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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경시" VS "자기결정권 확대” 엇갈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각계 반응 / 종교계 “강력한 유감” / 여성계 전반 “역사적 승리” / 여야 “존중한다” 한 목소리 / 낙태수술 건강보험 적용 여부
지난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헌법불합치로 판단하면서 각계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종교계는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것이라며 강력한 유감을 표했고, 여성계는 자기결정권이 확대됐다며 환영하고 나섰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 낙태 의약품 합법화 등 낙태에 관한 사회적 합의도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한 산부인과 의사가 낸 헌법소원이 사실상 위헌 판단이 내려지면서 낙태죄는 1953년 도입 이후 6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를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17년 2월 낙태죄가 헌법소원에 제기된 지 2년 2개월 만의 일이다. 헌법재판소가 형법 269조와 270조에 규정한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현행 낙태죄는 2020년 12월 31일까지만 효력이 유지된다. 관련 법조항 개정도 2020년 말일까지 해야 한다. 만일 법 개정이 없으면 낙태죄는 완전히 사문화(死文化)된다.

종교계 “강력한 유감”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단이 내려지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즉시 성명을 내고 관련 입장을 나타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번 결정은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서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기독교계도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하며 이번 결정에 즉시 유감을 표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등 주요교단들이 포함된 한국교회총연합은 성명에서 ‘낙태 합법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한국교회총연합은 “이번 판결은 태아를 완전한 생명체로 존중하지 않는 한계를 노출시켰다”며 “우리는 타인의 삶을 보호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생명과 존재의 가치를 지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계 전반 “역사적 승리”

여성계는 대체로 이번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낙태죄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이 인정됐다며 여성인권과 성평등 사회를 위한 역사의 새로운 장이 펼쳐졌다는 평가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던 여성들은 헌법재판소 앞에서 환호하며 서로를 끌어안기도 했다. 문설희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역사적 변화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며 “이제 우리는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이번 결정에 대해 사회적 차별, 불평등, 위험 등 악조건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 싸운 여성들과 모든 이가 함께 이뤄온 역사적 승리라고 자평했다. 공동행동 대리인단 측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태아의 생명권도 보장되지 않는다”며 “국회 입법과정이 있지만 임신과 출산을 강제하지 말라는 헌재 결정과 여성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낙태죄폐지반대국민행동 단체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합헌을 주장하며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
여야 “존중한다” 한 목소리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여야는 한목소리로 “존중한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하지만 입법 논의와 절차에 있어 미묘한 입장차가 존재한다.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 법 개정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성교육을 비롯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OECD 가입국 36개 국가 가운데 31개 국가가 임신 초기의 중절이 가능토록 제도화하고 있다”며 “UN 인권이사회 등도 낙태죄 폐지를 꾸준히 권고해왔다”고 말했다. 이번 헌재의 판단이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결정이라는 평가다. 또한 법적 공백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비롯한 법 개정에 조속히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헌재의 결정에 대해 “시대변화와 사회 각계의 요구를 검토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첨예한 갈등이 상존하는 문제여서 각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한 논의와 심사숙고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 등의 관점에서 진일보한 판단”이라며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해 입법 작업을 속히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낙태수술 건강보험 적용 여부

의료계에서는 낙태수술과 관련한 건강보험 적용 여부, 낙태 의약품 합법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낙태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낙태수술을 조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또한 인공적인 낙태 유도약이 합법화되면 무분별한 낙태 행태가 이뤄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처럼 낙태약 처방은 법적으로 금지하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수술은 생명에 위협을 초래하거나 고가의 의료행위에 적용돼 왔다. 따라서 낙태수술을 건강보험에 적용해야 하는지 의견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낙태수술이 합법화됨에 따라 법적 처벌도 받지 않게 되면서 낙태수술이 급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낙태수술은 연간 약 5만 건 정도로 파악됐다. 하지만 해외 원정 낙태수술을 포함하면 공식 통계보다 20배 정도 많은 연간 100만 여건에 달할 것으로 의료계는 추산하고 있다.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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