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취지 좋지만 현실적 한계” 지적…단계적 도입 가능성 검토될 듯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실업부조 도입, 고용보험 확대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고용보험 확대를 위한 국회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주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들의 지원방안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전 국민의 고용보험 도입 여부가 공론화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이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적자 규모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관련 법률 개정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노동절이었던 지난 1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주최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정치의 변화와 과제 정책세미나’에서 “일자리 정책이 좀 더 넓은 사회안전망 정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며 “전 국민 건강보험처럼 전 국민 고용보험이 포스트 코로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계가 요구하는 고용안정 대책 중 하나다. 노동계는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과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등 고용보험 미가입자가 1000만명에 이른다고 강조하면서 전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강 수석은 “그동안 실업률 지표 등이 통계로 관리됐으나 실업자 개개인은 관리되지 못했다”며 “코로나19 확진자는 개별적으로 통계를 내는데 왜 실업자 순위는 없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이어 “일자리 정책도 확진자를 확인하는 과정처럼 정부가 관리하는 제도로 설계됐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민주당·한국노총 고위급 정책협의회에서 “고용보험 밖의 노동자를 보호하는 한국형 실업 부조, 국민취업제도, 특수고용 노동자·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도 힘을 실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같은 날 서울 종로구 전태일 다리에서 열린 당 노동절 기념식에서 “정의당은 실업안전망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거대 여당과 정의당까지 전 국민 고용보험제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률 개정이 추진될 가능성이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올라간 실업급여 보험료율에 고용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압박한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개정된 고용보험법에 따르면 실업급여액은 실직 전 3개월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올랐고, 지급 기간도 실직자 연령과 고용보험 가입 기간에 따라 90~240일에서 120~270일로 30일 연장됐다. 여기에 전국민 고용보험제가 도입돼 실업급여 지급 대상이 확대되면 이와 관련한 재정부담이 늘어나고 근로자와 사업주 부담도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건은 재원 마련

한국노동연구원의 ‘코로나19, 사회적 보호 사각지대의 규모와 대안적 정책방향’에 따르면 전체 고용취약계층인 727만5000명 중 63%에 이르는 459만명이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통계청 조사에서도 고용보험 가입자는 1352만8000명으로 전체 취업자인 2735만8000명의 49.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용직 근로자, 자영업자, 학습지 교사 등 특수 형태 근로자 대부분이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고용노동부도 전 국민 고용보험의 전면도입은 당장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드림홀에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주최한 ‘일자리 타운홀 미팅’ 행사에서 “분명히 가야 할 길이긴 하지만 일시에 도입될 수 있는 방안이 아니고, 단계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준비를 갖추며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제안한 분들의 취지는 ‘일하는 모든 분이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일시에 도입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사회안전망 단계적 확대를 위한 우선 과제로 특수 형태 근로자와 예술인의 고용보험 가입,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 조기 도입을 제시했다. 이는 모두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않은 방안으로, 이 두가지부터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취업제도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저소득층에게 월 50만원씩 6개월 동안 지원금을 주는 제도로, 고용보험 혜택을 일부 확장하는 효과가 있다. 이 장관은 “정부가 현 단계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것들”이라며 “이런 제도 확대를 한 다음 그 이외 일하시는 분들에 대한 방법을 하나씩 논의해서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역시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은 보험료 징수 체계나 요율을 얼마나 정할지, 나중에 받게 될 실업급여를 얼마로 할지 모두 한꺼번에 정해야 한다”며 “근로자는 사용자와 보험료를 나눠 낼 수 있지만 특수 형태 근로자나 플랫폼 노동자는 그렇지 않고, 자영업자들은 가입을 꺼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재원 마련이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이 거둬들인 고용보험료는 11조4054억원이다. 고용보험 가입 범위를 모든 취업자로 확대하면 이와 비슷한 금액이 추가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지난해 고용보험기금은 실업급여 지급액 증가 등으로 2조877억원의 적자를 냈다.

한편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의 기부금을 고용보험기금에 편입한다고 밝혔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국민이 마련해준 소중한 (긴급재난지원금) 기부금은 고용보험기금에 편입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고용 유지와 일자리 창출 등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주영 기자



이주영 기자 jy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