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효 배제, 보상 청구권 지속돼도 피해구제 보상법 마련돼야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국가권력이 저지른 중대한 인권침해나 조작의혹사건에 대해 소멸시효에 관한 일반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일반적인 손해배상청구권과 다른 특수성이 있다는 것이 판결의 근거였다. 이 결정은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존엄을 수호한다는 기본권보호 의무라는 헌법정신을 수호하고, 불법적 국가권력 행사에 대한 실질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선언이다. 최근 박정희 시대 대표적 인권 침해 사례인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해 재심의 길이 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범죄에 따른 소멸시효를 배제하기 위한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향후 국가범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양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주목된다.

국가 공권력에 파괴된 인권, 어떻게 회복하나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김철민 의원은 ‘국가의 반인권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소멸시효 적용을 배제’에 관한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민법, 국가배상법, 국가재정법에도 불구하고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및 고문, 증거조작 등 반인권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인하여 소멸하지 않는다’다.

김 의원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반인권적 범죄를 자행하고는 소멸시효 규정을 들어 손해배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또 다른 가해”라며 “개정안이 통과돼 피해자들의 피해가 제대로 구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12월 법무 , 검찰개혁위원회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 소멸시효를 두지 말 것을 법무부에 권고한 바 있다. 국제법상에서도 국제인권법,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에 대해선 소멸시효 적용을 제한하고 있다.

최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권고했다. 이런 사건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 조작될 위험을 지녀 진실규명이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형제복지원 외에도 원풍모방노조사수투쟁,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정원섭 목사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 등 국가범죄의 사례가 많이 있다.

신군부의 집권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일어선 광주민주화운동이 38주년을 맞이했다. 1980년 당시 연행되는 시위자들의 모습. (연합)

‘원풍모방노조사수투쟁’ 사건은 민주노조운동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원풍모방노조는 1975년부터 지속적으로 악화된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쟁활동을 했다. 신군부는 1980년 안기부와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의 본격적인 파괴공작을 펼치며 원풍모방노조원들을 대거 수배했다. 하지만 원풍노조 측은 조직을 재정비하고 노조활동을 정상화했다. 이후 1982년 경찰과 회사는 폭력배들을 고용해 농성 현장에 들이닥치게 했다. 그들은 무차별 폭력을 가하며 전경 150여 명과 합세해 노조를 강제 해산했다.

이날의 폭력 진압으로 8명이 구속되고 55명이 구류선고를 받았으며, 39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농성과정에서는 약 200여 명이 병원에 입원했고 500여 명 이상은 강제해고를 당했다. 조직이 와해됐지만 원풍노조원들은 1983년 원풍모방노조해고복직투쟁위원회로 활동을 재개했고, 2000년 이후 원풍모방의 노조투쟁은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위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지금까지도 복직수용을 거부하는 회사에 맞서 복직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도 있다.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수사 협조 요청으로 출두한 최 교수는 1973년 10월 19일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최종길 교수가 간첩 혐의로 16일에 구속돼 자백한 뒤 7층 심문실 밖으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김대중 납치 사건과 함께 유신독재의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1974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사인에 대한 공개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시간이 흐른 1988년엔 ‘최 교수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한 고문수사와 폭압적 전력에 의한 살인’이라며 사건 관계자 2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공소시효가 만기됐다는 이유로 수사를 종결했다. 이후 2002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최 교수가 간첩이라 자백한 사실이 없고 심한 고문 및 모욕을 당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사망한 것을 인정하고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6조에 따라 구제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정원섭 목사 사건’은 지난 1972년 강원도 춘천에서 발생한 파출소장 딸 성폭행 살인 사건의 누명을 뒤집어쓴 사건이다. 정 목사는 경찰의 강압 수사와 증거 조작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정 목사는 경찰의 모진 고문을 받았고, 검찰은 조작된 증거로 그를 기소했다. 그는 15년 간의 옥살이 후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그리고 30년이 흐른 2007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 목사는 무고하게 옥살이를 하고 성폭행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쓴 채로 삶이 산산조각 났다. 그는 국가를 대상으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1심에서는 서울중앙지법이 정 목사에게 약 26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고법이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소송 제기 소멸시효 기간이 열흘이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정 목사는 국가 손해배상금 26억 원을 결국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사건 직후 경찰조사 과정에 대해 “하루하루가 고문이었다. 살려달라는 말까지 했다. 저녁마다 (경찰이)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라며 감금, 무차별 폭행, 고문을 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 정재호 씨도 국가 손해배상금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극도의 분노를 표출한 바 있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도 대표적인 국가범죄 사례 중 하나다. 1991년 민주화 시위 중 대학생 강경대 씨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한다. 이에 항거하여 일어난 대학생들은 노태우 정권 퇴진을 부르짖으며 차례로 분신했다. 그 중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소속의 김기설 씨가 분신했는데, 김 씨의 유서를 그의 동료인 강기훈 씨가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명목으로 구속 기소된다. 법원은 1992년 강 씨에게 징역 3년,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강씨는 1994년 만기 출소했다.

당시 초기부터 조작으로 의심 받은 유서대필 조작 사건은 일방적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 감정 결과를 토대로 유죄가 선고됐다. 유서의 필적이 숨진 김기설 씨의 것이 아닌 강기훈 씨의 것이라는 근거였다. 하지만 2007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강 씨가 김 씨의 유서를 대필한 것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진실화해위는 김 씨의 메모가 담긴 여러 자료를 구해 국과수와 7개의 사설 감정기관에 필적을 의뢰했다. 결과는 유서의 주인이 김 씨 본인의 것이라는 통보였다. 진실화해위는 재심을 권고하면서 2012년 재심이 진행됐다. 2013년 재심 과정에서 강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1991년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2015년 대법원은 3년을 만기복역한 강 씨에 대해 자살방조 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한국전쟁유족회)가 지난 2월 5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는 진실화해위원회법을 즉각 개정하라"라고 촉구하고 있다.

국가범죄 소멸시효 배제 현실화하려면

이재승 건국대 교수는 국가범죄 소멸시효 배제 개정안에 대해 “국가폭력의 피해자로서 시효가 지나서 구제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보상법을 제정하겠다는 건데, 훨씬 근본적인 제안이라 과거사 전체로 따져도 엄청난 법이 될 것”이라면서도 “다소 이상론적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과거사에 대해 소멸시효를 일괄적으로 배제하게 되면 개별국가로서 최초의 사례다.

국가범죄는 사회학적 용어다. 국가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인데 어떤 것을 국가범죄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엄밀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 교수는 “국가범죄라는 말은 특수한 국가불법행위로 집단희생, 학살, 고문 등으로 쓰는 게 더 적합하며 인도에 반한 범죄, 전쟁에 관한 범죄로 지칭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소멸시효를 배제하는 법이 통과돼도 복잡한 문제가 남는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부담감이 생기며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피해자가 직접 배상을 위한 구제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고 아주 오래 전 일이라면 입증하기 어렵다. 명료한 증명을 하기 어렵다면 국가가 책임을 피할 가능성도 생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상조사를 거쳐 피해자로 확정이 되면 그들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하는 등 광범위한 구제방식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반민주적ㆍ반인권적 공권력 행사 등으로 은폐돼 온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설치한 독립적 국가기관이다.

이 교수는 “진실화해위가 진실을 규명하고 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한다는 것은 제도적인 국가에너지 낭비”라며 “피해구제 보상법을 마련해서 경제여건이 바뀌는 정도를 감안해 적절한 수준으로 증액해 보상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록에 대한 접근이나 포괄적인 진실규명을 통해 피해자가 확정되면 유족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이다.

국가범죄의 범주에는 인종범죄, 종교갈등, 식민주의 폭력, 전쟁폭력, 이데올리기적 폭력, 유신시대에 운동권, 언론인, 학생에 가한 폭력 등이 있다. 국제인도법 및 국제인권법의 심각한 위반, 총체적 침해가 국제법적으로 많이 쓰이는 용어다.

독일은 1953년 ‘나치보상법’을 제정해 소멸시효를 예외적으로 제외하는 경우를 뒀지만 소멸시효를 아예 배제하는 법을 만들지는 않았다. 나치보상법이라는 특별법을 통해 피해배상을 해준 것이다. 국가가 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것으로 특별법 형식의 배상이다. 독일은 유럽의 나치 피해자들에게 약 80조 원을 편성해 광범위하게 피해보상을 했다. 과거사위원회가 적절한 피해액수를 정하고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 독일은 현재도 특별법에 의해 나치들의 공소시효가 배제돼 있어 처벌받는다.

김 의원의 발의안은 일반법을 수정하는 개정안이다. 특별법은 따로 민법에 적용되면 영구적인 손해배상으로서 근본적인 원칙으로 작동한다. 특별법으로서 법적 효력이 발동되는 것이다.

고문이나 학살, 집단 희생에 대해서는 피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게 국제법의 원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국내법에 적용시켜 체계적인 배상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교수는 “과거사위원회가 재가동되면서 진실규명위원회가 진실을 밝혀낸다면, 명확한 보상규정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국가범죄가 진실로 규명되면 3년 이내에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과거사 사건과 국가범죄에 대해 원칙적으로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실제로 많은 국가가 인도에 반한 범죄와 관련해 1968년 제정된 ‘공소시효 부적용 조약’에 가입했다. 하지만 2차 대전에 참여한 강대국은 거의 가입하지 않고 제3세계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가입했다. 한국은 두 차례 전쟁을 치르며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