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텍 교육 현장수요 중심으로 일대 혁신 정부·지자체와 협력을 통해 난제 해결

이석행 폴리텍대 이사장이 22일 오후 폴리텍 인천캠퍼스에서 가진 <주간한국>과 인터뷰에서 "4차산업 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학과 통폐랍 등을 통합 융합교육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조은정 기자]
“표면처리 할 수 있는 학과는 전국에서 한국폴리텍대학교가 유일합니다. 이렇게 한국만의 고유한 기술인 도금 같은 뿌리 산업은 꼭 가져가야합니다. 그 바탕에 융합의 4차 산업혁명을 얹는 방식으로 가야죠. 제 임기 중에 대학 내부적으로 꼭 이 과정을 제도적으로 정리할 겁니다.”

산업 현장 전문가인 이석행 한국폴리텍대학교 이사장은 임기 중에 이뤄야할 로드맵을 명확히 그렸다. 22일 주간한국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학생들의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 첫 마디를 시작했다. 그의 말투에서 학생들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접견실을 가득 메운 ‘3차원(3D) 프린팅 입체액자’, 표면 처리한 월드컵 모형, 드론 등 학생들이 만든 작품이 사방에 가득했다.

이 이사장은 이미 알려진 대로 강성 노동운동의 대명사로 통하는 인물이다. 전북기계공고를 졸업하고 대동중공업에서 기술자로 일했다. 당시 미사일 개발팀에서 일한 경험으로 항공 등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산업변화 추이에 대한 식견도 넓다. 이 사장은 고등학교 때 가장 힘겨웠던 기억을 꺼냈다. 그는 “1977년에 일당 770원을 받으며 하루 12~16시간을 일했다. 노동조합을 만들면 삼일절, 광복절 등에 쉴 수 있다고 해서 노조를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회사가 나를 해고했지만, 조합원들이 파업을 해줘 해고도 면했고 이후 별 기대 없이 노조위원장 선거에 나갔는데 25:26, 딱 ‘한 표’ 차이로 당선됐다”며 “그때부터 노동운동의 길을 걸었다”고 했다. 이 이사장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던 것이다.

1984년 대동중공업 노조위원장을 시작으로 노동운동이 본격화된 1980~1990년대 투쟁 현장을 누볐다. 2007~2009년에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 2008~2009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총파업을 주도하다가 6개월간 징역도 살았다. 노동계에서는 ‘전설’로 통하는 이력이다.

하지만 그가 폴리텍대 이사장 자리에 앉는 데는 ‘노동 운동’ 이력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고용노동부 산하의 국책특수 대학의 수장으로 오는데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나 큰 문제는 없었다. 그만의 소통방식인 얼굴보고 ‘직접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을 할 때 텐트를 치고 노동자들과 대화하면서 지낸, 몸에 밴 습관이다. 교수협의회가 그의 이사장 취임에 완강하게 반대하자 교수협의회 교수들과 300 대 1 밤샘 끝장 토론을 벌였다. 그는 “왜 반대하느냐. 같이 할 수 있는 게 없겠느냐”며 설득해 의지를 관철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과 폴리텍 혁신 공청회도 가졌다. 새벽 3시쯤 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됐다.

그는 소통 비법에 대해 “무엇보다 경청이 우선이고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같이 고민하자’는 자세로 다가 간다”고 털어놨다. 이어 “현장 전문가로서 자부심이 있고 전문 분야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서로 공감할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도 있다. 교수들에게 산업과 기업의 변화 수준이 어느 정도 단계인지 현장의 예를 들면서 설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석행 이사장은 하루 스케줄이 5~6개가 넘는 날이 많다. 매 끼니를 모두 다른 지역에서 먹는다며 웃었다. 그는 끊임없이 현장을 가서 교수들과 만나고 학장들과 경영전략회의도 하고 비전을 발표하는 자리도 많이 갖는다. 1박2일, 2박3일간 회의를 하니 처음에는 원성도 들렸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취임 후 전국 36개 캠퍼스, 다솜고교, 인재원 등 총 38곳을 세 차례 이상씩 방문했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예산 확보부터 장학금 유치까지 그의 손이 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이 이사장은 2017년 12월 취임 당시, 폴리텍 캠퍼스가 지금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교육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놀랐다고 했다. 직업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의 시급성을 느낀 그는 폴리텍의 직업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학과 통폐합이 그 출발점이다. 이 이사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과 노동환경이 변화하면 직업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변화에 맞춰 필요한 학과는 생겨나고, 찾는 이가 없다면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며 남인천캠퍼스와 인천캠퍼스에 있는 신소재응용과를 인천캠퍼스로 통합하는 등 전국 캠퍼스 13개 학과를 통폐합했다. 교수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캠퍼스를 돌며 왜 폴리텍이 바뀌어야 하는지 치열하게 토론하고 설득했다. 학교 관계자는 “시간이 지나고보니 교수들도 옳은 결정이었다는 견해가 많다”고 전했다.

이석행 폴리텍대 이사장이 22일 오후 폴리텍 인천캠퍼스에서 가진 <주간한국>과 인터뷰에서 "4차산업 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학과 통폐랍 등을 통합 융합교육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조은정 기자]
그는 융·복합형 학습 시스템으로 전환을 위해 지역산업에 바탕을 둔 ‘러닝팩토리’(공동실습실) 12개를 연내 구축할 계획이다. 오는 9월 1일 개소식을 앞두고 있다. 러닝팩토리는 전통적인 칸막이식 학과 운영에서 벗어나 융·복합 학습이 가능하도록 한 실습지원센터로 여러 학과 학생이 한 곳에 모여 전공분야 외 실습과정도 함께 참여함으로써 전반적인 제품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뿌리·기간산업 위주의 교육직종을 스마트공장, 핀테크, 바이오헬스, 미래차, 드론 등 8대 핵심 선도사업을 포함한 신기술 분야로 바꾸어 나가기로 하고 학과 개편과 신설을 통해 신산업·신기술분야 학과 비중을 2018년 7%에서 2022년 20%까지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그는 “산업 수요를 빠르게 파악해 맞춤형 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것이 폴리텍의 책무”라며 “폴리텍이 지금까지 해온 ‘추격형’ 직업교육제도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미래융합인재 양성을 위해 ‘선도형’ 직업능력개발 시스템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일환으로 안성캠퍼스를 반도체교육전문 캠퍼스로 만들어 선제적으로 직업교육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그는 “장비를 정비하고 조정하는 기술자들은 ‘역설계’로 장비 자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그런 인력을 양성하면 우리나라도 반도체 장비시장진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와 함께 항공정비(MRO)도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손재주가 뛰어난 우리나라가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로 꼽는다. 이를 위해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인천에는 항공정비(MRO) 교육센터를 지어 항공정비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그는 “인천공항공사는 물론이고 미국 보잉사와의 협의를 거쳐 2023년 완공을 목표로 기술교육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싱가포르 STA(Singapore Technical Engineering Aerospace Ltd.)항공우주기술교육센터와 테마섹 폴리텍을 방문해 항공정비 분야 글로벌 인증 프로그램(PART-147)운영에 관한 사항과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싱가포르에는 직업교육을 하는 폴리텍대가 5개나 된다”며 “국제인증자격 프로그램 기준에 따른 신설, 장비, 교과에 대해 항공 MRO사업을 선도하는 기업인 STA 항공우주기술교육센터와 싱가포르폴리텍의 지원도 협의했다. 폴리텍에서 항공정비 인력을 양성해 싱카포르 현장 실습과 취업과 연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산업 수요가 있는 지방 공단 등에 기술센터를 건립하는 계획도 속속 진행되고 있다. 그는 “한전의 나주 이전으로 관련기업 250개가 ‘에너지밸리’를 형성하고 있지만 기술인력 구하기가 어렵다”며 “신재생에너지, 전기학과 등 관련기술 교육을 하는 폴리텍 기술교육센터를 개설하기 위해 전남도와 업무협약을 맺고 센터 설립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광명에 내년 상반기 중 제2융합기술교육원을 신설한다”며 “고학력 미취업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이테크과정을 개설해 2022년에는 2000명의 융합형 기술인재를 길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교육과 산업현장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교수들의 재교육도 진행 중이다. 취임 후 이 이사장이 학생들과 4차례 간담회를 통해 실제 졸업학점(108학점)이 전문대보다 높다는 점을 듣고 이 문제를 계선했다. 2020학년도부터 90학점으로 축소하는 대신 기업과 함께하는 융복합 프로젝트 실습 등이 확대됐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기업을 방문해 교육 역량을 키운다. 이 이사장은 “학력과 나이 제한 없이 실무 경력 중심으로 교원을 채용하고 있고, 스마트팩토리, 신재생 에너지 등 신기술 분야는 전문지식 보유 여부를 중심으로, 기계·전기·용접 등 뿌리기술과 기간 산업 분야는 숙련도 여부를 중심으로 우수 교수 인력을 초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그는 중장년층과 경력단절 여성을 교육이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폴리텍대는 2013년부터 중장년재취업과정을 운영 중인데 인력 수요가 많은 수도권, 광역도시를 중심으로 중장년층 친화 직종을 선정해 지난해부터 ‘신중년 특화과정’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현재 500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서울 정수캠퍼스의 공조냉동과정과 남인천캠퍼스의 전기시스템제어과정은 80%가 넘는 취업률을 기록했다. 여성의 직업능력 개발을 위해 산업애니메이션, 병원CS매니저 등 세분화해 교육 중이다.

이 이사장의 정부, 지자체 및 기업과의 네트워크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업의 수요에 맞춤형 인재 양성에 노력하고 학생들이 취업 후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질적 향상에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 클러스터 운영안 마련을 위해 한국 반도체산업협회와 기업 관계자가 참여하는 TFT(Task Force Team)를 10월까지 운영한다. 기업체와 협약을 통해 기업의 인력 수요와 직무를 분석해 필요 직무에 맞춰 맞춤식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하나금융그룹과 협약을 맺고 대졸 미취업자 대상 교육과정인 ‘하이테크 과정’을 개설했고 빅데이터, 웹코딩 등 수업을 5개월 간 이수 후 평가를 통과하면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형식이다.

특히 고용노동부 등 정부부처는 물론이고 지자체 등과의 협력을 통해 조직의 오랜 난제를 풀어가고 있다. 학생들이 졸업학점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의견을 피력했고, 1년 만에 근로자 직업능력 개발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폴리텍의 졸업 이수 학점을 학칙으로 이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또 지역의 캠퍼스를 직접 방문하면서 해당 지역의 산업 분석뿐만 아니라 경총과 상공회의소 분석도 빼놓지 않는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일자리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에 경력단절여성의 특화 훈련과정 1500명 지원 확대를 위한 20억원 등도 반영됐다.

이 이사장은 “폴리텍에 와서 구성원들에게 채찍만 가했는데도 잘 따라와줘서 너무 고맙다”며 소회를 밝혔다. 그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인복 덕분이라고 평했다. “보안사로 끌려가 고문도 받고 죽을 고비도 3번 넘겨봤지만 가장 힘든 것은 주변사람들이 해코지를 당하는 것이었다”는 그는 수감생활 중 매일 108배를 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그는 당시 수계의식을 받고 ‘진표대사’라는 법명도 있다. 이 이사장의 좌우명은 ‘긍정적으로 살자’다. 그는 사진찍는 걸 좋아한다. 특히 돋아나는 새싹 찍는 걸 좋아한단다. 저서로는 ‘아주 평범한 노동자’와 ‘아름다운 동행’ 등 2권이 있다. 그는 인터뷰 마지막까지 “오직 폴리텍뿐”임을 강조했다. “폴리텍은 직업 교육 50년을 이끌어온 저력이 있다. 남은 절반의 임기동안 폴리텍의 잠재력을 끌어올려 ‘혁신’의 성과를 낼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종혜 기자 사진=조은정 기자



이종혜 기자 hey33@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