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절반 가까이 소멸위험 상태에 빠져…공공·민간기관 함께 이전해야 실질효과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돌연 ‘행정수도 이전’ 정국이 펼쳐질 조짐이다.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여권이 국면 전환용 카드를 꺼내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의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역균형 발전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일자리와 부동산 등 심각성을 더해가는 사회의 중대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른바 ‘서울공화국’ 현상을 깨야 한다는 진단이 다수다. 다만 전문가들은 행정수도 이전 자체에만 의미를 둬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실질적 지역균형 발전을 이루려면 보다 종합적이고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
여권, 행정수도 이전 ‘카드’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이 일자리와 주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국회와 청와대, 정부 부처가 모두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 행정수도 완성을 통해 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국회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돌연 이 같이 피력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런 발언이 난데없이 나오진 않았다고 한다. 민주당은 일찍이 내부조사를 벌여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긍정여론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두고 곳곳서 실패 책임론이 일자, ‘먹힐 만하다’는 판단에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여권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른바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고도 밝혔다. 우원식 의원이 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보이는데, 골자는 단연 청와대와 국회 및 모든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이다. 김 원내대표는 “2020년은 행정수도 완성의 원년이 돼야 한다”며 연일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각은 다양하다. 우선 야당에서는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수도권 부동산 투기 대책이 성과를 못 거두면서,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니 내놓은 제안”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당 차원의 입장은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위헌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범진보’로 분류되는 정의당마저 여권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심상정 대표는 지난 21일 의원총회에서 “부동산 실패를 모면하기 위한 국면전환용, 선거용 카드가 아니길 바란다”며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명분은 얻은 듯…‘진정성 입증’ 1차 과제

민주당으로서는 ‘진정성 입증’을 1차 과제로 받아든 셈이다. 180석의 힘만 갖고 밀어붙일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진보 시민단체(NGO)로 꼽히는 곳에서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정부가 22번이나 '땜질식' 부동산 대책을 남발하고도 집값이 잡히지 않자 무책임하게 행정수도 이전을 거론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여권의 행정수도 이전 카드는 하반기 정국의 최대 태풍이 될 전망이다. 반대 명분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과 일자리 및 문화시설 등 주요한 사회자본이 서울에 집중된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에는 대부분이 동의하는 게 사실이다. 야권 등에서 제기하는 비판이 행정수도 이전의 당위성 대신 민주당의 의도를 꼬집는 것도 그래서다.

실제 통합당에서도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3선의 장제원 의원은 “오히려 통합당이 주도해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피력한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행정수도 이전이) 민주당의 국면전환용이라는 이유로 일축한다면 결국 손해 보는 쪽은 통합당일 것”이라며 “지역균형발전 논의를 오히려 민주당보다 더 강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실련 역시 “수도권 인구가 전국의 50%를 넘는다는 점에서 단순히 서울 집값이 아닌 국토균형발전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지방 도시의 인구감소가 장래 큰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지방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면전환용인지 여부를 떠나 행정수도 이전 자체는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전국의 40% 지역이 소멸위기

이처럼 서울 및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좌우 이념을 불문한 사회적 과제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각종 통계치만 살펴봐도 현 실태의 심각성이 또렷이 드러난다. 인구 비중이 대표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서울·경기도(수도권) 인구는 약 2596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외 지역(비수도권) 인구는 2582만 명 정도다. 수도권 인구가 14만 명가량 많다.

수도권 면적은 전국의 약 12%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곳에 전체 인구 절반이 모여 산다는 뜻인데,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선 건 올해가 처음이다. 수도권 과밀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머지않아 비수도권 지역 수십 곳은 소멸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지방소멸 우려는 이미 가시화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지역에 처한 곳이 전체의 105곳(46.1%)에 달한다. 작년 동기 93곳(40.8%) 대비 약 6%포인트 가량 증가한 수치다. 소멸위험지수는 ‘한 지역 20~39세 여성인구 수를 해당 지역 65세 이상 고령인구 수로 나눈 값’이다. 0.5미만이면 위험하다고 본다.

관광지로서 시민과 친근한 지역마저 소멸 위기에 놓여 실상이 무척 심각하다. 올해 새롭게 소멸위험 지역에 진입한 곳들 중에는 군(郡)이 아닌 시(市) 지역도 상당수다. 경기도 여주시(0.467)와 포천시(0.499), 충북 제천시(0.457), 전남 무안군(0.488), 나주시(0.499) 등이다. 특히 나주시는 혁신도시 조성 등으로 한때 인구 증가를 기대했던 곳이지만 현실은 되레 나빠진 모습을 보였다.

이런 현상이 출산율 저하 현상 때문도 아니다. 비수도권을 빠져나간 인구 대부분을 서울 등 수도권이 흡수했다. 국가통계포털 등을 보면 올해 3~4월 수도권 순유입 인구가 2만7500명이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1만2800명)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하는 인구와 속도가 동반상승 중이란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이 끝 아니야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추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 안에 일자리 및 부동산 문제 근원이 자리해서다. 지방에 노동자가 없으니 회사가 없고, 일자리가 없으니 인구가 더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지속 중이다. 반대로 비좁은 수도권에는 사람이 과할 만큼 몰린 까닭에 실업대란과 집값 상승이 두드러진다.

때문에 일자리와 부동산 등 사회자본의 수요와 공급이 전국에서 두루 오가도록 한다는 게 행정수도 이전의 당위성이다. 물론 비수도권에 행정수도 한 곳을 조성한다고 해서 이 같은 문제를 단번에 풀리지는 않는다. 세종시 아파트 가격이 지속 상승하는 현상은 자칫 ‘제2의 공룡’을 낳을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행정수도 이전을 시작으로 당장 직면한 수도권 과밀화는 완화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진단이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경우 지난 21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초광역 단위 균형발전, 초광역 경제권으로 수도권이 전국에 2~3개 만들어져야 수도권 집중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론도 행정수도 이전을 지지하는 모습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2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53.9%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전 반대'는 34.3%,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1.8%였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68.8%), 대전·세종·충청(66.1%), 부산·울산·경남(59.6%) 등 비수도권 지역에서 특히 찬성률이 높았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교한 정책 설계를 요구하는 말이 나온다. “국가의 존망이 달린 중대사를 지금처럼 번개 불에 콩구워 먹듯 결정하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 및 분권에 관한 논의 정도라면 신중하면서도 큰 그림을 제시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마강래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단순히 행정기능을 이전한 수도를 만든다고 수도권 인구가 지방에 분산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역발전은 행정, 일자리, 문화, 교육 등이 복합화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행정기능이 옮겨갈 때 다른 기능들을 끌어안고 가야 효과가 발생한다” 고 조언했다.

마강래 교수는 또 “균형발전 논의가 곳곳에서 일고 있지만, 우리에겐 균형발전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그림이 없다”며 “226개의 기초지자체가 모두 서울처럼 발전하는 게 균형국토의 모습은 아니지 않겠나”라고도 꼬집었다. 이어 “수도권에 대항할 수 있는 몇몇 대도시권을 키워 국토의 전반적인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민간기관 이전을 유인할 종합적 대책을 요구하는 조언도 있다. 이영범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청와대와 국회 등 공공기관만 지방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지역불균형 문제가 해소되길 기대할 수는 없다”며 “지역경제 및 일자리 창출의 실질적 견인차인 민간기관의 이전을 유인할 방법도 마련돼야 효과가 증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범 교수는 이어 “세제혜택 및 부지제공 등 유인책이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지역으로 먼저 이전한 일부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본사는 서울에 둔 채 지방에는 사무소 하나 설치하는 식의 부작용들을 일으킨 바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작용 방지 및 실질적 지역균형을 이룰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개헌 논의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4년 “‘국내 수도는 즉 서울’이라는 사실이 600년 동안 형성된 불문의 관습법”이라는 취지로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을 위헌 결정한 바 있다. 이에 관습헌법 폐지 등을 담은 헌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통합당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여야가 합의만 하면 개헌 없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개진한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행정수도 관련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면 관습 헌법을 앞세운 2004년 위헌 판결이 문제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범계 의원도 “국민적 합의 확인되면 과거 판례 변경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