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들 일부 조항 빌미 비공개 일관 국민 알권리 묵살…행정투명성 뒷걸음질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국민 알권리 확대를 목적으로 1998년 첫 시행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부기관과 지자체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이 해당 법 일부 조항을 빌미로 정보공개청구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서다. 자신들에 유리하게 법을 해석해 일단 비공개부터 하고보는 기관이 여럿이다. “청구만 가능한 정보공개”라는 비판의 배경이다. 공직사회의 인식 전환과 정교화한 제도 개선이 동시에 요구된다.

관리·감독 기관이 기업의 ‘흑기사’ 역할

정보공개법 ‘9조 1항’이 무기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정보공개심의회의 회의록 전문. 정보가 비공개사유에 해당하는 지를 입증한 흔적이 전혀 안 보인다. 이처럼 포괄적 사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대법원 판례를 어긴 것이다.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

<주간한국>이 외교부에 ‘최근 3년간 산하기관에 대한 감사실시 여부’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자 돌아온 대답이다. 감사사항 및 처분 등에 대한 구체 내용은 제외한 채 실시 여부만 요청했음에도, 외교부 감사관실은 해당 정보의 공개가 공정한 업무 수행 등을 방해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처럼 기관들이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정보를 숨기는 사례가 흔하다. 심지어 기업의 위법행위를 관리·감독하는 기관들이 관련 적발사항 등을 애써 감춰주기도 한다. 이들은 기업이 유해물질 등을 과다 배출해 공공에 해를 입힌 것 역시 ‘기업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고 말한다.

지난 8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모 대기업의 공정안전보고서를 작성했다. 문서명은 ‘공정안전보고서 확인결과 000(기업명)-부적합’. 언뜻 봐도 해당 사업장의 공정안전성이 부적합하단 내용을 담고 있는데,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했다. 이유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9조1항, 즉 기업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이란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근거가 부족하다. 해당 법은 기업의 경영상 비밀이 있어도 예외조항을 통해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해서다. 법은 ‘사업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위해(危害)로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경영 및 영업상의 비밀과 무관하게 공개하도록 한다.

이 같은 예외조항에 따라 비공개 결정에 이의제기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같은 법률의 제9조1항을 그대로 반복하며 이의제기를 ‘기각’처리했다. 이곳 관계자는 “이의신청에 대한 처리를 완료해 메일로 통지했다”며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이 가능하다”고 짧게 전했다.

‘경영상·영업상 비밀’과 ‘예외조항’ 각각에 대한 해석의 여지도 물론 있다. 그렇지만 정보공개 여부를 심사 및 판단하는 절차마저도 불투명하단 게 심각한 문제다. <주간한국>이 입수한 이 공단의 해당 정보공개 관련 ‘정보공개심의회의 회의록’을 보면 ▲정보공개법 9조 검토 ▲공단 지침 검토 ▲안전보고서 검토 단 3줄이 회의록 내용의 전부다.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란 시각도 있다. 이유도 안 밝힌 채 정보를 비공개 처리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환경공단이 작성하고 경상북도가 관리하는 ‘배출허용기준 초과내역 알림[000(기업명_#2]’ 문서가 그렇다. 역시 국내 모 대기업이 배출한 물질의 허용기준 초과 사항을 알 수 있는 문서로, 공공의 위해 및 사람의 생명·신체·건강 등과 무관치 않은 내용이다.

그럼에도 두 기관 모두 해당 문서 공개를 거부했다. 경상북도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이를 비공개 처리했고, 환경공단은 “규정상 경상북도가 관리하는 문서”라며 답을 피하다가 뒤늦게 정보공개법 9조1항을 댔다. 환경공단 관계자는 그러면서 “어떤 경로로 문서 이름을 확인했는지 모르겠으나, 어떻든 (기자가)접근 가능한 정보가 거기까지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보 비공개의 배경은 각양각색이다. 이 가운데에는 일부 공무원들의 안일함도 포함돼 있다. 공문서 제목을 잘못 기입하는 식이다. 일례로 경남 창원시는 최근 ‘세무조사(0000(기업명) 업무 관련 자료제출’ 문서를 취급했다. 모 중견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암시하는 듯한 이 문서는 그러나 담당 공무원 실수로 기업명이 잘못 작성됐다는 게 지자체 설명이다.

서울 서초구에서도 같은 사례가 있었다. 지난 9월 작성된 ‘환경전문공사업 변경등록-0000(기업명)’ 문서다. 지난해부터 여러 공사현장에서 소음 및 진동 등의 문제로 행정처분을 받은 모 건설사의 환경전문공사업 변경등록 건을 유추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서초구 관계자는 이 역시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기업명이 잘못 적혔다고 전했다.

실제로 담당 공무원들의 실수인지, 정보를 비공개하기 위한 변명인지를 확인할 길은 없다. 우선 서초구는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한 후 장기간 처리를 보류한 채 머물고 있다. 반면 창원시 관계자는 “청구인이 당초 원하던 정보가 아니다”라면서도 정보공개법 제9조1항을 근거로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공개 의지 없는 것” 후퇴하는 행정투명성

정보공개법 9조1항은 이렇듯 정보의 투명성을 가로막는 주된 요소로 쓰인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따졌을 시 원칙에 어긋난 일이다. 대법원 판례(2006두4899)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대상이 된 정보가 법 9조1항에서 정하고 있는 비공개사유에 해당하는 지를 ‘입증’해야 하며, 그에 이르지 못한 채 ‘개괄적 사유’를 들어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당시 대법원은 “비공개 결정 시 공공기관은 대상이 된 정보의 어느 부분이 어떠한 법익 또는 기본권과 충돌돼 법 9조1항 몇 호의 비공개 사유가 되는지 입증해야 한다”며 “비공개 부분과 공개 부분이 혼합돼 있는 경우 공개 청구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부분공개를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례에도 불구하고 기관들이 정보공개에 소홀한 까닭은 의지부재가 꼽히는데, 이런 풍토는 공직 사회를 위해서라도 개선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비공개 정보에 관한 사항 중 단서조항을 적극 활용하면 공개 가능한 정보가 훨씬 많아진다"며 "이를 거부하다 결국 사고가 터진 후에야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중앙행정기관도 행태가 똑같다. 되레 일부는 더욱 후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환경노동위원회)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의 경우 소속기관 6곳이 정보공개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법을 어기는 기관까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최저임금위원회는 인터넷 홈페이지 상에서 정보공개 시스템 자체를 마련하지 않았다. 정보목록 작성 및 비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정보공개법 7조에 따른 사전정보 공표도 주기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송옥주 의원은 “정보공개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법에서 규정한 아주 기본적인 제도”라며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결정하는 고용노동부의 산하기관들이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행정부 전체의 신뢰도 하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주 기본적인 이 제도를 소홀히 운영 중인 중앙행정기관이 실은 고용노동부만도 아니다. 지난 5년간 국무조정실을 비롯한 중앙행정기관의 원문정보 공개율이 50%를 넘긴 일 자체가 2016년 한 해뿐이다. 이번 정부의 경우 사전적이고 선제적인 정보공개가 정책 목표라지만, 실상을 보면 아무런 진전도 못 보이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 49곳의 원문정보 공개율은 2014년 35.5%에 불과했다. 그나마 2015년 43.3%에 이어 2016년에는 가까스로 50.3%까지 올랐다. 하지만 2017년 43.9%로 다시 떨어지더니, 2018년에도 47.1%를 기록해 절반에도 못 미쳤다. 올해는 지난 1~9월 평균 34.6% 수준에 그쳤다.

지방자치단체의 현실도 이와 비슷하다. 2014년 64.5%를 보였던 이들의 원문정보 공개율은 2015년 66.1%, 2016년 66.1%, 2017년 64.5%로 보통 60% 중반 대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작년에는 59.9%까지 낮아졌으며, 올해는 지난 9월까지 51.6%에 머물렀다. 지표만 놓고 보면 행정투명성이 오히려 후퇴하는 셈이다.

법 정교하게 고쳐야

이런 현실의 바탕에는 경직된 공직사회 문화와 미흡한 제도가 함께 상존한다. 한 공무원은 “부정적인 정보를 공개할 시 그에 따른 책임이 결국 관리감독 기관에도 따를 것이란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공공기관이 각종 민원과 책임론 등의 리스크를 감안하고 정보를 공개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정보공개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법 9조1항 등 일부 조항 해석에서 불거지는 만큼, 이를 차단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인 현행법의 여러 조항을 구체적 언어로 명문화해 불필요한 행정비용과 갈등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의견이다.

조민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기관과 공직자들의 인식전환이겠지만, 제도 재정비 역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며 “정보공개법 9조에 있는 8가지 비공개 사유가 너무 광범위한 탓에 담당 공무원들의 실무적 해석이 포괄적이고 애매하게 이뤄지고 있으므로, 관련 부분들을 보다 세분화할 수 있는 법률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안해지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