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이재용 부회장 포함 11명 불구속 기소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했다. 스스로 만든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한 결정이다. 검찰은 혐의를 증명할 ‘결정적 한 방’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삼성은 위기에 직면했다. 악화한 경제상황에 오너 리스크까지 더해졌다. 세간에서도 탄식이 흐른다. 4차 산업으로 포괄되는 미래경제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 와중에 미중 무역갈등과 일본의 경제보복 및 코로나19 등 악재가 겹겹인 현실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초일류 글로벌 기업에 불확실성이 가중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측은 우선 기소의 부당성을 차근차근 밝혀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삼성 역시 위기상황임을 인정하면서도, 경제 활력을 위해 계획된 일정들을 끊김 없이 수행할 방침이다. 다만 이번 기소로 예기치 않은 차질이 빚어질 수는 있다.

檢 “자본시장 질서 교란…증거는 아직 비공개”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 깃발 뒤로 삼성 서초사옥이 보인다.

검찰이 1년 9개월여에 걸친 이재용 부회장 수사를 지난 1일 마무리했다. 이어 재판에 돌입할 채비에 나섰다. 이재용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했다. 또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김종중 전 전략팀장, 장충기 전 차장(사장)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혐의로 기소했다.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 등 5명도 위증 혐의 등을 들어 기소했다. 이들을 포함한 기소 인원 총 11명이다.

일찍이 검찰은 이번 사안의 사건명을 ‘삼성그룹 불법 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으로 명명한 바 있다. 실제 결과 발표 내용도 제목 그대로였다. 검찰은 지난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변경 등이 이재용 부회장 경영승계 작업 일부라고 판단했다. 합병 과정에서 주가조작이 이뤄졌으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봤다. 이번 기소 결정의 핵심 배경이다.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은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며 “각종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불리한 중요 정보는 은폐했으며, 주주 매수, 불법로비, 시세조종 등 다양한 불공정거래행위를 조직적으로 자행했다”고 밝혔다. 또 “미래전략실 전략팀장과 삼성물산 대표가 국정농단 재판과정에서 합병 실체에 관해 허위 증언을 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는 1년 9개월여 전 수사에 돌입할 당시 내세웠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문에 수사를 끝낸 현 시점에서는 핵심 증거를 묻는 질문이 잇따랐다. 이에 대해 검찰은 “증거 없이 기소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증거는 당연히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공개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태도에 한편에선 “이재용 부회장 녹취록이 있다”는 식의 뜬소문이 무성해졌는데 역시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제 뜻대로’ 檢, 수사심의위 패싱

느닷없는 배임 적용도 논란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가 지난 1일 서울고검에서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의 이번 판단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앞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지난 6월 26일 이재용 부회장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바 있다. 강제력 갖춘 권고는 아니었다. 다만 검찰이 이 기구의 권고를 무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곳은 특히 검찰이 권력 오남용 방지 등을 약속하며 스스로 만든 기구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권고를 무시한다는 게 명분상 쉽지 않은 구조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검찰 제 뜻대로 사안을 판단했다. 비판을 의식한 듯 해명에도 나섰다. 검찰측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 취지를 존중해 지난 두 달 동안 수사 내용과 법리 등을 심층 재검토했다”며 “전문가 의견청취의 대상과 범위를 대폭 확대해 다양한 고견을 편견 없이 청취, 수사전문가인 부장검사 회의도 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논의 결과 자본시장 질서 교란의 중대성 등을 종합 고려해 사건을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외 다른 법률전문가들은 기소하라더라”로 요약 가능한 셈인데 이는 두고두고 논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이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논의가 무슨 의미를 띠겠냐는 시각에서다. 이전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도 논의 당시 ‘충분한 숙의를 거쳤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검찰의 이번 판단은 그에 대해 ‘우리도 편견 없이 논의 했고, 수사 전문가도 나섰다’는 식으로 대응한 모양새가 짙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배임혐의가 돌연 등장한 데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검찰이 이재용 부회장에 적용한 ‘업무상 배임’은 이전에는 거론된 적 없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법원 판례 등에 비춰보면, 업무상 배임은 통상 ‘이사 등 업무수행자의 임무 위배에 따른 회사의 손해’가 입증됐을 때 적용돼 왔다. 하지만 검찰은 ‘회사’가 아닌 ‘주주’들의 손해가 합병 당시 발생했다는 취지로 업무상 배임죄를 꺼내 들었다.

이재용 부회장측 “반박할 가치 없다…목표 정해둔 수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부회장측은 검찰을 향해 “반박할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설명한 내용과 증거들은 모두 구속 전 피의자심문이나 수사심의위 심의 과정에서 제시되어 철저하게 검토되었던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또 “수사팀의 태도는 증거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삼성그룹과 이재용 기소를 목표로 정해 놓고 수사를 진행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변호인단은 검찰이 ‘안타깝다’고 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권고를 무시한 데 따른 국민 신임 배반을 꼬집으면서다. 변호인단은 “전문가를 포함한 일반 국민들로 구성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도 제3자적 입장에서 수사팀과 변호인의 주장과 증거를 면밀하게 살폈다”며 “그 뒤 10대3이라는 압도적 다수로 이 사건에 대하여 기소할 수 없으니 수사를 중단하라고 결정하였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각 사안에 대한 근거를 간략하되 비교적 명확히 밝혔다. 이에 따르면 ▲삼성물산 합병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 엘리엇 등이 제기한 여러 건의 관련 사건에서 법원 판결 등을 통해 ‘정부규제 준수’, ‘불안한 경영권 안정’, ‘사업상 시너지효과 달성’ 등 경영상 필요로 이뤄진 합법적 경영활동으로 인정받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 건은 금융당국 입장도 수차 번복됐으며, 12명의 회계 전문가들도 회계기준 위반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배임혐의 적용은 ‘피의자 방어권을 침해한 행위’로 규정했다. 변호인단은 “수사팀도 그동안 법리적 이유, 그리고 합병에 따라 구 삼성물산이 오히려 시가총액 53조에 이르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을 소유하게 돼 이익을 보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배임을)의율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기소 과정에 느닷없이 이를 추가한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수사심의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용 부회장측은 우선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은 “비록 검찰의 이번 기소로 인하여 삼성그룹과 피고인들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이에 흔들리지 않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현재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에 힘을 보탤 것”이라며 “재판에 성실히 임할 것이며, 검찰의 이번 기소가 왜 부당한 것인지를 법정에서 하나하나 밝혀 나가겠다”고 전했다.

문제는 경영, 그리고 경제…경쟁자는 웃는다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최종 결과는 재판을 지켜봐야 한다. 문제는 이 사안이 비단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에 국한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재계에서는 검찰의 이번 판단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본다. 재벌을 향한 일반 대중의 시선과 무관하게 국내 경제 오늘과 내일에 삼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은 부정하기 힘든 까닭에서다. 와중에 이재용 부회장의 사법리스크는 자연히 삼성경영 및 경제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적지 않다.

실제로 앞서 삼성이 계획한 투자 규모만 100조 원 규모를 거뜬히 넘긴다. 올해만 보더라도 삼성전자가 연구개발(R&D) 등에 대한 투자 (3년 누적)180조 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규 채용 4만 명 기록도 변수가 없는 한 무난하게 이룰 것으로 내다봤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지난 7월 인천 송도에 단일 공장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25만6000ℓ)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정도 실은 단기 플랜에 그친다. 삼성은 오는 2030년까지 133조 원가량을 투입해 비메모리 반도체 초격차를 이루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지난 5월에는 평택캠퍼스에 파운드리 생산 시설을 구축, EUV 기반 최첨단 제품 수요 대응을 위한 파운드리 생산라인 착공에 나서는 등 이제 막 닻을 올린 상태다. 이곳에서 예측되는 고용 유발효과만 약 3만 명에 이른다.

이재용 부회장 기소는 그에 제동을 건 것과 다름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 계획은 오너가 결정하고, 집행 시점 및 속도 등도 전부 오너의 몫”이라며 “장단기 투자 및 연구개발 비전이 촘촘하게 짜여 있는 상황에서 재판에 계속 불려 다니는 게 좋을 리 없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이재용 부회장이 받게 될 형사재판은 피고인 출석 의무가 있으므로 이번 기소 대상자들은 예외 없이 법원을 오가야 한다.

어차피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삼성인 만큼 괜찮지 않을까. 또 이미 방침으로 된 투자계획인 만큼 예정시점에 집행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이를 두고도 재계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피력한다. 검찰이 재판에 넘긴 이는 이재용 부회장뿐만 아니라 삼성 임원 11명이다. 투자의 경우 수백 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액이 한 번에 집행되는 게 아니다. 최선의 시점에 최선의 금액을 넣는 ‘호흡조절’이 관건이라는 뜻이다.

당장 현실로 직면할 문제도 거론된다.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간 분쟁(ISD) 소송 결과다. 앞서 엘리엇은 지난 2018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한국 정부가 부당 개입해 피해를 봤다며 ISD에 중재 신청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검찰이 이번에 기소한 이유가 엘리엇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상황이 검찰 뜻대로 이뤄지면, 우리 정부의 엘리엇에 대한 국부 약 1조 원 유출 빌미를 제공하는 모순이 생긴다.

이런 상황을 바라본 삼성의 한 직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반도체 가격이 등락을 오가는 속에서 인텔, TSMC 등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향한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며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일본의 경제보복, 코로나19 등 악화한 여건 속에서도 과감 투자 및 오너 현장경영 등 열심히 하지 않았냐”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일선 직원들 사기도 더해졌던 게 사실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제 웃는 쪽은 외국 경쟁사들뿐일 듯”이라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