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심의위 “충분한 숙의 거쳐 심의…”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할 필요가 없다”고 권고했다.

이로써 검찰은 연패를 기록, 수사 당위성마저 역풍을 감내해야 할 입장에 처하고 말았다. 장기간 나름대로 공들여 진행한 수사지만,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그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결과를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이번 권고를 무시해도 되는 검찰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26일 이 부회장의 기소 적절성을 논의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이처럼 최종 의견을 ‘불기소’로 제시했다. 검찰이 권고를 받아들일지가 향후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이날 종일 초긴장 상태를 놓지 못했던 이 부회장과 삼성으로서는 당장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檢, 장기간 수사했지만…마라톤 회의 끝에 ‘불기소’ 의견多

이날 오전 10시 30분에 소집된 수사심의위는 구성원의 절반 이상의 뜻을 반영해 이 같이 권고했다. 정확히 몇 명 이상이 이런 의견을 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압도적 다수가 불기소를 권고했다는 전언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검찰이 장기간 수사한 결과물들이 혐의를 입증할 만한 요소로서 부족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논의는 총 14명의 심의위원이 진행했다. 대검이 지난 18일 법조계·학계·언론계·시민단체·문화·예술계 등 각계 전문가 150∼250명 중 추첨으로 선정한 인원들이다. 원래 15명이 참여하려 했으나 위원 1명이 불출석했다고 알려졌다. 자연히 표결에는 김재봉 위원장 직무대행(한양대 교수)을 제외한 13명이 참여했다.

심의위원들은 검찰이 의심하는 사항들을 하루 종일 검토했다. 당초 오후 5시 50분쯤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됐던 회의는 이날 오후 8시가 조금 안 돼서야 끝이 났다.

오전에 양창수 전 대법관(68·사법연수원 6기) 회피 안건을 먼저 논의한 영향에 승계 문제와 관련한 회의가 다소 지체됐다. 앞서 양 전 대법관은 지난 16일 최지성 전 삼성 미전실장과의 친분을 이유로 위원장 직무와 심의를 회피한 바 있다.

공방전이 본격 개시된 건 점심을 전후한 때부터다. 늦은 오전에 검찰이 먼저 의견진술을 했으며, 점심 이후 이 부회장측 변호인단이 심의위원 설득에 나섰다.

양측 의견진술 후에는 질의응답 및 위원 간 토론이 이뤄졌는데, 이 단계에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부터 주가조작 정황, 나아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여부 등에 대한 토론이 지속 진행됐다고 전해진다. 사안자체가 복잡한데다, 사회적 관심도 워낙 커다란 까닭에 회의장에서는 고심이 거듭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심의위원들이 검토한 문서만 A4용지 약 100장에 달했다. 검찰과 이 부회장측 변호인단의 의견서 각각 50장씩이다. 여기에다 양쪽 프레젠테이션(PT)까지 더해지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방대해졌다.

“충분한 숙의 거쳐 심사한 결과”

이번 회의는 비공개로 이뤄졌다. 때문에 검찰과 변호인단이 각각 어떤 논리를 주로 내세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검찰은 “지난 약 19개월 간의 수사로 확보한 물증이 분명하며 관련자 진술도 확보했다”는 부분을 강조했을 것이란 분석이 다수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검찰이 수사한 사항들과 관련해 이 부회장이 관여한 적도, 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고 힘줘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수사에 돌입한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란 주장을 펼쳤다는 말도 나온다. 2년 가까이 수사를 진행하고도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심의위원들의 결론은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는 타당하지 않다”는 것.

수사심의위는 입장문을 통해 “위원들은 충분한 숙의를 거쳐 심의한 결과, 과반수 찬성으로 수사중단 및 불기소 의견으로 의결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위원회는 검찰수사가 더욱 국민의 신뢰를 얻고,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부연했다.

관심 모은 ‘특수통’ 대결…연승 거둔 이재용측

불기소 권고는 이 부회장측에 ‘2연승’을 안겼다. 이번 법리 대결은 소위 ‘특수통’들의 한 판 승부라는 점에서 줄곧 관심을 모았다. 앞서 검찰이 지난 4일 청구한 이 부회장 구속영장은 기각된 바 있어 ‘1차전’도 이 부회장 측 승리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검찰측은 이번 심의위에 심기일전하며 나섰다. 주임검사인 서울중앙지검의 이복현(48·사법연수원 32기)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와 최재훈(45·35기) 부부장 검사, 의정부지검의 김영철(47·33기) 부장검사 등 수사팀 핵심 인원을 대거 투입했다. 이들 중 이 부장검사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에 공인회계사 자격증도 갖춰 경제 수사에 뛰어나다는 평가가 많다. 항간에서는 ‘재계 저승사자’로 부르기도 한다.

이 부회장 측에서는 김기동(56·21기) 전 부산지검장과 이동열(54·22기) 전 서울서부지검장 등이 나섰다. 김기동 변호사의 경우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출신이며,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장과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이동열 변호사는 대검 첨단범죄수사과장,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등을 거쳤다.

檢, 권고 수용할 가능성 커

남은 관심사는 검찰의 최종 판단이다. 수사심의위의 결정은 의견일 뿐, 강제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반영 여부는 검찰이 결정한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의 경제보복부터 최근 코로나19 등에 이르기까지 경제가 악화한 현실, 또 수사심의위 및 여론의 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권고를 무시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다수다. 실제로 수사심의위는 2018년 처음 설치돼 8건 사항에 대해 의견을 냈는데, 검찰이 이를 무시한 적은 없었다.

이날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던 삼성에서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예상된 결과기도 하지만, 내심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현재로서는 ‘다행’이란 말 뿐”이라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9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에도 지속 현장경영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IT·모바일(IM) 부문 사장단과 평택·기흥·수원 사업장에서 릴레이 간담회를 가졌었다. 이어 나흘 뒤인 19일에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를 찾아 DS부문 사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반도체 미래 전략을 점검했다. 지난 23일에는 수원에 위치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를 찾아 CE부문 주요 경영진과 간담회를 갖고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속도감 있는 경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 부회장은 화성사업장 방문 당시 “가혹한 위기 상황”이라며 “미래 기술을 얼마나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려있다”고 말했다. 또 “시간이 없다”고도 강조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