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통과에 이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됐다. 추 장관은 취임 닷새 만에 대검 검사장급 32명의 인사를 단행했고, 더불어민주당은 9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총장 의견 배제한 검찰 인사
8일 추 장관이 단행한 검찰 인사는 과정과 내용 모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날 오전 인사위는 법무부의 검찰 고위간부 인사안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 의견을 반영하라”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추 장관이 윤 총장을 호출한 시간은 인사위 개최 30분 전이다. 윤 총장이 32명의 인사안을 파악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데 단 30분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대검은 “윤 총장 의견 청취가 요식행위에 그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추 장관은 “그 정도면 충분히 총장이 의견을 낼 시간이라고 봤다”고 반박했다. 한국당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 절차에서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한 검찰청법 34조 1항을 위반했다며 추 장관을 대검에 고발했다.

검찰 인사 내용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법무부는 고검장급 5명과 검사장급 5명을 신규 보임했고 대검검사급 22명을 전보했다. 그 중 윤 총장의 대검 참모진은 전원 교체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비리와 청와대 감찰무마 의혹 수사를 지휘한 한동훈(47·사법연수원 27기)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청와대의 2018년 6·13 지방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박찬호(54·26기) 공공수사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각각 전보됐다. 조 전 장관 가족 비리와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총괄하던 배성범(58·23기) 서울중앙지검장도 비수사 보직인 법무연수원장으로 발령 났다.

윤 총장의 대검 참모들 대부분이 서울과 지방으로 해체됐다. 조상준(50·26기) 대검 형사부장은 서울고검 차장으로, 이원석(51·27기)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수원고검 차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두봉(56·25기) 대검 과학수사부장은 대전지검장, 문홍성(52·26기) 대검 인권부장은 창원지검장으로 전보됐다. 노정연(53·25기) 공판송무부장은 전주지검장으로, 강남일(51·23기) 대검 차장은 대전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 내에서 윤 총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윤대진(56·25기) 수원지검장은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균형있는 인사” vs “보복 인사”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 대거 전진 배치됐다. 서울중앙지검장은 이성윤(58·23기) 법무부 검찰국장이 맡게 됐다. 이 검사장은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다. 조남관(55·24기) 서울동부지검장은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보임됐다. 두 사람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비서실장으로 근무한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파견된 경력이 있다. 또한 신임 반부패강력부장에는 추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단 출신인 심재철 서울남부지검 1차장 검사가 보임됐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특정 인맥에 편중된 검찰 인사의 균형을 잡았다”고 평했다.

한국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날 황교안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정권 비리를 수사하는 검사에 대한 보복 인사였다”며 “사화에 가까운 숙청”이라고 비난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자신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사를 모조리 좌천시키는 폭거”라며 “군사독재정권에도 없었던 대학살”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10일 추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과 검찰 수사방해 의혹 국정조사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당정청 일제히 윤 총장 맹공
한편 당정청은 추 장관을 옹호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추 장관은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 인사에 윤 총장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검찰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를 두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추 장관에게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이번 일에 필요한 대응을 실행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법무부 장관의 의견 청취 요청을 검찰총장이 거부한 것은 공직자의 자세로서 유감스럽다”고도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원만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의 뜻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윤 총장 불신임 관측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윤 총장을 향해 “오만방자한 인식과 행태를 사죄하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9일 논평을 내고 “검찰의 행태는 명백한 항명으로, 공직기강 확립 차원에서 엄중한 조치로 국정의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10일 이해찬 대표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추 장관의 검찰 개혁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9일 추 장관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법무부 간부에게 ‘징계’ 관련 법령을 파악해 보고하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한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를 두고 ‘항명’으로 낙인 찍힌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10일에도 추 장관은 윤 총장을 압박하기 위한 또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날 법무부는 “검찰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직접수사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며 “비직제 수사조직은 시급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아 설치할 것을 대검에 특별 지시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윤 총장 지시로 특별수사 조직을 설치할 경우 추 장관의 승인을 받으라는 의도로 풀이된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