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연합

자사고·외고·국제고, 2025년 일반고 전환
'고교 서열화 문제' vs 현실 외면 탁상공론

7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을 발표함에 따라 이해 관계자들간 논란이 일고 있다. 유 총리 방안에 따르면 2025년부터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가 모두 사라지고 일반고로 일제히 전환된다.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일반고(49곳)의 모집 특례도 폐지된다. 이날 유 총리는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방안을 발표하며 "현재 고등학교가 '일류·이류'로 서열화돼 위화감 등 문제가 있다"고 했다.

2025년부터 자사고, 외고, 국제고는 학생 선발 권한이 없어지고 다른 서울 시내 학교처럼 학생 선택에 따라 지원해 배정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대신 학교 명칭과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또 2025년 이전에 자사고, 외고, 국제고에 입학한 학생의 신분은 졸업 때까지 유지된다. 반면 특수목적고 가운데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마이스터고는 2025년 이후에도 일반고로 전환되지 않고 유지된다. 이날 유 총리는 "입학 방식만 바뀌는 것이므로 자사고·외고 폐지가 아니라 일반고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현실성 결여된 탁상공론

관련 학교 교장, 교사들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이날 오후 자사고 교장들은 서울 이화여고 대강당에 모여 해당 방안에 대해 비판했다. 오세목 전국자사고공동체연합회장은 “엄연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국민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도 5년짜리 단임 정권이 입맛대로 학교를 바꾸려 한다”며 “이 같은 무소불위의 독재적 발상을 법적 대응 등을 통해 총력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의 외고 교육과정 적응문제도 제기됐다. 서울 한 외고 교사는 “입시를 학생 배정 방식으로 바꾸면 외고를 원치 않는 학생들도 입학하게 될 것”이라며 “그 학생들이 외고 교육과정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현재 외고는 자연계열 교육과정을 개설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데 이과를 희망하는 학생이 외고에 들어올 경우 전학 내지 자퇴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발생 가능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탁상공론’에 그친 방안을 내놓았다는 지적이다.

공론화 없었던 발표…포퓰리즘 논란

급작스럽게 방안을 내놓은 데에 유 총리는 “운영성과평가로 인한 소모적 논란을 최소화하는 한편, 교육의 불공정성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해소하라는 국민적 요구를 엄중히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험을 통한 자율고·특목고 입학과 배정에 따른 입학 중 무엇이 공정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8일 “학생이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맞게 경쟁하고 평가받는 것은 불공정, 불합리하지 않다”며 “배정에 따른 입학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유 총리는 최근 자사고·외고 단계적 폐지를 언급했으나 이번에 일괄 폐지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대해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대표는 “어떠한 공론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절차상의 문제가 심각하다. 내년 총선을 위한 포퓰리즘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또 “문제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대입제도인데 대입제도를 고친 후에도 고교 서열화의 심각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그때 폐지해도 늦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수시와 정시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학종을 개선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고교 서열화 대신 학군 서열화 나타날 것

야권 인사들은 유 총리의 방안을 반기는 모양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고교 서열화 및 불평등 해소 방안을 크게 환영한다"며 "모든 학생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교육 평등의 시대를 여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역시 "박근혜 정부하에서 자사고 폐지를 전면 제기하면서 많이 씨름했는데, 교육청의 의제가 국가 의제가 되는 날이라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방안에 대한 학부모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번 방안이 시행된다 해도 자사고·외고·국제고 대신에 강남 8학군이 고교 서열화의 새로운 타깃으로 몰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강남학원에 고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보내는 한 학부모는 “강남 8학군은 여전히 명문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는 수준 높은 학원과 능력 있는 강사를 동네로 유인하기 마련”이라며 “고교 서열화 대신에 학군 서열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결국 차기 정부가 해당 방안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 전에 앞으로 직면할 여러 가지 문제와 부정적 여론으로 방안이 철회되거나 번복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