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출력 제한치 초과했는데…12시간 가동된 '한빛1호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방만한 원자력발전소 관리·운영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원전에 이상 상황이 발생해 즉각 작동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반나절 간 가동을 이어간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큰 사고가 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수원은 변명에 급급한 모습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강도 높은 특별점검이 요구되는 이유다.
한국수력원자력 경주 본사
규정 몰라 사고 위험…무면허 운전까지

지난 10일 한빛1호기의 열 출력이 제한치인 5%의 3배를 넘는 18%까지 치솟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수원은 규정에 따라 한빛1호기를 즉각 멈춰야 했지만 12시간가량 가동을 지속했다. 열 출력이 더욱 높아졌다면 최악의 경우 ‘폭발’ 혹은 ‘방사능 유출’이 벌어질 수도 있었던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은 원안위 공식 발표를 통해 알려졌다. 원안위는 이날 “오늘 오전 10시 31분경 한빛1호기 보조급수펌프가 자동기동 됐다는 보고를 받고, 사건조사단을 파견해 현장점검에 나선 결과 열 출력이 제한치를 초과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향후 상세 원인분석 및 한수원의 재발방지대책 등을 철저히 검토해 원자로의 안전운전이 가능함을 확인한 후 재가동을 승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원안위는 한수원 등에 특별사법경찰관을 투입해 특별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사 과정에서 원안위는 한수원의 안전조치 부족 및 원자력안전법 위반 정황을 포착했다. 또한 원자로조종사 면허가 없는 사람이 제어봉을 조작한 사실도 확인했다. 제어봉은 원자로 출력을 제어하는 장치다.

한수원은 “열 출력 제한치를 초과하면 즉각 가동을 멈춰야 하는 규정을 몰랐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휘수 한수원 기술총괄부사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운영 기술 지침서가 상당히 방대하다”면서 “그 모든 것을 다 외우고 운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한수원의 안전불감증이 민낯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심지어 이번 사태를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빗대기도 한다. 관리자 및 직원 등의 인재(人災)로 인해 대규모 원전 사고가 발생할 뻔했다는 점에서다. 정재원 한수원 사장은 “체르노빌 운운하며 한빛 1호기 사태의 위험을 부풀린 환경단체 등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면허 비보유자가 제어봉을 조작한 데 대해서 한수원은 “원자로 운전은 원자로조종감독자면허 또는 원자로조종사면허를 받은 사람이 해야 하나, 원자로 조종감독자 면허 소지자가 지시·감독하는 경우에는 비보유자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정작 면허 비보유자의 제어봉 조작 시 감독자 역할을 한 발전팀장을 비롯해 총괄운영실장, 발전소장 등 3명을 직위해제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현재 조사 중인 사안이므로 전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원안위 특사경의 특별조사는 오는 7월 20일까지 진행된다. 조사는 한빛1호기의 설비 및 운영실태 전반에 대해 이뤄질 전망이다. 원전에 특사경이 투입된 것은 1978년 국내에서 고리 1호기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원안위 관계자는 “핵연료의 안전성 재평가 등을 위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조사단도 기존 7명에서 18명으로 확대해 투입할 예정”이라며 “철저한 조사 이후 원자력 관련법령에 따라 제반조치를 취하겠다”고 전했다.

임직원 징계 크게 늘어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한수원의 내부기강과 무관치 않다고 바라본다. 이전부터 갖은 사안으로 구설에 오르고도 안일한 태도를 못 버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전 사고는 지난 1월에도 있었다. 운전자 실수로 한빛 2호기가 정지됐다. 이에 앞서 지난 2014년에는 직원 실수로 한빛 1·2호기 전원 공급이 차단됐고, 같은 해 한빛 4·5호기에서는 관리자 부재에 따른 안전조치 미흡으로 노동자 2명이 숨지기도 했다.

한수원의 기강 문제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한수원 임직원 징계는 51건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도 25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최고 수위의 징계에 해당하는 해임이 3건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상습적인 직원 성추행과 음주운전 뺑소니 등의 사례도 속한다. 올해 1분기 징계 건수는 15건으로, 이번 한빛1호기 사태로 보직해임된 3명을 포함하면 벌써 18명이다.

한수원을 둘러싼 혈세낭비 논란도 일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현재 원전 격납건물여과배기계통(CFVS) 설치 백지화를 검토 중이다. 논의를 거친 후 원안위에 CFVS 설치계획 무효화를 제안할 방침이다. CFVS는 원자로 감압설비로 격납건물 내부 압력이 높아졌을 때 방사성 물질을 여과하는 기능을 한다. 앞서 한수원은 2017년 표준형 원전 12기 CFVS 설치 입찰을 내고, B사와 440억원 가량의 납품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한수원의 CFVS 문제는 낙찰 업체 선정부터 장비 실효성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거셌다”며 “이제 와서 백지화를 검토하는 것은 적어도 어느 한 부분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한수원은 “CFVS 설치 백지화를 검토 중인 것은 사실”이라며 “논의 배경 등 자세한 사항은 아직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주현웅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