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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보트를 타다] ‘아름다운 지구’ 만들기에 천여 명 나섰다

‘움직이는 지구촌’ 환경재단 그린보트를 타다
움직이는 지구촌이 있다. 환경재단이 매년 띄우는 ‘그린보트’다. 1000여명의 시민들이 대형 크루즈선에 탑승해 일주일 간 친환경 생활을 체험하고, 다양한 전문가 강의를 듣는 한편 세계 각국을 돌며 문화를 배우는 행사다. 올해는 부산에서 출항해 대만의 기륭·화롄을 거쳐 제주로 돌아오는 코스로 짜여졌다. 움직이는 지구촌의 시민들은 어떤 모습일까. <주간한국>이 함께 탑승해 들여다봤다.
  • 2019년 '제14회 그린보트'에 참가한 시민들의 모습. ⓒ 2019. 환경재단. All rights reserved
‘즐거운 불편함’

“움직이는 지구촌에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길 바란다.” 지난 7~14일 진행된 ‘제 14회 그린보트’ 행사첫날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이 전한 말이다. 최 이사장은 “환경문제가 어렵고 불편한 문제처럼 비치지만, 다소 불편하더라도 그마저 즐거이 경험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많은 이들이 항해를 마친 뒤에도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환경재단은 올해 그린보트 행사를 어느 때보다 다채롭게 꾸몄다. 매일 환경문제를 퀴즈 등으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그린퀘스트’ 미션을 개설해 각종 친환경 물품을 증정했다. 특히 ‘그린대여소’가 눈길을 끌었는데, 시민들은 이곳에서 다회용품을 빌림으로써 일주일 간 일회용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여수항만공사에 재직 중이라는 이수은(30대)씨는 그린보트가 타이타닉보다 좋았다고 했다. 이씨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함께 하는 타이타닉을 상상하고 탔는데, 한국인이 많아 처음에는 아쉬웠다”면서도 “하지만 며칠 지내면서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을 만났고, 각종 강의를 통해 경제와 문화 등에 대해 공부를 하게 돼 오히려 더욱 좋았다”고 말했다.

일찍이 환경문제에 관심 가졌던 시민들이 많았다. 전남 완도에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온 김도희(20대)씨는 아버지와 여행 겸 공부를 목적으로 그린보트에 올랐다고 했다. 그는 “환경미화원이신 아버지가 휴지 한 장도 아끼실 정도로 환경을 중요시 생각하신다”며 “그런 아버지와 추억도 쌓고 환경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고 탑승 배경을 밝혔다.

교사로 재직 중인 김현중(30대)씨는 “그간 ‘적당히’ 해온 분리수거를 그린보트에서 ‘확실히’ 알게 됐다”고 전했다. 김씨는 “환경문제를 머리로만 인식하고, 현실에서는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면서도 “플라스틱과 업사이클링에 대한 강의를 통해 친환경 라이프 실천을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움직이는 지구촌답게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어우러졌다. 익명을 요구한 모 참가자는 자신을 탈북자라고 소개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그는 “복잡한 남한생활을 뒤로 하고, 여유로움 속에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의 풍경과 비슷한 대만을 여행하며 과거를 돌아봤다고. 또한 채식 강의를 듣고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했단다.

그린보트를 계기로 직장을 그만두기로 한 시민도 있었다. 모 기업에서 비서로 재직 중인 전모(20대)씨는 “환경에 원래 관심이 많은 편인데 업무특성상 가격비교까지 해가며 일회용품을 다량 구매해 죄책감이 컸다”며 “그린보트에서 여러 환경NGO 분들을 마주하며 나 역시 그들과 같은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롯데쇼핑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올해까지 8년째 사회적 수혜가 필요한 계층을 초청해 그린보트에 탔다고 한다. 이번에는 약 40명의 싱글맘들과 함께 했다. 김성경 롯데백화점 CSR부문 팀장은 “롯데백화점은 고객과 임직원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며 “올해는 여성 우울증 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싱글맘들과 힐링 크루즈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행복맘과 싱글맘을 비롯 여러 계층의 힐링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겠다”고 전했다.

발 닿는 모든 곳이 배움의 터

그린보트는 이탈리아 국적의 선사가 운용하는 14층 규모의 코스타 크루즈선 '네오로만티카호'가 무대다. 객실을 제외한 8~11층 전부가 강의 장소로 활용됐다. 이곳에선 발 닿는 모든 곳이 배움의 장소다. 올해도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강연에 나섰는데,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와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및 정유정 소설가 등 약 20명이 합류했다. 하루를 온통 쏟아도 모든 강의를 들을 수 없는 규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수협직원들을 대상으로 ‘지속 가능한 해양환경’을 수업했다. 해양 미세플라스틱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은 홍 소장은 “유해물질을 섭취한 어류가 식탁에 오르게 되는 구조를 봐야 한다”며 “인간이 입힌 피해는 결국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당부했다.

환경 분야 강의만 이뤄지진 않는다. 유시춘 EBS 이사장은 특히 여성 참가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여자들은 언제부터 정치에 참여했을까?’를 주제로 강의에 나선 유 이사장은 “법적, 제도적 성차별은 완화됐으나 여전히 여성의 정치와 기업경영 참여도는 OECD 최하위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7년의 밤’과 ‘종의기원’으로 유명한 정유정 소설가의 강의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는 창작의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종의기원을 쓸 당시 싸이코패스 관점으로 세상을 들여다봤다는 정유정 소설가는 작품이 나온 뒤에도 오랜 기간 마음이 지쳐 해외를 떠돌았다고 한다. 또한 ‘진이, 지니’를 쓰기 위해서는 피그미침팬지를 찾아 일본과 독일을 넘나들었다고.

이밖에도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필환경시대, 아시아의 대응현황과 과제) ▲남궁인 의사(글 쓰는 의사가 전하는 삶의 의미) ▲오은 시인(우리가 밑줄 그은 문장들) ▲이상봉 홍익대 패션대학원 원장(패션의 환경 리싸이클) ▲황윤 영화감독(사랑할까, 먹을까) 등 다양한 강의가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김지은 환경재단PD는 “경쟁과 속도에 숨 가쁜 일상을 벗어나 환경을 생각할 여유를 가진 시간이 됐길 바란다”며 “아름다운 지구 만들기에 나서주신 1200여 분의 시민들 덕분에 올해 항해도 즐겁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올해 참가자 분들의 피드백도 적극적으로 받아 내년에는 더욱 즐겁고 의미 있는 항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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