠르에 입상하는 것도 사실은 대단한 것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한국의 음악인들은 세계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이들로 평가받는다. 얼마 전 3대 콩쿠르인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대회에서는 예선 60∼70명을 뽑았는데 절반이 한국 사람이었다고 한다. 벨기에에서는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 정도였다. 이런 현상에 대해 B씨는 “강화된 콩쿠르 기준 때문에 경쟁이 과열되면서 한국의 전체적인 음악인들의 수준이 올라간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고 분석했다.

B씨는 세계적 수준의 음악인들이 군대에 가는 것이 그만큼 손실이라고 주장한다. S급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하면 거의 대부분의 음악 엘리트들이 군대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A씨는 “유럽이 음악인들을 군악대로 어떻게 활용하는지 봐야 한다”며 “좋은 실력을 가진 음악인들을 전문 군악대로 편성해 군의 사기를 높인다”고 말했다.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주면서 군대의 사기도 높이고, 이들의 음악 실력도 보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군악대는 대단한 수준을 발휘한다고 한다. A씨는 “유럽처럼 제도를 개선하면 음악인들이 병역을 회피할 일이 전혀 없어진다”고 말했다.

A씨는 악기를 다루는 분야가 아니어서 군대에서도 충분한 연습을 혼자 할 수 있었다. 법 개정으로 군에 입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을 수도 있었지만 군대에 다녀온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즉 군대에서도 충분한 연습과 노력을 할 수 있다면 병역을 회피할 이유도 없어진다는 뜻이다.

취재결과 예술계의 병역회피 및 비리는 법 개정 후 생각보다 어려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중소규모의 콩쿠르에서는 심사위원들이 제자들을 데려가서 참가시키기 때문에 그런 ‘입상 짬짜미’가 있을 수 있지만 현재 S급의 대형 콩쿠르대회에서는 입상을 두고 거래를 하기 어려워졌다. 더군다나 관행적으로 주최국에서 1등 수상자가 많이 나오며 스폰서와 관련된 참가자도 어렵지 않게 입상하기 때문에 그 문은 더욱 좁아졌다. A씨는 “중소규모의 콩쿠르에 입상하는 것도 사실은 대단한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엔 세계적 수준의 실력을 가진 어린 음악인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더 많은 병역특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현 상황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군대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음악인 손실’을 막기 위한 합법적인 예술 병역특례 개정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