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인 10곳 중 6곳 외감 안 받아…영세단체 많은 탓 “공영감사제 등 도입해야”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회계부정’ 의혹으로 비화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부실공시 실태가 실은 공익법인 전반에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NGO(시민단체) 상당수가 거액의 사용처를 뭉뚱그려 기재한 것은 물론 지급처를 아예 작성하지 않은 사례도 다수 확인돼서다. 외부감사를 받지 않는 곳도 절반 이상이다. 비영리법인의 부실공시가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감시하지도 못할 제도를 만든 정부를 비판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공영감사제 혹은 불성실 공시 단체에 대한 패널티 강화 등을 통한 ‘기부자 알권리’를 강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이 지난 5월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기억연대 활동 당시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NGO 배테랑도 공시는 허술

사회적 환경윤리 실현을 위한 연구 및 정책 제언 등의 활동을 펼치는 비영리단체 ‘환경정의’. 이곳의 2013~2019년 국세청 홈택스 결산공시를 보면 ‘기부금 지출명세서’ 칸에 유독 공백이 많다. 특히 2017년까지는 월별 지급목적이 전부 ‘조사연구활동비 및 운영비’로 채워졌으며, 지급건수와 지급처가 명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환경정의는 조명래 현 환경부 장관이 2012~2017년 이끌었던 단체다. 한때 ‘한국NGO학회’ 회장까지 역임할 정도로 시민단체에 대해선 배테랑인 조 장관이지만, 회계사항 공시에 대해서는 아마추어와 다름없던 셈이다. 이 기간 허술했던 명세의 형태는 지급건수와 지급처 공백이 대부분인데, 2017년 1월에는 연구비 지급사항을 명시해놓고 금액기재를 빠트리기도 했다.

2013년 공시에서는 더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정의연이 기부금 지출의 수혜인원을 ‘999…’로 썼다면, 환경정의는 지급처를 전부 ‘sssss’로 기재했다. 그러면서 월별 기부금 지급건수는 비교적 자세히 명시했다. 정리하자면, 2013년에는 지급건수는 자세히 명시했으나 지급처가 불분명했고 2014~2017년에는 지급건수와 지급처를 공란으로 둔 것이다.

공시가 비교적 자세해진 때는 2018년부터다. 기존까지 지급목적을 ‘조사연구활동비’로 뭉뚱그렸던 것과 달리, 이 시기부터 ‘인건비’와 ‘총회보고서 제작’ 및 ‘플라스틱 없는 서울 부스 운영비’ 등의 형태로 구체화했다. 월별 지급건수 역시 기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급처는 여전히 빈 칸으로 남겨져 있다.

국세청 공시 양식을 따른다면 기부금을 연간 100만 원 이상 지출할 시에는 누구에게 얼마나 쓰였는지를 꼭 기재해야 한다. 정의연이 3300만 원을 맥주집인 디오브루잉에서 다 썼다고 오해를 산 것은 그나마 해당 금액 중 가장 큰 사용처 1곳이라도 기재했기 때문이다. 환경정의는 현실적으로 수백여 곳의 지급처를 전부 공시할 수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환경정의 관계자는 “2017년까지는 공시 양식에 모호한 부분이 많았었기에 구체내역이 명시되지 못했었다”며 “2018년부터는 변경된 공익법인 회계기준에 따라 인건비 등 지출사항을 철저히 작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급처 미기재는 현실 여건 때문”이라며 “100여건 넘는 지급처를 다 채워 공시하는 것은 양식상으로도 힘든 일”이라고 덧붙였다.

환경정의 관계자는 또 “2013년 지급처에 ‘sssss’가 표기된 건 전산오류로 추정되며, 당국에는 세무사와 회계사 등의 검토를 거쳐 구체사항을 모두 전달하고 있다”면서 “준수해야 할 사항을 다 지키려 노력 중이고, 실제 국세청 등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적이 없었던 점에 미루어 달리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도 부연했다.

공익법인 절반 이상이 외부감사를 받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표=한국가이드스타)
10곳 중 6곳이 외부감사 안 받아

이처럼 공시에 미숙한 공익법인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양식에 따라 제대로 기재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 이름이 꽤 알려진 단체들만 보더라도 미흡한 점이 다수 발견된다. 예컨대 국내 대표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의 경우 본부와 서울을 제외한 지방단체 상당수는 지급목적 등을 ‘고유목적사업’으로 일괄 처리했다.

이런 실태가 잘못됐다는 데 대한 이견은 드물다. 기부자 입장에서는 알권리가 충족될 수 없고, 단체 입장에서도 정의연 사태와 같이 갖은 의혹의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감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나, 현실은 공익법인의 절반 이상이 원하든 원치 않든 외부 감사를 안 받고 있어서 문제로 지적된다.

공익법인 평가기관 한국가이드스타에 따르면 작년 기준 국내 공익법인의 기부금 수익은 6조3000억 원가량에 이른다. 거액의 돈이 공익법인에서 돌고 있지만 외부감사를 받는 법인은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에 공시한 공익법인 9663곳 중 3814곳(40%)만이 외부감사를 받았다.

업계에서는 “대다수 비영리법인이 자본규모가 작은 까닭에 외부회계 감사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게 원인일 것”이라고 바라본다. 실제 한국가이드스타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의무공시 공익법인 중 73.3%(7081개)는 기부금 수입이 1억 원 미만인 소규모 공익법인이다.

공영감사제 등 기부금 투명성 확보를 위한 새 대책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모 로펌 소속 기업담당 변호사는 “정부가 일정 비용을 지원하고 공익법인 회계감사를 수행할 제3자를 지원하는 식의 공영감사제 도입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이밖에도 공익법인 전용계좌 의무화 및 세무조사 강화, 부정회계에 따른 고강도 패널티 등 대안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는 단체별 주무관청과 지자체, 국세청 등 공익법인 회계 문제를 살펴야 할 주체가 겹겹이라 관리감독이 소홀한 면이 있다”며 “인력마저 부족해 명세서 ‘제출’ 여부에 의미를 두는 게 사실”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공익법인 관련법을 자세히 숙지하지 못한 회계사가 많은 것도 현실인데, 정부가 감사하지도 못할 규제를 만들어 놓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부터 공익법인 감시망을 넓히기로 했다. 기존에는 자산 5억 원 이상 혹은 기부금 등 수입 3억 원 이상인 공익법인만 공시 대상이었다. 올해부터는 공시 대상 범위가 모든 공익법인으로 확대됐다. 아울러 수입액과 출연재산액 합계가 50억 원이 넘으면 외부 회계감사도 받아야 한다. 기존의 외부감사 의무 대상은 자산 총액 100억 원이 기준이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